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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0화 (1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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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소녀와 해적과 검과... 여튼 이것 저것

해적기를 올리고 포문을 열어 젖히자, 저쪽에서도 이쪽을 보았는지 뭔가 부산한 느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쉽이 덩치도 크고 싸움에 있어서 왠만한 배들을 발라버리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게다가, 챙겨온 짐도 많은지 배들이 가라앉은 정도도 심하다.

다섯 척이라.

"혼자서 다섯 명 이기는 건 영웅 서사시에나 나오는 이야기잖아!"

빌어쳐먹을! 나는 재빠르게 타륜을 조정하면서 돛을 붙든 녀석들에게 소리쳤다.

"메인 마스트의 메인 세일만 올리고, 나머지 횡범은 다 접어! 지금은 종범 위주로 쓴다! 스팽커(배 뒷통수에 달려있는 돛)가 제일 중요하다! 횡범 접어도, 다루고 있던 녀석들은 자리잡고 있다가 내가 말하면 바로 횡범 올려!"

순풍과 역풍이 미친년 널뛰듯이 할 때에는 차라리 종범만 피는게 배 움직이는게 쉽다. 어차피 바람이 쎄면 횡범이고 종범이고 배가 움직이는 건 똑같으니까.

마리아가 배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있다가 말한다.

"갈겨라."

그 말에, 곧바로 왼쪽의 열린 포문에서 검은 구슬들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그걸 확인한 나는 외친다.

"횡범 올려라!"

순식간에 펼쳐진 횡범이 곧바로 바람을 안는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가듯이 앞으로 뻗어나가는 배. 그 기세로 재빨리 상대의 측면에서 우리 배가 벗어난다.

"다시 횡범 접고!"

나는 조타륜을 탁 놓자, 밑의 파도 때문에 혼자서 휘리리리 돌아가기 시작하는 조타륜. 원하던 각이 만들어지자 곧바로 조타륜을 다시 붙잡은 나는 눈가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소매로 훔쳐낸다.

"레이먼드! 저 녀석들 중에서 어떤 배 안에 그 상자가 있을 거 같냐!?"

그 말에 나는 저쪽의 배들을 살펴보고 대답한다.

"저 희끄무레한 녀석이 유니크해보이지 않습니까?!"

"이쪽도 같은 생각이다! 나머지는 다 수장시키자!"

가릿. 나는 다시 조타륜을 회전시키며 말했다.

"스팽커 제대로 안잡냐!? 방향 잘 안바뀌잖아! 내가 중요하다고 말했으면 존나 집중해서 들으라고! 실수 하나 까딱하면 우리는 둘 중 하나다! 여기에서 익사하던가 아니면 끌려가서 교수형 당하던가!"

둘다 싫다고 나는. 턱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간질거리는 와중에 우리 배가 다시 공격 각을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곧바로 귀신같이 마리아가 말한다.

"갈겨!"

퍼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배가 진동하고, 날아간 포탄 몇 개가 상대의 마스트를 꺾어버린다. 저건 이제 병신이다. 버려둬도 알아서 침몰하겠지. 나는 다를 배들을 확인하면서 재빠르게 말했다.

"스팽커만 남기고 다 접어! 빨리!"

그 말에 돛들이 다 말려서 올라가고, 배의 속도가 확 떨어진다. 그리고, 이쪽을 겨누고 있던 배 두 척이 공격각도를 잃고 헛방을 친다.

"좋아. 다시 종범 올리고!"

천천히, 꾸준히. 이쪽에도 포탄 몇 방이 스치고 지나가고, 나뭇조각이 튀면서 선원 몇 명이 온 몸에 뾰족한 나무조각이 박힌채 비명지르다 바다로 떨어진다. 어쩔 수 없잖아. 하나가 맛이 가도 아직 상대가 네 척이나 남았는데. 바다의 여신이 와서 조종을 해도 이 이상으로는 무리야.

... 개같은.

횡범을 다 펼치고 이쪽의 우측면으로 돌진하는 배를 바라본다. 저건 뭐하는 병신이야?! 이 비바다에 충각으로 밀어붙이면 둘 다 뒤질텐데?!

시발 바람... 바람이...!

"스팽커 왼쪽으로! 바람 반만 잡고 나머지는 흘려라!"

우르릉 하는 천둥 소리에 맞추어서 이쪽으로 질주해오는 배. 이건 이판사판 꼬다박기다. 지 몸도 안 사리고 있어.

"살을 주고 뼈를 취하시겠다?!"

나는 재빠르게 조타륜을 조작하고, 스팽커 하나에 의존하는 배가 빠르게 회전해 다가오는 배와 마주본다.

"스팽커 바람 다 버리고! 종범만 펼쳐라!"

이쪽 배도 빠르게 그쪽으로 돌진한다. 그걸 보며 마리아가 외친다.

"뭐하는 거야?!"

