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3. 첫 번째 대결(6권) (44/81)
  • Chapter 43. 첫 번째 대결

    온통 기암괴석들로만 가득 찬 신비한 지형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드를 태운 마차와 기사단 그리고 병사들은 산을 깎아 만든 비좁은 비탈길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발밑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기에 조금만 눈을 돌려도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마차 안으로부터 헤라가 고개 쭉 내밀며 바깥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산악 지대 출신인 만큼 지금처럼 아슬아슬한 고지대로 올라감에 있어서 겁을 내기는커녕 즐기는 듯 보였다.

    “와우, 저기 산봉우리는 마치 날갯짓하는 새를 닮았네요?”

    그러자 지드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 안으로 들어와 앉아라.”

    “왜요?”

    “왜요라니! 또 말대답이냐?”

    “흥! 괜히 그러셔.”

    “너 때문에 마차가 기울어지면 어떡해!”

    지드는 마차가 비좁은 산악 길을 올라가면서 조금이라도 방향을 벗어나면 추락할 가능성에 은근히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제 몸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요. 바보같이!”

    “저 녀석 좀 보게나!”

    자신의 입을 막고 마는 헤라.

    “웁!”

    “후우, 대체 뭔 놈의 길이 이리도 험한지. 까딱 잘못했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군.”

    이때 대자객 신전의 밀사 노인이 은근한 미소로 지드에게 말을 건넸다.

    “허허, 의외로 겁이 많으시군요?”

    “뭐요!”

    “이제 저 능선만 넘으면 거의 다 온 것이나 다름없으니 조금만 참으시죠.”

    지드가 계속해서 삐딱한 반응을 보였다.

    “그 얘기는 몇 시간 전에도 했잖소!”

    “아? 제가 그리 말했나요. 허허,”

    지드는 다소 능글맞은 노인, 아니 은근슬쩍 깔보는 말투가 얄미워 보였다.

    “혹시 노환으로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거 아니오?”

    노인은 표정이 굳어지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지드는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산등성이 몇 개를 더 넘은들 또 딴 소리나 할 것 같은데.”

    노인이 다소 당혹스런 얼굴을 했다.

    “두 개만 넘으면 대자객 신전이 보일 겁니다.”

    “진짜요?”

    “진짜입니다.”

    “아무렴! 그러시겠지. 쳇!”

    “…….”

    한편 마차를 호위하는 아라퀘스는 역사 종족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부대장으로 새로이 임명된 키나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대장 아라퀘스와 함께 말을 타고 가는 여정이 무척 즐거운 듯 보였다. 키나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산악 지형이 험해 보이는군요.”

    “그래도 길은 잘 닦아 놓은 편이군.”

    “대체 대자객 신전은 뭐 하는 곳이기에 이런 오지에 있는 거죠?”

    “살수 단체니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은밀한 장소를 정했겠죠.”

    “사람들을 죽이는 그런 단체란 말이죠.”

    “돈 받고 대신 해결해 주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거긴 왜 가는 거죠?”

    “우리 아군 한 명이 잡혀 있거든요.”

    “아, 아군 한 명이요?”

    “이름이 아레스라고 하는데…… 국왕 폐하의 옛 수하들 중에 한 사람이고, 동시에 우리 왕국의 원정군입니다. 국왕께서는 보기보다 의리가 있으신 분으로서 이런 일들은 직접 해결하시는 편이죠.”

    키나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보기보다 의리가 있으시다는 뜻은?”

    “그, 그건 겉보기에는 조금 가벼워 보이실지라도…….”

    “제가 보기엔 국왕 폐하는 겉보기에도 매우 인자하기고 좋은 분 같은데요?”

    “…….”

    키나의 말에 아라퀘스는 그만 말문을 잇지 못했다. 지난 날 그 변덕스런 성격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어쨌든 키나가 그리 보았다니, 다행이었다.

    “물론 원래 좋은 분이십니다.”

    “아, 네.”

    키나와 그녀의 역사 종족 동료들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부랴부랴 기사단을 구성해서 왕국을 떠났기에 무슨 목적으로 어디로 가는지 지금에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기사단으로서 첫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니 만큼 저마다 긴장된 표정들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아라퀘스는 비교적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니 이들의 능력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원천기술의 놀라운 힘을 이어받은 존재들, 그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조만간 그 위상이 만천하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키나가 다시 물었다.

    “아라퀘스 님은 어떻게 이곳까지 오시게 되었어요?”

    “그냥…… 뭐, 떠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날 여기 와 있더군요.”

    “가족들이 걱정하겠네요.”

    “아뇨. 뭐, 솔직히 제가 세상에 나온 이유가 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아마도 부모님은 제가 이렇게 할 거라고 미리 예측하셨을지도 모르지요. 아예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그때 키나가 다소 눈망울을 크게 굴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저기 나중에라도 혹시 이리스 님과 헤르시안 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예……? 제 부모님요?”

    “저뿐만 아니라 제 동료들의 소원이 위대한 영웅 분들을 만나 뵙는 것이거든요. 평생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아라퀘스는 그만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분들을 벗어나기 위해 대륙 끝까지 도망쳐도 소용없는 일이던가.

    ‘후.’

    한편 에르가니아와 카르발디는 500여 명의 정예 기마 병사들을 이끌며 뒤를 따르고 있었다. 카르발디는 왕국을 떠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국왕께서는 대체 왜 적진에 뛰어들면서까지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는지…… 어휴.”

    에르가니아가 가벼운 한숨을 쉬며 응수했다.

    “당최 그 입은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군요.”

    “무슨 소리요?”

    “왕국을 떠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계속해서 불평만 늘어놓으니 말예요.”

    “지금까지 한 말들이 불평으로 들렸다면 유감이오.”

    “유감이라도 할 수 없어요. 어떻게 남자가 하루 종일 쫑알거릴 수 있는 거죠? 여자라고 해도 그렇게 쉬지 않고 떠들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나 참! 이젠 비교할 게 없어서 수다나 떠는 여자를 갖다 대다니 정말 슬프오.”

    “몇 날 며칠 꾹 참다가 겨우 말한 거예요.”

    “난 국왕의 이번 일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 그러오. 대자객 신전이라면 남부 대륙 최대 살수 집단인데 만일 그들이 딴 생각이라도 품으면 우린 모두 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 거요.”

    에르가니아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대는 흑검사라면서 겁부터 집어먹는 건가요?”

    “뭐, 나는 사람도 아니랍디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카르발디가 묘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 장담하오?”

    “장담해요.”

    “왜 그리 자신만만한 거요.”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국왕 폐하께서 아라퀘스와 역사 종족의 기사단과 그리고 우리를 비롯해 정예 병력 오백여 명을 대동하고 그곳을 찾아가는 이유를 말입니다. 그저 단순히 행차를 위한 준비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뭐요?”

    “그대가 직접 추측해 보시죠?”

    “혹시라도 여차하면 그곳을 쓸어버리기라도 한단 말이오.”

    에르가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배재하진 못하겠죠.”

    하지만 카르발디는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누군데 순순히 당한답디까? 쳇, 거기가 어딘데.”

    “미안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거든요!”

    “어련하시려고.”

    에르가니아가 불끈했다.

    “제게 비아냥거리는 말투, 사절이랬지요!”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뿐이오.”

