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3일 후 롤란도 평원.
청명한 가을 하늘이었다. 드넓은 평원에 두 거대한 세력이 마주 보고 있었으니 한편은 테세우스가 이끄는 흑마술 군단이었고 다른 한편은 집정관 아델의 스카치오 제국 군단이었다. 스카치오 제국의 병사들은 상대방의 압도적인 숫자에 벌써부터 몸을 움츠리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앞 평원이 닿는 지평선 끝까지 흑마술 병사들로 까마득하게 들어차 있었으니 족히 백만 대군도 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쌍방 간의 선두로 포진한 것은 전차 군단이었다. 전차 부대란 초반 격돌할 때에 전세에 매우 결정적 역할을 할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서 반드시 전차 전투에 능한 지휘관이 그 선봉에 서야만 했다.
헌데 스카치오 제국의 진영 내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전차 군단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위스퍼는 보병 군단장으로 배정받았고 그 자리에 다른 지휘관이 명령권을 수행토록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결전을 앞두고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현재 제3군단장인 위스퍼는 씁쓸함을 느꼈지만 내심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참모 레이만큼은 분통을 터트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건 도무지 말도 안 됩니다.”
“또 뭐가 불만이야.”
“전차 부대 경험이 미미한 보병 군단장 출신을 저 자리에 앉히다니! 아마도 원로원에서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봅니다.”
그의 분통에도 불구하고 위스퍼는 의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놈 참 말 많네.”
“제가 가만있지 않게 생겼습니까!”
“어차피 전쟁을 앞둔 이 시점에서 그런 얘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보나마나 초반부터 우리가 밀릴 텐데요.”
“전쟁은 전차 군단가지고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뒤로 보병 군단과 좌우에 기병대가 포진하고 있잖은가. 아마도 아벨 집정관이 다 생각이 있기에 이리 배정을 한 것 같구나.”
그러자 레이가 더욱 답답해하였다.
“집정관 또한 전쟁 경험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오로지 원로원 의원들만 부추겨서 황권 무력화시키는 일에만 몰두할 뿐. 그런 자가 어찌 이런 대전쟁을 주관하고 지휘한답니까. 저는 정말 그들의 행태에 대해서 불만 가득합니다.”
“시끄럽다, 이제 그만 해라.”
“아이고! 속 터져.”
한편 바로 뒤에서 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근위대장 지드 역시 내심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나라 내부에 터진 알력 때문에 이처럼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그 보직 서열이 제 멋대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쨌든 현재 그로서는 더욱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었으니 바로 저 앞에 흑마술 군단 어디쯤엔가 있을지도 모르는 테세우스였다.
자신의 신세가 지금처럼 남의 나라에 합류하여 전쟁을 치른다지만 사실 이번 전투는 바로 테세우스와의 개인적인 전투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양측 대군이 섞여 격전을 치를 때 과연 그와 마주칠 기회가 있을 런지 그것부터가 회의적이었다.
차라리 위스퍼가 원래 보직자라인 전차 부대 군단장이었다면 그를 보필하면서 적군 진영 깊숙이 들어가서 테세우스라도 찾아볼 텐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사실 당장 급한 것은 저 백만 대군과의 격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지노를 비롯한 대원들 간에도 다소 비장함이 흐르고 있었다. 특히 매일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지노와 1호 비스크와 대화에도 예전의 냉랭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군.”
지노의 말에 비스크 역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뭐 더 이상 형님 잔소리 듣지 않아서 좋지요.”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만 하네. 헌데 기분이 묘하군.”
“묘하다니요?”
“그래도 네놈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는지 막상 전투를 치르려 하니 섭섭해지는구나.”
그 말에 비스크 역시 진지한 얼굴을 했다.
”아마도 형님은 모를 거요. 내가 얼마나 형님을 좋아했는지요.”
“안다, 이놈아.”
“알긴 개뿔.”
“개뿔이라니. 이제 막가자 이건가.”
이번에 막내가 껴들었다.
“그만들 하시고요. 저 역시 그동안 형님들이 너무 잘해 주셨기에 이제라도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그러자 2호 게리가 낯을 붉혔다.
“뭐야,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물론 전쟁은 해 봐야 그 결과를 아는 법이겠지만 이 싸움은 그리 승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적의 숫자가 우리보다 두 배 이상에다가 공성전도 아닌 평원에서 정면 격돌 아닙니까. 전차 부대 군단장도 경험 없는 자가 이끈다 하니 우리 같은 보병들이 제일 큰 희생을 치를 것입니다.”
그러자 1호 비스크가 막내 아레스를 꾸짖었다.
