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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 돌아온 지드 (35/81)
  • Chapter 34 돌아온 지드

    그로부터 석 달 후.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팔라카스 제국의 용병 집단 척결 작전은 무려 3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이제는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황제 게라쿠스의 입지와 황권 강화는 완전히 뿌리를 내린 듯했고 상대적으로 원로원 세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그나마 용병 척결 작전의 수많은 공을 세운 테세우스가 그들의 편이었기에 작으나마 위안이 되었고, 원로원 세력의 명맥을 유지하는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한편 특수검사부의 총관 카르세크는 집정관의 자리를 연임하게 되었다.

    그는 황제 다음가는 절대적인 실세에 떠오르자 그동안 원로원의 반대로 미루어 왔던, 아들 이든을 특수검사부에 입단시킬 수가 있었다.

    제1지부 수장 레온은 작은 주군이라 할 수 있는 그를 자신 가까이에 두고 모든 업무를 직접 가르쳐 주기로 했다.

    제국의 최고 기관이라 할 수 있는 특수검사부는 크게는 레온 파와 테세우스 파로 갈라져 있었으며 그들끼리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했다.

    물론 황권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레온이 주도권을 쥔 듯 보였지만 역사적 통례로 보아서 원로원에서 전폭적으로 밀어 주는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법!

    테세우스는 제5지부 수장 자라투스 외에 모든 원로원 의원들의 희망인 만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수백 개의 용병 집단들이 와해된 가운데 요즘 팔라카스 제국의 황궁 내에는 다소 껄끄러운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 황제 게라쿠스는 그동안 내면에 감추어 왔던 광기마저 겉으로 드러나면서 눈살 찌푸리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일같이 측근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연회를 즐기는 것이 어느덧 그의 일상이 되었는데 술에 취한 뒤에 행동에는 반드시 불미스런 사건을 남겼다.

    그는 여자 시종들을 희롱하며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면 그 자리에서 패거나 죽여 버리기까지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도가 심해져 가고 있었다.

    사실 그가 그런 분노를 터트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무려 5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은 아카시안에게 있었다.

    그녀는 황제 게라쿠스가 유일하게 여인으로 대하는 존재랄까. 아마도 다른 여자 같았으면 황제의 부름에 거부한 죄로 벌써 무슨 봉변을 당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광폭한 그의 행동으로부터 무사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안심할 수 없는 처지던가. 황제가 점점 치쳐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황궁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별관에서 아카시안은 세 명의 동생들과 하루하루를 버티며 이곳을 탈출할 생각으로 그때를 보고 있었다. 석양 노을이 지는 가운데 그녀는 여느 때처럼 별관 테라스에서 황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지만 이제 어떡하지.’

    사실 그녀는 자신의 안위보다도 세 동생들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황제가 지금까지는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다지만 앞으로는 동생들을 위협한다며 자신의 청혼을 수락할 것을 강요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저 앞 별관의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덜컹!

    그녀의 심장마저 멈추어 버린 듯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곳을 살펴보니 다행히 낯익은 얼굴이랄까. 그는 집정관 카르세크의 아들 이든이었는데 전에는 지드의 수하로서 7호라 불렸던 하류검사이기도 했다.

    수년 동안 자신과 동생들을 경호해 주었던 고마운 대원들 중에 한 사람이랄까.

    이든은 가끔 이곳에 들러 아카시안과 그녀의 동생들이 잘 있는지 살펴보러 오곤 했다.

    잠시 후 2층 테라스에는 아카시안과 이든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이곳에 들르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이 될 텐데 괜찮겠어요?”

    아카시안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이든이 피식 웃었다.

    “제가 명색이 실세 아들인데 어디를 가든지 별로 상관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이 그랬다. 그는 집정관 카르세크의 후계자로서 머지않아 제국의 실세로 떠오를 강력한 배경이 있었다.

    황제마저 유일하게 의지하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가 집정관이니 만큼, 그의 아들 이든 역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아카시안이 물었다.

    “특수검사부에 입단했단 얘기 들었는데 거기선 잘 지내지요?”

    “물론입니다. 그 빌어먹을 레온이 옆에서 보필한답시고 감시하는 꼴이 많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지낼 만은 합니다.”

