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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지드 용병단 만세! (24/81)
  • Chapter. 23 지드 용병단 만세!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지드와 대원들은 제5구간으로의 출정식을 앞두고 아카시안과 세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이들은 총관의 저택에 경호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하류검사들이었지만, 현재 그들의 위상은 무공으로 다져온 덕분에 제법 늠름해 보였다. 또한 정신적 가치관 역시 옛날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결의를 다질 줄 알았고 아르게논의 의로운 항거에 동참할 명분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니 말이다.

    사실 지드가 먼저 나서기 전에 이미 대원들 모두는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수장 지노만이 이곳에 남을 것이다.

    지드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가씨와 아이들 옆에 끝까지 남아 있기 위해서였다.

    대문을 나서기 전, 대원들은 아이들과 정이 들었는지 그 누구도 눈물을 글썽이지 않는 자들이 없었다.

    세 남매인 카르와 레드, 그리고 막내 아린 역시 아저씨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거라 여긴 모양이었다.

    그래서 세 남매는 지드의 품에 안겨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가지 마세요. 흑!”

    아린이 계속해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자 대원들은 고개를 돌려 애써 슬픔을 감추었다.

    “반드시 돌아올게. 기다리고들 있어.”

    “맞아, 우리가 뭐 죽으러 가나.”

    그러자 아린이 더욱 크게 울었다.

    “흐아아아아앙!”

    잠시 후 대원들이 대문 밖으로 나가자 이제는 지드가 그들과 작별식을 나눌 차례가 되었다.

    그제까지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카시안이 몹시 슬픈 얼굴을 했다.

    이번엔 아이들이 지드에게 달려들었다.

    “대장 아저씨!”

    “가지…… 가지 마요. 가지 마요.”

    지드 역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하지만 애써 참았다.

    그가 아린을 번쩍 안아들었다.

    “잠깐 갔다 온다는데 왜들 그러니.”

    “거짓말이죠. 저기 아래 전쟁터에서 가는 거잖아요. 흑!”

    “그냥 구경하러 가는 거라니까? 훗, 그 녀석 참.”

    “거짓말!”

    “아니래도 그러네. 으, 못 말리겠다.”

    지드가 아린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이번엔 수장에게 다가갔다. 그나 수장이나 서로 감정이 복받쳐 입술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아가씨와 아이들을 잘…… 부탁합니다…….”

    “그, 그야 물론이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아이고, 어디 멀리 가는 분처럼 그러십니까. 금방 다녀오실 거면서…….”

    수장은 애써 태연한 척 말하려 했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

    이번엔 지드가 아카시안에게 다가갔다. 그녀 역시 지금의 심정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불안한 사람처럼 두 손을 잡고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지드가 말했다.

    “아카시안 님,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녀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반드시 돌아오세요.”

    “그럼.”

    “꼭이요!”

    “…….”

    사실 5구간으로 향하는 길은 거의 승산 없는 전장에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카시안이 모를 리 없었다.

    제아무리 하류 구역의 세력이 클지라도 역사상 제국에 대항해 승리를 거둔 반란군들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번 5구간의 항거에 제국으로부터 대규모 군단이 나서면 승패는 그것으로 끝이 쉽게 끝날 상황이 분명하다.

    물론 반란 가담자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거리에 십자형으로 못을 박히거나 감옥 혹은 유배지에 끌려 갈 것이다.

    “…….”

    지드로서는 아카시안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꼭이요.”라는 말이 왜 그리도 가슴을 후비는지.

    하지만 가야 했다.

    가야만 하는 길이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더 이상 피하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지드는 어렵게, 아주 어렵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아카시안이 그의 뒤를 와락 껴안았다.

    이에 지드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헉!’

    들려오는 그녀의 울먹임.

    “지드 님…… 흑!”

    “네?”

    아카시안은 그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했는지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하는 지드,

    하지만 웬일인지 그녀의 따뜻한 포옹에 가슴과 심장마저 녹아내리는 듯 했다.

    “저, 저기. 이러시면…….”

    “반드시 돌아오셔야 해요. 저는 언제까지 지드 님을 기다릴 거예요.”

    ‘기다리다니.’