    “우리 전투력은 생각 외로 강할 수가 있어요.”

    “그거야 가재는 게 편이라고 뭐 나도 인정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확신하는 것은 금물이라 보오. 거긴 어마어마한 집단이거든요. 자객들의 출중한 전투 실력에 우리 역시 정면으로 맞불을 놓으면 그런대로 백중세를 유지한다 쳐도 그들이 수많은 병력으로 밀어붙인다면 숫자적으로 한참 열세인 우리가 패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 아니오.”

    “길고 짧은 건 대봐야죠.”

    “겉보기에 너무도 차이나면 대볼 것도 없잖소.”

    에르가니아가 은근한 미소로 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게 다 방안이 있으니까요.”

    카르발디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방안이라는 것이, 설마 그대 혼자서 수백 수천 명을 상대한다는 것은 아니겠죠?”

    “왜 아니겠어요.”

    “뭐…… 요?”

    “전 그럴 생각인데요.”

    “지금 날 놀리는 거요?”

    “진심으로 말하는 겁니다.”

    “…….”

    놀리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원래 에르가니아는 허튼소리나 실없는 얘기를 하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저렇듯 자신만만해 보이니 카르발디로서는 머리만 아파 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먼 여정으로 인한 피곤이 쌓여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대자객 신전이라는 무시무시한 소굴이 가까워지자 잠시 정신이 어떻게 된 건지.

    그로서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실제로 확실히 믿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에르가니아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소환호각(召喚互角).

    검술왕이셨던 시조 무치께서 유일하게 남겨 주신 유품. 세상에 그 누구도 이토록 작고 예쁜 목걸이가 천지를 진동시킬 희대의 병기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카르발디가 물었다.

    “그건 뭐요?”

    “목걸이예요.”

    “여정 내내 만지작거렸던 것으로 보아서는 귀중한 거 같은데……?”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품이에요. 아마 이 목걸이가 행운을 불러다 줄 겁니다.”

    카르발디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기야, 죽기 전에 목걸이에게 기도하는 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겠지.”

    “그럼요. 혹시라도 신께서 제 기도를 들어 줄지도 모르니까요.”

    어이없어 하던 카르발디가 끝내 ‘쳇!’ 하고 혀를 차고 말았다.

    그 뒤로 에르가니아의 웃음소리가 작게 퍼졌다.

    ***

    쨍!

    참으로 화창한 날씨였다.

    대자객 신전 내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 봉우리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구조물이 마치 세상의 주인인 양 드넓은 펼쳐진 산맥 지대 전체를 굽어보는 듯했다.

    대체 누가 저토록 경이로운 건물을 지었는지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수십 개의 테라스들 중 중간에 위치한 곳에 두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지난번 아레스를 강제로 납치했던 독특한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마차 행렬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으로부터 화산 보물을 찾으러 온 두 남녀, 측유와 옥린이었다.

    측유는 다소 의외의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뭐야! 안 올 줄 알았는데 진짜 오잖아?”

    옥린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뭐랬어? 분명 온다고 그랬잖아.”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명색이 국왕이라는 자가 부하하나 잡혀 있다고 이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오다니…….”

    “목유성이 키운 제자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겠지. 화산파는 정도를 지키기로 유명하잖아.”

    측유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놈의 얼어 죽을 정도는! 제길, 그런 게 밥 먹여 주냐!”

    “어쩌면 마교에도 그런 것이 필요할지 몰라. 요즘 들어 상하관계가 개판이잖아? 서열 문제부터 들추어 보자면 아랫것들까지도 조금만 힘을 얻으면 당장 치고 올라오니 말이야.”

    “그거야 마교 습성이 철저히 힘의 논리로 지배되기 때문이 아니냐. 솔직히 아무리 교주의 자식들이라지만 우리도 실력이 없었다면 벌써 밀려나 어디선가 자객들의 칼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심장을 조이며 살고 있었을 거다.”

    “말 한번 잘했네! 지금 오빠가 오히려 남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줄 만큼 강대해진 건 다 아버지 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고.”

    측유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웃기는 소리! 그자가 아니었으면 난 무림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을 거고 이런 엿 같은 세상에 오지도 않았을 거다!”

    옥린은 오빠의 광기가 살아날까 봐 재빨리 환한 미소로 그를 안정시켰다.

    “알았으니까 진정해. 그냥 해 본 소리 가지고 흥분하기는 정말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다.”

    측유 역시 스스로 애써 진정하려고 했다.

    마성에 물들여진 그의 인성은 광기 그 자체였지만 이 세상에서 이복 여동생 옥린에게만은 얌전해지는 편이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테라스 너머로 눈길을 돌리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여하튼 잘됐군. 이 기회에 저 국왕 놈을 잡아 족쳐 화산 보물을 찾아내기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옥린이 다소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빠.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마.”

    “뭔 소리냐?”

    “아무래도 국왕이라는 자 말이야, 보통 내기가 아닌 거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런 적진에 뛰어든다는 것은 바보가 아니면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믿거나 둘 중 하나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바보라기보단 후자 같아 보여.”

    순간 측유가 코웃음을 쳤다.

    “하하하. 이런 황당한 세상에 한 일 년쯤 살았더니 머리가 이상하게 된 거 아니냐? 나와 네 무공 능력만으로도 웬만한 방파 두어 개 정도는 박살 낼 수 있는데 그까짓 화산파 장문인 제자 놈에 신경을 쓰다니. 쯧!”

    “아무튼 신중하게 행동해. 괜히 멋모르고 나섰다가 산통 다 깨지 말고.”

    “하여간 너란 녀석은 쓸데없는 일에도 괜한 신경 쓰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 내가 다 머리가 지근거리려고 한다.”

    “돌다리로 두드리고 건너자는 말이야.”

    “알았다. 그만 하자. 어차피 쉽게 일을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무료하던 참에 굴러온 재밋거리인데, 쉽게 보낼 것 같아? 실컷 놀다가 서서히 피를 말리든지 웬만하면 오래 가지고 놀려고 그런다.”

    측유는 말이 끝나자마자 테라스를 실내로 들어갔다. 그러자 옥린이 큰소리로 말했다.

    “오빠, 어디 가! 저들을 맞이해야지.”

    “총관 늙은이와 네 녀석이 알아서 해라. 나중에 천천히 볼 테니까.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는군.”

    “아, 진짜! 어제 또 술 먹은 거지!”

    “또, 또 그놈의 잔소리! 그만! 대체 네가 내 마누라냐!”

    ***

    잠시 후.

    끼이익― 끼이익―

    신전의 거대한 아치형의 철문을 통해 들어오는 피체 왕국의 일행들, 국왕이 탄 마차부터 그 위용을 드러내더니 범상치 않아 보이는 기사단과 정예 병사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들을 맞이한 자들은 신전 자객들로서 저마다 가지각색의 병기를 착용한 채 좌우로 쭉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비쩍 마른 몰골에 독사와도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 과연 살수집단 소속 검사들다운 살벌한 포스가 풀풀 느껴지는 존재들이었다.

    문 안쪽으로 들어서면 제법 넓은 훈련장이 보였는데 왕국으로부터 온 행렬은 서서히 그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었다.

    휘이잉―

    펄럭펄럭.

