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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8 격전의 끝, 그러나…… (79/81)

Chapter. 78 격전의 끝,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

타다닥! 휘리리릭!

과연 위스퍼의 전차 군단의 위세는 가히 하늘을 가르고 대지를 찌는 듯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흑마술 군단의 시신들만 가득했으니 가득이나 후방 지역에 공세를 받고 있는 그들로서는 이만저만 큰 치명타가 아니었다.

와와! 타다닥!

“아악!”

파파파팟―

“욱!”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전세는 재역전이 되는 듯 보였다. 흑마술 군단이 제아무리 병력 규모가 많다 할지라도 전쟁의 분위기가 이미 스카치오 제국으로 넘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이에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은 무엇보다도 적진의 후방 쪽을 기습한 아라퀘스의 흑검 군단이었다.

무려 이만여 명의 흑검사들이 무시무시한 흑검술을 휘두르며 적진을 초토화시키니 테세우스의 세력은 양쪽으로부터 엄청난 공세에 휘둘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무조건 공격해라!”

와! 와와!

아라퀘스의 외침에 흑검사들은 최선을 다해 적진을 깊숙이 뚫고 지나갔다.

한편 그는 격렬한 싸움 도중에 저편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무슨 이유인지 눈물이 확 쏟아지려고 했으니 바로 지드와 대원들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 아니던가.

“아!”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그쪽에서도 아라퀘스를 발견하고 이리로 헤쳐 나오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쪽에서 먼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니 바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지드였다.

“아라퀘스!”

“폐하!”

그들은 비록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멀리서나마 감격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네 녀석이 여긴 웬일이냐!”

“폐하께서는 웬일이십니까?”

“야,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았냐.”

“보다시피 흑검 군단을 이끌고 스카치오 제국에 합류하기 위해 왔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폐하를 이런 데서 뵈오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군요.”

“하하. 난 네 녀석이 고향으로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더니만, 이런데서 보다니 나 역시 무척 기쁘구나.”

“폐하! 흑.”

“아라퀘스…….”

한편 흑마술 군단 지휘부에 있던 테세우스와 참모 아키아는 둘 다 얼굴이 창백해져 가지고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위스퍼의 전차 군단마저 가세한 것 같습니다.”

아키아의 말에 테세우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엎친 데 덮친 격이라니.”

“아무래도 퇴각을 하는 것이 지금 상황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테세우스가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퇴각이라…… 그 의미는 우리가 패했던 말인가.”

아키아 역시 금번 전투에 책임을 지는 듯 고개를 들지 못하고 힘없이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내 개인의 전투라면 어찌해 볼 수 있다지만 이렇게 물러나는 것이 정말 원통하구나. 아. 하필 흑검 군단이 이때에 등장하다니.”

“그들의 기습 공격을 예상치 못한 제게 책임이 있습니다.”

“…….”

테세우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만 겨우 입을 떼어 말했다.

“당장 퇴각 신호를 알리게나.”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흑마술 군단 내에 울려 퍼지는 뿔 고동 소리.

뿌우! 뿌우―!

총퇴각 신호를 알리는 신호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분오열이 된 흑마술 진영은 퇴각할 병사들조차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금번 전쟁은 스키치오 제국의 완승이라 볼 수 있었다.

위스퍼의 전차 군단과 기병대원들이 평원을 휩쓸고 다니며 후퇴하는 흑마술 병사들을 사냥하는 형상으로까지 치닫고 있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라.”

“알겠습니다!”

와와!

파파파팟!

“아악!”

파팟!

“우욱!”

전차 군단 선두에 선 위스퍼는 자신의 보직을 되찾은 듯 완전히 기세가 올라 평원을 이리저리 가로 지르고 있었다.

바로 옆자리에 탄 레이 역시 너무 신이 났는지 마치 혼자만이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 마구 외쳤다.

“돌격! 무조건 돌격!”

그러자 위스퍼가 그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허.”

“돌격!”

“적당히 좀 하거라. 그놈 무척 시끄럽게 구는군.”

“…….”

해가 서산으로 질 무렵이었다.

세상은 온통 붉은 노을로 대장관을 이루었다.

어디가 하늘인지 땅인지 들판과 강에는 시신들로 뒤덮여 있었다. 흑마술 군단과 스카치오 제국의 대단위 격전은 이제 그 본전의 막을 서서히 내려갔다.

승리는 스카치오 제국으로 돌아갔고 그처럼 위세를 떨쳤던 흑마술 병사들의 살아 있는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였다.

훗날 롤란도 평원의 전투는 역사 서기에 아주 큰 맥으로 기록이 될 것이다.