    그건 무슨 의미인지. 지드의 생각이 다소 혼란스러웠다. 그저 경호대장으로서 그동안 정이 들어서 마지못해 한 연민의 행동인지, 아니면 자신을 남자로 여겨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말이다.

    그때 그녀가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다시 짧게 한마디 했다.

    “언제까지나요. 영원히…….”

    “아가씨…….”

    그녀가 포옹했던 손을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드는 뒤를 돌아 그녀의 얼굴을 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을 들어서일까. 왜 이리도 마음이 에워지듯 아프단 말인지.

    처음 총관 저택의 경호대장으로서 임무를 시작할 때 그녀의 모든 것이 그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하지만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존재인지라 그 역시 애초부터 속을 닫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벽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카시안…….’

    하지만! 하지만…… 하필 이때에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다니! 아, 하늘도 무심하지지.

    저벅저벅.

    결국 지드는 그대로 대문 쪽으로 향하였다.

    ***

    한편 목조 건물 판자 지붕 위에는 카르발디가 대자로 누워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예상을 깨 버리고 아르게논 진영으로 합류하려는 지드와 그의 부하들, 정말이지 그들이 왜 그리도 한심스럽게 보이는지 다시 성질이 나려 했다.

    “뻔히 타 들어갈 줄 알고도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들이라! 쯧쯧, 용병단 허가증을 어렵게 얻었으면 어디 가서 용병들이나 더 모집할 것이지, 초반부터 승산 없는 싸움에 껴들다니…….”

    그는 결국 지드 용병단에서 탈퇴하기로 마음먹었다. 하기야 정식으로 입단 한 적도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태양빛이 너무 밝은 지 이내 엎드려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영감처럼 계속 꿍얼거렸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에 왜 싸움질들을 하는지. 쳇!”

    휘잉―

    시원한 가을바람이 구릉지에 불어오고 있었다. 지드와 대원들은 주변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숲지대 안쪽에서 놀라운 광경을 봤기 때문이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저 아래 전투 상황을 살펴보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대부분 하류 복장 차림인 걸로 보아서는 다른 구간 떠돌이 용병들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저부 녹슨 칼자루 등은 하나 정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회를 봐 저 아래 5구간으로 합류하려는 것 같았다.

    지드는 속으로 뭉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저 아르게논과 늙은 용병들 그리고 주민들의 용맹한 항거에 마음이 동해 여기로 올라왔는지 몰랐다.

    언제 기회를 봐서 합류하려고 말이다. 하지만 제5구간으로 통하는 길목은 제국군에게 겁겁히 둘러 쌓여 있었으니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개죽음만 당할 것 같았다.

    “대장님, 어떡하죠?”

    1호 비스크가 묻자 지드는 당장 뭐라 말할 대답이 없었다. 그 역시 전투장에는 처음 경험이었고 지휘 능력에 있어서 역시 초짜가 아니던가.

    갑자기 앞에 나서 큰소리로 숲속에 숨어 있는 하류검사들을 불러 모아 진격할 만큼의 말주변도 없어 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갑자기 등위로부터 낮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하류검사! 이게 누구신가.”

    순간 지드와 대원들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지드가 살펴보니,

    “……!”

    그는 지난 용병단 시험 관문 최종 여섯 명에 함께 올랐던 스카페트라는 자가 아니던가.

    그는 전직 이리가시 용병단 돌격대장 출신이었는데, 용병단 창설 허가증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주저 없이 버리고 용병 특별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여 지드와 시험 과정을 함께 한 사이었다.

    “스카페트!”

    “그동안 잘 지냈소?”

    “…….”

    용병 연합회에서 자신을 꽤 업신여겼고 성질마저 무섭게 부렸던 그가 존대어로 나오자 지드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이번엔 스카페트가 5구간 쪽을 꽤 주의 깊게 살펴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그대도 기회를 엿보는 중이오?”

    “기회라니요.”

    “5구간으로의 합류 말이오. 사실 나 역시 오전부터 나와서 여기서 계속 죽치고 앉아 있었소. 어제는 내가 한때 몸담았던 이리가시 용병단이 저곳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억울했던지. 빌어먹을! 나를 빼놓고 가다니!”