나는 마리아를 슬쩍 보고 말했다.

"일단 항해사 한 번 믿어봐요!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니가 좋아하는 말이잖아! 그리고 나는 조타륜을 거의 작대기 두어개 사이만 왔다갔다 하면서 세밀하게 조종을 들어가고 끊임없이 종범과 스팽커를 담당한 선원들을 괴롭힌다. 좋아 좋아..! 그리고, 상대의 앞머리를 살짝 피해서 옆으로 빠져나가는 우리의 배.

"선자아아아앙!"

마리아가 그 말을 알아듣고 곧바로 외친다.

"우측포! 갈겨!"

다시 배에 진동, 그리고 상대 배를 박살내고 짓쳐들어가는 대포알. 나는 그걸 보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척 올린다.

"살을 너무 많이 준 것 같은데?"

이걸로 저 녀석도 끝이다. 평범한 상태라면 어떻게든 전투를 지속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지.

남은 건 세 척! 못 해먹겠다! 지금 죽은 자의 바다와 산 자의 바다 사이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는 기분이야.

방금의 행위로 다른 배들에게 뒤통수가 노출된 상태.

"스팽커! 오른쪽으로 돌려서 바람 다 잡고! 종범 바람 살짝 놓고!"

크게 호선을 그리면서 움직이는 배. 이쪽 뒤를 잡고 있던 녀석들이 배를 횡으로 돌려서 T모양을 만들려 드는 사이에 이미 호선을 그린 우리는 다른 배 하나의 후미에 측면을 가져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몇 방은 맞을 수 밖에 없다. 제발 큰 피해는 없기를...!

"이런 미네랄, 하필이면!"

종범의 돛 하나를 상대의 대포가 찢고 지나가면서, 갑작스럽게 배가 속력을 잃는다. 나는 얼굴에 달라붙는 비를 훔치고 말한다.

"그 종범 버려! 못쓴다!"

하필이면...! 그냥 차라리 몸통을 때리지! 다리에 상처를 내버리냐!

다시 두어 발의 포탄이 선체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난간을 박살내고, 덕분에 돛을 잡고 있던 선원 한 명이 사망한다.

"젠장...! 횡범 펼쳐라! 죽은 사람 애도는 나중에 하자! 빨리 한 명 돛에 달라붙어! 진짜 이러다가 다 죽겠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봐도, 한 번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다. 남은 세 척의 배를 어떻게 한꺼번에 정리할 방법이... 하늘에서 벼락이 우르릉거리면서 바다에 떨어져내리고. 나는 그와 동시에 조타륜을 반대로 꺾으면서 말했다.

"횡범 반은 접고! 스팽커 바람 받아서 배 꺾는거 도와!"

배가 천천히 회전하고 우리 배와 상대 배들이 서로 측면을 마주보는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마리아가 다시 기겁을 한다.

"속도 늦춰! 이러다가 포 맞는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면서 시선을 계속해서 세 척의 배에 준다. 저 위치라면... 분명히!

"절대 맞을 일 없습니다!"

상대의 포문이 불을 뿜기 전에 말이야. 먼저 일어날 일이 있거든.

녀석들의 배가 갑자기 누가 손으로 잡아채기라도 한 것 처럼 멈춰버린다. 제일 앞서 있던 녀석의 배 아래쪽이 찌그러지더니 그대로 엎어지며 침몰하고, 두 척의 배는 마찬가지로 배가 부서지면서 그대로 멈춰버린다.

암초.

거의 도박이었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빨리 포를 갈겼으면 그대로... 우리 배까지 포함해서 모든 배가 다 멸망했겠지.

"안전한 거리로 벗어나고! 이제 비바람 멈추기만 기다리자!"

암초에 낀 배가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파도가 엄청나게 강하면 거기에 힘을 받아서 빠져나올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뱃고물에 뚫린 구멍때문에 침수될 뿐이다.

"잘했어!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마리아도 상황을 이해하고 축축하게 젖은 내 등을 두들겼고. 나는 진이 빠진채로 얼굴을 때리는 비를 보다가 다시 조타륜을 조작해 암초에 걸린 배의 후미로 다가간다.

"우리는 흰둥이만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한다.

"저 배들 중에 하얀거만 빼고! 갈겨!"

배가 포격에 맞아 걸레조각이 되었을 즈음에, 천천히 하늘이 개이고 갑작스럽게 빛이 쏟아져내린다. 거칠던 바다도 빠르게 가라앉아서 이제는 완전히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았다.

"닻 내려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참 명줄 질기네. 나란 새끼."

일단, 바다가 안정되고 나자 암초에 걸려 있는 배에 다가간 우리의 해적들은 갈고리를 단 밧줄을 빙빙 돌리다가 그대로 던졌다. 거의 삼십개에 달하는 갈고리가 던져지고, 그 중에서 서너 개가 배에 걸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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