    제법 높은 고지대인지라 사방 트여진 공간으로부터 강풍이 불어 왔고 마차 지붕 끝에 달려 있는 왕국의 상징 깃발이 부러질 듯 마구 휘날리고 있었다.

    한편 관람석 중앙 상석에는 총관과 여타 고위 관계자들이 저마다 의자에 착석한 채 손님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옥린 역시 총관의 옆에서 훈련장에 도착한 마차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과연 국왕이란 자가 어떤 인물인지 호기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헌데 그들은 손님이 훈련장 아래 코앞까지 당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어날 기색 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결국 총관이 다소 걱정스러운 듯 옥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니까 이대로 지켜만 보라는 거냐.”

    옥린이 묘한 미소로 답했다.

    “네.”

    “저들은 손님인데…… 어쩐지 옹졸한 행동 같아 보이는 군.”

    “그래 봐야 보잘 것 없는 신생 왕국 출신에 지나지 않는 자들입니다.”

    “적어도 국왕은 직접 가서 맞아 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맞아 주시고 계시잖아요?”

    “……이렇게 앉아서 말이지. 나 원 참.”

    “그게 어때서요. 총관님의 위치는 웬만한 왕국의 국왕보다 그 위상이 높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총관은 애써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

    “흠. 그거야 그렇지만.”

    옥린이 씩 웃으며 말했다.

    “호호, 초반부터 저들의 기를 눌러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왕이란 자가 어떤 인물인지 이 기회에 살펴볼 필요도 있고요.”

    “우리 행동을 보고 꽤 당황해 하겠군. 아니 기분이 썩 나쁠 수도…….”

    대자객 신전 총관치고는 의외로 심성이 그리 악해 보이지는 않았던가.

    총관은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과연 마차 안으로부터 국왕이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에 반해 옥린은 마치 사악한 요부와도 같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는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는데? 후후!’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훈련장은 예상외로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머나먼 곳에서 온 피체 왕국의 일행들과 그들을 영접하기 위해 나온 총관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흐르는 정적이었다.

    참으로 웃지 못 할 상황이었다.

    이유인즉 벌써 모습을 드러내어야 했을 국왕이 아직 마차에서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한 사람은 총관이었다. 결국 그가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고얀지고! 대체 언제 모습을 나타낸단 말이냐!”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마차 문이 열리더니만 밀사로 파견했던 노인이 당혹스런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냅다 총관이 있는 상석으로 다가왔다.

    타다닥.

    그는 재빨리 엎드리더니만 예의를 갖추었다.

    “총관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총관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안녕이고 뭐고 간에 국왕이란 자는 어째 마차가 도착 했는데도 내리지 않는 것인가!”

    이에 노인이 사색이 되어 쩔쩔매기 시작했다.

    “저, 저기…… 그게 말이죠.”

    총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냉큼 말해 보시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국왕이 잠이 드는 바람에…… 요.”

    총관이 잠시나마 멍한 반응을 보였다.

    “……잠이라고……?”

    “네, 그게 말씀입니다. 워낙 잠이 깊게 들었는지라.”

    “그렇다면 당장 깨우지 않고 뭐 했느냐!”

    “저, 그게, 깨우면 뭔 일이 날 것 같아서요.”

    “뭔 일이라니!”

    “워낙 성격이 괴팍한 왕이라서 도착지에 도착해도 건들지 말라 했습니다.”

    순간 총관이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 작자가 그런 말을 내뱉는단 말인가!”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분 같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옥린 역시 처음의 여유로운 눈빛과는 달리 의외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 역시 예상치 못한 인물에 대해 점차적으로 호기심의 눈길이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때 노인이 총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이어 갔다.

    “성질이 워낙 꼬장꼬장한 자이니 그냥 깰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순간 총관이 노골적으로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으니, 손으로 오른쪽 돌 손잡이를 내리치고 말았다.

    쾅!

    우지직!

    그의 완력이 어찌나 셌던지 두툼한 대리석이 산산조각 나며 상석 바닥에 흐트러졌다.

    “성질이고 나발이고 남의 영역에 손님으로 왔으면 예의를 차려야지! 이런 괘씸한 자 같으니라고!”

    그러자 이번엔 옥인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노여움을 푸세요. 총관님께서도 이대로 계속 앉아 계시어 영접하는 척하면 조금 더 지켜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다소 성격 급한 총관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내 당장 가서 마차 문을 열고 그자를 깨우고 끄집어 낼 테다!”

    총관이 토가 자락을 풀풀 날리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옥린을 비롯한 호위대들이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

    곧이어 그가 훈련장 한가운데 서 있는 마차로 다가가서 문을 냅다 열었다.

    “이런 괘씸한!”

    덜컹!

    바로 순간이었다.

    홱!

    “헉!”

    빤빤하게 생긴 사내가 대가리부터 내밀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총관은 깜짝 놀라서는 다리가 엉켰는지 가벼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풀썩!

    “어이쿠!”

    지드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총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상공을 쳐다보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와우! 날씨 한번 기가 막히는군.”

    그리고는 그제야 총관을 의식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시오?”

    누군가가 격앙된 음성으로 외쳤다.

    “그분은 총관이시니 당장 예의를 갖추시오.”

    그는 깜짝 놀랐다는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고! 이게 웬일이래요? 그러고 보니 총관께서 직접 마차 문까지 열어 주어 영접까지 해 주신 겁니까? 난 그것도 모르고…….”

    스윽

    젊은 왕은 재빨리 총관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이런 실례를 하다니! 그나저나 총관께서는 마차 문 따위 여는 것은 수하들을 시킬 일이지 어찌 그런 행동을 하십니까? 아무리 국왕을 영접한다고 신경을 쓰신 것 같지만 솔직히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

    총관은 뒤통수를 맞은 듯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마치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랄까?

    옥린 역시 국왕이란 자의 면면을 살펴보더니만 의미심장한 눈빛을 드러냈다.

    ‘파악이 쉽지 않은 인물 같은데…….’

    그날 저녁 만찬회 석상은 모처럼만에 그 넓은 홀이 외부에서 온 손님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피체 왕국의 국왕 지드와 개인 비서 헤라, 그리고 기사단장 아라퀘스와 단원들만이 내실 안쪽으로의 출입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에르가니아와 카르발디를 비롯한 정예 병사 500명은 훈련장에서 숙영을 하며 늘 하던 대로 야외 식사를 하게 되었다.

    비록 이들에게 술과 고기가 하달이 되었지만 저 위쪽의 건물 안, 따뜻한 만찬 석상의 분위기와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카르발디는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다가 못내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이거 진짜 찬밥 신세잖아.”

    옆에 있던 에르가니아가 그를 달랬다.

    “그만 좀 하시죠? 주위 병사들이 듣겠어요.”

    “너무해서 그러오! 우리 역시 장교인데 왜 저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요?”

    “우린 여기 병사들을 이끄는 지휘관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아라퀘스 그 녀석과 기사단 역시 우리와 여기 숙영지에서 함께 있어야 할 거 아니오.”

    에르가니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 생각이 짧은 거예요, 아니면 원래 불평하는 것이 습관이 돼서 그런 거예요?”

    “뭐, 뭐요? 내 말이 틀렸소!”