    그동안 이곳을 벗어나 동료들을 찾아가려고 몇 차례나 도망가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레온과 그의 수하들에 붙잡혀 왔으니 지금은 아예 포기하고 그냥 이렇게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의 아버지 카르세크는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아예 그를 특수검수부에 집어넣어 레온의 감시하에 있도록 하게 한 것이었다. 이번엔 이든이 아카시안에게 물었다.

    “아직도 지드 대장님을 기다리시는 것은 아니겠죠?”

    “…….”

    지드 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대답 대신에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이든이 멋쩍은 얼굴을 했다.

    “제가 괜한 걸 물어봤군요. 당연한 거 가지고…….”

    “아니에요. 오 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분이 과연 돌아올 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저나 아가씨나 붙잡힌 신세에서 그 누구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니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옛날이 미치도록 그립군요. 당시에는 비록 열악한 환경에 제 신분이 하류검사였지만 아가씨와 동생 분들을 지키기 위해 사명을 다했던 일들, 그 모든 기억들이 이제는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정말 그때가 좋았는데요.”

    아카시안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젠 돌아가시죠. 여기 오래 있으면 황제의 감시단에게 들킬지도 모르거든요.”

    “감시란 말만 들어도 정말 지긋지긋하군요.”

    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대장님은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저 역시 그런 확신이 있기에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거든요. 비록 용병 집단들이 철저히 와해가 되었다지만 국경 너머에는 오 년 전 이곳을 떠난 하류 구역 주민들과 하류검사들이 새로운 터전을 잡고 그들만의 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이 전해 오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수장 지노 님과 대원들이 거기서 꽤 높은 지휘관들이라 하는데 당장이라도 생각 같아서는 저 담을 뛰어넘어 그곳에 합류하고 싶은데…… 만일 그랬다가는 제 아버님이 군대를 이끌고 그곳으로 침략할 것 같아서 그냥 이대로 있기로 한 겁니다.”

    “그 심정 저도 잘 알아요. 저도 그동안 이곳을 탈출해서 동생들과 그곳에 가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진 적이 있지만 만일 그랬다가는 황제가 가만있을 리 없겠지요.”

    둘은 동시에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다른 곳으로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는 운명이라. 정말 생각할수록 기가 막힙니다.”

    “힘내세요. 언제가 밝은 햇살이 비치는 날이 올 테니까요.”

    “후우, 그 햇살이 바로 지드 대장님일진대 대체 어디로 사라져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지…….”

    ***

    휘이잉!

    가파른 산악 지형으로 유명한 팔라카스 제국의 서쪽 국경 근처에 위치한 마르카스 소도시에는 최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허름한 행색의 검사 출신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시민 광장에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있었으니 최근의 그런 광경은 이 도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심지어 이방인들에 의해 여관이 가득 메워졌고 밤에는 선술집이 꽉 들어찰 정도로 사내들의 취기 어린 무용담을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광장이 끝나서 지점 제법 한적한 곳에 위치한 술집이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가오는 시점인데도 취객들이 집이나 여관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않고 저들끼리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구석에 위치한 곳에는 한 사내와 여인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 둘은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기보다 고집이 무척 세군요.”

    사내가 말하자 여인이 시무룩한 반응을 보였다.

    “미안해요. 이대로 무작정 중부 대륙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무작정이라니요. 내가 함께 있지 않소.”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더욱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일전에도 분명히 말했죠. 우린 친구 이상의 사이가 아니라고요.”

    사내가 다소 침통한 표정을 했다.

    “꼭 확인시켜 줘야 직성이 풀리겠소? 어쨌든 괜찮소. 친구 관계라도 좋으니 일단 이 지긋지긋한 남부 대륙을 떠납시다.”

    “아직은 안 돼요.”

    결국 사내가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아직도 그 지드라는 작자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거요?”

    그녀 역시 조금은 언짢은 기색이었다.

    “작자라니요! 말이 좀 심하군요.”

