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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0 기습 작전(8권) (61/81)

Chapter. 60 기습 작전

빗발치듯 날아오는 불화살들이 제2방어선 진영의 건물 지붕과 충돌하자마자 폭발과 함께 섬광이 일었고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번쩍.

꽈꽝.

우르르.

엄청난 진동음과 충격으로 병사들이 사방 각지로 튀어 올랐으니 동시에 피 보라와 살점들도 마구 튀었다.

“아악!”

“살려 줘!”

“우욱!”

쾅!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제2군단 사령부 진영, 군단장 지노와 대원들은 병사들을 돌보기는커녕 허겁지겁 이리 뛰고 피하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대체 뭐야!”

“갑자기 세상이 불바다가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부군단장 비스크가 연병장 한가운데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레스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아레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아레스가 외쳤다.

“무조건 하얀 가루가 있는 곳을 피해서 이곳으로 달려오세요.”

“하얀 가루가 뭔데 그래!”

“놈들이 송진 가루와 화약을 섞은 것들을 미리 뿌려 놓아 불화살을 날리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폭발이 일어나는 거냐.”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이런 빌어먹을! 뭐 하는 건가! 그렇다면 당장 병사들에게 알려야지!”

“그렇지 않아도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형님 목소리가 크니까 함께 알리면 좋고요.”

“알았다. 진작 말해 주지!”

“형님 목소리가 크니 빨리 외치라니까요!”

“모두 하얀 가루가 있는 곳을 피해서 연병장 이곳 한가운데로 모여라! 이건 명령이다.”

“가운데로 모이래!”

“당장 서두르세나.”

타다닥!

“밀지 마!”

“뭐라고! 지금 내가 죽는 판인데 너 같으면 안 밀게 생겼냐!”

콰쾅!

우르르.

그나마 다행스럽게 병사들 역시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았는지 이리로 모여 들기기 시작했다. 이번엔 뒤늦게 온 군단장 지노가 아레스에게 말했다.

“이거 기습 공격이 분명하지?”

“네, 기습 공격이 맞습니다.”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기는요. 무조건 피해야지요.”

“그 다음은?”

“병사들에게 명령해서 제3군단 진영으로 총퇴각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지노가 깜짝 놀랐다.

“뭐라고! 이대로 총퇴각이라니. 불화살 몇 대 맞은 거 가지고 너무 한 거 아니냐?”

“본관 건물과 무기 창고 그리고 여타 건물들이 불타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아마도 놈들은 대규모 병력마저 진격시켜 벌써 이리로 몰려오고 있을 겁니다.”

지노의 얼굴색이 창백해 졌다.

“설마!”

“의심나면 담벼락 아래쪽을 살펴보시든지요.”

지노는 아직도 이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때마침 망루 위에 있던 병사가 절규하듯 외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적들이 몰려옵니다.”

“뭐라고!”

아레스가 다시 급하게 말했다.

“군단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총퇴각 명령을 내리셔야만 그나마 병력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젠장. 이대로 허무하게 진영을 포기하라고?”

“허무한 게 아니라 절박한 상황에서 마지못한 결정입니다.”

지노는 끝내 억울함을 참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아레스의 말대로 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빨리요!”

“알았다. 내 대신 총퇴각 명령을 내려라.”

이에 아레스가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벌떡.

타다닥.

그는 각 대대장들이 포진해 있는 근처 부근을 뛰어 다니며 정신없이 외쳤다.

“각 대대장들은 휘하 병력을 인솔하고 무조건 제3군단 진영으로 후퇴하길 바란다. 이건 군단장님의 명령이니까 신속하게 행동하기를!”

그러자 각 진영으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당장 그리 하겠습니다.”

그들 역시 저 아래 협곡과 구릉지로부터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적들의 기세에 압도당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와와!

와와!

사실 이미 송진 화약 가루가 상공으로 두둥실 떠오른 연들로부터 마구 뿌려졌을 때부터 이 전투는 이미 승부가 결정 났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필시 아키아의 지략으로 인한 기습 공격이 분명했으니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공격 방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자, 빨리 서둘러라! 어차피 이곳 방어선은 포기해야 한다.”

아레스는,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지 얼마 되지 않아 허를 찔리는 공격에 몹시도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는 이미 뒤쪽 바위 지대로 후퇴를 하는 병사들 틈에 섞여서 함께 뛰어 갔다. 그의 눈가에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눈물까지 글썽이려고 했다.

‘어디 두고 보자. 반드시 갚아 줄 테다.’

제2군단은 이로 인해서 철벽을 자랑하던 진영을 버리고 총퇴각을 감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되도록 병사들의 손실을 줄이려고 일찌감치 제3군단 진영으로 향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떼로 몰려가는 병사들은 험한 산악 지형에서 꽤나 큰 고초를 겪어야만 했으니 후퇴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밀지 마! 굴러 떨어지면 팔다리가 부러진다고.”

