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50. 전략 대 전략 (51/81)
  • Chapter 50. 전략 대 전략

    팔라카스 제국의 10개 군단들 중에서도 최정예에 속하는 제1군단과 2군단은 집정관 카르세크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피체 왕국으로 통하는 유일한 평원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끼익.

    끼익―

    말 네 마리에 전사와 마부가 한 조가 되어 길을 나서고 있었다. 무려 이천여 대의 전차 부대가 한껏 위용을 자랑하며 초원을 가로질렀던 것이다.

    그 좌우로 1만 여의 철갑 기병 대원들이 호위를 하듯 따랐다.

    두두두

    그 뒤로 수많은 보병 군단들이 각자 중대별로 방패들을 앞세워 행진하는 모습은, 가히 대국의 위세를 만천하에 드러낼 정도로 대단하다 못해 장엄하게 보였다.

    둥! 둥! 둥! 둥!

    착! 착! 착! 착!

    북소리에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들려오는 군화 발소리는 마치 대지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카르세크 주위에는 이번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 할 총참모 레아무스를 비롯해 쟁쟁한 참모들이 보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들의 표정들이 불안해 보였다.

    특히 레아무스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들어갔던가?

    때마침 카르세크가 그에게 말문을 건네자 무척 놀라는 반응이었다.

    “이보시오, 참모.”

    “아…… 네!”

    “뭔가 이상하지 않소?”

    “이상하다니요?”

    “평원의 중간쯤 왔는데 아직 적들이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이외다.”

    이에 레아무스가 당혹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정찰대로부터 계속 보고를 받고 있는데 적의 주력 부대는 평원의 끝부분에서 진을 치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와 맞설 생각을 않고 그곳에 있는 것이오? 보고를 듣기로는 그들은 전차 부대와 기병대를 조직해서 전면전을 치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지 않았소.”

    “저기,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심이…….”

    “흐음,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

    레아무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 내심 무거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거…… 뭔가 불안한데.’

    그로부터 반나절 후,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으니 평원의 끝을 가로질러 왔건만 개미새끼 한 마리도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적의 모습은 일체 보이지 않았던가.

    정말이지 황당한 순간이었다.

    물론 레아무스를 비롯해 다른 참모들은 낯이 뜨거워 저마다 얼굴을 들지 못했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군.’

    그런 그들의 소심한 행동거지에 집정관 카르세크는 다소 허탈한 듯 몇 마디 내뱉었다.

    “참모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적의 동태 하나 예측을 못하고 여기까지 쓸데없이 전차 부대와 기병대를 출동시키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는구려!”

    레아무스가 풀죽은 모습으로 겨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제 불찰입니다.”

    “아마도 그대는 상대가 조그만 신생왕국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실수를 범한 것 같은데 말이외다.”

    “면목 없습니다.”

    “이게 지금 와서 면목 없다고 변병할 일이오!”

    “죄송합니다.”

    “상대를 무시해도 너무했지.”

    사실이 그랬다. 레아무스처럼 뛰어난 참모가 이런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무시가 큰 비중을 차지했음이 분명했다.

    설마하니 피체 왕국에서 일부러 전차 부대와 기병대를 조직하는 척 평원에 숙영을 하며 초반부터 철두철미하게 교란 작전을 실행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이에 다시 들려오는 집정관의 퉁명스런 음성.

    “여기서부터 평원이 끝나는 지점으로서 산악 지형이 시작되는데, 이미 저 많은 전차 부대와 기병대가 무용지물이 되었소! 자! 이제는 어떻게 할 거요?”

    “아뢰옵기 무척 송구스러우나 일단 모든 병력을 보병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생각합니다.”

    “전차 부대와 기병대는 본국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겠군?”

    “그렇습니다.”

    카르세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무슨 수모요? 아아, 말하기도 싫소. 당장 그리하시오!”

    “……알겠습니다.”

    레아무스는 참모 생활 수십 년 동안 지금처럼 난감할 때가 없었다.