    그 둘은 카르발디와 에르가니아였다. 오늘 밤에야 이 도시에 도착한 그들은 일단 밤늦게 문을 연 선술집을 골라 들어왔고 술 대신 푸짐한 안주를 채워 허기를 달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에르가니아는 카르발디의 권유로 중부 대륙으로 향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한 번 들러 보기로 마음먹은 곳이 바로 여기 마르카스 소도시였다.

    최근 수년 동안 용병 집단 척결 작전으로 인하여 무려 200여 개의 용병 단체가 와해되면서 오갈 데가 없는 떠돌이 용병들이 자연스레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이 도시로 차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유인즉 얼마 전 국경선 너머에 세워진 신생 왕국으로 합류하기 위함이었다.

    아직은 이곳이 워낙 변방 지역인지라 팔라카스 제국의 국경 수비대가 거의 전무한지라 하루에 수십 명 이상이 야밤에 산등성이를 넘어 그곳으로 전향한다고 한다.

    소속을 잃은 용병들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굳이 신생 왕국으로 가려는 이유 단 하다.

    그곳이 바로 5년 전 팔라카스 제국의 하류 구역 제5구간에서 의로운 항쟁을 벌이다가 그곳으로 이주한 폭풍 용병단과 이리가시 용병 집단, 그리고 2,000여 명의 하류검사들과 주민들을 토대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에르가니아 역시 다른 용병들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는 이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던 것인데, 그녀의 고집스런 행보에 카르발디의 속은 더욱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맞은편 좌석으로부터 두 명의 취객들의 만취가 되어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저들끼리 논쟁을 벌이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곳에 가지 않을 거야!”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라고!”

    “그냥 고향으로 내려갈 거야.”

    “정말 이 친구가 누굴 놀리나! 처음 나를 꼬드겨 여기 오자고 한 게 누군데.”

    “생각해 보니 그게 아냐.”

    순간 사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멱살을 잡기에 이른다.

    “이 자식이, 지금 누굴 놀리는 거야? 그곳만이 우리 같은 떠돌이 용병들이 제값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골백번이나 말해 놓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흥분하지 말고 일단 내 말 좀 들어 보게나.”

    “무슨 말!”

    그러자 멱살을 잡힌 친구가 무슨 이유인지 주변을 살펴보며 아주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 낮에 어떤 자로부터 정보를 들은 게 있어서 그렇다네.”

    “정보라니?”

    “일단 이 손 좀 놓고 얘기하세나. 어차피 내 미리 말해 주려 했네.”

    그 둘은 다시 의자에 앉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하지만 술에 많이 취했기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큰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손님들이 많이 빠져나간 상태인지라 그다지 상관은 없어 보였다.

    “우리가 가려는 신생 왕국 말일세. 거기 출신인 듯한 사람이 아까 낮에 광장에서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현재 그곳은 아주 심한 내분이 있다고 하네.”

    “내분이라니?”

    “자네도 알다시피 신생 왕국이 티온의 폭풍 용병단과 이리가시의 용병 집단, 그리고 지노의 하류검사 집단. 이렇게 세 파로 나뉘어져 있다는 거 알지?”

    “그거야 모르는 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끼리 힘을 합쳐 나라를 세워 놓고 이제는 통치권을 놓고 내분이 일어났다, 그 말 아닌가. 사실 아르게논 님께서 생존해 계셨어도 당연지사 그분이 왕이 되셨겠지만 현재로서는 마땅한 자가 없다고 그러더군.”

    “아르게논 님 다음에는 티온 님이 계시지 않는가.”

    “헌데 그분은 그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털끝만큼도 원치 않고 계신다네. 이유인즉 아르게논 님이 임종 직전에 이미 후계자를 정해 두었다는 거야.”

    “후계자라니?”

    “아마 자네도 기억할 걸세. 오 년 전 하류 구역 항쟁 당시 무려 이천여 명의 하류검사를 규합해서 오 구간으로 진격했던 대장 지드라고.”

    “지드라…… 그래, 이제 기억이 나는군.”

    “헌데 그 지드란 자가 어디론가 사라지고는 아직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군. 사실 티온은 그자가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고 아직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는 이유 역시 그가 오면 결정권을 주기 위함이라네.”

    “그런데 대체 무슨 내분이 일어났다는 거지?”

