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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 전략 수립 (55/81)
  • Chapter. 54 전략 수립

    그로부터 며칠 후.

    피체 왕국 최전방 전선 기지에는 지드를 위시로 각 지휘관들이 긴급회의가 있었다. 피체 왕국의 군 지휘 체계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독창적이라 할 수 있었다.

    전시(戰時) 기간 중인지라 왕국 전체가 하나의 군대로 간주되었고 국왕 지드가 총사령관으로서 모든 통수권을 지휘하고 감독할 수 있었다.

    병력은 제국과 마찬가지로 군단으로 나뉘어졌고 군단 규모는 왕국으로서는 제법 많은 네 개 군단까지 있다.

    이는 지난겨울 동안 주변 영토를 확장하면서 부족민들이 합류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개 군단이 5천여 명으로서 2만여 명에 달하는 제국 군단에 비해서 4분의 1, 2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드 곁에는 작전 참모인 하키리우스가 전략 전술을 담당할 것이다. 전쟁 중 새로 구성된 지휘 체제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총사령관 지드

    작전참모 하키리우스

    기사단장 겸 근위대장 아라퀘스

    부기사단장 키나

    제1군단장 지노

    부군단장 비스크

    제2군단장 이리가시

    부군단장 스카페트

    제3군단장 에르가니아

    부군단장 카르발디

    제4군단장 아크누스

    부군단장 벨라치오

    지난번 전격적으로 영입된 대자객 신전은 이번 전쟁 기간 중에 피체 왕국에서 새로운 체제를 갖추고 특별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총관 바쿠어스는 자신이 고령이라 점을 내세워 총 지휘권을 지드에게 맡아 줄 것을 요청한다.

    결국 지드는 무려 1만여 명의 상당한 고수들이 소속되어 있는 남부 대륙 최대 살수 집단이 대자객 신전의 모든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회의는 총 작전 참모 하키리우스의 말로 시작되었다.

    “다들 방금 전 나누어 준 전술 자료집을 보기 바라오.”

    그러자 대형 막사 안의 모든 지휘관들이 각자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책자들을 집어 들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책 겉표지에는 이 나라 문자로 뭐라 쓰여 있었는데 발음 그대로 한다면 처음 듣는 이상한 언어랄까.

    다들 소리 내어 읽어 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소……오온……자……병……법…….”

    “송장병법.”

    “대체 이 책자는 뭐고 표지에는 뭐라 쓴 거지?”

    “정말 요상한 발음이로군.”

    지휘관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하키리우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에게 하달된 책자는 전술 전략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이번 전쟁을 앞두고 꽤 많은 도움을 줄 것이오. 물론 가급적이면 그 내용들을 여러 번 읽고 암기까지 한다면 지휘관으로서 한층 뛰어난 능력들을 발휘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대체 이 책자의 제목이 뭔지요. 처음 보는 언어 같은데.”

    그는 제2군단장 이리가시였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속해서 책자를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했다.

    “그동안 많은 전술집들을 봐 왔지만 이런 건 처음 접하는 것 같은데요.”

    참모가 빙그레 웃었다.

    사실 하키리우스는 수년 동안 전직 용병대장 이리가시를 모시지 않았던가.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책자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회의 시간이 너무 짧아서 일단 제목과 간단한 내용만 말해 드리겠습니다. 정확한 발음은 손자병법으로서 아마도 각자 발음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전혀 모르는 또 다른 세계의 전술 전략집이라고 할까요. 그곳은 중국이라는 곳인데 이곳 세계처럼 거대한 대륙과 수많은 영토가 존재한다고 들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수많은 전쟁이 기록되었고 그동안 최고위 전술가라 할 수 있는 한 천재적인 지략가가 집필한 전술집이라 보면 됩니다.”

    이에 회의실에는 또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국이라니,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처음 들어 보는 나라 같은데.”

