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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63화 (6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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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 하운드 항구

    며칠 뒤, 우리가 쉬고 있는 여관에, 게르하르크가 찾아왔다. 주인이 나와서 직접 인사를 할 정도로 권력이 제법 되는 모양이지. 예전 세상으로 치면 시장 같은 직위려나. 그 인사를 한 손을 가볍게 올려서 받은 그가 소파에 앉고, 주인이 우리와 게르하르크를 위해서 차를 내온다. 당케,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차를 받아든 게르하르크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 여기에 온 이유?"

    그의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아,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당신에게 굳이 말해야 할 필요는 없지."

    그 말에 게르하르크가 픽 웃고는 차갑다. 라고 말했다.

    "흑단목, 알고 있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구를 만들 때 쓰는 나무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무지무지하게 비싼 나무다. 이 목재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보신다면 크게 세 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일단, 희귀하다. 엄청 희귀하다. 그래서 비싼 것도 있다.

    두번째로, 이 녀석이 때깔이 참 좋은 목재다. 겉 보기에도 윤택이 자르르 흐르는 검은색 나무인데. 그 색깔을 한 번 보면 왠만한 고급 목재는 이쑤시개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때깔이 좋은 목재다. 물론, 배의 재료로 쓰기에는 약간 무른 편이지만, 가구나 조각 용도로 쓰기에는 딱 좋다.

    마지막이 제일 중요한데. 이거 난로다. 불로 태워서 열 만드는 거 말고, 목재 자채가 온기를 품고 있어서. 한 토막 옷 안에 넣어놓는 것 만으로도 체온이 후끈 올라간다. 기본적으로 꽤 추운 지방인 가르시아 해에서 이 나무로 가구를 만들면 앞으로 난방비 걱정은 땡이다.

    "그거 모르는 인간도 있나?"

    그건 그렇지.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게르하르트가 그렇군. 이라고 말한 지도를 펼쳤다.

    "바로, 본론 하겠다."

    그러시든가. 우리를 바라보던 게르하르크가 챙겨온 해도를 테이블에 펼친다. 가르시아 해의 지도. 그리고, 거기에는 이미 붉은 색으로 동그라미가 쳐져있는 해역이 있었다.

    "이 지역. 왠만한 실력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흑단목 숲이 있다."

    숲이라고 해도, 흑단목의 특성 상 울창한 침엽수림에 드문드문 있는 거겠지. 값 자체는 같은 부피의 금과도 바꾼다고 하는 흑단목이니까, 영 개같은 장소만 아니라면...

    나는 게르하르크가 그려놓은 해역을 가만히 살펴보고 곧장 한 마디 했다.

    "싫어, 안 들어갈거야."

    저기는 흑단목이 아니라 매해 가지에 금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고 해도 안 간다.

    나의 빠른 반응에 마리아가 나를 바라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고. 나는 그런 마리아를 향해서 말했다.

    "저기 못 들어가는 곳입니다."

    몇 번이고 말하는데, 탐험선들도 들어가지 않는 곳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일단 해도를 딱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게르하르크 녀석이 동그라미를 친 구역은 텅 비어있다. 섬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이 아닌데. 아무것도 기입되어있지 않고, 덤으로 안에 흐르는 해류 같은 기본적인 자료도 적혀있지 않다.

    아무도 저기 안들어가려고 하는 거지. 이유는 하나다. 가면 위험하니까!

    "길로틴 섬도 그랬었잖아."

    마리아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거기는 소용돌이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거지만. 저기는 다른 이유란 말입니다."

    텔만의 유명한 생물학자가 써 놓은 논문도 있다. 저 안은...

    "저 지역은 대왕오징어 서식지입니다."

    대왕오징어라는 말에 마리아가 나를 바라본다.

    "크라켄 말하는 거야?"

    그 말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무겁게 말했다.

    "크라켄 까지는 아니고, 크라켄 아들 뻘 되는 크기의 오징어들이 싸돌아다니는 영역이라는 겁니다."

    혼자서는 못하겠지만, 한 서너마리 붙으면 왠만한 크기의 범선은 그대로 바다 아래로 끌려들어갈걸. 심지어 텔만의 그 생물학자씨는 그거 연구하겠다고 비싼 돈 주고 저기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실종당했다.

