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게토는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질문했다.
“대체 나를 납치한 이유가 뭡니까?”
“…….”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못 들은 척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다.
괜히 물었던가. 잡혀 가는 신세에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입장에서 무모한 짓을 했나 싶어 금세 후회가 막심했다.
게토는 잠시 숨을 죽이고 아주 조심스런 눈길로 그녀를 다시 살폈다.
이 와중에도 꼬치구이를 뜯어먹는 그녀의 옆 얼굴선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싸늘한 눈빛은 나무 밑동에 기대어 놓은 검을 금방이라도 뽑아서 사정없이 휘두를 것만 같았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툭!
그녀가 땅바닥에 던진 고기 조각 한 점, 먹고 싶으면 먹으라는 얘기였다.
다행히 낙엽 위에 놓였기에 고기 상태는 깨끗하게 보였다.
일부러 흙이 묻지 않도록 던진 것 같았다.
게토는 잠시 망설였다. 영문도 모른 채 산 속으로 끌려 다닌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기에 허기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손이 묶여 있는지라 당장이라도 허리를 굽히고 입으로 향긋한 냄새가 진동하는 고기 조각을 씹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난 거지도 아니고 개는 더더욱 아닙니다. 굶어 죽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음식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순간, 그녀는 기분이 상했는지 뜯고 있던 고기를 모닥불 속으로 확 던져 버렸다.
이에 게토의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이 마당에 자신이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후회가 됐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쨍― 쨍―
참으로 강렬한 빛이었다. 숲속의 제법 두툼한 잎사귀 틈으로 언뜻 비치는 햇살에조차 얼굴이 타들어 갈 것처럼 따갑게 느껴졌다.
오늘은 3일째, 이대로 계속 끌려가다가는 자신을 찾고 있을 추적대로부터 영영 멀어질 것 같아 두려움이 쌓이고 있었다.
좁은 숲길을 지나 구릉지 위로 올라서니 한나절 내내 태양에 달궈진 바위 지면에서 열기가 푹푹 올라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나마 이곳이 고지대인지라 간간히 불어오는 미풍(美風) 몇 자락에 겨우 버틸 수가 있었다.
잠시 후, 게토는 발밑 능선 아래 광활한 숲 지대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에 시선이 갔다. 하나로 묶은 갈색의 긴 머리카락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군장과 허리춤의 검만 아니었다면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 은근슬쩍 다가가서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을 정도였다.
애석한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자신의 목숨이 저 여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금세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대체 왜 자신을 납치했는지. 또,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게토로선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
불과 3일 전만 하더라도 게토는 설마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불과 17살이란 나이에 아르카도 제국 역사상 그 유례가 없던 파격적인 인사 조치로 황궁 역사 서고 연구회원으로 발탁되었었다.
그리고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난 다음 근무지에 적응이 되려 할 때 전혀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는 아독의 차남으로서 무인의 길을 가는 형 아라퀘스와는 달리 전략 전술에 관해 이름을 한창 드높이던 터였다.
결국 한숨을 쉬고 마는 게토.
‘후.’
운명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고 그랬던가.
자타가 공인하고 황제마저 그 재능에 감탄하여 어린 나이에 왕궁으로 불러들일 정도로 기재들 중에 기재인 자신이 손이 묶인 채 이렇게 개처럼 끌려 다니는 신세라니…….
이 기가 막힌 상황에 그저 막막할 심정일 따름이었다.
비록 짧은 인생이지만 지나간 날들이 그저 덧없는 거품처럼 사라지려는가.
만일 여기서 이대로 죽는다면 굵고 짧았던 삶이 한순간에 끝나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 전에 나카스니아 대륙에 볼일이 있다고 그곳으로 가 버린 부모님은 물론 자신을 그토록 챙겨 주었던 아라퀘스마저 영원히 보지 못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정체불명의 여인과 게토는 능선 자락 관목 지대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인은 늘 그렇듯 말수는커녕 표정마저 일체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게토의 속은 더욱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라도 안다면 답답하지나 않을진대 말이다.
하지만 내심 여인의 속을 알기가 겁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녀가 어디론가 데려가서 죽여 버린다고 한다면 그때부터가 살아 있는 지옥이 아니던가.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 법.
하지만 궁금했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무섭고 피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앞일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여유가 생겼을까.
게다가 학자의 기질 때문인지 그의 이성이 호기심을 서서히 부채질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다면 벌써 죽였을 것인데 아직도 아무 일이 없는 것을 보면 목숨을 보존할 실낱같은 희망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여인이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지 그 이유부터 살펴 볼 문제였다.