    오십 줄에 접어든 그는 마치 신참 참모와도 같이 잔뜩 움츠린 자세로 명령을 하달키 위해 막사를 빠져 나갔다.

    ‘아이고,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같은 시각, 평원과 이어진 산 정상 위에는 지드와 참모 하키리우스가 저 아래 평원에 주둔한 팔라카스 제국의 주력 군단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에 시작입니다. 저들이 체제를 보병으로 전환할 시, 그러니까 전차 부대와 기병대원들이 썰물과도 같이 쑥 빠져나갈 때를 기다려 숲 지대에 숨겨 놓은 아군이 첫 기습 공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하카리스의 말에 지드가 다소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저들의 현재 주력 보병 병력의 숫자만 하더라도 우리 측보다 서너 배는 많지 않습니까. 섣불리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면 희생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크누스의 기병대원들이 그 임무를 수행할 테니까요. 비록 전차 부대는 저들의 이목을 끌려고 그저 겉치레로 만들어 놓고 폐기했지만 기병대는 진짜가 아닙니까. 물론 그들의 임무는 적의 본진 근처를 한바탕 휘젓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초반부터 저들에게 혼란을 주고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함이 그 첫 번째 목적입니다.”

    지드가 은근한 미소로 말했다.

    “좋은 방법이군요.”

    “손자병법 제일단계 계획(計劃)의 전조를 시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들이 보병체제로 완전한 탈바꿈을 하고 산악지형으로 들어선다면 그제야 본격적인 작전이 실행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때가 기대되는군요.”

    “다행이라면 저들은 아직 아키아란 인재를 등용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평원 교란 작전을 눈치 채지 못한 거로군요.”

    “사실 집정관 카르세크 옆에는 레아무스라는 참모가 있긴 합니다만 그자 역시 무시 못 할 인재이옵니다. 비록 첫 번째에는 방심을 한 탓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지만…… 그 다음부터는 제법 조심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잠시 후!

    와와― 와와!

    “빌어먹을, 적들의 기습 공격이다!”

    슥!

    삭!

    “아아악! 갑자기 기병대들이 나타나다니!”

    “악!”

    군영의 좌측과 우측이 숲속으로부터 나타난 기병대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고 일대 혼란으로 빠져 들어갔다.

    제국의 전차 부대와 기병대는 이미 귀환한 지 반나절이 넘었기에 다시 불러올 수도 없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아직 수만 명의 보병이 건재하고 있는 주력 군단이었다. 그렇기에 적의 기병대 기세가 제아무리 맹렬하다 할지라도 금세 방어진을 만들고 수습 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르세크가 이끄는 병력은 최정예 병사들로 구성된 제1군단과 2군단이 아니던가.

    착! 착! 착! 착!

    각 진영마다 두툼한 방패들이 쳐졌다.

    “궁수 준비!”

    착!

    “투창 준비!”

    착!

    발사!

    홱! 홱! 홱! 삭! 삭! 삭! 삭!

    하지만 놀랍게도 아크누스의 기병대는 저들이 방어진을 형성하고 맞대응을 하기도 전에 벌써 숲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을 향해 발사된 화살과 투창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날 밤 집정관의 작전 회의 막사에는 침울한 분위기 흐르고 있었다. 초반부터 철저히 농락당한 느낌이랄까. 카르세크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다소 불같은 성격이 그의 이성을 지배하는 것 같았으니.

    탁!

    오죽했으면 그가 주먹으로 탁자를 쳤겠는가.

    “대체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이오! 명색이 제국의 최정예 주력 군단이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이리 농락을 당하다니! 내 평생 이런 기분은 처음이란 말이오!”

    레아무스가 재빨리 말했다.

    “수일 내로 보병체제가 완전히 갖추어지면 선발 부대가 산악 지형으로 투입될 것입니다. 그때 오늘의 빛을 몇 배로 갚아 줄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고작해야 조그만 왕국 따위에게 휘둘리면 되겠소? 그냥 대군을 움직여 단번에 쓸어버립시다.”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

    수일이 지났다.