“재수 없는 소리! 우리 모두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 것이다. 반드시!”
지노가 처음으로 비스크의 말에 동감을 했다.
“맞아! 우린 대장님하고 이 전쟁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해. 사실 하류검사 시절부터 죽을 고비를 그 얼마나 많이 겪어 왔는지 알기나 하나. 그때마다 역전의 용사로 거듭났고 말이야.”
지금까지 말이 없었던 3호 크리스가 한마디 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싸웁시다.”
“좋다, 까짓것!”
“파이팅!”
“반드시 살아남자고!”
한편 이들의 대화를 듣게 된 지드는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어지고 말았다.
그 자신이 하류검사의 틀을 벗어나고 세상에서 가장 처음 만난 동료들, 지금까지 십 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껏 동고동락해 온 사이가 아닌가. 그가 하늘을 우러러 내심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아.’
솔직히 그로서도 이 전쟁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아레스 말대로 승산 없는 전투랄까. 어쩌면…… 어쩌면 대원들과도 영영 이별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같은 시각.
흑마술 군단 사령관 지휘 본부.
테세우스와 아키아가 함께 스카치오 제국의 진영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키아는 아까부터 상대방의 공격 포진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허술해 보이는데요.”
그의 말에 테세우스가 물었다.
“뭐가 말인가.”
“제가 보기에는 상대 전차 군단이 허술해 보입니다.”
“허술하다니?”
“보통 십 대열과 함께 정방형의 공격 진대를 이루는 것이 전차 공격에 기본 포진을 이루는 것인데 상대는 오 대열 직방형의 포진을 취했습니다.”
전차 군단 공격 형세에 상식이 없는 테세우스가 의아스런 반응을 보였다.
“자세히 설명 좀 해 보게나.”
“아 네. 십 대열 정방형 공격 포진은 말 그대로 초반 승기를 잡기 위한 공격 루트로서 뒤이어 보병 군단과 좌우로 합공해 들어오는 기병대와 연계된 아주 중요한 대형입니다. 헌데 보다시피 저들의 오 대열 직방형은 공격 대형이라기보다는 수비 대형으로서 전차 부대가 주를 이루지 않고 곧바로 보병 군단과 함께 진군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주로 이런 대평원이 아닌 협곡이나 좁은 국지전에 사용하는 전략인데 왜 저들이 저런 대형을 짰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자 아키아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십 대형의 공격 루트를 이루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저들이 저렇게만 나와 준다면 이번 전투는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무슨 함정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전차 군단의 포진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전략을 쓸 지휘관은 세상에 아무도 존재 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아키아가 말하다 말고 생각에 잠기자 테세우스가 다시 물었다.
“자네 생각이 뭔지 말해 보게나.”
“상대 진영의 전차 군단 군단장이 위스퍼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십 대형의 정방형 공격 포진은 그가 창안해 낸 것으로 아주 탁월한 전술이거든요.”
“그렇다면 누가 지휘관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전차 군단을 이끈 경험이 별로 없는 자가 분명해 보입니다.”
“흠. 이토록 중요한 전투에 설마하니 그럴 리가.”
“저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확실히 위스퍼는 아닌 것 같습니다.”
“행운의 여신이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에 아카아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후후.”
“그렇다면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겠지. 당장 공격 명령을 내리게나.”
“예, 알겠습니다.”
곧이어 아키아의 명령으로 공격 신호를 알리는 뿔 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 뿌우―
그 신호를 필두로 흑마술 군단의 전차 군단이 제일 먼저 진격을 하기 시작했다.
와와와와!
타다닥!
대평원에 일대 먼지가 흩날렸다. 그야말로 수만 대의 전차들이 앞을 향해 달리니 대지가 찢어질 듯 엄청난 기세였다.
타다닥!
스카치오 제국의 지휘부 역시 적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진격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쳐들어온다. 전차 부대와 보병 군단의 진격을 명령한다.”
와와와와!
둥! 둥! 둥! 둥!
착! 착! 착! 착!
공격 신호에 제국의 병사들이 진군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다지 절서가 잡히지는 않아 보였다. 그에 반해 흑마술 군단의 전차 군단은 노도와 같이 평원을 휩쓸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말이다.
참으로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위스퍼와 그의 참모 레이였다.
“세상에! 전차 군단의 속도가 보병들의 진군 속도와 같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레이의 분통에 위스퍼 역시 매우 실망한 기색을 하였다.
“이건 아닐진대.”