    “일단 여기가 적진이라는 사실부터 다시 상기하시죠? 그리고 저들이 국왕 폐하를 만찬회장으로 초대했을 때 호위 임무를 맡은 기사단과 함께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거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과연 기사단이 국왕 폐하를 지켜드릴 만큼의 전투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말이오. 기사단원들 모두가 아라퀘스의 혈족들인 역사 종족 출신이라 하지만 그들에 대해 검증 절차가 시행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소?”

    카르발디의 질문에 에르가니아가 조금은 당황스러워 했다.

    “그, 그건 아직…….”

    “그것 보시오. 검증도 안 된 자들 오십일 명이 과연 여기 밖에 있는 정예 병사 오백 명보다 나을지는 솔직히 의구심이 드오.”

    “국왕 폐하와 참모 하키리우스 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니 그런 얘기할 필요 없잖아요. 우린 우리 임무만 충실하면 되는 거죠.”

    그때 카르발디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흐!”

    그녀는 이번에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 기분 나쁜 미소는 또 뭐죠.”

    “지금쯤 국왕 폐하께서 꽤 마음이 아프겠소??”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당신을 이렇게 추운 훈련장 밖에서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했으니 말이오. 정말이지 납득이 안 가는군. 국왕께서 그대에게 각별한 정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고작 이런 대우나 받다니, 쯧쯧!”

    카르발디는 일부러 얄밉게 말함으로써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가는 것 같았다.

    오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안쓰러운 얼굴을 하니 말이다.

    “그런 얘길 할 줄 알았어요. 왜 안 나오나 싶었더니만, 후우…….”

    그는 지지 않고 한 번 더 떠보기로 했다.

    “괜히 안 그런 척 연기할 필요 없소. 솔직히 속은 쓰리지 않소?”

    “이런 말씀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나오니 말해야겠어요.”

    그녀의 예상외로 의기양양한 말에 카르발디의 기색에 변화가 생겼다.

    “뭘 말이오.”

    “사실 국왕 폐하께선 저희 둘도 만찬 석상에 들어오라 하셨거든요.”

    깜작 놀란 반응을 보이는 카르발디.

    “정말이오? 그,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요?”

    “제가 그냥 여기 있겠다고 했어요.”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 거요!”

    “알다시피 우리는 정예 병력을 이끌 책임이 있는 지휘관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야 한단 말이 예요.”

    카르발디가 손으로 가슴을 쳤다.

    탁! 탁!

    “정말 답답하군요. 잠깐 만찬만 즐기고 나오는 건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잖소!”

    그러자 그녀가 손을 들어 주변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의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그들 역시 따뜻한 건물 안에서 좋은 음식과 안락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대장과 부대장이라는 자들이 부하들을 남겨 두고 저곳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훨씬 마음도 편하고 좋아요.”

    카르발디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주 훌륭한 대장 나셨소이다.”

    “비아냥거림은 언제든지 거절이에요.”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했고 식판을 가져다가 다시 무릎에 올려났다.

    “에라! 밥이나 먹자! 속이 꽉 막힌 대장하고 얘기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후루룩―

    “아, 빌어먹을! 차가워! 수프가 다 식었잖아? 젠장!”

    카르발디는 먹다 말고 식판을 옆에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에르가니아 역시 식판을 옆에다 두고 일어났다.

    “혹시 만찬 석상에 들어가지 못해서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은 거예요?”

    “…….”

    카르발디는 마치 삐친 계집아이처럼 등을 돌리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에 에르가니아가 다소 걱정스러운 듯 다시 물었다.

    “남자가 그런 거 가지고 토라지면 어떡해요, 정말?”

    그 순간 홱 돌아서는 카르발디, 그녀의 예상과는 반대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고 있는 것이었다.

    “뭐, 뭐예요!”

    “하하. 난 오히려 그대의 결정에 감복했소이다.”

    에르가니아는 마치 실성한 사람 대하는 것처럼 여전히 불안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소. 솔직히 당신의 그런 천사 같은 마음 때문에 내가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푹 빠진 거 아니오?”

    “갑자기 무슨 말 하는 거예요.”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이오.”

    “…….”

    그녀가 얼굴을 붉히자 카르발디는 저만치 숙영 막사로 가면서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가 괜한 얘기를 한 것 같소. 하기야 이미 국왕께서 점찍은 그대인데 내가 이런 생각을 지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가 사라진 후에도 에르가니아는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

    ***

    대자객 신전 총관 바쿠어스는 올해 나이 정확히 60세로서 황혼의 길로 접어든 노인이었다.

    약관 20세에 신전의 자객으로 들어와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30대에 이르러 제법 막중한 임무들을 성공하면서 점차적으로 위상을 높여 갔다.

    그가 오늘날 총관으로서 대자객 신전에서 절대적인 권력 행사를 할 수 있게끔 해 준 것은 오래 전 제국들 간, 전쟁 당시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자객 신전은 알카스 평원을 놓고 격돌한 팔라카스 제국과 피사로 제국 간에 어느 쪽을 선택할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당시 부총관이었던 바쿠어스의 정보 분석을 수차례 검증 한 뒤에 드디어 승산이 높은 팔라카스 제국을 지원토록 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자객의 주요 임무라 할 수 있는 암살이었는데 당시 활약은 남부 대륙 전역에 소문이 쫙 퍼질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적진의 군단장을 비롯해 주요 지휘관들 수십여 명이 철통같은 경비에도 불구하고 암살을 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결국 팔라카스 제국은 대승을 거두었고 서쪽 영토의 패권을 거머쥐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대자객 신전 역시 남부 대륙의 살수 집단으로 그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이 그 이후부터라 볼 수 있었다.

    부총관 바쿠어스는 그의 나이 40세에 이르러 신전 지휘관들의 지지를 받으며 드디어 총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총관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었다.

    대자객 신전은 말 그대로 최고의 살수들을 길러내어 임무를 완수토록 하는 곳으로서 1급 계열의 상당한 고수들이 절실한 상태였다.

    마침 제국을 도와서 챙긴 막대한 수익이 있었음으로 총관은 모든 자금을 풀어서 전국 각지로부터 검사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을까?

    총관의 노력이 통했는지 신전은 예전과는 달리 일급계열에만 수십여 명의 뛰어난 전투 실력자들로 가득 채워졌고 2급 계열 소속 자객들 역시 웬만한 제국의 특수검사부와 비견될 만큼 상당했다.

    총관의 욕심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으니 그의 바람은 진정한 강자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자신의 딸까지 내주어 사위로 삼아 훗날 대자객 신전의 차세대 총관 내정의 계획을 이미 다 세워 놓고 그저 기대에 충족할 만한 인물을 기다리는 것이 어느새 하루 일과가 되어 버렸다.

    그런 그의 바람이 하늘에 통했던가.

    나이 오십에 이르러 갑자기 나타난 청년이 있었으니 처음 볼 때부터 결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테세우스라 소개했다, 그리고 자객에 뜻이 있어 여기까지 찾아 왔노라 당당하게 말했고 곧바로 검증 과정에 임했다. 그의 실력을 지켜본 총관과 지휘관들은 저마다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다크퍼스 소환 능력자로서 기존의 검사들과는 아예 그 맥을 달리하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인물이었던 것이다.

    총관은 잠시 흥분을 누르고는 그 자리에서 테세우스를 받아들였다.