    소문에 따르면 텔만의 법정에서는 그 생물학자가 타고 있던 텔만의 선장이 그 생물학자를 바다로 밀어넣고 배랑 함께 빠져나왔는데도 실형 선고를 하지 않았다던데.

    나의 말에 마리아가 가볍게 신음했다. 길로틴 섬의 위험에 대해서는 해적들은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실감을 하지 못했지만. 크라켄이라고 하는 바다의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는 감이 확 오는 모양이다. 그 질척거리는 촉수로 배를 한 번 휘감고 꽉 조여주면 그대로 배가 홍콩으로 딥 다크한 곳으로 날아가버리게 만드는 그 거대 연체류에 관한 이야기.

    이쪽 동네에서는 대왕오징어에 관한 이야기가 과장되어서 생긴게 크라켄 전설이라는 것이 정설이니까.

    나의 말을 듣고 있던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헤르만 어로 말을 하고 있었기에 이쪽에서는 알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

    마리아는, 옆에 레이먼드를 둔 채로 자기 어머니의 언어로 입을 열었다.

    "거절하지."

    그 말에 게르하르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국어로 입을 열었다.

    "이유가?"

    마리아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난 해적이고, 해적선을 몰고 있는 선장이야. 상선을 몰고 있는게 아니라. 남이 캐온 것도 아니고, 직접 섬에 들어가서 나무를 찍는 행위는, 해적이 아니라 나무꾼이 할 일 아닌가?"

    그녀의 말에 게르하르트가 웃는다.

    "그게 중요한가?"

    마리아는 그의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해적들의 항구라고 했나. 이 그레이 하운드가?"

    그렇지. 라는 게르하르트의 동의에 마리아가 양 팔을 깍지 낀 채 그 위에 턱을 올리고 말했다.

    "내가 며칠 정도 가만히 살펴봤는데 말이야. 해적들의 항구 치고는 너희들 물건 순환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던데."

    해적들은 기본적으로 훔친 물건을 장물로 넘긴다. 때문에 제대로 된 가격도 받지 못하지만... 물건의 순환 속도도 그 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암시장을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지니까. 근데,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항구도 암시장으로 넘기는 물건 가지고는 이 항구와 같은 순환이 일어날 수가 없다.

    "... 니들, 정식 항구를 상대로 거래하냐?"

    그렇다면, 이미 국가에서는 이 녀석들과 항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녀석들은 국가랑 같이 일하는 해적이라는 뜻.

    그 말에 게르하르트가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다마다. 마리아가 게르하르트를 보면서 말했다.

    "하, 거래를 하는구만. 그럼 니들과 상인들의 차이가 뭐지?"

    게르하르트가 아직 김이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대답을 하지 않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리아가 단언했다.

    "니들은 해적이 아니야."

    게르하르트가 대답했다.

    "우리는 국가의 허락을 받고 텔만의 상선 만을 약탈하지. 여기는 헤르만 국의 항구니까. 여기에서 오가는 해적들은 헤르만의 배는 공격하지 않는다."

    그 말에 마리아가 실실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아, 이거 상인이 아니라 해군이셨군. 내가 지금 해군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더 좋지. 게르하르트가 마리아의 말에 대답했다.

    "국가의 허락을 받고 돌아다닌다. 세금도 내고, 보호도 받지. 제대로 허가증을 가지고 활동하는 직업이라고. 해군이 방패라고 한다면, 우리는 창이라고 할까."

    마리아가 그 말을 듣다가 한 마디 던졌다.

    "이야, 그래서 우리가 흑단목 구해오면 비싼 가격에 사주고. 은근 슬쩍 나한테 사략선장 자리라도 하나 안겨주려고?"

    그 말에, 게르하르트가 웃는다.

    "괜찮지 않나? 그 머리카락, 어차피 너의 몸에는 우리의 피도 흐르는 모양인데."

    마리아가 웃음이 가득한 눈으로 게르하르트를 바라보다가 옆의 레이먼드에게 말했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겠어?"

    레이먼드가 그 말에 선선히 자리르 비켜주고. 마리아가 게르하르트를 응시했다. 그 시선과 눈을 맞추고 있던 게르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국가랑 함께 일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나?"

    그의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나는 말이야, 남들이 어떻게 살던 간에 거기에는 신경 안 써. 자기 삶이니까. 섹스해서 임신 시키거나 임신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나면 지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지."