    “아마 다른 대륙을 말씀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참모께서 직접 추천한 전술집이라면 무조건 봐야지. 아니 암기라도 하면서 금번 전투에 활용을 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나 역시 같은 생각일세. 이 마당에 찬밥 뜨거운 밥 가릴 상황도 아니잖은가.”

    ***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하키리우스의 본격적인 작전 내용이 각 지휘관들의 귀에 쏙쏙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현재 팔라카스 제국의 제일 군단과 제이 군단의 오만 병력이 서먼강 하류 기슭에 만든 숙영지를 아예 요새화시켜 그들의 전초 기지로 활용할 단계에 있습니다. 우린 그들의 산악 지형으로의 진격을 사전 봉쇄하여 초반에는 나름 기선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집정관 카르세크는 헤브론 제국으로 망명해 온 천재 지략가 아키아를 영입함으로써 그의 도움을 얻어 운하를 건설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소. 그 때문에 결국 제국 군단을 우리 영토 안으로 불러들였고 말이오. 물론 본격적인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할까요. 어차피 평원이 아닌 험한 지형의 국지전에서는 단번에 승패가 결정 난다기보다는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면서 조금씩 그 우위를 점해 나가는 형식이 될 것이 뻔합니다.”

    참모는 말하다 말고 연단 뒤쪽에 걸려 있는 대형 지도에 다가가 스틱으로 직접 가리키며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적의 전초 기지가 있는 서먼강 하류 지역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대자객들이 정찰하면서 얻어 온 정보를 토대로 설명하겠소.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공성전에 투입될 여타 준비물들을 한창 제작 중에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방어용 방패와 엄호용 수레 등 공성 장비들이라 할까요. 상대 참모가 아키아인 만큼 절대 서두르지 않고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라 봅니다. 그 후에 보병들을 출격시켜 구릉지와 산악 영토의 거점을 확보하면서 모든 국지전에서 쉽게 승리를 거두고 단번에 중앙 성까지 진격해 올 계획이라 보오. 물론 어떡하든 중간에서 그들을 막으며 병력의 숫자를 가능한 한 줄이고 피해를 주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참모는 거의 열변을 토하며 계속해서 작전 내용들을 말해 나갔다.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회의는 막바지로 치닫게 되었다.

    ***

    하키리우스는 최고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네 명의 군단장들인 지노, 이리가시, 에르가니아, 아크누스를 따로 불러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반드시 명심할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각 군단장들께서는 수많은 병력을 거느린 군수 권한을 지닌 분들이기에 이렇게 감히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지켜야 할 것은 싸워야 할 때와 싸워서는 아니 할 때를 분명하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감정의 기복을 완전히 낮추고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여 항시 침착한 시각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 지휘관의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비록 상대에 비해서 적은 병력으로 전투를 치를 지라고 얼마나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대치하느냐에 따라서 그 향방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는 지휘관이라고 병사들과 격을 달리 두는 오만함이나 자만심을 버리십시오. 항시 그들과 호흡을 맞추고 단결하여 일심일체가 되도록 해야지만 모든 전투에서 결의를 가지고 싸울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겨날 것이오. 그리고 넷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서두르지 말고 항상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적이 틈을 보일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 역시 지휘관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그 어떠한 악조건 하에 있어도 지휘관들만큼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수많은 병사들 앞에서 불안한 얼굴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사기를 저하시키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으니 목에 칼이 들어올지언정 당당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회의 초반에 나누어 주었던 손자병법을 군단장님들께서는 반드시 외워 두시기 바랍니다. 그곳에는 앞으로 벌어질 산악 전투와 공성전에 필요한 획기적인 전략 전술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제 당부는 이것으로 마치려 합니다. 지금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의는 아침부터 시작해서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모든 지휘관들이 막사를 나갔지만 국왕 지드와 참모 하키리우스만이 남아서 이날 회의에 관한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손자병법을 여러 개 만들어서 모든 지휘관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정말 잘한 일 같소.”