    “이리가시 용병 대장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일세. 사실 그의 명성이나 위치로 보아서 그자가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지만 티온 님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니 그 둘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나. 따지고 보면 이리가시 대장이 통치자 자리에 오른들 그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걸세. 하지만 하류검사 대표 지노라는 인물 역시 한때 지드 대장의 오른팔이자 충직한 수하로서 오로지 그의 귀환만을 기다리고 있다네.”

    “그렇다면 폭풍 용병단의 티온 님과 하류검사 집단의 지노가 이렇게 한패가 되겠고 이리가시가 그들을 상대로 꽤나 골치 아픈 일전을 벌이겠군.”

    그러자 사내가 무슨 이유인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반대일세.”

    “반대라니?”

    “오히려 이리가시 대장의 입지가 확고히 굳어지고 있다고나 할까.”

    “그건 왜지?”

    “한때 하류검사를 이끌었던 지드 대장의 귀환이 늦어지자 그를 추종했던 무리들이 이리가시 측으로 기울어지고 있기 때문일세. 게다가 폭풍 용병단원들마저 벌써 오랫동안 공석으로 비워 둔 왕의 자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이리가시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상황이 역전된 거네.”

    “이제 말귀를 알아듣는군. 한마디로 티온 님과 지노 대장이 궁지에 몰린 셈이네. 그들에게는 스카페트 돌격대장과 옛 수하들이 뒤를 받쳐 주고 있다지만 아마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걸세. 벌써 모든 병력의 칠 할이 이리가시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니 말일세. 설령 지드 대장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그 지드 대장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소문에는 머나먼 이국땅으로 간 것으로 아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가 술에 찌든 비렁뱅이 신세로 전락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아닌가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무려 오 년이나 지났는데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는가.”

    “하기야 그 말이 신빙성이 있군. 뭔가 신변에 하자가 있으니까 귀환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거겠지. 그렇다면 이리가시 대장이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군.”

    “여하튼 기다려 봄세. 괜히 지금 거기 갔다가는 내분에 휘말려 골치 아플 수 있으니까 상황이 끝나면 그때 감세나.”

    “아, 그래서 이 도시에 몰린 많은 용병들 역시 그곳 상황을 보며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거였군.”

    “하하, 이제 말이 통하는군! 우린 술이나 더 마시세.”

    “좋았어!”

    한편 구석에서 에르가니아는 저들의 대화 내용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이만저만 착잡한 심정이 아니었다. 카르발디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정말 안된 일이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 같은데 말이오. 아마도 지드 대장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소.”

    “…….”

    그녀는 반박할 생각도 않고 침묵만을 지켰다. 그런 그녀의 의기소침한 반응에 카르발디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자, 이제 중부 대륙으로 갑시다. 거기도 괘나 괜찮은 곳이요. 오히려 여기보다 볼거리나 즐길 것이 훨씬 많다고나 할까요. 아마 세상 여행을 좋아하는 그대에게 있어서 적절한 장소가 될 것이오. 더군다나 제 조국인 아르카도 제국은 그대가 즐겨 부르는 13군단의 행진곡의 주인공이자 영웅이 활약하신 곳이기도 하지요.”

    그제까지 말문이 없었던 에르가니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내일 떠나죠.”

    카르발디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말 진심이오?”

    “네…….”

    ***

    이튿날 태양이 중천에 떠오른 시점이었다.

    도시 광장 아래 후미진 곳에는 다른 건물에 비해서 비교적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보였는데, 그 앞에는 상인들이 노점상을 펼쳐 놓고 장사를 했다.

    도시 안쪽으로 들어오는 관문이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하루에도 이곳을 통과하는 이방인들만 하더라도 족히 수백여 명은 넘었다.