“앞에서 늦게 가니까 그렇지.”

“이렇게 비탈 진 곳에서 어떻게 빨리 달릴 수가 있겠는가.”

“그런 말할 시간에 좀 더 서두르라니까!”

“누가 말시켰는데, 젠장!”

“에잇! 정말 꾸물거리네.”

툭!

“욱!”

데굴데굴―

“사람 살려! 아이고.”

“느려 터져 가지고 엄살은!”

“…….”

이리저리 구르는 병사들만 수십 명을 넘어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 밑이 완만한 구릉지이기 때문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들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 타박상을 입고 전력 질주를 하자니 그 고통은 하늘을 찌를 듯했을 것이다.

같은 시각.

제3군단 사령부 진영에는 지드와 하키리우스 그리고 각 수뇌부들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저 멀리 제2군단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쾅!

우르르.

콰쾅!

슈슈슈슈슈 ―

그곳에는 여전히 커다란 폭발음이 일어났고 먼지가 사방으로 뻗쳤다.

그 속으로부터 결사적으로 개미 떼처럼 밀려오는 아군의 패잔병들, 지드의 심정은 이만저만 심란한 게 아니었다.

“도대체 한 번에 밀리는 이유가 뭡니까!”

“화공지략이라니요?”

“화공지략을 쓴 것 같습니다. 연을 통해 송진과 화약가루를 날린 다음 장거리 전문 궁사들에게 일제히 불화살을 발사하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결국 제2군단을 내주게 되었군요.”

하키리우스가 비교적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수순입니다.”

“예상이라니요! 그럼 지금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하키리우스의 담담한 말에 발끈한 수뇌부 중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아니, 그렇다고 제가 사전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키아가 첫 전투에서 패배한 대가로 뭔가 특별한 공격을 감행하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하니 저런 독특한 전술을 사용하리라곤…… 상상치도 못했던 일입니다. 참으로 애통한 일니다.”

“끙…….”

하키리우스의 말에 소리치던 이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신음을 냈다.

그도 지금 이 사태가 하키리우스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단지,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른 것일 뿐.

“과연 무서운 자가 분명하군요. 그자가 제2군단을 함락시켰으니 이제는 이곳마저 노리겠군요.”

하키리우스가 계속해서 눈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이번엔 결코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3군단에서 진정한 전투가 시작될 것이기에 말입니다.”

지드가 의아스런 얼굴로 되물었다.

“진정한 전투라니요.”

“이런 말씀 드리기 외람스럽지만 사실상 이곳 3군단 전투는 저와 아키아의 대결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드 역시 그 말에는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와 아키아라면 결국 전략 싸움이겠군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손자병법과 아키아의 대결 구도랄까요.”

“…….”

사실이 그랬다.

어차피 산악 전투는 병사들의 전투력보다는 그들을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 하는가 하는 지휘관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쪽에서 공세를 취하면 역공세로 맞받아치던가.

허를 찔리면 다시 허를 찌르는 기상천외한 병법이 수반 되어야 승리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키리우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일단 제2군단 병사들을 받아들이고 재정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키아가 무슨 전략으로 나올지 긴급 작전 참모 회의부터 가지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지드는 여전히 저 멀리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함락 지역을 바라보면서 다소 굳어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지금부터가 실제적인 싸움이 될 거란 말이겠군요.”

“…….”

***

휘잉―

사사사사.

정상으로부터 강력하게 불어 오는 바람이 이미 잿더미가 된 잔해의 검은 연기를 시원하게 날려 주고 있었다. 병사들이 함락한 곳을 뒤늦게 입성한 카르세크와 참모 아키아 그리고 그 뒤로는 레온과 테세우스가 말없이 서 있었다.

카르세크가 흥분하듯 외쳤다.

“과연 자네일세.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곳을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함락 시키리라고는 나조차 생각 못한 일이었네. 하하하.”

아키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적들이 마음을 놓은 탓도 있겠죠.”

“그렇게까지 겸손해 할 필요 없네. 이건 무조건 자네 지략에서 나온 승리란 말일세.”

“송구스럽습니다.”

“여하튼 이참에 저들의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뜨림세!”

“…….”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 아키아.

그는 그저 물끄러미 저 멀리 산등성이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편, 뒤에 있던 레온은 왠지 얼굴을 실룩거리며 다소 언짢은 기색이었다.

‘쳇!’

언제부터인지 자기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저 기분 나쁜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 집정관 카르세크는 이미 그에게 온 마음을 다 주고도 모자란 것 같았다.