    그는 말하다 말고 허공을 향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만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사람들은 꽤 모인 것 같은데 전부 눈치만 보고 있군. 내가 만일 용병단 허가증만 있었더라도 당장 저들을 규합해서 저 아래로 진격해 들어갈 텐데…… 쳇!”

    순간 지드의 눈빛이 반짝 거렸다.

    ‘허가증이라고!’

    바로 그때였다.

    스카페트는 갑자기 뭔 생각이 떠올랐는지 지드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그대는 용병단 허가증을 얻지 않았소? 당시 최종심사에서 흑검사를 물리치기까지 했잖소.”

    “아, 네. 그, 그렇지요…….”

    “그렇다면, 에잇! 뭐 하고 있는 거요! 당장 사람들을 규합해서 내려가지 않고!”

    “그, 그게 말이죠…… 그러니까.”

    “뭘 그리 꾸물거리쇼? 당장 허가증부터 좀 줘 보쇼! 내가 대신 사람들을 모아 볼 테니.”

    “그, 그러죠.”

    지드가 용병단 허가증을 가슴 안쪽으로부터 꺼내서 그에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가 대뜸 물었다.

    “용병단 이름은 뭐로 정했소.”

    옆에 있던 막내 아레스가 재빨리 말했다.

    “지드 용병단입니다!”

    “지드 용병단이라고. 후후, 대장 이름을 따셨구만?”

    지드가 멋쩍은 듯하자 스카페트가 갑자기 진중한 얼굴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받아 주시오.”

    “받아 주다니요?”

    “대장이 허락만 해 준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난 그대의 부하이자 지드 용병단의 돌격대장으로 충성을 다하겠소.”

    “……네?”

    지드가 얼떨떨해 하자 다소 성질 급해 보이는 스카페트가 다시 말했다.

    “시간 없으니 괜한 절차는 삼갑시다. 내 의견에 동의 하는지 아닌지, 예, 아니오로만 답해 주시오.”

    지드가 얼떨결에 답했다.

    “예, 예!”

    그러자 그가 씩 흡족한 듯했다.

    “후후, 고맙소.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나는 이리가시 용병단 돌격대장 출신으로서 이십삼 년 동안 크고 작은 전투만 수백 번은 치른 경험이 있소이다. 나를 뽑아 준 것은, 잘한 선택이오.”

    사실이 그랬다.

    스카페트와 같은 베테랑 돌격대장은 엄청난 거금을 주고도 겨우 데려올 정도로, 모든 용병 단체들이 침을 꿀꺽 삼킬 정도다. 그의 오랜 전장 경험과 노련미를 탐내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자발적으로 가입한다라!

    이건 쌍수를 치켜들고서라도 환영해야 할 판이었다.

    “자! 그럼 당장 시작해 봅시다.”

    그는 말하자마자 냅다 숲 밖으로 나서더니만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숨어 있는 분들 모두 들으시오. 난 지드 용병단 소속으로 돌격대장 스카페트라 하오! 우리는 지금 당장 저 아래 제국 놈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제5구간으로 돌격해 들어갈 생각인데, 지금이라도 용병단과 함께 할 자들은 나서시오!”

    “…….”

    잠시 조용하나 싶더니만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카페트가 다시 외쳤다.

    “다들 나오시오! 그대들 역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여기에 모인 거 다 아니까, 이왕이면 정식 용병단에 합류해서 함께 저들을 도우러 내려갑시다!”

    그러자 누군가 물었다.

    “용병단 이름이 뭐라 했소.”

    “지드 용병단이오.”

    그러자 생소한 이름 탓인지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보는데?”

    “그러게 말이야.”

    “신생인가 보군.”

    “그나저나 저자 말이야, 전에 이리가시 용병단에서 본 것 같은데?”

    “어…… 그러고 보니…… 맞아! 그 유명한 돌격대장 말이야!”

    “그런데 저자가 갑자기 신생 용병단 돌격대장으로 등장하다니, 거참! 이상한 일이로군.”

    “자네들 그 얘기 못 들어봤나? 용병 단체들끼리 유능한 지휘관들을 서로 뺏어 오느라 엄청난 거금이 오간다는 사실 말일세. 아마도 지드 용병단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저자를 고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과연 그의 위상은 용병들뿐만 아니라 하류검사들도 알아 볼 만큼 제법 유명했던가.