    최근에는 어느 자선가가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는 외부로부터 진입하는 자들 중에 정말이지 피죽도 못 먹은 가엾은 비렁뱅이들을 상대로 하루에 한 번 무료 급식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정오 식사 때만 되면 이곳은 완전히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제법 잘 차려입은 자들이나 근사한 복장의 검사 출신들은 무료 급식에서 제외가 되었고 누가 봐도 상거지 같은 몰골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불쌍한 사람들만이 줄을 서서 급식을 기다릴 자격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놀랍게도 지드와 일행들이 보이는 아니던가. 정말이지 지드를 비롯해 헤라와 아라퀘스는 꼬질꼬질한 차림새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니 앞뒤로 서 있는 거지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네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지드는 빌어먹는 자신의 신세가 기가 막혔는지 계속해서 아라퀘스를 나무랐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냐!”

    그러자 헤라가 나섰다.

    “일부러 잃어버린 건 아닌데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녜요?”

    “넌 빠져라. 저 녀석 때문에 졸지에 급식이나 타 먹는 거지 신세가 되었는데 내가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냐.”

    “강을 건너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질 줄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도 우리 전 재산하고 옷가지가 들어 있는 배낭은 잃어버리지 말았어야지.”

    “갑작스런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고 살아난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그리고 아라퀘스 님은 저를 구하려고 배낭을 포기했던 거란 말이에요.”

    “아무튼 저놈이 칠칠치 못해서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단장님의 모든 짐을 그에게 다 맡긴 것도 잘못이라면 잘못이지요.”

    “충성스런 부하가 되기로 자청한 녀석에게 짐을 맡기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그래도 자긴 건 자기가 챙겨야죠. 치!”

    이번엔 아라퀘스가 헤라를 만류했다.

    “그만해요, 헤라. 이게 다 제가 실수입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히려 살아난 것에 감사해야죠.”

    지드가 꿍한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렸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배급을 기다리다니 정말 옛날 생각이 나는군.”

    헤라가 물었다.

    “옛날 생각이라니요? 혹시 거지 출신이셨나요?”

    지드가 당혹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 거지라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망발을 하는 거냐! 기분 나쁘게…….”

    “아니면 아닌 거죠.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아무리 내가 여기서 급식을 타 먹는다고 거지처럼 보이냐!”

    지드는 하류 구역 출신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괜한 일 가지고 언성을 높였다.

    그때 뒤쪽에 서 있던 자들이 이들의 대화에 결국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자꾸 거지 어쩌고저쩌고 하지 맙시다. 보아하니 그대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그냥 지금의 신세를 받아들이쇼. 솔직히 여기에서 처음부터 거지였던 사람이 있었나? 쳇!”

    “…….”

    아무런 반문도 하지 못하는 지드, 더 얘기해 봤자 창피할 뿐. 그저 아라퀘스를 원망스런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같은 시각.

    급식 행렬을 지나가는 두 남녀가 있었으니 바로 에르가니아와 카르발디였다.

    에르가니아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비렁뱅이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다소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굶주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이게 다 전란으로 인한 그 여파 때문이겠죠. 아마 저들 대부분은 한때 용병 집단 소속이었을 테고 용병 단체가 모두 해산이 되자 오갈 데 없이 이곳으로 흘러든 자들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저런 신세로 전락할 수가 있는 거죠?”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어떤 용병들이 꾸준히 지급된 월급을 모아 전란이 끝이 난 뒤에도 그런대로 생활을 꾸릴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용병들은 마땅히 할 일 없이 여기저기 전전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밑바닥 삶으로 깊게 빠져 들게 마련이오. 지금은 소위 말하는 평화 시대 아니오. 검술로 생계를 이어 가는 자들의 수난 시대랄까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자, 그럼 갑시다. 여기서 너무 시간을 지체하면 해가지기 전에 국경선을 넘지 못할 거요.”

    바로 그때였다. 에르가니아는 얘기를 하다 말고 저편에 줄을 서 있는 행렬 속에 매우 낯익은 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그런 그녀의 반응에 카르발디 역시 뭔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그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던가.

    “저자는!”

    “…….”

    에르가니아는 너무 뜻밖의 일인지라 말문을 잇지 못하고 그를 살펴보기만 했다. 이에 카르발디의 안색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내심 반갑지 않은 존재랄까?

    ‘……하필 저자가 여기에.’

    예상대로 에르가니아는 주저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 지드에게 아는 체를 했다.

    “혹시 지드 님 아니세요?”

    사내가 누군가 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깜짝 놀라는 모습이 아니던가.