    산악 지형으로 통하는 입구는 고작해야 세 곳이었다.

    그런데 그조차도 비좁고 험하기 짝이 없었고, 제국의 군단은 마치 개미 행렬처럼 각각의 입구를 통해 일렬로 진입해야 했다.

    레아무스는 그런 진격이 다소 불안해 보였는지 제1 선발진에 직접 합류하여 그 자신이 앞장을 섰다.

    반나절 만에 근 5천여 보병들이 완전 무장을 한 채 안쪽으로 제법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정찰병에 의해서 어느 정도 파악된 지리에 선발진이 미리 가서 진을 친다면 후속 부대가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집정관 카르세크는 평원에서 나머지 군단병력과 함께 레아무스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막사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참모들에게 계속 물어보았다.

    “소식이 없나?”

    “아직 없습니다.”

    “대체 깜깜무소식이니, 이거 답답해서 원…….”

    바로 그때였다.

    한 장교가 헐레벌떡 이리로 뛰어 오더니만 큰소리로 외쳤다.

    “선발진 병사들이 후퇴하여 이리로 본진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뭐라!”

    순간 집정관의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후퇴라니!

    대체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산악으로 진입한 선발 부대가 공격을 받고 거의 전멸을 당한 것 같습니다.”

    “헉!”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가장 먼저 궁금해 한 것은 물론 총참모의 안위였다.

    “레아무스는! 레아무스는 어떻게 됐는가!”

    “저, 저기…….”

    “어서 말하지 못하겠는가!”

    보고 장교가 말문을 잇지 못하자 카르세크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다시 물었다.

    “어떻게 되었냐고 묻지 않는가!”

    “전사하셨습니다.”

    “…….”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팔라카스 제국의 총참모가 전투다운 전투를 해 보지도 못하고 선발진과 함께 전멸을 당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를 통틀어도 좀처럼 발생하기 힘든 사건 중에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것도 상대는 제국도 아닌, 그저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신생 왕국이 아니던가.

    카르세크는 뒤통수를 둔기로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아아…….”

    그때 장교가 그에게 다가와 부축하기에 이르렀다.

    “괜찮으십니까!”

    “나, 나 좀 막사 안에 침대로 옮겨 주게나.”

    “알겠습니다.”

    ***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카르세크는 침대에 누워 막사 천장을 올려다보며 연신 한숨만을 내쉬고 있었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전장 경험보다는 주로 본국의 정치판에서 뛰어난 술수를 보여 주었던 그가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갑갑할 따름이었다.

    오로지 레아무스만을 믿고 의지하며 주력군단을 움직였건만…… 그가 전사를 했다.

    더 이상 진군의 의미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참모들을 믿자니 그 역시 불안한 일이었니.

    “아. 이리도 인재가 없단 말인가. 대체 요즘 시대 참모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그 모양들이니…… 쯧!”

    그는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적들은 산악 지형에 미리 철저한 매복 준비를 하고 언제든 들어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유능한 참모라 할지라도 이 상황을 쉽게 해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탄성을 지르는 카르세크.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는 당장 소리쳐 근위장교를 불렀다.

    “당장 들어오게나.”

    냅다 뛰어 들어오는 장교.

    “부르셨습니까!”

    “당장 본국으로 가서 아키아를 이리로 데려오게나.”

    “아키아라면…….”

    “얼마 전에 망명한 전략가라고,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아…… 네. 그런데 그는 어디 있죠?”

    “아마도 그는 지원 군단장 테세우스 밑에 있을 걸세. 자! 시간이 없으니 당장 가서 그와 함께 오게나.”

    “알겠습니다.”

    그는 대답과 동시에 바람처럼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어 들려오는 카르세크의 다급한 외침.

    “무슨 일이 있어도 이틀 내로 데려오게나.”

    “…….”