    ***

    테세우스가 대자객 신전의 1급 계열보다도 한 등급 위인 특급 계열에 오르기까지는 불과 두 달여도 걸리지 않았다.

    당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들을 그가 모두 완수 했기에 총관은 더 이상 미루어 두고 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총관은 애지중지해하는 외동딸 네온을 의도적으로 테세우스와 동행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연인 관계로 유도했고 훗날 총관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점차 그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테세우스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고 대자객 신전은 남부 대륙 최대 살수 집단으로서 명실상부한 확고한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테세우스와 딸 네온 역시 연인 관계로 넘어서 드디어 약혼 직전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총관으로서는 더 이상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후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왔었으니, 서쪽 산악 지방 어느 곳에 네온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어 있었고 테세우스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는 보고였다.

    총관은 그런 사실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처럼 철석같이 믿었던 그가 딸을 살해하고 도망쳐야만 했던 것일까. 총관은 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지만 테세우스의 그런 행동에는 도무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었다.

    그 이후로 팔라카스 제국에서 테세우스가 일을 하고 있단 소리를 들었을 때는…….

    총관은 테세우스뿐만 아니라 그를 받아들인 팔라카스 제국에 대해서 꿇어 오르는 분노를 여전히 삭일 수가 없었다.

    아들처럼 대해 주었던 테세우스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말이다. 마침 팔라카스 제국에 대항을 하기 위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왕국 소식을 접하고 나서 그들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당장 마음 같아서는 그들을 도와 제국과 전쟁을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총관이 자신의 수하를 데리고 직접 피체 왕국을 찾아가서 그곳 국왕과 대면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를 극구 말리는 자가 있었으니 최근 수양딸로 받아들인 옥린이었다.

    그녀는 대자객 신전의 위상이 그런 작은 규모의 신생왕국보다 훨씬 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로 하여금 이곳을 찾아오게 만들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니, 결국 총관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던 것이다.

    만찬 석상의 분위기는 양측의 처음 어색한 대면과는 달리 제법 분위기가 풀리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석상 중앙 연단 위에는 총관 바쿠어스와 그 옆에 옥린 , 고위 지휘관들이 배석해 있었고, 맞은편에는 지드와 비서 헤라 그리고 기사단장 아라퀘스와 부단장 키나가 착석해 있었다.

    총관이 지드에게 다시 건배를 제창했다.

    “자! 한번 더 들이킵시다! 하하.”

    그러니, 지드 역시 술을 먹는 데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좋습니다. 대신에 원 샷입니다.”

    “좋소이다, 그럼!”

    챙!

    꿀꺽 꿀꺽.

    “캬!”

    “좋다.”

    총관과 지드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양측의 참석자들은 각자 자신들의 주군이 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할까 걱정하는 표정들이었다.

    결국 헤라가 옆자리의 아라퀘스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벌써 일곱 번째 잔이에요. 저러시다가 몸도 가누지 못하면 어쩌지요?”

    아라퀘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대는 아직도 국왕 폐하의 주량을 모르시오? 후후!”

    “알긴 알지만…… 그래도, 지금은 공식 석상에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 괜찮은 것 같은데.”

    “하키리우스 님이 국왕 페하께서 실수하지 않으시도록 반드시 각별한 신경을 쓰라고 제게 당부하셨거든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치!”

    순간 헤라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사실 그녀는 아라퀘스가 그의 왼편에 앉아 있는 부기사단장 키나와 속닥이며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이 다소 못마땅해 보였기에 일부러 말을 건네어 분위기를 깼던 것이다.

    역사 종족 출신이라는 그녀는 괴력의 소유자라는 소문과는 달리 너무도 예쁜 얼굴과 미끈한 몸매가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자신의 용모에 자신만만해 하던 헤라는 은근히 그녀에 대한 경쟁심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아라퀘스가 그녀와 친하게 얘기한들 사실 그다지 서운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일찍이 찍어 둔 다른 남자가 있었기에 말이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운명적이랄까. 나이 차이는 무척 많이 나지만, 그래도 그가 세상에서 가장 친근하고 인간적인데다가 그냥 이유 없이 좋았다.

    헤라가 갑자기 지드의 팔을 붙잡더니만 뭐라 말했다.

    “그만 좀 드시라니까요? 정말!”

    지드가 경기를 일으키듯 깜짝 놀랐다.

    “에고! 또 너냐.”

    “저밖에 더 있겠어요?”

    “웬일로 조용하다 싶었더만…….”

    “안주는 일체 건드리지도 않고 그렇게 술만 마시면 어떡해요?”

    “제발 상관 좀 마라. 지금 분위기 좋은데 말이야.”

    헤라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바로 앞 접시에 손을 내밀어 안주를 집더니만 조심스럽게 그의 입에다 대었다.

    “일단 이것 좀 드세요.”

    “뭐야!”

    “뭐긴 뭐예요? 안주죠!”

    “아, 안 먹는다니까 그러네.”

    “드시라니까요. 정말?”

    “네가 내 마누라라도 된단 말이냐. 그만 좀 해라.”

    헤라가 진지한 말투로 바꾸어 말했다.

    “이게 다 국왕 폐하를 위한 충정심이란 것을 알기나 하시는지 모르겠네, 정말.”

    “충정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으니까 제발 좀 놔둬라!”

    한편 맞은편 총관 옆에서 다소곳이 조용히 앉아 있는 옥린은 국왕과 비서로 보이는 여인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세밀히 살펴보는 듯했다.

    물론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지드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총관을 꼬드겨 그를 이곳까지 오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녀가 아니던가.

    지난번 오빠 측유와 함께 생포했던 아레스로부터 그에 관한 웬만한 얘기는 다 들은지라 분명 그가 화산 장문인의 제자로서 모든 보물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터였다. 옥린은 불같은 성격의 오빠와는 달리 매우 신중한 인물이었다.

    상대방의 실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모험을 걸지 않는 철두철미한 성격이랄까.

    무림에서도 전설로 내려오는 수라혈마(修羅血魔)의 모든 진인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치고는 지나치게 신중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일에 있어서 실수가 없기로 유명한 마두(魔頭)이기도 했다.

    잠시 후 옥린이 직접 술잔을 들어 올리더니 맞은 편 지드에게 말문을 건넸다.

    “제가 한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순간 지드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보였다. 사실 그 역시 만찬 석상에 들어오면서부터 내심 그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외모부터가 이국적으로 생겼는데, 스승님과 같은 인종이 분명해 보였다. 더군다나 이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기운이랄까? 얼핏 본다면 무공 계열에 가까웠지만 워낙 사악한 에너지가 감지되기에 지드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지드가 환한 미소로 기꺼이 잔을 들어 올렸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요. 마침 술 따라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요.”

    “그러셨어요? 호호!”

    콸콸―

    술을 받은 지드가 입으로 단숨에 들이켰다.

    그 역시 잔을 그녀에게 주어 이번엔 자신이 술통을 들어 권유했다.

    “그렇다면 제 잔 받으시죠?”

    그러자 옥린이 단번에 거절했다.

    “저는 술을 못합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에이, 제가 한잔 더 따라 올릴 테니 더 드세요.”

    옥린은 지드로부터 술을 건네받는 척하며 일부러 잔을 떨어트렸다.

    툭!