    “그대는!”

    “지드 님 맞군요!”

    “오! 에르가니아!”

    에르가니아는 눈물부터 글썽였다. 그렇게 만나 보고 싶었던 지드를 극적으로 보게 된 감격도 있지만 무료 급식 행렬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가 너무나 가여워 보였던가.

    그녀는 지드의 행색부터 살펴보더니 이내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어,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지드가 당황한 듯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오. 오해하면 안 됩니다.”

    “고생이 심했나 봐요.”

    “아니오. 짐을 잃어버려서 할 수 없이 배급을…….”

    바로 그때였다. 앞에 있던 아라퀘스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지드에게 말했다.

    “다음이 우리 차례입니다. 빨리 이리 오시죠.”

    그러자 헤라도 한마디 했다.

    “이거 놓치면 하루 또 꼬박 굶어야 해요. 벌써 이틀이나 식사 구경도 못했는데 거기서 꾸물거릴 거 뭐예요. 일단 밥부터 타 놓고 나중에 볼일 보세요!”

    에르가니아는 그제야 지드에게 일행이 있었다.

    “일행이 있었군요.”

    그들의 행색 역시 꽤 지저분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같은 무리임이 분명했다.

    그러고는 나름대로 배려를 한다는 의미로 그에게 말했다.

    “일단 동료들 말대로 배급부터 타 오세요.”

    “나, 정말 비렁뱅이 아니오. 믿어 주시오!”

    마침 헤라가 급식을 타면서 감격에 겨운 듯 소리쳤다.

    “와우! 드디어 따뜻한 식사하게 생겼다. 이게 대체 얼마만인지 눈물이 다 나려 하네.”

    지드 역시 뒷줄에 밀려 마지못해 앞으로 떠밀려 무료 배급을 탔지만 에르가니아가 꽤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 이만저만 난감한 게 아니었다.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그날 오후 에르가니아는 카르발디와 함께 중부 대륙으로 가기로 한 일정을 뒤로 미루었고 도시 근교에 여관 하나를 잡아 지드와 일행들을 그곳에 묵게 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지드와 돈 한 푼 없는 일행들에 대한 배려랄까. 그녀는 아직도 지드가 빈털터리 신세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방랑 거지로 오해하고 있었다.

    애석한 일이지만 지드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좀처럼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헤라와 아라퀘스는 그동안 지드로부터 구박을 당해 왔던지라 일부러 장난 식으로 진짜 가여운 비렁뱅이인 척 연극을 했다.

    그 때문에 지드의 입장은 진짜 거지 신세로 전락해 버렸으니 이만저만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너희들 진짜 사람 바보로 만들 작정이냐!”

    결국 지드가 헤라와 아라퀘스를 꾸짖듯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장난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던가.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에르가니아와 카르발디에게 들으라고 헤라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좋은 여관은 3년 만에 처음 들어와 보네요. 매일같이 동냥하며 돌아다니다가 나무 밑이나 바위 동굴에서만 잠자다가 여기 와 보니 눈물이 다 나네요. 흑!”

    헤라가 우는 척을 했고 아라퀘스 역시 주변을 둘러보며 한마디 했다.

    “와! 푹신한 침대도 있네요. 제 평생 소원이 저런 데서 한 번 자 보는 것이었는데.”

    평소 점잔을 뺐던 아라퀘스마저 저러니 지드는 그만 어이없어 했다.

    “너마저 그럴 거냐?”

    “아무튼 왕초님 덕분에 우리들이 호강하네요.”

    “왕초라니, 그건 무슨 말이냐?”

    “우리 구역에서 왕초 아닙니까?”

    “이젠 없는 말 꾸며 가며 사람 진짜 거지 왕초로 만들 작정이냐!”

    그때 에르가니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던 카르발디가 모처럼만에 말문을 열었다.

    “옛날에는 그래도 잘나가나 싶었건만 오 년 만에 거지 왕초로 전락을 해 버리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지드가 불끈했다.

    “뭐라고!”

    지드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저 뻔뻔한 카르발디 녀석이 왜 에르가니아와 함께 있는지 그게 더욱 불쾌한 일이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카르발디의 퉁명스런 음성.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저 작자를 봤으니 이제 나와 함께 중부 대륙으로 갑시다.”