    왔다 갔다 하는 데만 밤 꼬박 이틀거리랄까. 장교는 못들은 척 그냥 내뺐다.

    쨍!

    봄날에 아지랑이가 대지 위로 아른거렸다.

    제국의 군단 병사들은 최정예의 위상은커녕 조는 닭처럼 저마다 자신들의 숙영지 근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산악 지방을 눈앞에 두고 이곳 평원에서 진을 치고 있어야 했으니 조금씩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 사령관 막사에는 집정관 카르세크가 좀처럼 앉아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는 가금 막사 밖을 내다보며 다시 들어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으니 필시 누군가를 절실히 기다리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리 늦는 거지?”

    때마침 사령부 관내 막사 사이로 보이는 장교와 한 청년, 카르세크의 화색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집정관의 신분도 잊은 채 냅다 그쪽으로 뛰어가 그를 직접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게나.”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직은 소년 같은 아키아는 집정관의 그런 태도가 어색했는지 조금은 움찔하고 말았다.

    카르세크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는 지휘 막사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자네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네. 허허! 자, 당장 들어가서 애기 좀 나누세.”

    “아…… 네.”

    엉겁결에 급하게 막사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 아키아, 사실 그는 집정관이 자신을 왜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아는 듯 보였다.

    잠시 후 막사 안에는 카르세크와 아키아가 작전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한껏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평원에서 적들의 교란작전에 휘말린 일부터 레아무스의 전사까지의 일들을 대충 말해 주었다.

    아키아는 어느 정도 예상한 듯 덤덤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이보게! 나를 도와 줄 수 있겠는가?”

    “아…… 네. 제 최선이 다하는 데까지…….”

    “그 말 명심하겠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군.”

    아키아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잠시 후 말문을 열었다.

    “산악으로 들어서는 초입 구간이 총 세 군데밖에 없군요. 게다가 외길이 길게 이어진 협곡이라서 많은 병력이 한꺼번에 진격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요. 설령 병력이 투입될지라도…… 이래서야 기습 공격당하기 딱 알맞은 지형으로 보입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총참모가 전사한 뒤에 다른 참모들이 딱히 좋은 묘안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라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대체 이 난간을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자네라면 아마도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네.”

    하지만, 카르세크가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아키아의 얼굴도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글쎄요.”

    “왜 그런가?”

    “여기 지도와 여타 참조 정보들을 종합해 본 결과 이곳 참모진들이 묘안을 내놓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저로서도 눈앞에 보이는 산악을 뚫고 지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자네마저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명색이 천재 전략가라고 소문이 자자하지 않은가.”

    그 말에 아키아가 빙그레 웃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무튼 적들은 이미 산악 전체에 함정을 파놓고 매복과 기습 공격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애초 평원 교란 작전까지 시행할 정도라면 저들 역시 예사롭지 않은 전략가가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전략가라니! 고작 조그만 왕국에 지나지 않는 곳에 그런 인재가 있으려고…….”

    “저 역시 원래 보잘 것 없는 변방 왕국 출신입니다. 자고로 인재는 그 어느 곳에서 태어날 수 있는 법이지요. 어쨌든 주력군을 계속해서 산악 안의 지형으로 투입한다는 것은 저들에게 연전연승만 안겨 줄 뿐, 소용없는 일이라 봅니다.”

    이에 멀뚱히 아키아만 바라보던 카르세크가 답답한 듯 가슴을 쾅쾅 쳐 대며 말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겠는가.”

    아키아는 무슨 이유인지 눈빛을 드리우며 짧게 말했다.

    “어디까지 예감이지만 이 전쟁은 전략 대 전략 싸움일 것 같습니다.”

    “전략 대 전략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키아! 당장 말해 보게.”

    “평원에서 전면전을 펼치는 대신에 전혀 예측할 수없는 복잡하고 험한 지형에서의 크고 작은 국지전만으로 수도 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야 한다고 할까요? 적들은 그런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입니다. 하지만 우린 이제야 보병 체제로 전환한 마당이니……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낭패 당할 것이 뻔하죠.”