    그들 사이에 서서히 호기심이 일어났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이 순간부터 지드 용병단이 되는 거요?”

    “지금 급하니까. 그런 거 저런 거 가릴 것 없이 일단 다들 모이시오. 한꺼번에 가입시켜 줄 수도 있소.”

    가입이라는 말에 그들 사이에 다시 한 번 술렁임이 일었다.

    “가입시켜 줄 수도 있다니요! 대답이 명확하지 않소. 당장 확답을 주시오.”

    저들은 하류 구역 출신의 하류검사들이 분명했다.

    대부분 용병단에 입단 신청을 수십 번이나 냈다가 실력 미달로 떨어졌던 바로 형편없는 검사들 말이다.

    그런데 용병단에 자동적으로 가입된다 하니 이런 급박한 순간에서조차 믿어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저들의 마음은 지드가 너무도 잘 알았던가.

    그가 스카페트에게 말했다.

    “모두 받아 준다고 말하시오.”

    그러자 스카페트가 그대로 말했다. 아니 내용을 조금 덧붙였던가.

    “지금 지드 대장님께서 그대들 모두의 입단을 받아 준다고 직접 말씀하셨소!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대장님은 흑검사를 물리친 아주 대단한 분이오. 자! 뭣들 꾸물거리는 거요. 다들 나오지 않고!”

    구릉지에 길게 뻗어 있는 숲 안쪽으로부터 웅성웅성 대화가 들려왔다.

    “흑검사를 물리쳤대!”

    “세상에나!”

    “그렇다면 엄청난 용병단 같은데?”

    “그나저나 진짜 우릴 받아 주는 건가!”

    “대장이라는 자가 직접 그렇게 한다고 했잖아.”

    “이거 믿어지지 않는데? 내가 드디어 용병단에 가입하다니!”

    잠시 후 숲 안쪽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하류검사들의 규모에 지드와 대원들 심지어 스카페트까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짐작컨대 하류 구역 전 구간의 검사들이 다 모인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저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도 2,000여 명쯤 되었을까?

    ‘세상에…….’

    지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멍해 있었다.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일 이게 평소 때라면 그들 역시 각자 수백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린 수장들일 테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스카페트가 비교적 침착해 보였다.

    “대, 대장님. 생각보다 숫자가 많군요.”

    “그, 그렇군요.”

    “어림잡아 이천 명은 될 것 같은데요.”

    “…….”

    말문을 잇지 못하는 지드, 그에게 스키페트가 뭐라 말했다.

    “일단 여기 바위 위로 올라서서 저들에게 한마디 하시죠.”

    순간 당황하는 지드, 사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는 주저 없이 바위 위로 뛰어 올라섰다.

    홱!

    탁!

    수많은 하류검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집중이 되었다. 흑검사를 물리쳤다는 용병대장이라 그런가.

    그들은 저마다 눈빛을 반짝거리며 나름 기대를 잔뜩 안고 그의 말에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지드는 자신만만하게 바위 위로 올라섰음에도 저들에게 어떤 연설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렸다.

    머릿속으로 많은 말들을 떠올려 봤고,

    머릿속에 한가득 수많은 대사들이 떠올랐지만,

    당장 말하고자 하면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고, 이걸 어쩌지?’

    그가 다소 주저거리자 군중들의 반응 역시 대체 뭔가 하고 여기저기에서 궁금증을 나타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거, 아무 얘기나 해 보시죠?”

    “그러게요.”

    지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하늘이 도왔던가.

    갑작스레 그의 머릿속에 지난번 아르게논과 대화했던 내용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 아닌가!

    ‘아!’

    그저 텃밭을 가꾸려는 노인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그가 아르게논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지드는 당시 아르게논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기로 했고 목소리에 제법 내공의 힘을 잔뜩 실어 우렁차게 말했다.

    “우선 가입을 열렬하게 환영하는 바이오!”

    지드가 입을 열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와!

    짝! 짝! 짝! 짝!

