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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속의 표류선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나의 발 아래가 확 무너지면서 나와 로제가 갑판 아래로 추락했고. 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로제를 한 번 확인했다. 나는 혀를 쯔, 하고 차고 말했다.
"... 젠장, 조금 있어봐라. 이거 끝나고 나면 치료할테니까."
더럽게 아프겠네 발목.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슥 둘러봤고. 로제도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콱 틀어막고 가늘게 비명을 흘렸다. 굴러다니고 있는 해골들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내 이마로 로제의 이마를 툭 때렸다.
"해골 처음보냐?"
그 말에 로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한 숨을 쉬었다. 이 불쌍한 새끼들.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을 보면 진짜로 이 배는 악마한테 영혼이 팔렸던 모양인데. 나는 머리를 긁다가 입을 열었다. 이 말 정도 할 시간은 있겠지.
Now, We leave our brother's soul to our God Almighty
이제 우리 형제의 영혼을 전능하신 신에게 맡기오며
and bury his flesh into depths
그 육신을 심연에 안장하니
And we believe he will have a eternal life through the hope of salvation
그리고, 그가 구원의 희망으로 영생하리라 믿나니
When the Lord comes to punish
그 분께서 영광 중에
the world in glory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때에
Sea will present his death before him
바다는 그 죽음을 내어주리라.
the Lord will put everything undernocean his feets
그 분께서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셔서
will show miracles
놀라운 일을 펼치시리니
His rotten flesh that sleeps in the Lord
그 분의 품안에 잠든 그의 썩은 육신도 변화되어
will turn to the glorious body like Lord has
그 분의 영화로운 몸처럼 되리라.
In the beginning, the Lord made man from salt
시원에서 그 분께서 소금으로 남자를 만드시고
and with water made woman
물로써 여자를 만들었나니
Death is the holy ceremony of returning to beginning.
죽음은 시원으로 회귀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로다.
세상에 내 생각과 다르게 유령이 있다면. 죽은 자들에게 보내는 바다의 진혼시인 이 녀석이 조금이라도 녀석들에게 평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말을 마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씨발, 이거 위로 어떻게 올라가지. 진짜 답이 없는데.
그때였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해골들이 덜그럭 덜그럭거리면서 허공에 떠오른 것이.
"어... 어... 씨발 이거 뭐야! 이거 놔 이 미친...!"
뼈가 허공에서 부스러지며 박살나 하얀 가루로 바뀌고. 그 가루들이 나와 로제의 몸을 휘감기 시작한다. 그리고, 몸이 허공에 떠서 빙빙 회전하며 어디론가 내던져졌다.
... 그곳은 선장실의 바로 앞.
"뭐 이따위야?! 대충 이해는 하겠는데. 구해줘서 고마워서 한 방에 선장실로 보내준 건 알겠어! 근데 집어 던지는 건 조금 아니잖아!"
엉덩이 아파 죽겠네! 게다가 로제의 이마에 고통으로 인한 식은땀까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 방금 전 그건...?"
몰라, 바다 미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나의 인식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몇 개는 그냥 개소리는 아닌 것 같네.
나는 내 앞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선장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바라봤다.
"... 하, 시발. 굳이 악마한테 영혼을 안 팔아도 이미 충분히 위험해 보이는 문인데."
미적 센스가 왜 저 모양 저 꼴이야!? 나무로 조각한 호랑이 아가리 같이 생긴 그 문은, 마찬가지로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뻘건 색이었고. 군데군데 벗겨져 있어서 을씨년스러운데다가, 엄청 스산한 모습으로 떡 하니. 어흥, 하고 서 있었다. 막 그냥 보고 있어도. 너를 물어버리겠어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그 낡아빠진 장식의 아가리 부분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머리를 긁었다.
"이게 도대체 뭔데?!"
선장실의 중앙에서 혼자 떠 있던 색이 잔뜩 바랜 해도. 그 해도가 천천히 내 코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귓 속으로 들리는 목소리.
