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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72화 (7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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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

    물이 막혔다. 라는 건 바다의 날개에게 있어서는 여러가지를 의미한다.

    일단, 배의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래도 움직이는게 어디냐 싶지만 이전에 비해서...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 범선에 비해서도 확연하게 속도가 떨어져 있는 상태다. 밤에는 바다에다가 이 배가 가지고 있는 닻을 다 내린 다음에 러셀의 검을 돌려서 아주 조금의 물을 내보내는 것으로 더 이상의 동파는 방지한 상태다.

    그리고, 목욕 뿐 아니라 식수의 공급도 제한된다. 목욕은 원래 뱃사람들이 몸을 잘 닦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냥 문제 없다고 쳐도, 식수 공급의 제한은 심각하다.

    일단, 이 배는 따로 식수를 챙기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게, 어차피 물이라면 펑펑 물 쓰듯이 쓸 수 있는 배였으니까. 근데 물을 보내는 관이 얼어버리는 바람에 지금 물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육포는 짜다, 건빵은 더럽게 딱딱하다. 당연히 물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는 음식들이다. 그래서 지금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내가 머리를 굴려서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다.

    "... 흑단목이 없었으면 우린 여기서 다 죽었을 겁니다."

    추워서 죽는게 아니라 목말라서 죽었을 것이다. 갈사라고 해야 하나. 내가 생각한 방법은 간단했다. 선원들이 목욕 할 때 쓰는 거대한 욕조 비슷한 거에 바닷물을 꽉꽉 채워넣고, 거기에 흑단목들을 담궈버린다.

    흑단목이 가지고 있는 온기로 인해서 물이 뎁혀지면. 욕조의 위에다가 우묵하게 만든 철판을 올린다.

    데워진 물에서 조금씩 수증기가 나오고. 그게 철판에 맺혀서 떨어진다. 그걸 그릇에 받아서 사용한다.

    식수는 그렇게 가까스로 해결을 보는데 성공했다. 이 일련의 과정들에 있어서 내가 무인도에서 그렇게 욕을 하고 짜증을 내던 서바이벌 책 같은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되고. 우리는 계속해서 느린 속도로 이 빌어쳐먹을 정도로 차가운 바다 위를 항해하는 중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애써서 해결해 놓고 나서, 마리아가 바다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레이먼드, 그냥 돌아갈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잠깐 관자놀이를 긁다가 허연 김을 뿜어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혹독해. 선원들이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라고 마리아는 말했다. 나는 잠깐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이 추운 지역으로 온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내 엄마 고향이야."

    ... 여기가?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아닌데.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아마린스이십니까?"

    마리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항로 한 번 확인하고 선장실로 들어오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 항로를 확인하고 조타수에게 몇 가지를 지시한 다음에 선장실로 들어갔다.

    "네 말대로야. 내 어머니는 아마린스였어."

    가르시아 해, 그 중에서도 더럽게 추운 툰드라 주변에 살고 있는 민족이다. 비교적 따뜻한 여름에는 동굴 같은 곳에서 살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얼음과 눈으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민족들. 따로 국가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는 사람들. 마리아가 테이블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여기에서 살다가, 헤멜롯으로 내려오게 되었어. 노예로 잡혔거든."

    셀키 만큼은 아니지만. 아마린스들도 아름다운 사람들은 꽤 아름답다고들 하니까. 마리아는 계속해서 입을 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헤멜롯에서 꽤 잘나가는 노예 상인이었지. 어머니도 아버지가 팔기 위해서 구해온 노예였어."

    근데, 존나 웃긴게 말이야. 마리아가 찬장에서 술을 꺼내 한 잔 따르면서 말했다.

    "아버지가 엄마한테 반해버린거야. 어이가 없을 일이지. 맨날 팔던 수많은 노예들 중에서 하필이면 우리 엄마한테 그런 감정을 느끼다니."

    마리아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노예 상인이 반해버린 여자가 노예였다고. 이게 무슨 일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가?"

    마리아는 쯧, 하고 혀를 차고 말했다.

    "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를 임신하셨어. 아버지는 어머니를 팔지 않고, 따로 방을 내서 살게 했지."

    뭐, 거기까지는 흔한 이야기인데. 마리아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 되는 놈이 이제 느끼기 시작한 거지. 자신이 나의 어머리를 품에 안은게 단순한 욕정이 아니었다는 걸. 거기부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거야. 헤멜롯에서 노예는 결혼을 할 수 없어."