“이렇게 격돌하면 초반부터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어쩌겠나. 전차 군단 지휘관 역시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런 포진을 짠 건지도 모르겠지.”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적들을 보십시오. 십 대열의 정방형 공격진들을 말입니다. 저거야말로 군단장님께서 수년 전 창안한 평원 공격 대형 아닙니까. 그런데 오히려 놈들이 그걸 훔쳐서 쓰고 우리는 이게 뭡니까.”
“…….”
“결국 말이 없는 위스퍼, 그가 어찌 이와 같은 사태를 모를 수 있겠는가.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뒤에 있던 지드와 대원들 역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누가 봐도 적들의 공격 대형과 이곳의 수비 대형이 맞부딪치면 초반부터 힘들어질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와와!
파파파팟!
“아악!
파팟!
“욱!”
흑마술 전차 군단의 위세는 엄청났다. 아군의 진영을 통과하면서 수많은 병사들이 채이고 깔려 죽기 시작했다.
전세는 초반부터 테세우스의 진영에 강세로 이어졌고 스카치오 제국군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이는 예상대로 적의 공격 포진 대형으로부터 초래한 결과였다.
그나마 지드와 대원들은 보병 군단에 뒤섞여 강력한 전투 기술을 발휘하여 적들을 저지했다. 고작해야 162명이던가. 하지만 그들의 선전은 가히 놀라울 정도 그 이상이었다.
“뒤로 물러나지 마라!”
지드의 외침에 피체 왕국 출신의 전사들은 그야말로 혈전을 치렀다.
와! 와와―!
파파파팟!
“아악!”
위스퍼와 참모 레이 역시 목숨을 아끼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미 전차 부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내세울 것은 보병들밖에 없었던가.
그나마 스카치오 제국의 기병대가 뒤늦게 출병했지만 흑마술 전차 군단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전차 부대를 앞세운 흑마술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으니 스카치오 제국군은 격돌한 지 얼마 안 되어 뒤로 밀리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도망가지 말고 공격해라.”
와― 와―
아벨 집정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제국 병사들은 적들의 엄청난 기세에 이미 압도되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오전의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가을이었다. 하늘만 올려다본다면 청명한 계절이었건만 그 아래에는 피와 살점이 튀기는 잔혹한 참상이 연출되고 있었다.
쌍방 간의 군대가 격돌한 지 두 시각 좀 지났을까. 롤란도 평원은 점차적으로 흑마술 군단의 차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채 혈투를 벌이는 집단이 있었으니 바로 지드와 대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제는 기진맥진하여 그 숫자들이 조금씩 줄어가고 있었다.
역사 종족의 기사단과 대자객들은 동료들 절반을 잃은 채 나머지만으로 싸웠고 대장 지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력으로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번쩍―!
우르릉― 쾅! 파팟!
“아악!”
파파파팟!
“아아아악.”
실로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기지 않았을 광경이었다.
그런 말이 있었던가. 혼자서 능히 백만을 상대한 다랄까.
그가 선인도를 한번 휘두르면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쳐 수십 수백 명의 흑마술 병사들이 쩍쩍 갈라지며 피를 토하고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선인갑의 힘으로 발을 한 번씩 구를 때마다 대지가 갈라지고 함몰이 되었으니 수많은 적들이 구덩이 속으로 생매장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가. 그와 대원들이 있는 장소에는 감히 흑마술 병사들이 접근조차 못하고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그들의 선전으로 제3군단 지역 방어선은 그런대로 유지가 되었지만 워낙 많이 밀려드는 숫자에 매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흑마술 군단 사령부에서는 테세우스와 아키아가 전투 현장을 살피다가 이상한 곳을 발견하고는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을 잡아당긴 지역은 다름 아닌 지드와 그의 수하들이 있는 곳이었다. 아키아가 혀를 내두르며 외쳤다.
“저곳을 보시죠. 정말 대단한 자들 같은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상대적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테세우스가 안력을 높여 그곳을 자세히 관찰했다. 순간 그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저자는!”
그의 눈에 들어온 엄청난 전투 기술의 소유자는 바로 지드가 아니던가.
아키아가 그의 표정을 살피고 물었다.
“혹시 아는 자입니까.”
“알다마다.”
“누구죠.”
“피체 왕국의 국왕 지드라는 자이네.”
그러자 아키아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네!”
“나도 놀랄 일일세. 아무래도 저자와 수하들이 스카치오 제국 편에 서서 대항을 하는 모양인데.”
“저곳만 전차 부대가 통과하지 못하고 막힌 상태입니다. 지드라는 자의 전투기술이 천둥과 번개까지 부리니 제 생각에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것 같은데요.”
“…….”
테세우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은데.”
아키아가 만류했다.