    지드가 재빨리 술잔을 집으려는 순간 옥린 역시 집는 척하며 그의 손목을 스치는 듯 슬쩍 만져 보았다.

    상대방의 내공 수위를 가늠해 보기 위한 계획적 행동이랄까.

    스윽―

    지드는 짐짓 놀란 표정을 했다.

    ‘뭐지?’

    당황하는 척하는 옥린.

    “미안해요. 제가 그만 실수를…….”

    지드는 방금 전 그녀의 손길로부터 묘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잠시 멈칫거렸지만 곧바로 그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자연스레 실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소이다.”

    “자! 그렇다면 다시 잔을 꽉꽉 채워 주시오.”

    “그럼.”

    지드가 다시 술잔을 받고 입으로 넘겼다.

    꿀꺽.

    옥린은 방금 전의 밝은 표정과는 달리 다소 경직된 모습이었다.

    지드의 내공을 살펴보려 했건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 되었던가.

    ‘분명 무공이 느껴지는 것은 확실한데, 더 큰 기운이 감싸고 있다니…… 대체 그게 뭐지.’

    무림에서도 엄청난 고수로 자부하는 그녀 자신이 그 수위를 가늠 못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지드 역시 내심 어리둥절한 마음이었으니 그녀가 손끝을 스쳐 지나갈 때 분명 뭔가를 느꼈는데 그것이 아주 묘하다 못해 다소 기분 나쁜 느낌이랄까.

    그녀가 필시 무림으로부터 온 존재임을 직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의 성질이 스승님의 기류와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마치 이 세계의 흑사술과 일맥상통하는 그런 악한 기운이 풀풀 느껴졌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욱 사악하고 거친 힘이었다.

    심지어 전율이 솟구칠 정도로 머리마저 쭈뼛 서는 것 같았으니 마치 폭렬하는 거대한 기운 같았다.

    ‘대체 이 여자 뭐야? 세상에 이런 광폭한 에너지를 지닌 인간도 존재했던가.’

    참으로 묘한 상황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흘끔 쳐다보며 신기하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때, 총관이 지드에게 말을 건넸다.

    “국왕께서는 매우 훌륭한 기사단을 두신 것 같소이다.”

    “잘 보셨소.”

    “헌데, 설마 군장만 번쩍거리는 그런 과시용 기사단은 아니겠지요?”

    지드의 미간이 다소 찡그려졌다.

    “무슨 의미입니까.”

    “내 말은 요즘 세상에 소위 기사단이라는 것들이 외향에만 치중하고 내실은 없다는 뜻이외다. 결코 그대의 기사단을 빗댄 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시오.”

    지드가 총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오해하지 않겠소. 내 기사단은 그런 부류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훌륭한 단원들이니 말이오.”

    이때 껴드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옥린이었다.

    “물론 그렇게 자부하고 싶은 것이 국왕 폐하의 심정인지 모르지만, 기사단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그 말씀에는 도저히 동의를 하지 못하겠군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요.”

    “솔직히 저는 직접적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지드가 불끈했다.

    “믿지 못하겠다니요.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단 말이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국의 왕께서는 당연지사 그렇게 말씀하셔야 하겠지요? 하지만 세상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법이죠. 자타가 공인해야만 인정을 받는 시대라 할까요. 자기 나라에서 얼마든지 칭송하든 상관없지만 외부에 나온 이상, 그 실력을 직접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어야만 인정을 해 주든 말든 할 것 아닌가요.”

    “…….”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만 지드.

    필시 그녀는 기사단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초반 공세를 취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 왔다면 처음부터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는 법이었다.

    지드가 눈에 힘을 주어 옥린에게 말했다.

    “어떤 식으로 증명해 보일까요.”

    “어떤 식이라니요?”

    “내 기사단이 일반 기사단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 보여야 만족하겠냔 말이오.”

    옥린이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그거야 당연히 한 가지겠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력을 증명해 보이려면― 대결이 가장 나은 방법이 아닌가요?”

    일부러 놀란 척 두 눈을 크게 뜨는 지드.

    “대결이라고요!”

    그런 그의 반응에 옥린은 자신의 의도에 말려들었다는 듯 입가가 은근히 말려져 올라갔다.

    “왜요? 자신 없으신가요.”

    “자신이 없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그럼 당장 추진해 볼까요?”

    “그전에 한 가지 여쭐 게 있소이다. 대결이라 함은 진짜 결투를 말하는 거요?”

    “그건 아닙니다. 그대들은 어디까지나 손님들이니 생명에는 지장 없이 목검으로 시합을 치르게 하는 겁니다.”

    “목검이라면 나 역시 그 대결을 받아들이겠소. 헌데 대결 대상이 누구이고 몇 명이 참가하는지 알려 주면 좋겠소.”

    “국왕의 기사단이 상당하다고 자부하시니 필시 보통 강력한 게 아닌 것 같아 보이는군요. 그래서 말인데 우린 일급 자객 다섯 명을 참가 시킬 예정입니다.”

    “일급 자객 다섯이라…….”

    지드는 고심하는 척하다가 흔쾌히 답했다.

    “좋소. 우리 역시 기사단장과 부단장을 포함해서 똑같이 다섯 명을 내보내겠소.”

    그러자 이번엔 총관이 매우 흥미 있다는 듯 이 둘의 말에 껴들었다.

    “허허. 재밌는 제안이 오가는 중이로군. 이거 오늘 만찬 석상의 대미를 장식하겠는걸. 그나저나 이번 대결은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옥린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무슨 말씀인지.”

    총관이 말했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단 말이지.”

    “형평성이요?”

    “명색이 우린 살수를 업으로 먹고 사는 자객 단체이건만 어찌 일개 왕국의 기사단이 일급 계열 자객을 상대한단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 내가 보기에는 이급계열 자객을 내보내고 저들의 기사단 인원을 다섯 명이 아닌 그냥 전원 모두를 나오라고 하게나. 그래도 시합이 될까 말까할 텐데 뭘.”

    옥린 역시 총관의 말을 듣고 보니 십분 이해가 갔고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시다면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드가 다소 언성을 높여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이다!”

    총관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필요 없다니요.”

    “내 기사단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이게 다 그대의 기사단을 생각해서 나온 나의 배려란 말이오.”

    “배려가 아니라 무시당하는 기분이요!”

    “절대 무시가 아니외다. 그대의 기사단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 긴말 필요 없소이다! 그쪽에서는 반드시 일급 자객이 참가해야 하고 우리 쪽은 기사단 역시 다섯 명이 참가할 것이오. 만일 그와 같은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번 대결은 없는 것으로 하겠소.”

    “…….”

    “…….”

    지드가 완강하게 나오자 총관 바쿠어스와 옥린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이런 친선 시합에 대자객 신전 1급 계열 자객을 내보낸다는 것 자체부터가, 실제로 형평성을 무시한 처사랄까.

    곧이어 총관의 측은한 눈길이 지드에게 이어졌다.

    “그렇게까지 나오니 할 수 없군요. 어쨌든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로 합시다.”

    “내가 할 소리요.”

    “자신만만하군요.”

    “그런 정신으로 평생 살아 왔소이다.”

    “그 점은 높이 살 만한데 그래도 이번에는 좀…….”

    “어디까지나 길고 짧은 건 대 봐야겠죠.”