혹시 누군가와 원한 관계라도 있었던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15살의 나이로 대륙 정세에 관해 집필한 논문 몇 편이 대박을 터뜨려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현재에는 최연소 황궁 역사 서고 연구회에 발탁되어 창창한 인생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 그나마 짧은 인생의 굵직한 사건 전부였다.
다시 말해서 게토에겐 누구와 원한을 살 일이나 그 계기조차 만든 일이 없었다.
물론 아버지 시대에 있어서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을 알지만 설마 자식인 자신을 해코지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니, 처음엔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면 인재 유출을 위한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던가?
아르카도 제국은 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박식한 학자들로 가득 찬 위대한 지식의 보고(寶庫)라 불려 왔다.
실제로 지난 천 년 동안 전술, 전략가 혹은 작전 참모 출신들 중 이 나라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고모 아이린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제13군단의 작전 참모로 전설적인 일화를 일구어 내지 않았던가.
어쨌든 최근에도 다른 나라들로부터 사신들이 직접 방문하여 게토 자신의 등용에 있어서 긴밀히 부탁하곤 했다.
아주 적은 가능성이지만 게토는 자신의 뛰어난 재질이 이웃 나라에게 알려지면서 이런 식으로 납치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도 해 보았다.
국가 정책의 중대한 사항을 결정할 학자나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전략가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을 준비해야 하는 관례가 있었으니, 아마도 어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왕이 공짜 심보로 자신을 데려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게토.
망상이 지나쳤던가?
그는 내심 피식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랬다면 이렇게 죄수처럼 묶여서 질질 끌려갈 리는 없겠지.’
그때였다.
스윽―
여인이 칼을 뽑더니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게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제 올 것이 왔단 말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살려 달라고 싶었지만 여인의 표정이 너무도 싸늘하게 보여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죽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던가.
“대체 왜 이럽니까!”
삭!
“헉!”
하지만, 검이 벤 것은, 자신의 두 손을 꽁꽁 묶었던 줄이었다.
탁탁!
화르르!
모닥불 가에 올려 진 시뻘건 고기가 노릇하게 익어 갔다. 웬일인지 여인은 고기의 양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게토 앞에다 놓았다.
전처럼 엎드려서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변해 버리니 더욱 불안했다. 죽이기 전에 실컷 먹게 하려는 마지막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잠시 시간이 흘렀다. 어차피 내맡겨진 운명, 게토는 애써 담담한 얼굴로 여인의 행동을 기다렸다. 여인이 일어나서 불씨가 남아있던 모닥불을 발로 비벼 가며 껐다.
그러고는 앞서 길을 따라 내려갔다.
게토가 멀뚱히 서 있자 그녀가 고개를 뒤로 홱 돌리더니만 아무런 말 없이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당장 따라오라는 무언(無言)의 충고인 것 같았다.
덧붙여서 혹시라도 도망이라도 간다면 죽여 버린다는 의미 역시 살벌한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게토가 그녀의 의도를 잘 안다는 듯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이 와중에도 게토는 한 가지가 궁금했다.
벙어리인가. 아니면 말하기 귀찮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일부러 무섭게 보이려고 인상을 쓰는 건지.
얼굴 전체에 냉기와 싸늘함이 잔뜩 베여 있었지만 참으로 조목하고 그윽함마저 느껴지는 미인이랄까. 학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성적 요소도 포함한 복합적 미모를 지녔다고 볼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전사의 기세가 느껴졌고 언제 어느 때라도 허튼 행동을 한다면 당장 검이 뽑아져 사지들 중 어디 한 군데가 절단될 거라는 사실을 그냥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5일 후.
그토록 곱디 고왔던 손과 얼굴에 크고 작은 생채기들만 수십 개였다.
17년의 짧은 인생, 지금까지 학문을 위해 열정을 쏟았고 이후로 고고한 학자로의 삶을 영위해야 할 자신에 왜 이런 시련이 닥쳐야만 하는 것인지 아직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여인의 정체도, 그리고 자신이 왜 이렇게 끌려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특별한 목적지도 없는 것처럼 그때그때 지도를 보며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만 길을 트는 것이었다.
더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게토 자신에게 증오로 가득 찬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인가.
게토는 점차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진짜 뭔가 큰 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대체 내가 뭔 잘못을 저질렀다 말이지.’
이제는 납치당해서 신세를 걱정해야 하는 관점이 아닌 그 원인과 계기가 미치도록 궁금해지는 입장으로 변해 버렸다.