    “…….”

    대답을 하지 못하는 에르가니아, 그녀는 지드의 처지에 내심 실망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지만 그래도 무슨 사정이 있겠구나 하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한편 지드는 그녀가 자신을 보고 싶어 했단 말에 의외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를……?’

    카르발디는 자신의 질문에 다소 주저거리는 그녀에게 다급한 심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필 중부 대륙으로 떠나기 직전 지드라는 작자를 만날 게 뭐란 말인가. 한마디로 재수 옴 붙었다고나 할까.

    “저런 별 볼일이 없는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지 않소. 그러니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갑시다.”

    지드는 듣자듣자 하니 기분이 나빴고 결국 카르발디에게 화를 냈다.

    “당신 진짜 혼나고 싶어서 안달인 모양인데 한 번만 더 사람 무시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후후. 거지 주제에 그래도 자존심은 있나 보군.”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지드.

    “뭐라고!”

    에르가니아가 재빨리 일어나 그의 손을 잡고 만류했다.

    “그만두세요. 그는 원래 비아냥거리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니까 그냥 한 귀로 흘려버리세요.”

    “…….”

    지드는 애써 화를 누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기야 저자는 용병 연합회에서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작자였지. 쳇!”

    이번엔 에르가니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지드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뭐 하다니요?”

    “혹시 국경선 너머 신생 왕국에서는 지드 님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지드가 깜짝 놀란 척 외쳤다.

    “신생 왕국이라니요?”

    “모르셨나요.”

    “몰랐소.”

    “어떻게 그런 사실을 모를 수 있지요? 이곳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요.”

    “매일 빌어먹는 신세에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어야지요.”

    “…….”

    그때 헤라와 아라퀘스는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지드의 모습을 보고 말이다.

    사실 그들이 여기 마르카시 도시에 온 이유는 바로 그곳을 가기 위함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지드는 자신을 진짜 거지 왕초인 척 연기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지드는 그녀가 처음부터 자신을 거지로 오해함에 있어서 무척이나 당혹해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역할에 흥미가 동하고 이젠 재미있다고나 할까. 이대로 장난기를 이어 가는 것도 괜찮다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어떡하실 거죠?”

    “뭘 말이오?”

    “그곳에 가실 건가요?”

    “글쎄요.”

    지드는 뭔가 생각하는 척하다가 마지못해 말했다.

    “나를 기다린다니 한번 가 봐야겠죠 뭐.”

    그대 카르발디가 대뜸 껴들었다.

    “거지 왕초인 주제에 거기 갔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만 안겨 주고 개망신만 당할 게 자명할 텐데, 웬만하며 동냥질이나 계속하시지. 후후.”

    말투나 표정이나 참으로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드는 화를 꾹꾹 누르며 오히려 실실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거기 가면 맛있는 거와 값나가는 것들 많을 텐데 일단 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에르가니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정말이지 옛날의 그와는 너무도 다르게 변했다고나 할까.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어찌 사람이 이리도 전락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천성이 착하고 이해심이 많은 에르가니아는 지드의 행보에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그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지드 님이 가시면 저도 함께 따라가겠어요.”

    카르발디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정신이오! 저런 한심하고 더러운 작자를 따라간다니 말이오.”

    에르가니아의 태도는 단호했다.

    “아무튼 저는 결심했어요.”

    “정말 미치겠네. 도대체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거요!”

    “바보라니요. 말이 심하군요.”

    “미안하오. 그대의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아 너무 흥분했나 보군요.”

    이내 얌전해지는 카르발디, 이번엔 지드가 그런 그의 행동에 신기하다는 듯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저 녀석 에르가니아에게 단단히 빠져 있었군.’

    한편으로는 에르가니아를 흘끔 쳐다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지드.

    자신의 처지가 이런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믿어 주는 여인이랄까. 정말이지 얼굴과 몸매만 예쁜 게 아니라 마음씨는 더욱 아름다웠다.

    “자! 그럼 우리 내일 당장 갑시다.”

    지드의 외침에 에르가니아 역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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