    마리아가 나에게 술병을 건네주고. 나도 술을 한 잔 따라서 입에 가져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해방시켜주는데 성공하지만 말이야.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을지 몰라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당연한 일이다. 이게 무슨 엄청 야한 미연시도 아니고. 남자의 품에 깔려서 애를 임신했다고 해도 싫은 건 싫은거다. 게다가 애초에 마리아의 어머니는 잡혀온 거니까. 선녀와 나무꾼의 현실적인 해석이라고 해야 하나. 잡아온 상대를 성적으로 쾌락을 느끼게 해서 종속시키는 스토리는 불가능하겠지.

    "어머니는 기회를 봐서 도망쳐버렸어. 배에는 아직 내가 있었지. 배를 타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갔어. 가르시아 해를 벗어나는데 성공했지."

    그 뒤에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몰라.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어머니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가르시아 해 위쪽에 있는 자신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하셨어.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지."

    결국 어머니는 로른 해의 어느 어촌에서 나를 키우다가 돌아가시고. 나는 시간이 지나서 해적이 되었다. 라는 이야기야. 마리아가 말을 마치고 다시 술을 쭉 들이킨 다음 시가에 불을 붙였다.

    "나랑 어머니를 진짜 더럽게 가난하게 살았거든. 식사시간에 내 그릇에는 풀죽을 담아주고, 자기는 데운 물을 담아놓은 다음에 내가 먹는 걸 보면서 먹는 척 하시곤 했으니까. 가르시아 해로 가는 배를 어떻게 타겠냐."

    그리고 마리아는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가볍게 던졌다가 받았다. 다시 목걸이를 잡은 마리아의 손에는 약간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야 뭐, 그때는 아는 거는 개뿔도 없던 멍청한 꼬맹이었으니까. 어머니가 주는 음식 잘 쳐먹었지.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는데 뭐."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깊게 숨을 내뱉었다.

    "어머니는 내가 열살이 갓 넘었을 즈음에 돌아가셨어. 영양 실조로. 세상에서 제일 처량한 죽음이었지. 굶어 죽었다고."

    마리아가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나를 바라봤다.

    "아마린스들의 장례 풍습이 있는데. 죽은 사람의 유품을 어떤 산에 묻는거야. 그곳을 통해서만 저승으로 갈 수 있다고 믿거든."

    마리아가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에 시가에 빨갛게 불을 피워올렸다.

    "물론, 어머니는 유언 같은 건 남기지 않았어. 그냥, 미안하구나. 라는 말이 어머니가 가까스로 내뱉은 마지막 한 마디였으니까."

    마리아게 손에 들고 있던 시가의 끝에서 툭, 하고 재가 떨어지고. 그 소리를 들은 마리아가 시가를 다시 한 번 빤다.

    "당연히, 우리 어머니는 내가 여기까지 오는 걸 바라지 않겠지. 일부러 내 앞에서는 고향보다 여기가 훨씬 좋다고 떠드시다가, 내가 잠을 잘때 즈음 되면 맨날 이 목걸이 하나 꺼내들고 쓰다듬던 분이시니까."

    마리아가 눈을 약간 아래로 깔고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근데, 원래 자식이 부모 시키는데로 하면서 자라는게 아니잖아? 그래서 여유가 되자마자 와버린거지. 어머니가 평생 그렇게 오고 싶어하던 고향에, 유품이나마 가져가려고."

    그런 이야기다. 마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시가를 땅에 던지고 비벼 끈 다음에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일단, 와봤는데 말이지..."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려나.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막상 와서, 내 개인적인 일 때문에 선원들 벌벌 떨면서 돌아다니는 거 보니까. 선장모가 내 머리통을 미친듯이 누르고 있어. 괜한 선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마리아는 쩝, 하고 입을 다신 다음에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배 돌리자 레이먼드.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 말에 나는 혼자 하핳 하고 웃다가 마리아를 바라봤다.

    "배를 돌릴 이유가 없는데요."

    그 말에 마리아가 나를 바라본다.

    "바다의 날개는 기능을 많이 잃었고, 선원들은 추워하고. 식량이 얼마나 버틸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나는 쯧 하는 소리와 함께 척 하고 엄지를 들어서 스스로를 가르켰다.

    "바다의 날개는 절름발이가 되었고, 선원들은 돌아다니면서 부들부들 떨고, 식량도 충분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제가 괜찮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마리아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저한테 말하지 않았습니까? 책임을 나눠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고."

    정확한 대사까지 기억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대충 그런 이야기를 했었잖아 임마.

    "그럼 내 판단 믿고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마리아가 말한 곳 다 돌아보고 식량을 남겨서 가는 기적의 항해를 보여드리죠."

    마리아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야."

    왜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고. 마리아가 씨익 웃었다.

    "옷 벗어."

    지금 대낮에다가 항해 중 인데요? 여기서 갑자기 벗으라고 하시면...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저는 씬고자라서요... 쓸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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