    ***

    잠시 후 만찬 석상 한쪽 구석이 치워졌고, 대결 장소로서 각자 참가자들이 양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각자 목검을 꼬나든 채 준비 운동을 하는 자들, 특히 대자객 신전 1급 자객들은 자신들이 왜 호명당해 이런 시합장에 나왔는지 저마다 어리둥절해하는 표정들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들이 왕국의 기사단원이라는 말을 듣고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대체 뭐야? 아무리 행사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그러게 말일세. 제국의 특수부 검사들조차 우리 위명에 벌벌 떠는 입장인데, 왕국의 나부랭이들과 시합을 붙여서 뭘 한다는 거지?”

    “정말 격 떨어지는 일이군!”

    “야야, 총관님의 명령이니 다들 입 다물고 그저 시합에만 임하자고.”

    “오 대 오로 한 번에 치러지는 대결이니 금방 끝나긴 하겠지만, 뭐…… 좋아, 박살을 내 버리자고.”

    수군거리는 자객들에 비해서 아라퀘스를 중심으로 서 있는 기사단 네 명은 저마다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 할 분 그다지 큰 동요를 보이지는 않았다.

    아라퀘스 역시 바깥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맞는 그들에게 특히 해 줄 말도 없었는지 그저 진행자의 말소리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상석에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지드의 마음은 점차 조여 들기 시작했다.

    대체 아라퀘스 저 녀석이 무슨 심보로 시합에 처음 임하는 단원들에게 한마디 조언도 없나 하는 답답함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찌 알까, 원천기술의 진정한 힘을!

    아라퀘스는 분명 자신의 혈족들의 잠재 능력을 믿고 있었다.

    곧이어 진행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양측은 앞으로 나오시오!”

    자객들이 먼저 중앙으로 나갔고 이어 아라퀘스를 위시한 기사단 네 명이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막상 대결이 다가오자 그제야 키나는 갑자기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는지 아라퀘스 뒤로 바짝 다가가서는 바짝 타 들어가는 입술로 말문을 열었다.

    “저기…… 우리와 대결할 상대를 보니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요.”

    그러자 그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상대들은 일급 계열의 자객들인지라 상당한 고수라 부를 만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저 자신을 믿고 시합에 임해 주기 바라오.”

    “정말 괜찮겠지요?”

    “괜찮고말고요. 국왕 폐하께서 지켜보는 이 기회에 확실한 인상을 심어 드리면 더욱 좋겠지요.”

    “…….”

    역사 종족 청년회 회장이었던 키나로서는 세상 밖에 나와서 처음으로 벌어지는 공식적인 대결이었다.

    그토록 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록 믿음직한 아라퀘스가 함께 한다지만 다섯 명 모두가 한꺼번에 나와서 대결을 벌이는 만큼 맥없이 당하는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진행자가 양측 선수들을 번갈아 보며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들 명심해서 들으시오. 이번 대결은 어디까지나 친선을 위한 행사이니 서로 다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신경을 쓰기 바라오. 비록 무기가 목검이라 할지라도 그대들의 능력에 따라 아주 무시무시한 살인 무기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살수를 쓰지 않도록 하시오.”

    자객들 중 누군가 눈빛에 독기를 품으며 말했다.

    “우리가 배운 것이 살수밖에 없는데 그걸 쓰지 말라면 시합에서 지라는 얘기가 아니오!”

    진행자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저 대결 형식이 그렇다는 거요.”

    “형식이라면 규칙과는 무관하니 우리 마음대로 하겠소.”

    “어쨌든 이들은 손님들이니 배려를 베푸는 것이 좋을 듯하오.”

    “배려는 무슨 얼어 죽을! 아무리 친선 시합이라지만 우리 같은 일급 자객들과 붙으려면 그만한 각오는 하고 나왔어야지.”

    “그래도 이들은 왕국에 기사단원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오. 그대들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불구가 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소.”

    “젠장. 그거야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겠지.”

    진행자는 진심으로 기사단 대표 선수들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이에 자존심 강한 아라퀘스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보시오, 진행자! 우리 걱정할 필요 없으니 당장 시합이나 시작합시다. 솔직히 내 생각을 말하지만 저들은 자신들의 안위부터 걱정해야 할 것이오.”

    순간 자객들이 동시에 눈에 불을 켜고 아라퀘스를 노려보았다.

    “뭐라?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래도 조금은 봐줄 마음이 생기려 했는데.”

    “제발 봐주지 마시지?”

    “그럼 시체 치울 일 생길 텐데.”

    문득 기회라 생각한 아라퀘스가 일부러 약 올리듯 말했다.

    “그대들 말인가? 후후!”

    “뭐라! 이런 빌어먹을!”

    시합 직전 분위기가 다소 험악해 지자 진행자는 더 이상 주저 없이 당장 시합을 속행시키기로 하였다.

    “자! 이리로 모여 주기 바랍니다. 시합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자신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바닥에 무릎을 꿇기 바라오. 그래야만 부상을 면할 수 있을 것이외다.”

    그러자 자객들 중 하나가 진행자를 밀쳐 버리기까지 했다.

    “당장 저리 비켜서라고!”

    툭!

    “어이쿠.”

    곧이어 다섯 명의 자객들은 한 무리의 양들을 포위한 채 침을 질질 흘리는 늑대와도 같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제야 아라퀘스는 앞으로 한발 나서더니만 뒤쪽에 있는 키나와 단원들에게 당부했다.

    “일단 나 혼자서 저들과 상대할 테니 나서지 마시오.”

    키나가 걱정스런 얼굴로 외쳤다.

    “혼자…… 라고요?”

    “그렇소.”

    “웬만하면 함께 싸우죠.”

    “아니, 그대와 단원들은 따로 할 일이 있소.”

    키나는 토끼 같은 눈망울을 도르르 굴리며 궁금증을 드러내며 물었다.

    “할 일이라니요?”

    “지금부터 내가 싸우는 동작들을 확실하게 눈에 담아두기 바라오.”

    “네?”

    “명심하오. 지금 선보이게 될 것은 원천기술 제1장과 2장이니 어떡해서든 단번에 파악을 해야만 합니다.”

    “원천기술이요?”

    동시에 깜짝 놀라고 마는 단원들, 그들 역시 원천기술의 유전인자를 이어받은 혈족이라지만 원천기술서(源泉技術書)는 오로지 선택되어진 자만이 익힐 수 있는 비전이 아니던가.

    영웅 이리스가 오로지 원천기술서를 통한 전투력만으로도 붉은 용을 때려잡은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얘기인 만큼 그의 아들 아라퀘스가 그 기술을 선보이려 하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서로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정들을 했고 심지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해보려고 자신의 볼을 꼬집는 자들도 있었다.

    저벅저벅.

    아라퀘스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상대 자객들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손에 쥐어진 검을 다소 묘하게 비튼 자세로 가슴 부위 중앙 위쪽으로 치켜 올렸다.

    스윽―

    무릎이 굽혀지고 허리가 오른쪽으로 비틀어지니 마치 온몸의 반동력을 이용하려는 듯 그의 온 신체 마디마디에 미세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는 원천기술 제1장 원천분산에 이은 제2장 신체발검의 동작으로서 필시 말 그대로 신체 작용이 만들어 내는 모습이 분명했다.