하물며 테세우스마저 버젓이 등용된 마당에 자신의 입장은 일인자는 고수하고서라도 삼인자로 밀려 버릴 판이었다.

‘이러다가 내 신세가 말단으로 밀려나는 건 아닌지.’

주먹을 꽉 쥐는 레온,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말로세카의 군장을 얻은 뒤로 한층 강해진 자신의 놀랄 만한 비행 능력과 전투력이 뒤를 강하게 받쳐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진정한 가치가 조만간 드러나겠지.’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테세우스가 한 마디 던졌으니.

“너무 걱정 말게나. 내가 보기에 자네는 아직도 쓸 만하니 말일세. 후후.”

순간 가슴이 뜨끔해져 낯빛이 창백해지는 레온.

대체 이 자식이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들여다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너 지금 뭐라고 말했어!”

그러자 테세우스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사실 전시 기간에는 무인들의 능력보다도 지략가가 더 인정받는 법이니까 너무 열 내지 말라는 뜻일세.”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모시는 아키아는 확실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남다른 재능을 가진 것 같으니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레온이 성질을 터뜨렸다.

“누가 네놈 의견 따위를 듣고 싶은 줄 알아?”

“싫어도 할 수 없지. 그게 현실이니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네놈이다. 우린 그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하라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신세일 뿐.”

테세우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쨌든 우린 똑똑한 참모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이곳을 함락시키지 않았는가. 그러니 집정관께서 그를 아끼고 신임할 수밖에 없지.”

“이…….”

“그렇다고 우리 입지가 흔들리는 건 아니라고 보네. 나름대로 자네나 나나 할 분야가 따로 있는 법.”

“닥치시지. 네놈은 이 전쟁이 끝나면 어차피 적으로 돌아갈 놈이니까 괜히 친한 척하며 내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게 좋아.”

“나도 자네와 친할 생각은 별로 없네. 다만 보시다시피 우린 지금 한배를 같이 탄 처지이니, 서로 도와보잔 말일세.”

“웃기는 소리!”

“물론 그렇게 나와야지 자네답겠지. 후후.”

테세우스가 천진한 아이처럼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자 레온은 아예 어이없어 했다.

‘뭐야, 이 자식.’

한편, 카르세크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아키아는 그다지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저 멀리 또 다른 고지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이제 한 고지를 차지했을 뿐, 실질적인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카르세크가 되물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저곳 제3군단이야말로 반드시 넘어야만 할 최대 고비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투는 서막 정도에 불과할까요.”

“서막이라니. 내 생각에는 이미 승기를 잡은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뭘 그리 엄살을 피우시나? 지금처럼 밀고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외람된 말씀이지만 적들의 실세는 모두 저곳에 모여 있음이 분명합니다.”

“실세라니?”

“실질적인 전략 전술을 뒤에서 조종하는 존재들이겠지요. 집정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하키리우스라 불리는 참모와 국왕 지드입니다. 현재까지 총괄 적인 작전을 지시했던 실체란 말입니다.”

그제야 카르세크가 진중한 얼굴을 했다.

“그래봐야 자네 능력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아닌가.”

“그런 게 아닙니다. 적의 참모는 제 예상을 뛰어 넘는 작전으로 저를 무척 놀라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 어떤 전술을 들고 나와서 허를 찌를지 모르는 일입니다.”

“난 자네의 능력을 믿네.”

“저도 제 능력을 믿고, 또 자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현재까지 전투 상황을 보자면 정확히 주고받는 형세로서 무승부라 할 수 있습니다.”

“무승부라…….”

“또 한 번의 승리를 위해서는 저조차 모든 머리를 짜내어 상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르세크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다니 놀랍군. 도대체 조그만 규모의 왕국 따위에 무슨 인재들이 있다고 그리 마음 약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인가.”

아키아가 카르세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일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무슨 말을…….”

“피체 왕국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나라라고 말씀입니다.”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카르세크가 별말이 없었으니 결국은 수긍하는 자세였다.

아크누스의 기병대와 대자객 신전을 끌어들인 수완에 현재까지 백중세를 유지하는 전투 능력을 보자면 아키아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테세우스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서 눈살 찌푸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한나가 에르가니아에게 자신의 발을 씻게 하는 것이 아닌가.

“골고루 잘 씻어.”

“네.”

“난 귀하게 자라서 조금이라도 발에 티가 묻으면 잠이 오지 않는단 말이야.”

“알겠습니다.”

순간 테세우스가 성질을 버럭 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한나가 그를 보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왔어? 보다시피 시녀가 내 발을 씻어 주고 있잖아.”

출렁출렁.

“이년아! 물 튀기지 말고 똑바로 하라니까!”

“아, 네.”

