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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5화 (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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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움은 배운 적 없다

한 동안 항해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 쯤이면 다 오고도 남음이 있는데. 어디 한 번 볼까. 육분의를 체크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위로 쭉 올라가는 상태였으니까 크르노미터는 굳이 체크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주문하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이제 이쪽이 활약할 시간이군."

그리고 마리아가 선원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이, 한 놈 망원경 들고 꼭대기 올라가서 살펴봐라. 지나가는 배 없나."

그 말에 선원들의 눈빛이 지글지글 끓는다. 그제서야 나는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해적선에 타 있다. 바뀐 이 사람들의 눈빛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냥 내가 고함치는데로 따라가고 있던 보통의 뱃사람 같던 녀석들이 지금은 나 따위는 순식간에 회쳐서 간식으로 먹을 것 같은 눈을 하고 분주히 움직인다.

다들 정신병자 같아. 더럽게 무섭네.

옆에 있던 마리아가 내 표정을 보고 어깨에 주먹질을 한 방 먹인다.

"뭐 갑자기 그렇게 얼어있냐."

아니, 그냥 너네 되게 서먹해서. 새삼스럽게 엄청 어색하네. 같이 놀던 고양이가 한달 뒤에 보니까 삵으로 진화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니들 다 누구세요. 왜 그런 눈을 하고 있어요.

그 팽팽하게 헐떡거리는 살기의 현장 속에서 조용히 눈치를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위쪽에 올라가 있던 해적에게서 외침이 들려왔다.

"배 발견했습니다! 먹음직한 바크입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외쳤다.

"따라 붙는 건?!"

"없습니다! 혼자 있습니다!"

그 보고까지 받자. 모두의 눈이 마리아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조지자."

그 말에 터져나오는 어마어마한 고함소리. 그리고 마리아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저 배 근처까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타수에게 말했다.

"왼쪽으로 8 작대기 주고, 바람 다 먹고 있다가 내가 신호 주면 바람은 반만 잡아! ... 주세요."

이 친구들 무서워 죽겠다. 우스워 보이던 문신부터 시작해서 언듯 언듯 보이는 금귀고리까지. 내 말을 들은 선원들 중 하나가 크하하하핫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야! 우리 항해사가 쫄았다! 갑판 한 번 찾아봐라, 아직 불알 굴러다니고 있을지도 몰라!"

그 말에 나도 갑자기 울컥해서 외쳤다.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내 불알 걱정할 시간 있으면 바람이나 잘 잡아! 돛 니네 좆처럼 축 쳐져 있는거 안 보이냐!"

이씨, 안 쫄았어 이 나쁜 사람들아.

그 말에 해적 하나가 또 낄낄거리며 말했다.

"야, 다시 찾았나보다!"

개새끼들... 나는 배 가는 걸 보고 상대 배가 도망치려고 하는 걸 확인한다.

"오른쪽으로 3 작대기, 우측풍이니까 종범들로 계속 빨아먹고, 횡범은 약간 틀어라!"

그리고 조금 배가 가까워지자 나는 망원경을 들고 배를 바라봤다. 배가 잠긴 정도를 보면 무역선이 확실하다. 나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마리아에게 말했다.

"선장."

그 말에 마리아가 나를 보고 말한다.

"뭐야?"

"... 해전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그 말에 마리아가 나를 무슨 븅딱 딱따구리 보듯이 바라보기 시작한다.

"배싸움 안해봤냐? 물질 10년을 했다면서."

그 말에 나는 대답한다.

"탐험선이 무슨 전투입니까."

물고기 익사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이게.

그 말에, 그녀가 머리를 짚었다. 저 자세 굉장히 익숙한데. 내가 자주 하던 거 아닌가. 이렇게 보니 되게 기분 나빠지는 자세였구나.

"됐어 임마. 그냥 내가 한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조타수에게 다가가서 조타륜을 빼앗아 잡고 말했다.

"종범, 바람! 집 떠나려는 마누라 잡듯이 물고 늘어져!"