“제왕님께서 직접 전투에 나서실 것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미 전세는 우리에게 기울어졌으니 저들 역시 곧이어 무너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닐세. 어차피 저자와 나는 풀어야 할 일이 있다네.”
테세우스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향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후방 진영 뒤쪽 언덕으로부터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와와!
순간 테세우스와 아키아가 그쪽을 살펴보았다.
“뭔가!”
“글쎄요!”
“후방 진영이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
사실이 그랬다.
삭!
“컥!”
슥!
“억!”
너무도 갑작스레 일어난 기습 공격인지라 아직도 후방을 공격하는 자들이 누군지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아키아는 직감이 가는 것이 있었으니.
“혹시 아르카도 제국의 흑검 군단.”
테세우스 깜짝 놀라서 외쳤다.
“뭐라!”
“하필 이때에…….”
“당장 공격진을 불러 들여 뒤쪽으로 투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하게나.”
곧이어 후퇴를 알리는 뿔 고동 소리가 이어졌다.
뿌우! 뿌우!
잠시 후.
지드와 대원들은 갑자기 적들의 공격이 느슨해지지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을 뒤엎을 만큼 엄청난 기세로 공격해 오던 흑마술 병사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1호 비스크가 외쳤다.
“뭐야! 놈들이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는데.”
막내 아레스 역시 이상한 듯 적진을 살폈다.
“대체 뭐지.”
“아무래도 뭔 일이 벌어지는 듯한데!”
바로 그때 3호 크리스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큰소리로 외쳤다.
“저기 놈들의 서쪽 후방 진영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지노가 외쳤다.
“전투라니!”
“글쎄요.”
그제야 지드가 안력을 높여 그곳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음성.
“누군가 적의 후방을 공격한 모양인데…….”
그는 말하다 말고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가만있어 보자. 후방 쪽에 모습을 보이는 저자는 아라퀘스 같은데.”
대원들 역시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아라퀘스라고요!”
“설마.”
“너무 멀어서 안 보이는데?”
“나도.”
그들은 서로 앞 다투어 그곳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오로지 안력 기술이 있는 지드만이 아라퀘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갑작스런 흑검 군단의 가세로 전세는 다시 재역전되는 듯 보였다.
지드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한 듯 계속해서 흑검 군단을 이끌고 있는 아라퀘스를 살펴보았다.
“그 녀석이란 말인가.”
와와!
그야말로 엄청난 격전이었다.
하늘 아래 롤란도 평원에는 죽지 않으려는 자들과 죽이려는 자들 간의 피 튀기는 혈전을 방불케 하였다.
이제까지 뒤로 주춤했던 스카치오 제국 병사들은 적들이 후방 공격을 받고 우왕좌왕하자 그 틈을 이용하여 재집결하였다.
한편 제3군단 진영의 군단장 위스퍼와 참모 레이는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근위대인 지드와 대원들의 활약상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를 못하고 있었다.
“정녕 저들이 사람들이란 말인가.”
위스퍼의 말에 레이가 맞장구를 쳤다.
“특히 지드 대장은 진짜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정말 믿기지 않는 광경이로군.”
“여하튼 저들 때문에 우리 삼 군단만이라도 밀리지 않고 아직까지 이곳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잖아요.”
“하늘이 내려준 전사들이 틀림없을 걸세.”
“동감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군단 병사 진영을 헤치고 이리로 달려오는 기병대원이 있었다.
타다닥!
“군단장님 어디 계신가요!”
잠시 후, 그는 위스퍼 앞으로 인도되었고 그를 보자마자 급하게 외쳤다.
“집정관의 명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위스퍼가 물었다.
“집정관의 명이라니? 그게 무엇인가.”
“제삼 군단장님은 지금 당장 전차 군단을 맡아 공격을 서두르라는 명입니다.”
순간 위스퍼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전차 군단을 맡으라고!”
이때 옆에 있던 레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는 보병 군단으로 배정하더니만 이제 와서 무슨 소리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 정말 너무하는군.”
전령이 말했다.
“저는 아벨 집정관님의 명만 전할 뿐입니다.”
그때 위스퍼가 당당하게 말했다.
“알겠네. 그 명을 받아들이겠네.”
레이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군단장님!”
“조용하게나.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네. 적들이 우왕좌왕 뒤로 밀리고 있으니 그 틈을 이용하여 전차 군단을 움직이면 전세를 완전히 뒤집을 수가 있을 걸세. 자, 시간이 없으니까 서두름세!”
“할 수 없죠, 뭐.”
“물론 자네가 내 전차 고삐를 잡게나.”
“늘 해 왔던 일인데요.
결국 위스퍼는 레이와 함께 말을 타고 전차 군단 진영 쪽으로 힘차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