    지드의 말에 참모가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것은 퍼트려야죠. 터구나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니 신께서 도왔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각 지휘관들이 손자병법의 가치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관건이 거기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적의 참모 아키아는 남부 산악 지형에 위치한 쎈 왕국 출신으로서 주로 보병 전술에 정통한 전략 달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능력은 평원 전투에서도 빛을 발했지만 특히 수년 전 남부 일곱 개 동맹 왕국들끼리와의 분쟁 시에 모든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었습니다.”

    이에 지드의 안색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그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이거 뭔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군요.”

    “일단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겠죠. 아키아 역시 우리가 손자병법과도 같은 획기적인 전술로 대처하리라고는 꿈에도 모를 테니 꽤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어쨌든 이 전쟁은 그들의 대군이 성 앞까지 진격하기 전에 구릉지와 산악 지형에서 얼마나 많은 손실을 주느냐에 따라 그 승패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최대한 그들을 저지해야겠군요.”

    “당연히 그래야죠.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그 이튿날, 국왕 집무실에는 지드를 비롯하여 참모 하키리우스는 기사단장 아라퀘스와 대자객 신전 수장 헤르만을 불러들여 특별 회의를 하고 있었다.

    어제의 총군단 회의와는 다소 은밀한 진행이랄까. 오로지 네 사람만이 머리를 맞대고 속삭이듯 얘기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 회의 역시 참모가 주관한 것으로서 전시 기간 중에 특수 임무를 맡을 아라퀘스와 헤르만에게 개별적인 지시를 내리기 위한 시간이었다. 기사단장 아라퀘스에 비해서 헤르만이라는 인물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던가.

    지드는 그의 약력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자객 신전 총관 바쿠어스가 뒤로 물러난 난데다가 지난번 특급 자객들인 측유와 옥린이 자기 세계로 귀환 했으니 현재 대자객 신전의 새로운 총관 대행으로 일급자객 수장인 그가 총책을 맡게 된 것이었다.

    참모가 말문을 열었다.

    “자네들을 보자고 한 것은 진정 중요한 부탁을 하고 싶어 서네. 이번 전쟁의 승패를 그대들 어깨에 달려 있다고나 할까.”

    “…….”

    “…….”

    참모의 의미심장한 음성에 아라퀘스 헤르만은 다소 긴장을 했고 침마저 꿀꺽 삼켰다.

    국운(國運)이 자신들 어깨에 달려 있다는데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계속 들려오는 참모의 차분한 목소리.

    “전쟁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일세. 쌍방의 병사들끼리 서로 피를 흘리며 겨우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전술 중에 가장 낮은 하책이라 볼 수 있지. 허나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상책도 아니고 중책도 아니지. 어차피 제국군과 동등한 입장에서 산악 국지전을 치러야 하니 그야말로 각국의 군인들 역량에 따라 그 우위가 갈라질 걸세. 군인들 역량 중에서도 소수 최정예 무인집단들이 알게 모르게 기세 싸움을 함으로써 사실상 그 여파가 수많은 병사들에게도 끼친다는 사실부터 알려 주고자 자네들을 부른 걸세. 자,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한번 물어보지. 현재 이 전쟁에서 자네들 역할이 뭐라 생각하는가. 어이 기사단장이 대답해 보게나.”

    갑작스런 질문에 아라퀘스가 조금은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침착한 어조로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희들 역할은 제국의 특수 검사부들의 음지 활동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기사단장으로서 제 기사단원들과 함께 언제든지 적국의 검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군기가 바짝 든 그의 말투에 하키리우스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과연 제국의 사관생도 출신답게 딱 부러지게 대답하는군. 허허. 그렇다면 이번엔 대자객 신전 신임 총관께서 한마디 해 보게나.”