    마리아의 말을 게르하르트가 경청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니가 하는 일이 뭐든 신경을 쓰지 않아요. 노예를 팔던, 마약을 팔던 길거리에서 시냇물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서 팔던. 그러니까 너도 니가 하고 있는 그 귀여운 놀이에 자꾸 나를 끼워넣으려고 하지마라."

    게르하르트가 마리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귀여운 놀이라...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보통 사략선이라고 하던데."

    마리아는 그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아하, 그 유명하신 사략선. 이야기는 들어봤지. 가르시아 해에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

    마리아는 게르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근데, 그렇게 살면 재밌냐?"

    마리아의 말에 게르하르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재미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돈이 되고, 효율적이라는 점이지."

    마리아가 그 말에 쩝쩝 입맛을 몇 번 다시고 그를 바라봤다.

    "재미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니 돈 벌어서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돈을 쫒냐?"

    마리아가 깍지 낀 손을 풀고 그를 바라봤다.

    "이 항구가 나에게 옴짝달싹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지. 내가 돈줄을 잡고 있으니까. 나는 돈을 통해 권력을 본다."

    마리아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를 훑어봤다.

    "좋아... 그럼 그거 얻어서 행복하냐?"

    마리아의 말에 게르하르트가 대답한다.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지. 거듭 말하지만 재미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야."

    나름대로의 보람이라... 마리아는 그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 했다.

    "뭐,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야. 니 갈 길 니가 간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근데 말이야. 마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를 바라봤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어. 나는 스튜를 먹을 때 빵을 국물에 안 찍어 먹거든? 근데 나를 보면서 너는 왜 안 찍어먹냐고. 이렇게 먹는게 더 맛있다고 하면서 내 빵을 스튜에 찍어놓고 멋대로 먹어보라고 하는 새끼들."

    마리아의 눈이 살벌하게 게르하르트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이해했을까? 니 스튜 어떻게 쳐먹든 상관 안하니까 내 스튜에 신경 끄라고."

    니가 사략선을 하던 해적선을 하던, 항구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만 먹고 살던 신경 안 쓰니까. 나를 자꾸 은연 중에 사략선장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숨을 깊게 내쉬고 나서, 마리아는 일렁거리는 담배연기 너머로 게르하르트를 바라봤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략선 같은 거랑은 안맞아. 누구 밑에서 일하고 있지를 못하거든. 거만해서. 다 내 밑으로 넣고 싶은 욕구가 있지."

    말하고 나서 마리아가 자기 입을 살짝 가리면서, 어머. 숙녀가 못하는 말이 없어! 하고는 픽 웃었다.

    게르하르트는 비웃음을 띄운채로 대답한다.

    "오래 살 팔자는 아니군."

    그 말에 마리아가 쏘아붙인다.

    "니는 좋겠다. 재미 없이 오래 살 예정이라. 그리고 이쪽은 말이야. 나름대로 이 해적생활에 자부심 같은 걸 가지고 있다고. 국가랑 일하다니, 러셀이 바다 밑에서 펑펑 울거다."

    게르하르트가 마리아의 말을 듣고 실실 웃었다. 러셀이라니, 이 여자 그런 생활을 동경하고 사는 건가.

    "이거, 암사자인줄 알았더니 그냥 꿈꾸는 소녀였나. 기사 소설 읽고 길거리 걸어다니는 병사들한테 얼굴 붉히는 계집이랑 다를게 없군."

    그 말에 마리아가 그를 보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척 올렸다.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게 그 꿈이랑 자부심 쫒다보니 온 거다. 니가 이 항구 마에스터로 올라온게 돈이랑 효율성 쫒다가 된 거듯이."

    깝치지마, 범선이나 타고 다니는 주제에. 마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게르하르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 마디 했다.

    "... 항구도 없는 주제에."

    ============================ 작품 후기 ============================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전작에 있었던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걱정어린 코멘트를 남겨주셨습니다.

    그 때에 비해서 저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과속운전을 했고, 그 결과 노선에서 이탈하는 결과가 있었지요.

    그 점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전전작에서는 완결을 정하지 않아서 배운 것

    전작에서는 완결을 정한 상태에서 과속으로 인한 배윤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ps. 선작 4000이 넘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이야기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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