- 그대가 진정한 뱃사람이라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다오. 그리하여, 너희는 다시금 살아갈 기회를, 우리는 심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그대가 읊어준 진혼시에 나온 문구대로. 바다가 우리에게 그 죽음을 내어주게 해다오.
시야가 검게 점멸한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검게 변했던 시야가 바뀌고. 나는 배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아 씨..."
한 번 봤던 것 같은 배 위에 나는 서 있었다. 물론, 그 배의 상태보다 몇 배는 더 멀끔하지만. 그래도 그 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카민 루주힐의 배,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선장...! 더 이상은 안됩니다! 항해를 중지해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느정도 감이 잡혔다. 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배. 엉망 진창인 모습으로 축축하게 젖어서 뛰어들어온 선원.
이 유령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냐, 악마에게 영혼 팔지 말고 니들을 그 진홍의 촛대인지 지랄인지에 가져가 달라는 거냐. 나는 후우하고 깊은 숨을 내쉬고. 테이블 위에 있는 럼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깥의 상태를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미친 선장새끼. 이런 폭풍우는 처음 본다! 이런 씨...!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올라가서 이를 갈면서 조타륜을 잡고 배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이고 맙소사! 종범이 하나도 없잖아?! 내가 이래서 상선을 싫어한다고! 병신같은 것들! 종범도 안 달고 무슨 항해를 하겠다고!
"돛 다 접어라!"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비가 농밀하게 바람을 타고 몰아친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도 이미 갑판에 시냇물이 생길 정도로 심하게 내리는 비다! 맙소사, 이런 건 뱃사람들 항해 하면서 평생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정도겠는데!
나의 외침에 선원들이 나를 바라보고 나는 그 선원들을 보면서 말했다.
"말 안들리냐?! 횡범 접으라고! 귓구녕에 육포 박았냐!"
진홍의 촛대까지 가주면 되는거 아니야! 바지사장 한 번 해본다 내가. 이 배는 내가 멱살 잡고 한 번 끌고 가주마!
횡범이 천천히 접히고. 나는 그걸 보면서 성질을 부린다.
"니들 여기서 다 수장되고 싶은거면 그냥 뛰어들어! 살고 싶으면 빨리 빨리 움직이고!"
배가 흔들린다 수준이 아니라, 파도가 악마의 손아귀라도 되는 마냥 배를 이리저리 흔든다. 거의 40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좌우로 기울어지는 배를 보면서 나는 외쳤다.
"스팽커! 바람 꽉 잡아라!"
그리고 조타륜이 휘리리릭 돌아가고. 나는 가까스로 배의 균형을 맞추면서 다시 외쳤다.
"메인세일이랑 포어 메인세일, 펼치고!"
내 말을 전혀 따라주지 않는다. 그야 죽여버리고 싶겠지 나를. 지금 내가 선장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저 녀석들에게는 내가 이 지옥으로 직접 끌고온 개새끼로 보일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말 하면 듣기라도 해라 이것들아! 왜 이렇게 동작이 느려... 어버버버 하고 있는 새끼들을 보다가 나는 외쳤다.
"니들 집에 기다리는 사람들 없냐!?"
그 말에 일을 하던 사람들이 슬쩍 나를 바라봤다.
"여기서 그 사람들 다 두고 죽어버릴거냐! 니들 집에 있던 마누라가 니들 죽으면 수절할 것 같냐?! 다른 사람 만나서 하하호호하면서 살겠지! 여자친구는 아닐 것 같냐!? 다 도망친다! 니들 위해서 평생 수절하지는 않을거 아니야! 아들이랑 딸은 누가 키울거야!"
나는 그렇게 악을 쓰면서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씨발, 그 꼴 두고 볼 거냐?! 이런 날씨에 항해하게 해서 미안하다! 존나 미안하다고! 나중에 사과할테니까! 일단 좀 살고 보자! 니들도 죽어서 그 꼴 보고 싶지는 않잖아 새끼들아! 죽어서 심해에 잠긴 다음에 내 잘못 따질꺼냐?! 살아서 따져!"
나는 그렇게 외치고 나서 말했다.