속도는 횡범이 좋지만, 방향을 트는 건 종범만 가지고 노는게 좋다. 그거야 뭐 상식이고 암초지대에서 놀면서 많이 했던 일이니까. 한 손으로 휘리리리 조타륜을 조작하는 마리아. 그리고 마법처럼 상대의 후미에 우리의 측면이 위치한 아름다운 ㅗ 모양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마리아가 어깨를 으쓱 하고는 말했다.

"갈겨."

그 말에 선원들이 복창한다.

"갈기랍신다아아아아아!"

그리고 짙은 화약냄새가 확 뿜어지고, 열 발이 넘어가는 포탄이 상대 배의 뒤통수를 두두두두 후려쳐버린다. 무슨 늑대가 한 번 물어뜯고 지나간 것 마냥 박살난 배의 후미.

배의 후미는 그냥 뒤통수가 아니다. 왠만하면 배의 뒤쪽에다가 설치하는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선장실이랑, 조타륜.

그 두 장소가 지금 물어 뜯긴 것이다. 그냥 뒤통수를 맞은게 아니라. 저 정도면 뇌수까지 못이 파고 든 수준이다!

아니, 어떻게 한 거야?! 내가 배에 타고 직접 보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째서 이 배가 저 배의 후미에 자기 측면을 떡 하니 가져다 놓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얼이 나가서 옆에서 조타륜을 이리 저리 돌리고 있는 마리아를 바라봤고. 그녀가 이쪽을 보며 씩 웃는다.

"항해는 잘해도, 전투는 영 젬병이구만. 배워야 할 게 많겠어?"

... 인정할 건 인정하자. 지금 배 움직임은 진짜 퍼펙트 매직이었다. 그거 한 방에 저쪽 배가 어수선하더니 백기를 흔들기 시작한다.

"이제 해적들의 방식을 보라고."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왼손에 피스톨을 든 채로 오른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리고, 상대의 배 쪽으로 접근한 우리 배에서, 선원들이 갈고리를 던지고 그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 전생에 다들 서커스를 배웠나."

외줄 하나에 의존해서 넘어가는 저 녀석들의 움직임은 가히 아마존의 원숭이들 수준이다.

"... 저건 또 뭐야."

마리아는 줄 위를 그냥 걸어가고 있다. 흔들리는 두 배 사이에 놓인 밧줄을, 무슨 치와와 끌고 동네 공원 산책하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에 얼핏 보이는 자부심과 웃음기는 나 보라고 일부러 저러는 거겠지. 배를 건너간 그녀가 목을 풀듯이 몇 번 돌리고 엎드려 있는 선원들을 보며 껄렁한 표정으로 웃는다.

"여기 선자아아앙, 손!"

으르릉 거리듯이 목소리를 낮춘 마리아의 말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선장이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마리아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댁이 저항을 선택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딱 가지고 있는 물건의 30%만 가져갈 생각이었어. 근데 어우, 이런! 맙소사. 이 배는 우리에게 저항을 하더군! 이 비극은 거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군."

커틀러스를 빙글 빙글 돌리면서 상대를 향해 다가가던 마리아가 커틀러스를 상대 선장의 목에 가져가면서 말했다.

"졸리 로저를 보고도 예를 차리지 않는 상선의 최후는 알고 있을까?"

그 말에 선장이 대답했다.

"선박의 물건들은, 가져가도 좋소이다. 목숨만은..."

그 말에 마리아가 그를 바라보며 쯔쯔쯔하는 소리를 냈다.

"배와 그 안의 물건들은 당연히 우리꺼지. 이 배는 이제 전리품이야. 우리가 싸워서 얻은! 뭐, 혹시 그거 말고 따로 줄 수 있는거 없나?"

그 말에 선장이 침묵한다. 당연히 줄 수 있는게 있을리가. 잠깐 기다리는 척 하던 마리아가 픽 웃었다.

"뭐야, 가진 것도 없고 잘 싸우지도 못하면서 졸리 로저를 무시한 건가? 그러면..."