“나 참, 이런 거 하나도 못하는 것이 무슨 군단장이었다고. 하여간 인간들은 못 말린다니까? 쳇!”

바로 그때였다. 테세우스가 참다못했는지 냅다 다가가서 그녀의 발 씻는 용기를 뺏어 버렸다.

홱!

“당장 그만두지 못해!”

“왜 그래!”

아무리 에르가니아가 시녀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적의 군단장 신분이 아니었던가. 같은 인간으로서 그의 눈에 한나의 행동이 너무해 보였던가.

“네 행태를 더 이상 눈 뜨고 못 봐주겠으니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든지 말든지 해!”

한나가 입술을 불쑥 내밀었다.

“요즘 들어서 무척 신경질적이네?”

“네가 그렇게 행동하잖아!”

“너, 혹시 이년하고 눈 맞은 거 아냐?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고 내숭까지 떠는 이 재수 없는 계집애랑?”

“이제는 헛소리까지 하는군.”

“에잇! 다 이 계집애 때문이야.”

탁!

“억!”

데굴데굴.

홧김에 내뻗은 그녀의 발길질에 에르가니아가 뒤로 벌렁 자빠졌다.

한나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테세우스에게 다가가서 따지기 시작했다.

“오늘만큼은 할 말을 하고 넘어가야겠어.”

테세우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뭔 얘기!”

“언제까지 인간들 놀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이럴 거지?”

“인간들 놀음이라니! 난 엄연히 인간이고 내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

“인간 좋아하시네. 넌 흑운성의 기운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특별하건 말건 간에 앞으로는 내 앞에서 잔소리 하지 마.”

“지금 내가 잔소릴 안 하게 생겼어? 너 혹시 최근에 아르가 놈한테 당했다는 사실은 알고나 있어?”

이에 테세우스가 금시초문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르라니?”

“그 녀석이 국왕 지드인가 뭔가 하는 놈 목 따러 갔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단 말이야.”

“목을 따러 갔다고!”

“미안해, 진작 알려 주지 못해서. 너한테 좋은 선물 하나 주려고 했는데…… 그래야 이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한나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후. 그 지드라는 인간이 생각보다 센가 봐. 아무래도 아르 상대가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정말 아르가 그를 제거하려 했단 말인가.”

“내가 직접 나서서 그를 손봐주려 했는데 지금 내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입장이거든.”

그녀는 말하다 말고 가슴 안쪽으로부터 아주 조그만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테세우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건 뭐야.”

“이건 무척 중요한 거야.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아 깨지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거든.”

“뭐냐니까!”

“나 귀 안 먹었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 아무튼 이건 앞으로 한 달 하고 보름 후에 네가 마셔야 될 진액이란 말이야.”

“진액이라니?”

“그때가 되면 십 년 만에 흑운성의 기운이 가장 강할 시기이고 이 흑운성의 기운을 마시면 넌 대단한 군단을 얻게 될 거야.”

“군단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나카스니아의 암흑 군단 말이야. 후후.”

“뭐라고?”

“한때, 네 아버지는 여기에서 흑마술 군단을 지휘했고 나중에는 나카스니아 대륙으로 가서 어둠의 종족을 지배하는 제왕이 되었지. 너는 그보다도 한층 높은 암흑 군단을 거느릴 운명이라고.”

테세우스는 대체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한나는 테세우스가 이해를 하든 말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진액을 마시는 동시에 이곳 세계와 나카스니아 세계의 틈새를 잠시 벌일 수 있고 그곳으로부터 대규모 다크퍼스 군단을 소환할 수 있게 될 거야.”

“다크퍼스 군단!”

“그야말로 엄청난 군대이지. 아마 그들이 이곳 세상으로 내려오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한순간에 쑥밭이 될 걸? 생각을 해 봐, 아르 같은 녀석들 수만 명이 너를 받쳐 준다면 진짜 무서울 것이 없겠지.”

“…….”

테세우스는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정녕 그녀의 말이 사실이던가. 지난번에는 지금 착용하고 있는 청동 군장과 청동검을 준 것에 이어 또 다른 힘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니, 그로서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나가 계속해서 말문을 열었다.

“어때, 벌써부터 가슴이 부풀어 오르지 않니? 아직도 네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존재인지 모르나 봐? 제발 좀 하루라도 빨리 각성해서 이 진액을 달갑게 먹으라고.”

한편, 에르가니아는 둘의 대화를 듣는 와중에 몹시 놀라고 있었지만 일단 지드가 아직 건재하다 생각하니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쨌든 이들은 뭔가 엄청난 힘을 지닌 강력한 존재들이 분명해 보였다. 어떡하든 이곳을 탈출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지드에게 알려 주어야 하건만 정말 답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벗어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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