"스팽커 바람 지금 새고 있잖아! 빨리 제대로 붙잡고! 메일 세일이랑 포어 메인 세일 올리고! 빠져나가서 이야기하자 우리!"
스팽커가 천천히 바람을 다시 잡는 동안에도, 배가 거의 엎어지기 직전까지 기울어지고, 하늘에서 벼락이 지랄 염병을 하면서 내려찍는다. 한 번에 세 개?! 하늘에서 괴롭히려고 환장했나!?
"횡범, 바람 다 잡지 말고 반은 흘려라! 마스트 부서질 수도 있다!"
안돼, 이건 사람의 정신력을 다잡는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야. 사람이 제대로 걸을 수도 없잖아! 확 옆으로 기우는 배에서 삭끈은 돛을 조종하기 위한 끈이 아니라, 바다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구명줄이다...! 이 상황에서 배를 원하는 데로 움직이려는 건 말 그대로 욕심이야.
... 가드를 올리자. 차라리 버틴 다음에..!
나는 어금니를 물고 주변의 파도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돛 조정하는 사람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아래로 내려가서, 짐 다 맨 아래칸으로 집어넣어놔! 대포알이고 뭐고! 무게 나가는 것 부터 해서 다 아래에 쳐박아!"
무게 중심을 낮춰야 한다. 애초에 이 배가 큰 배이기는 하지만, 무게중심을 아래에 몰아넣지 않으면 이 정도의 폭풍우에는 진짜 꺼꾸러질지도 모른다.
버텨야 한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 어디로 배가 움직이던, 그걸 통제하는게 중요한게 아니야!
조타륜이 더 이상 사람의 힘으로 조종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파도의 힘을 받고 있다.
나는 조타륜을 그냥 놔버렸다. 이거 억지로 어떻게 하려고 하면 부러진다...! 어차피 지금은 쓸모도 없어! 배가 이렇게 뒤뚱거리는데 이게 뭐하러 필요해! 나는 아래로 내려가서 돛을 살피기 시작했다. 버티는데에는 돛이 제일 중요하다! 바람 힘을 받아서 배가 전복되지 않게 살려야된다!
배가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기 시작한다.
"바람 받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삭끈 하나를 붙잡고 방향을 틀었다. 잠시 뒤에, 다른 파도가 배를 후려치면서 배가 확 오른쪽으로 기울려고 한다.
"바람 받아아아아아!"
그리고 나는 다시 삭끈을 선원들과 함께 조정하면서 바람을 받아내었다. 좋아... 좋아...!
아직 배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져있지만...! 나는 이쪽을 건드릴 파도를 확인하고 말했다.
"바람 그만받아!"
그리고 바람을 그만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잠깐 유지되다 그 파도와 함께 다시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계속 받지 말고 있어... 지금, 다시 받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달아오르는 체온이 느껴진다. 간만에 삭끈 잡고 흔들려니까 더럽게 힘드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아래로 내려갔던 선원들이 다 정리를 한 건지 위로 올라왔다.
"니들은 지금부터, 내가 외치면 배의 그쪽 측면으로 존나 달려! 알았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배가 기울어지는 걸 확인하며 외쳤다.
"바람 다 버리고! 오른쪽으로 뛰어!"
씨발... 씨발...! 미친놈의 선장새끼! 무슨 정신머리로 이 상태에서 항해를 계속하려고 한 거야!?
지금이 가장 폭풍우가 강할 때라고 믿어야겠지...! 이 이상의 폭풍우는 버틸수가 없을거다! 나는 삭끈을 움직이면서도 바다를 계속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머리까지 써야 한다니, 최악이잖아.
============================ 작품 후기 ============================
여... 연참이지만... 좋아해주실지 모르겠어요ㅠㅜ
아, 저 기도문은 그 유명한 진혼시입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하는 그 문구가 들어있는
수장 할 때에는 저 유명한 문구도 빠지고, 대지 대신에 심연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말고도... 기독교 해당하는 문구는 조금 손을 봤어요(아무래도, 다른 세상이라...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