    사방이 잠잠해지자 지드의 본격적인 연설이 시작되었다.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곳 하류 구역 출신이라 할 수 있소. 내 비록 정식 용병단 허가증은 있지만 그저 실리와 이익을 추구하는 그런 속물 집단은 되기 싫어서 이렇게 분연히 일어나게 되었다오! 인간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명예와 권력보다도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고나 할까. 사실 이곳에 머물며 아직은 그게 뭔지 해답을 찾는 중이지만, 결국 여기에다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섰소. 고향이 아닌 세상 밖에서 아무리 승전을 하면 뭐 하겠소!”

    모인 군중들이 맞소, 맞소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드는 말을 이어 갔다.

    “내 원천이자 안식처가 사라진다면 나와 여러분 존재들 역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라오. 자! 모두들 나와 함께 저 아래 혈투를 벌이고 있는 동지들을 구하러 갑시다!”

    순간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와! 와! 와와!

    대원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언제 저렇게 말을 잘했나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고 스카페트 역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건 뭐…… 한두 번 연설해 본 솜씨가 아닌데?”

    ***

    아르게논과 티온은 요새 중앙 망루로부터 진군해 오는 제국 군단의 위용에 기가 움츠려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수도 성문으로부터 또다시 지원 병력이 합류하였으니 어림잡아 5,000명은 되어 보였다.

    저들의 비해 이곳 병력은 옛 폭풍 용병들 700여 명에 지난번 합류한 이리가시 용병단 700여 명, 그리 마을 주민들 2,000여 명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가장을 비롯해 처자식을 포함한 숫자이기에 전투력은 매우 미미하다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는 병력은 도합 2,500여 명 정도랄까. 제국측 병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모자란 숫자였다.

    결국 티온이 탄식을 했다.

    “이제 끝이군.”

    아르게논이 혀를 찼다.

    “자넨 끝까지 부정적으로 말하는군! 쯧.”

    “누누이 말하지만 난 그저 보이는 대로 현실을 말하는 거라네.”

    “때론 그 현실이 틀릴 때도 여러 번 있었잖은가.”

    “이번만큼은 들어맞을 것 같은데?”

    “자네가 아무리 그리 말해도 난 동의할 수 없다네.”

    “물론 그러시겠지, 영웅 양반.”

    “이젠 비아냥거리는 것도 지겹지 않은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아르게논의 모습, 미소 짓는 여유까지 보이자 티온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왜 자네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네. 늙어서도 그놈의 웃는 모습은 잘생긴 청년 못지않게 매력적이니 말일세.”

    “자네도 그런 칭찬을 할 때가 다 있었는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뭔 말을 못하겠나.”

    “…….”

    그날 오후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무렵이었다. 양떼구름이 빨갛게 물들인 장엄한 하늘 위, 그 아래에 자리한 피가 흐르는 대지와 견주어도 딱히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온통 붉은빛 천지였다.

    전쟁의 양상은 늘 그렇듯 제국 병사들의 체계적인 공격 루트가 압도하는 듯 보였고 약자의 편에 선 아르게논과 그의 늙은 용병들은 죽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챙! 챙!

    “동쪽 망루로 용병들을 더 보내주시오!”

    “중앙과 서쪽에도 거의 뚫릴 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악!”

    홱! 홱! 홱!

    푹! 팍!

    “컥!”

    그처럼 용맹하다는 이리가시 용병들도 적들의 어마어마한 대규모 총공격 앞에서는 그다지 맥을 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 역시 필사적으로 막아 내려 했지만 방패 군단의 체계적인 전진 보병공격술에 점차적으로 방어 구역을 내주기 시작했다.

    이미 담벼락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그나마 건물 벽돌로 듬성듬성 쌓은 곳마저 적들이 가까이 닥쳐 왔다.

    중앙 망루에는 아르게논과 티온이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겨우 한숨을 돌리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들은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는지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않았던가.”

    티온의 말에 아르게논은 아직 그의 말에 동조하고픈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직 난 멀쩡한데…… 허허!”

    “이 와중에도 농담이 나오는가. 후우…….”

    “어차피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뜻인데 뭘 그리 불안해하는가. 우린 이미 젊었을 때 폭풍 용병단을 조직해서 대륙을 돌아다니며 원했던 삶을 살지 않았나 이 말일세. 그러니 이제 와서 미련 둘 건 없다고 생각하네만.”

    “우리들이야 그렇지만 여기 하류 구역 주민들이 불쌍해서 그렇지.”