피로 값을 치러야지.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한 쪽 눈썹을 꿈틀 하면서 뒤의 해적들에게 턱짓을 했고, 그대로 상선의 선원들 목을 해적들이 하나씩 긋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돌렸고, 그걸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마리아가 날카롭게 외쳤다.

"눈 똑바로 뜨고 여기 봐, 레이먼드! 무인도에 다시 버려버리기 전에! 넌 이제 해적이야!"

이런 씨.. 나는 입술을 물어뜯으면서 그 장면에 다시 눈을 고정했다. 단검이 선원들의 목에 닿고, 살려달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원들의 목젖을 칼날이 긁고 지나간다. 게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입으로 피거품이 부글거리고, 눈이 허옇게 돌아간다.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갑판을 적시고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 위에 있는 선원은 총 30명.

30명 중에서 29명이 그렇게 목이 따이고, 바다로 굴러 떨어진다. 바다가 원래 품고 있던 비린내에, 더 진하고, 더 역겨운 비린내가 더해진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나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럼... 이라면서 마리아가 양 손과 다리를 꽁꽁 묶고, 재갈을 물린 상선의 선장을 내 앞에 끌고 왔다.

"이건 네 몫이야."

나는 농담하지 말라고 외치기 위해서 얼굴을 들었고, 마리아의 눈에서 번들거리는 살기와, 힘이 들어간 채로 그녀의 손에 잡혀있는 커틀러스를 보고 침과 함께 그 외침을 꿀꺽 삼켰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여기서, 내가 이 남자의 숨을 거두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소란이 모두 농담이었던 것 처럼 소름끼치는 침묵이 배 위에 내려앉는다. 나에게로 화살처럼 꽂히는 다른 수많은 선원들의 시선과, 그 중에서도 제일 강렬하게 날아와 박히는 마리아의 시선.

마리아가 내 앞에다가 단검 한 자루를 툭 하고 던졌다. 지금 당장 들고 내 수염을 면도해도 될 정도로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단검. 나를 보면서 웁웁거리는 선장. 나는 깊게 호흡을 하고 그 단검을 든 채로 선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하게 되는 살인이다. 눈을 바라보면서 상대를 죽이는 건 끔찍하지만.

그래도 나는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거두는 최초의 생명. 거기에 대한 약간의 책임 때문일까?

그와 마주친 눈을 떼지 않은채로 나는 단검을 그의 목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항해 중에 낚은 거대한 연어처럼 펄떡거리며 저항하는 선장. 여전히 나는 그와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으면서 그의 어깨를 꽉 누르고 단검을 목에 데었다. 그 순간, 내 눈에 선장의 눈이 보였다. 절망, 애원, 슬픔... 확대되는 동공과 눈에 맺히는 눈물.

그 모든 것들을 뇌에 새겨넣듯이 나는 똑바로 바라보았다.

단검이 목에 닿자, 선장은 작살에 맞은 물고기처럼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워서, 뭐라도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를 바라보면서, 내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바다는 그 죽음을 내어주리라(Sea will present his death before him)."

그리고, 아주 약간의 저항과 함께 선장의 목줄기를 내가 들고 있는 단검이 날렵하게 핥고 지나간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선장의 눈이 허옇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입에 물린 재갈에 뻘건 얼룩이 번진다.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가,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내 팔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나는 갑판의 난간에서, 그를 발로 밀어 바다로 떨구었다.

푸후우우우우... 하고 나는 숨을 내뱉고 나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이제 만족하냐. 그녀가 서늘한 눈을 하고 있다가, 웃음을 짓고 커틀러스를 다시 허리춤에 꽂으며 말했다.

"해적이 된 걸 환영한다. 레이먼드."

환영한다 레이먼드! 하는 외침을 해적들이 일제히 외친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묵묵히 들으면서 단검을 아래로 툭 떨구었다.

그래, 난 이제 해적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 작품 후기 ============================

혹시 수능 보신 분들 있으면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결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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