금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부대는 다름 아닌 제3군단의 근위대인 지드와 대원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후방 지역을 기습 공격한 중부 대륙 아르카도 제국으로부터 등장한 아라퀘스의 흑검 군단과 뒤늦게 전차 군단을 이끌고 전장을 누볐던 위스퍼 역시 대단한 활약을 했다.

까악! 까악!

까마귀 떼들이 전장의 시신들에 내려 앉아 그들의 피와 살점들을 뜯어먹고 있었다.

스카치오 제국의 병사들은 전투의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듯 누워 있는 시신들의 생명을 확인하기 위해서 잔인하게도 창끝으로 찔러 대었다.

팍!

“악!”

푹!

“컥!”

아직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었던 흑마술 병사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 땅거미가 내려앉을 어둑한 무렵에 검은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전쟁의 참상은 늘 그렇듯 참혹하고 허망한 결과만을 드러내 놓는다. 비록 스카치 제국이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지만 승리자들에게도 전쟁의 최종 막바지에 이를 무렵 동료들을 잃은 큰 슬픔이 크게 앞서고 있었다.

특히나 지드의 대원들에게는 더더욱 그랬으니 그동안 하류 검사 시절부터 지드 대신에 대원들을 이끌었던 지노가 큰 부상을 앉았던 것이다.

그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에 가장 오열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늘 으르렁거리며 다투었던 1호 비스크였다.

“형님! 흑.”

“비스크…….”

“대체 이게 뭡니까! 이까짓 전쟁에서 분명 살아남자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제발 다시 일어나서 그 지겨운 잔소리를 늘어놓으란 말입니다. 흑!”

“그 자식 말 더럽게 많네. 나 아직 안 죽었다.”

“형님!”

비스크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지노를 꽉 끌어안자 지노가 소리쳤다.

“아이고, 부상 부위를 건들면 어떡하나. 이 무식한 녀석아!”

“제발 죽지 말라니까요.”

“오히려 네놈이 나를 죽이겠다. 당장 내려놔!”

“흑…….”

그때 지드가 달려와 지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행이군.”

그러자 대원들의 귀들이 솔깃했다.

“다행이라니요!”

“그럼 지노 형님이 괜찮은 겁니까?”

지드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화살에 관통한 부분이 심장 바로 위쪽이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다.”

그 말에 대원들이 기뻐서 함성을 질렀다.

“와우! 그럼 괜찮은 거네요.”

“하하.”

그 순간 비스크가 앉고 있던 지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툭!

“욱! 야, 이놈아! 그렇게 던지듯 내려놓으면 어떡하냐.”

방금 전까지 오열을 터트렸던 비스크가 퉁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보니까 엄살이었네요.”

“엄살이라니! 나 진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니까.”

“생명에 지장 없다고 하잖아요.”

“이놈아, 화살이 어깨 죽지를 관통했는데 그게 심각한 부상이 아니냐?”

“쳇!”

“너 지금 또 ‘쳇’이라고 했냐.”

“그랬소. 어쩔래요?”

“엉. 너 내가 꼼짝 못한다고 막나오는데 낫기만 하면 죽을 줄 알아.”

“제발 낫기나 하쇼.”

“정말 내가 저놈 때문에 제 명에 못 죽지.”

둘이 또다시 아옹다옹 다투기 시작했으니 대원들은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제발 그만들 좀 하쇼. 이런 상황에서까지 으르렁거리다니.”

그때 지노가 냅다 소리쳤다.

“너희들 뭘 보고만 있어 당장 나를 옮기지 않고. 젠장. 이것들이 비스크 저 자식과 한통속이라니까.”

“하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제야 게리와 크리스, 아레스가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슥―

“아얏! 부상 부위를 건들면 안 돼!”

“어차피 옮기려면 할 수 없어요.”

“욱!”

한편 지드는 이제 막 이쪽으로 온 아라퀘스와 깊은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그 둘이 만나지가 거의 1년만이던가.

그때 지드가 아라퀘스를 밀쳐 내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소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네놈이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다.”

“저 역시 폐하께서 어디로 숨어서 세상을 등지고 사시는 줄 알았지 뭡니까.”

“이놈이 나를 뭐로 보고.”

“후후. 그야 위대하신 피체 왕국의 국왕 폐하로 보죠.”

“어라. 이젠 놀리기까지 하는군! 그동안 간땡이가 많이 부어도 한참 부었는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할 수 없죠. 뭐.”

“흑검 군단 끌고 왔다고 이제 막가자 이건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

아라퀘스가 시원스레 웃자 지드는 여전히 못마땅한 듯 한소리 했다.

“웃지 마라, 이 녀석아! 그러다 정들겠다.”

“이미 든 것 같은데요.”

“…….”

그 말에 지드 역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동안 제법 능글맞게 변했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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