참으로 미묘하고 복잡한 양상이랄까. 식사를 끝낸 게토는 큰 나무 밑동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잠깐 눈을 붙였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국왕 전하, 고명하신 역사 연구회 대선배님들, 그리고 황궁에 첫 출근하던 날, 아르카도 제국 역사상 최연소 황궁 입성 기재의 얼굴을 보려고 길거리에 나와서 함성을 질러 주었던 마을 사람들, 심지어 도시의 시민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지금쯤 그 모두가 감쪽같이 없어진 나를 애타게 찾고 있겠지.
‘아아. 어쩌다가 내 신세가…….’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모닥불이 숯만 남기고 거의 꺼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허전한 느낌에 주위를 둘려보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녀가 없었다!
‘…….’
게다가 사냥하러 갈 때면 반드시 나무에다가 자신의 몸을 단단히 묶어 뒀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자유로운 상태였다.
아마도 깊은 잠에 든 것으로 착각하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 틀림없었다. 순간 게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왼편 언덕 아래 숲 지대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저곳에서 날짐승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오른 편 바위 아래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물살이 제법 있어 보였지만 그다지 깊지도 않은, 더구나 폭 역시 완만한 강이었다.
만일 뛰어든다면 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생각이 많은 학자들에게 행동으로 가감하게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더구나 17살의 게토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절호의 찬스가 아니던가. 이때를 놓치면 아마도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풍덩!
무더운 여름날, 땅 밑까지 끌리는 기다란 학자 망토를 훌훌 벗어던지고 냇가에 뛰어 들었던 경험이 그의 용기를 부채질했다.
그리 잘하는 수영은 아니지만 맥없이 빠져죽을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물살이 센 터라, 그는 정신없이 떠밀려 내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물속 장애물에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사투를 벌였던 터였다. 얼마나 내려왔는지조차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온몸이 쑤셔 왔고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쨍.
얼굴을 가린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빛이 너무나 눈이 부셨다. 자유를 되찾은 영혼에게 내려지는 축복의 광명으로 느껴질 판이었다.
필시 탈출은 성공했음이 분명했다. 지금쯤 그녀는 자신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감조차 잡지 못할 게 틀림없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살았다.’
그때였다.
“척!”
조그만 군화 하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게토가 놀라 눈을 치켜뜨자 군화발이 냅다 그의 복부를 내질렀다.
팍!
“악!”
푹!
“억!”
손과 팔로 얼굴과 몸통을 막았지만 상대는 인정사정없이 마구 내질렀다.
역광(逆光) 때문에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게토는 자신을 폭행하는 실체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단 말인가?
팍!
“욱.”
평생토록 지금처럼 피 떡이 되도록 폭행당한 적이 없는 게토는 그야말로 신체적인 충격보다도 정신적인 충격이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설마하니 여인이 자신을 이처럼 참혹하게 짓이기는 것도 모자라 뭉갤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웬만한 원수지간이 아니고는 절대로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산돼지처럼 손과 발이 꽁꽁 묶여 있었고 입에서는 연신 선혈을 토해 내는 처참한 몰골 앞에서 저토록 보란 듯 고기를 맛있게 먹는 여인이 이제는 악마로 보였다.
***
탁탁.
화르르―
모닥불의 열기가 이곳 바닥까지 전해져 왔다. 여인은 탈출에 대한 응징의 대가로 폭행은 물론이고 음식찌꺼기 하나 던져 주지 않았다.
게토는 처음으로 눈물이 와락 쏟아지려고 했다.
고통과 서러움, 꺼져 가는 희망,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운명,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정도로 너무도 힘든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머리를 짜내야만 했다.
여인의 진짜 정체와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 등, 자신에게 뭔가 엄청난 증오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다시 3일 후.
어느 숲속 공터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한 사내가 보였다. 여인과 게토가 나타나자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며 아는 척을 했다.
“헬시아.”
그가 먼저 말문을 열자 여인 역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조금.”
“죄송합니다. 이 녀석과 함께 오느라…….”
그제야 사내는 몰골이 지저분한 소년 게토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아독의 아들인가?”
“네.”
“…….”
사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마치 이상한 동물 보듯 말이다.
“아독의 아들이라…….”
여인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막상 집을 찾아가 보았지만 아독과 헤르시안은 보이지 않고 이 녀석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엔 사내가 게토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네 부모는 어디로 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 부모님과 무슨 관계이기에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거죠.”
사내의 얼굴이 다소 일그러졌다.