    “제 자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진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중용 인물 암살과 군중 선동 및 교란 그리고 여타 이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저희 대자객 신전 역시 언제든지 분부만 내려 주신다면 당장이라도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바로 내가 원하는 대답일세. 자,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참모는 탁자 위에 이미 펼쳐진 지도 한 장을 손으로 짚으며 다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여기가 적의 전초 기지가 들어서고 있는 서먼강 기슭과 주변 영토라네. 아마 기지가 세워지는 데로 아키아는 보병 군단을 재구성하여 다양한 통로로 진격을 명령할 걸세. 물론 우리 측 군단장들을 비롯한 병사들 역시 적들의 예상 통로 거점을 미리 확보하여 그들과 일전을 벌일 걸세.”

    참모는 말하다 말고 헤브론을 쳐다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헤브론 자네 임무는 수하들을 함께 그들의 전초 기지를 침입하여 교란 작전 수행을 해 주기를 바라네. 그래야만 아키아는 특수 검사부들을 마음대로 앞세워 진격 명령을 내리지 못할 걸세.”

    그러자 헤브론이 자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늘 해 오던 일인지라 문제없이 할 자신이 있습니다.”

    “너무 방심은 하지 말게나. 상대 참모는 그 유명한 아키아일세. 아마도 심중팔구는 우리들의 침투가 있을 것을 대비하고 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네와 수하들을 그리로 보내는 것은 카르세크 집정관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레온이 없기 때문이지. 그는 또 다른 원정군의 일개 병사로 강등되어 이곳으로부터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보고 받았지. 정말이지 그가 적 진영에 없는 것은 우리 측에게 매우 다행스런 일이지.”

    레온 얘기가 나오자 지금까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던 헤브른은 물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드조차 다소 긴장을 느끼는 듯 보였으니 그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번엔 참모가 아라퀘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기사단이 할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네.”

    “말씀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자네는 적의 수송 부대만을 전격적으로 차단시키기 바라네.”

    “수송 부대요?”

    “적의 보급 부대야말로 군단 병사들에게 끊임없이 원천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그들의 지원을 계속해서 막아 낸다면 제아무리 아키아라 할지라도 함부로 전략을 짤 수 없을 걸세. 더군다나 지원 군단장이 레온과 쌍벽을 이루었던 최강의 무인 테세우스라 하는데, 그자 역시 단연코 피해야 할 아주 무시무시한 실력자라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는 원로원 파로서 집정관 카르세크의 견제를 받음으로써 전장에 직접 뛰어들 수 없는 입장일 테고 그저 수하들로 하여금 지원 임무를 명령만 할 걸세. 그 점 또한 우리에게는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겠지.”

    그제까지 침묵을 지켰던 국왕 지드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카르세크가 레온이나 테세우스와 같은 엄청난 무인들을 놔두고 원정길에 올랐다는 자체가 납득하지 못할 일이구려. 그 둘이야말로 어느 나라이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들이 아니오.”

    “집정관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겠죠. 그들이 없을지라도 특수검사부들이 존재하니까 일단은 그들을 믿어 보자는 심산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그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최강의 검사들 아닙니까.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들보다 한발 앞서 이미 작전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에 지드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되물었다.

    “한발 앞서 작전을 시작하다니요?”

    “어쩌면 벌써 적의 특수 검사부들이 성내 잠입하여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임무 역시 암살과 교란 선동 등 여러 가지일 테니 머지않아 그 반응이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경비를 더욱 튼튼히 하시어 신경 쓰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자 아라퀘스가 외쳤다.

    “폐하의 안위라면 제가 책임지고 철통같이 지키겠습니다.”

    그러자 지드가 한마디 했다.

    “책임지기는 뭘 져! 너나 돌봐.”

    “저는 근위대장으로서…….”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방금 전 참모께서 근위대장이 아니라 기사단장으로서 네게 임무를 주었건만 대체 뭔 소리를 들은 거여!”

    “그렇다면 폐하 옆에 누가…….”

    “나 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내 몸은 내가 지킨다니까.”

    “아, 네.”

    하기야 피체 왕국에서 무인들 중에 최강을 뽑으라면 단연 국왕 폐하가 아니던가.

    아라퀘스는 그 자신이 근위대장 직을 겸하고는 있지만 생각해 보니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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