    그의 말에 카르세크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특히 제국이라는 거대한 군단 병력을 믿고 전략보다 위세로 대응했다가는 더더욱 패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부터라도 아주 신중히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자네를 부른 것이 아닌가.”

    그때 아키아가 다시 지도를 면밀히 살펴보며 뭔가를 연구하는 얼굴이었다.

    카르세크 역시 그의 그런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고 그저 좋은 묘안을 기대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아키아의 눈빛이 점점 빛나기 시작하더니만 갑자기 탄성을 지르는 것이 없다.

    “아!”

    카르세크는 혹시라도 그가 뭔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는지 다소 기대에 찬 음성으로 물었다.

    “뭔가?”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시간이야 걱정 말고! 자, 당장 자네 생각을 말해 보게나.”

    아키아는 탁자 전체를 덮고 있는 대형 지도를 직접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원 동쪽에 흐르는 강과 산악 지형 안쪽으로 흐르는 협곡의 강은 비록 수원(水原)이 다르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는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그 거리가 불과 걸어서 반나절이면 도착한다고 할까요? 이 두 강들만 잘 이용하면 아주 획기적인 전략이 짜여 질 겁니다.”

    강이라니? 카르세크는 갑작스런 강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데.”

    “적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 역시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밀고 나가야 하겠지요.”

    “그러니까 그 전략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나.”

    “여기 두 강들 사이에 최저 거리를 확보한 다음에 운하(運河)를 만드는 겁니다.”

    “운하라면 배들이 지날 수 있게끔 강 사이를 터놓는 작업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 맞습니다. 여기 평원을 관통해 흐르는 강은 제국의 수도 근처까지 이어져 있으니 선박들이 이 지점까지 오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다 운하를 만들어 놓는다면 강은 산악 지형 외곽으로 흐르는 협곡의 거대한 강줄기와 맞닿을 테니 선박들은 그리고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카르세크는 아키아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오호라! 그렇다면 병사들을 배에 가득 실고서 협곡 안쪽의 강으로 들어간다면 바로 이곳 피체 왕국의 동서쪽 강기슭에 도착할 수 있다는 예기로구먼.”

    “바로 그들의 옆구리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진격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 수 있다고나 할까요.”

    “정말 대단한 묘안이 아닐 수 없군. 하하!”“다만 운하를 트는 공사인지라 인력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흠이겠죠. 수송 선박도 구하기가 쉽지 않고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나. 내가 명색이 집정관이 아니던가. 어차피 요즘 며칠 동안 숙영지에서 놀고먹는 병사들로 하여금 당장 공사 일을 시킬 것이고 본국으로 전령을 보내어 강줄기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어부들이 소유한 선박들을 총동원이라도 할 것이네. 그렇게 해서라도 이곳으로 끌어들일 걸세.”

    “그렇게 해 주신다면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척 될 수 있겠군요. 그리고 한 가지 반드시 유념하셔야 할 것은 운하 공사 작업이 절대로 적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만일 그들이 눈치라도 챈다면 협곡 강 하류 쪽에 병력을 집결시켜 대응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부디…… 그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그 어느 때보다도 보안을 철저히 하여, 아주 은밀한 가운데 공사를 진행시키겠네.”

    “운하가 만들어지고 병력의 투입이 원활히 안쪽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이 전쟁은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래, 아키아! 과연 자네에 대한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군! 허허!”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사실 전투는 그 시점부터가 시작이니 아직 방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저는 아직 적 진영에 있는 전략가가 누군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니 말이죠.”

    “설마 자네 능력만 하겠는가.”

    “글쎄요. 지금까지 저들의 초반 전략을 대충 살펴보니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키아는 현재까지도 그랬지만, 결코 장난스럽지 않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긴 외람되지만, 피체 왕국이라는 곳은 지금까지 겪어 왔던 수많은 나라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입니다.”

    (하류검사 7권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