    그때 키나와 그의 동료들의 눈빛이 번뜩였으니 원천기술이 잠재된 그들로서는 현재 아라퀘스의 동작이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은 자연스런 흐름으로 와 닿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처럼, 모든 동작이 유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아라퀘스는 자신을 지켜보는 혈족을 위해서 매우 신경을 쓰며 발검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았다.

    척!

    아라퀘스의 신체로부터 분출되는 에너지는 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서 끝이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세하게 비틀어진 손목의 연장선은 결코 손이 아닌 목검과 이어진다는 사실, 키나의 추측이 맞는다면 아라퀘스의 목검은 이미 그의 신체적 일부로 변해 있을 것이다.

    바로 신체가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힘을 쏟아내는 매개체로서 말이다.

    그가 원천기술을 시전하기 직전 단원들은 그의 동작을 단 한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저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온 신경을 다해 지켜보았다.

    타타타탁!

    다섯 명의 자객들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파! 파! 파! 파! 팟!

    두두두둑―

    “아악!”

    “억!”

    허공에 울려 퍼지는 파공음, 그 뒤를 잇는 둔탁한 소리들! 마치 우박이 대지를 가르는 듯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다.

    놀랍게도 다섯 명이 동시에 강한 충격을 받고 뒤로 나가자빠졌던 것이다. 자객들은 저마다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한 모습들이었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했다. 거대한 태산과도 같이 그들 앞에 꼿꼿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아라퀘스, 정말이지 거인이 따로 없었다.

    첫 번째 전투를 치른 그가 방향을 돌려 뒤쪽에서 멀뚱히 바라보던 키나와 단원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잘 봤겠지요?”

    “아…… 네.”

    “방금 전 내가 한 기술은 원천기술 제1장 원천분산과 제2장 신체발검이라 하는데 그대들의 능력이라면 단번에 따라할 수 있을 것이오. 자, 그렇다면 어디 한번 실전에 임하도록 해 보시오.”

    아라퀘스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 뒤로 물러났다. 이에 어리둥절해 하는 단원들, 혹시 그는 자신들을 이런 실전 대결을 통해서 원천기술의 전투력을 익히게 하려는 것일까.

    이제야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그때 키나가 물었다.

    “우리더러 나서라고요?”

    “그렇소. 방금 전 내 공격은 일부러 가볍게 한 것이니 아마도 저들은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을 것이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내가 보여 준 원천기술을 통해 상대해 보시오.”

    키나가 기가 막힌 듯 볼 멘 목소리로 말했다.

    “단 한 번만 보고 그대로 따라하라고요?”

    아라퀘스는 거의 울상이 되어 버린 키나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 었다.

    “후후. 원천기술이란 신체 자체가 스스로 이끌어 주는 대로 취하면 그만인 것이오. 그대들이 진정 내 혈족이라면 분명 그 기술을 자연스럽게 시전할 것이니 자신들을 믿고 어디 한번 해 보기 바라오.”

    “…….”

    더 이상 반문할 여력이 없었다. 하라면 해야지. 키나를 비롯한 세 명의 동료들이 앞으로 나섰다.

    자객들 역시 어느새 일어나 저마다 목검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욱 살벌한 독기를 팍팍 흘리고 있었으니 명색이 1급 자객들로서 바닥에 널 부러지는 수모를 당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화가 난 모양들이었다.

    하필 그 화가 키나와 단원들에게 집중이 될 판이었으니. 하지만 이들은 일반인과 다른 나카스니아 대륙 출신이 아니던가.

    대살육자 이리스의 일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마물들이 벌벌 떠는 선천적 전투 종족들인 것이다.

    막상 대결에 임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저마다 목검을 꽉 움켜쥐고는 본능적으로 전투 자세에 임했다. 이제 방금 전 아라퀘스가 선보였던 원천기술 제1장과 2장의 발검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타다닥!

    자객들이 선제공격을 했고 단원들이 그들의 강렬한 기세에 맞서 동시에 비틈 자세에 이어 목검을 치켜들었다.

    두두두둑!

    두두두둑!

    “아악!”

    “억!”

    엄청난 충돌이었다. 파공음에 이은 비명소리가 드넓은 만찬 석상을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뒤쪽으로 널브러진 자들은 자객들이었다.

    그리고 키나와 단원들은 자신들이 무슨 동작을 취해서 저들을 쓰러트렸는지 저마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아라퀘스의 말이 맞았던가. 그저 그의 동작을 한번 집중해서 살펴보았을 뿐인데 신기하게 각자의 신체는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었다.

    원천기술이라는 전투력 이면에는 ‘속도와 파괴력’이라는 확실한 등식이 있었으니 앞으로 그들이 깨우쳐야 할 중요한 대목인 것이다.

    그 부분을 집중해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가 있다.

    속도.

    검술은 속도 싸움이다. 결국 빠른 자가 훨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의미이다.

    현란한, 심지어 기상천외한 검술을 펼쳐 보인다 한들 쾌검의 동작에 있어서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느리다면 패할 공산이 클 것이다.

    원천기술의 진정한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이를 완전히 익힌다면 상대방의 그 어떤 물리적 공격들조차 무위로 돌림과 동시에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여 말하자면 원천기술서에는 특별한 검술 체계, 기술 등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저 진화(進化)되는 신체 작용이 언급되어 있기에 이들 혈족이 강해지려면 오로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만 할 것이다.

    파괴력.

    원천기술, 그것은 단순한 개념의 파괴력이라 볼 수 있다.

    신체의 모든 비튼 힘을 손목을 통해 검과 하나가 됨으로써 최대치의 파괴력을 이끌어 낸다고 할까.

    사실 속도와 파괴력이 한데 어우러진다면 이 세상 그 어떤 검술에도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시전자들의 능력치와 그 강도에 따라 비례할 뿐.

    오래 전 이리스가 원천기술만으로 붉은 용을 제압한 것은 그의 원천이 그만큼 많이 축적되어 있었고 단련되었다는 말의 반증이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실전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험이랄까.

    “승자는 피체 왕국의 기사단입니다!”

    곧이어 진행자의 음성이 크게 들려왔다.

    대자객 신전의 총관과 옥린 그리고 고위 관계자들은 저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함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었다.

    지드와 헤라 그리고 구경하던 특히 기사단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역사 종족으로서 아라퀘스의 원천기술을 이미 눈에 담아 두었기에 저마다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흥분에 빠져 있었다.

    “우리가 이겼어.”

    “와우! 정말 대단하군. 그나저나 그 원천기술 말이야,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도!”

    “……난 제대로 못 봤는데. 제길!”

    “그러게 누가 딴 짓하래?”

    상대가 대자객 신전의 일급 계열 자객들인 만큼 솔직히 일방적인 승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치고 박는 혈전이 연출될 줄 알았건만, 이건 너무도 싱겁게 승부가 나질 않았는가.

    지드는 아라퀘스와 그의 혈족들에게서 눈길을 결코 뗄 수가 없었다. 원천기술 소유자들이라기에 그저 보통은 아니겠지 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설마 저 정도일 줄이야!

    더군다나 단원들이 서로 얘기하는 내용을 듣고는 그 자신도 내심 흥분을 감추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아라퀘스 같은 녀석들이 무려 오십일 명이나 더 늘었으니…… 후후!’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머금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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