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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69화 (6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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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먼트

    커다란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 있는 셀키의 상태를 보던 마리아가 혀를 찼다.

    "진짜 더럽게 후드려 깐 모양이네."

    셀키의 몸 군데군데에는 심각해 보이는 검게 죽은 멍들이 있었고, 등에 보이는 채찍으로 인해서 뜯어진 살점은 곪아서 누런 고름이 썩은 피와 함께 말라붙어있었다.

    복부에는 신발로 밟아서 생긴 멍자국 위에 검은 먼지들이 잔뜩 엉겨붙은 끔찍한 모습. 온 몸에 성한 곳이 거의 없다. 저 상태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 같은데. 그런 와중에도 얼굴만은 건드리지 않아서 말끔했지만. 그 눈에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했다. 주변을 바라보던 셀키가 몸을 부르르 떨고는 말했다.

    -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짙은 공포와 절망이 잔뜩 담겨있었다. 그걸 보던 마리아가 쯧 하고 혀를 찼다.

    "... 식사는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입을 벌려서 뭐라고 말하다가 쿨럭거리면서 피를 게워내는 모습에 마리아가 입맛을 쩝 다셨다.

    "이봐, 이봐?"

    마리아의 말에 셀키가 기겁을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알몸으로 엎드린다. 그 모습에 마리아가 허허허 하고 웃다가 셀키의 얼굴을 잡고 들어올려서 가볍게 빰을 툭툭 건든다.

    "정신 차려봐요. 이보세요. 야!"

    어떻게 하면 고작 며칠 사이에 바다의 정령이라는 셀키가 저렇게 맛탱이가 갈 수 있는거지. 마리아는 후우 하고 숨을 쉰 다음 허리춤에 메어져 있는 물 주머니를 꺼내서 셀키의 입 속으로 흘려넣는다.

    "정신 차리고, 우리 좀 대화라는 걸 해보자고."

    물을 마시던 셀키가 쿨럭,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약간 붉은 빛을 띄는 물을 게워낸다.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자 셀키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갑판에는 말 그대로 도살장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패닉에 빠진 셀키가 더 이상 언어라고 할 수도 없는 무슨 소리를 외치면서 자신의 고개를 숙이고 비명을 지른다.

    이렇게 된 이상 극약처방이네.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고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그 가죽 줘봐."

    나는 순순히 마리아에게 그 가죽을 건네주고. 마리아는 그걸 툭 하고 셀키에게 던져주었다.

    - 아... 아... 가죽... 내..."

    셀키가 반쯤 맛이 간 몸으로 그 가죽을 꽉 쥐고 그대로 끌어안는다.

    "니 가죽 가져가라. 이래서야 무슨 대화가 되지를 않을 것 같네."

    가죽을 손에 집은 순간부터, 셀키의 몸에 아지랑이 같은 것이 가볍게 일어나고, 셀키의 몸에 있던 상처들에서 하얀 물거품 같은 것들이 부글부글 일어난다. 거품이 거두어지자, 셀키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안정을 찾은 듯한 모습으로 셀키가 자신의 가죽을 몸에 한 번 휘감고 우리를 본다.

    - 당신들은?

    이게 정답이었네.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셀키 소녀를 바라봤다. 눈에 다시 빛이 돌아오고, 멀쩡한 모습이 된 셀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밤인데 몸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이 하얀 피부와 녹색의 눈동자.

    마리아가 셀키의 물음에 답한다.

    "해적."

    그 말에 셀키가 잠깐 고민하다가 손을 슥 저었다. 그걸로 주변에서 배 주변에서 바닷물이 배를 타고 올라와서 배 위에 널려있던 시체들과 피를 싹 지워낸다. 순식간에 선원들이 박박 문질러야 없어질 그 시체와 자국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해적이 뭔지는 몰라요. 하지만, 당신들은 저에게 가죽을 돌려 주셨어요. 제가 제 정신이 아니어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셀키.

    "뭐, 괜찮아. 보통 사람이었으면 그대로 죽을 정도였는데 뭘."

    마리아의 말에 셀키가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에 입을 열었다.

    - 감사합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맨입으로 그냥 가게? 설마... 하다못해 머메이드는 우리한테 배랑 진주를 줬는데 말이지. 바다의 요정이신 셀키가 가죽을 돌려받았는데 맨입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다음에 그냥 슥 사라지지는 않겠지?"

    그 말에 셀키가 마리아를 보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는 마리아가 살며시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고. 선원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코를 붙잡았다. 아 물론 나도. 저 미소 한 방에 이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에메랄드 빛 폭격이 시작되었다.

    - 바라시는게 있나요?

    라면서 눈을 가볍게 반짝이는 셀키. 마리아의 표정이 약간 풀리려고 하는데. 그걸 애써 바로잡은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흑단목이 필요해."

    그 말에 셀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 얼마나 필요하세요?

    그 말에 마리아가 바다의 날개를 가르키며 말했다.

    "저 녀석이 딱히 땔감 때우지 않아도 따뜻할 수 있을 정도?"

    그 말에 셀키의 시선이 우리의 배로 향하고 놀란 표정으로 다시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리아가 가슴에 올려놓고 붙들고 있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 셀키의 표정은 사람 몇 명 심장마비로 보내버릴 수도 있는 폭력적인 귀여움이었다.

    - 나가의 배잖아요! 저걸 어떻게 구하셨어요?