“제 아버지 닮아서 당돌한 면이 있군. 아무튼 좋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간략하게 설명해 주지. 내가 너만 할 때 네 아버지와 동행한 적이 있었지. 당시 이리스의 귀환으로 나카스니아 대륙이 한창 떠들썩할 때 나는 그야말로 위대한 영웅과 함께 다닌다는단 자체에 우쭐거렸단다.”
나카스니아 대륙이란 말이 나오자 게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곳에서 온 자들이란 말인가!’
심장이 철렁했다. 필시 아버지와 원한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말이다.
사내가 계속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네 아버지와 친해져서 정도 많이 들었지. 같이 여행하는 도중에 내 목숨도 구해 주고 말이야. 하지만 세상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마지막에 가서 아독이 설마 내 아버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했어.”
게토는 사내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갑자기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당신은 나르시오스…….”
사내가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를 아는군.”
게토가 경악에 찬 얼굴을 했다.
“불, 불사의 용인 나르시오스!”
세상에 믿어지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카스니아 대륙의 용족 통치자이자 위대한 권능을 지닌 존재가 바로 이곳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다시 물었다.
“네 부모는 어디 있냐.”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죽일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게토는 끝까지 버텨 보기로 했다.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정상이겠지. 솔직히 나는 네 아비를 죽이러 왔거든.”
“…….”
그때 여인이 이들의 대화에 껴들었다.
“아, 참. 이 녀석에게 형이 하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를 찾아내면 아독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이라고?”
“이름이 아라퀘스였던가…… 아무튼 아독에겐 아들이 한 명 더 있습니다.”
“흠, 이제 보니 아들이 둘이었군.”
나르시오스가 게토에게 다시 물었다.
“형은 어디 있지?”
“모릅니다.”
나르시오스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져 들어갔다.
“다시 묻겠다. 형은 어디 있지.”
게토는 그의 독기 어린 눈빛을 바라보다가 그만 실토하게 되었으니.
“남부 대륙에요.”
“거긴 왜.”
“그냥 갔어요. 여행 겸.”
“여행이라.”
“벌써 수년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아예 정착 한 것 같은데…….”
“어쨌든 남부 대륙에 가면 그를 찾을 수 있겠군. 아독의 아들이라면 어디서든 두각을 나타낼 테니 말이다.”
나르시오스는 그제야 게토를 데리고 모닥불가로 갔다. 방금 전과는 달리 다소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너 배고프지? 여기 꼬치들 한번 먹어 보렴.”
“…….”
식사 시간이 끝이 났다.
게토는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댄 채 앞으로의 불확실한 운명에 또다시 한숨을 토로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신에게는 분명 부모님과 형이 있지만 지금은 고아나 다름없는 외톨이가 아닌가.
아니 수년 전부터 홀로 지내 왔으며 아버지와 원한 관계가 있는 존재들에게 끌려 다니고 있었으니 사실상 그의 목숨은 자기 것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왜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지? 후우…….’
게토는 부모님이 나카스니아 대륙의 위대한 전사 이리스와 정령왕의 직계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에 매우 자부심을 느껴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의 특출 난 능력 덕분에 최연소 학자로서 당당하게 지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지금 당장은 아버지가 돌아와서 자신을 구하는 길밖에 없는데 그 마저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었으니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이들은 자신의 형 아라퀘스를 찾아내어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내고자 남부 대륙으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대체 이 일을 어떡해야 할지를 몰랐다.
잠시 후 게토는 아주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휘리리릭!
“크앙.”
휘리리릭!
퍼덕퍼덕!
나르시오스와 여인이 순식간에 몸집이 부풀려지더니만 거대한 용으로 탈바꿈하여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이 아니던가.
“세상에!
게토는 그만 심장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사실 저들이 용족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저런 장면을 실제로 목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미 회색빛의 불사용으로 변한 나르시오스가 게토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등에 타라.”
“네!”
“당장 남부 대륙으로 가서 네 형을 찾아야겠다.”
“저, 저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아독의 아들이라면 어디서든 두각을 나타내고 있겠지. 일단 남부 대륙으로 가서 수소문을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자! 당장 내 등에 올라타라.”
“아…… 네.”
게토는 겁먹은 얼굴로 아주 조심스럽게 용에게 다가갔다.
정말이지 상상 외로 엄청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웬만한 야산 언덕만 했다.
잠시 후 게토가 그의 등에 오르자 두 마리의 용은 날개를 펼치고 하늘 높이 날았다.
대지와 하늘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포효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