    머메이드나 머맨은 꼬박꼬박 부모님이라고 공손하게 표현하는 데 말이야. 태연하게 나가의 배. 라고 말하는 걸 보니 원래는 그렇게 나약한 친구들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셀키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 말하자면 긴데. 일단 머메이드들의 도움을 받았지."

    나의 설명에 셀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군요. 머메이드는 나가의 딸들이니까요. 어떤 걸 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가의 배를 받다니. 흑단목 가지고는 보답이 부족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마리아가 그녀를 바라봤다.

    "다른 거 뭐 줄 수 있는 거 있어?"

    그 말에 셀키가 으음 하고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나가의 배를 고칠 수 있는 건 나가 뿐이에요. 저희들도 어떻게 고치는 지 방법은 몰라요. 하지만 저게 배인 이상에야 언젠가는 망가지겠죠.

    그게 고민이기는 했다. 저 배가 망가지면 어떡하지?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가? 그래서 배의 운용도 굉장히 조심해서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최대한 상처 입지 않도록.

    - 하지만, 고치지 않고 고칠 수는 있어요.

    그 말에 마리아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 요상한 표현에 속으로 실소했다. 그게 뭐야. 고치지 않고 고칠 수 있다니. 섹스하지 않고 섹스할 수 있는건가?

    "고칠 수 있다고?"

    정확히 말하면, 고치는 건 아니에요. 라고 셀키가 말한 다음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 이 바다의 인간들이 저희를 노리고 있는 건 알고 있어요. 저희는 이주에 한 번 정도는 꼭 월광욕을 해야 하는데... 사실 월광욕을 하는 장소를 바꾸면 그만이지만요.

    그리고는 셀키가 한숨을 쉬었다.

    - 저희가 월광욕을 하는 섬에 지키고 있는 물건이 있거든요.

    드리는 건 제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결정할 일이지만. 한 번 정도는 사용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자세하게 설명해줘."

    그 말에 셀키가 입을 열었다.

    - 저희가 월광욕을 하는 섬에는  모먼트라는 물건이 보관되고 있어요.

    처음 들어보는 물건인데. 이건 마리아와 선원들, 로제 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표정이다. 저 전설 덕후들이 모르는 물건이라면야 진짜 다른 사람들도 모른다고 밖에 할 수 없겠지.

    - 생물들의 시간을 희생하면, 1년을 하루로 계산해서 다른 물체의 시간을 되감을 수 있어요. 다른 생물의 10년을 빼앗으면, 다른 무언가가 지나온 10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해주죠.

    뭐냐 그 더러운 교환비율은? 365대 1이냐? 그런 거지같은 비율이라니. 등가교환의 법칙도 모르는거냐. 그리고 마리아가 대답했다.

    "그러면, 5일 전에 배가 심각하게 부서졌으면... 6년 정도의 시간을 사용해서 배를 그 전의 상태로 복구시킬 수 있다는 거네."

    셀키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입을 열었다.

    "그것도 그 나가의 유물인지 지랄인지 하는 물건입니까?"

    그 말에 셀키가 고개를 저었다.

    - 그건 나가들의 작품이 아니에요. 나가들은 그런걸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마리아가 혀를 찼다.

    "그거 편해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을 그냥 그걸로 제거하면 시간을 되감을 수 잇는건가."

    그 중얼거림에 셀키가 고개를 저었다.

    - 시간을 희생하는 생물의 동의가 없으면 모먼트는 작동하지 않아요. 협박이나 강요에 의한 희생도 불가능해요. 순수하게 자의로 스스로의 시간을 희생하는게 아니면 모먼트는 효과가 없어요. 그렇게 희생된 시간으로 되감는 대상은 의지가 없어도 괜찮지만... 시간을 희생하는 건 반드시 생물이어야 해요.

    즉, 돌 같은 것의 시간을 희생해서 시간을 되감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가. 사용 방법이 참 막막한 녀석 되시겠군.

    누가 자기 시간을 남을 위해서 희생하겠냐. 나는 그 까다롭기 짝이 없는 물건의 설명을 들으면서 허허허 하고 웃었다. 나 같으면 죽어도 동의하지 않는다.

    - 배가 부서지는 일이 있으면, 제 시간을 희생해서 복구시켜드릴게요.

    그 말에 마리아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거 엄청 부담되는 일 아니야?"

    그 말에 셀키가 고개를 저었다.

    - 여러분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저에게 허락된 긴 세월이... 한도 끝도 없이 비참했을테니까요.

    그리고, 셀키가 마리아를 보다가 그녀의 손을 양 손으로 꼭 붙잡고 가볍게 손등에 입술을 가져갔다. 마리아의 손등에 셀키의 입술 자국이 그대로 빨갛게 남고. 그녀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 나가들의 배에 문제가 생기면, 가르시아 해에서 손을 바다에 담궈주세요. 제가 찾아갈게요. 그리고... 다시는 저도 대왕 오징어들이 지켜주는 섬 밖에서 월광욕을 하는 일은 없을거에요.

    셀키는 그 말을 끝으로 우리를 돌아보고 말했다.

    - 흑단목은 제가 바로 여기로 가지고 올게요. 기다려 주시겠어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셀키는 그대로 배에서 풀쩍 점프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다표범의 모습이 되어서 셀키는 바닷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작품 후기 ============================

    크리스마스에는 역시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딱 좋죠.

    너무 늦게 올리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ㅠㅜ

    머리 속을 위스키가 점령했어요. 크리스마스에 슬픈 사정들로 인해서 쉬지 못하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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