    그 말에 아르게논이 허공을 우러러 탄식의 소리를 내뱉었다.

    “기적이 일어나려면 좋으련만.”

    티온이 인상을 찡그렸다.

    “기적은 개뿔! 우리가 옛 동지를 규합하고 이곳을 살리려 목숨 걸고 싸우면 뭐 하겠나. 정작 여기 주민인 하류검사 작자들은 어디론가 숨어서 쥐새끼들처럼 지켜보기만 할 텐데 말일세. 사실 난 제국 놈들보다도 자신이 보잘것 없다고 스스로 여기는 하류검사 놈들의 습성이 증오스럽다네. 떳떳이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불평불만만 많은 자들 같으니라고!”

    바로 그때였다.

    아르게논은 적들의 후방 뒤편 구릉지로부터 함성을 들었다.

    그리고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다 뿌연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미떼처럼 돌격해 들어오는 엄청난 숫자에 아르게논은 그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저건 뭐야!”

    티온 역시 깜짝 놀라 그곳을 집중해서 살펴보았고 이내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허름한 복장에 각자 녹슨 칼들을 보아하니 하류검사들 같은데?”

    “자네 말이 맞는군. 오호라, 신께서 정녕 내 기도를 들어 주셨단 말인가! 이 두 눈앞에 버젓이 기적이 일어나려 하니 말일세.”

    하지만 티온은 여전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하류검사들이 어찌 저렇듯 똘똘 뭉쳐서 제국군 한가운데로 쳐들어 올 수 있는 거지!”

    언제나 부정적 시각에 사로잡혀 있는 티온, 결국 아르게논이 그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들을 이끄는 지휘관이 똑똑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아마도 대장이 상당한 인물일 게 분명해.”

    “대체…… 누가.”

    정말이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던 제5구간에 기적과도 같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 왔다.

    제국군의 후방을 급습한 지드 용병들의 병력 규모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2,000여 명이 넘었으니 비록 그들의 전투력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급습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래서인가. 거의 함락을 눈앞에 둔 제국 병사들은 자신들의 퇴로가 끊길까 봐 지례 겁부터 집어 먹고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또 급습이야!”

    “대체 후방 부대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지난번 이리가시 용병단의 합류 이후 두 번째 급습에 전진 병사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하지만 아직 대세는 대열을 흩트리지 않고 있는 제국군에게 가 있었다.

    퇴각 신호조차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무려 5,000여 명의 보병 방패 군단은 각 중대장의 명령을 받으며 뒤편으로도 공격 대형을 펼쳤다.

    어차피 승패는 거의 끝날 무렵이었기에 후방 급습에 이은 여파만 막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지휘 본부에는 사령관 카르세크와 참모진들이 현재 급박한 상황 전개를 지켜보며 작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레온과 그의 직속 부하들은 이번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는지 카르세크를 중심으로 그의 뒤쪽으로 호위하듯 당당히 서 있었다.

    레온 역시 급습 사태에 다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르세크가 골치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빌어먹을! 설마하니 하류검사들 따위가 규합해서 뒤쪽을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그는 자기 분에 못 이겨 탁자를 내려치기까지 했다.

    쾅!

    “대체 이까짓 구간 하나 섬멸하는 데 왜 이리도 어렵단 말인지!”

    잠시 후 참모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심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번 이리가시 용병단의 후방 기습 이후 그쪽에서 방패 부대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적들의 병력 수가 예상보다 많지만 그래 봐야 하류검사들이니 별 피해 없이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군.”

    “말씀 그대로 신경 쓰이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던가. 한 장교가 부랴부랴 막사 안으로 들어오더니 급박하게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뭔가!”

    “후방 제1선에 이어 제2선 방어 기지마저 뚫렸고 곧이어 3선마저 위협을 당하고 있답니다. 만일 거기마저 무너지면 적들이 제5구간으로 합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 카르세크와 참모진들 모두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뭣이라! 방어선이 두 개가 그리 쉽게 뚫리다니! 설마하니 하류검사들 따위가 막강한 전투력을 지니기라도 했단 말이냐.”

    “저, 저기 직접 나와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한데요 그들의 선발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선발진이라! 좋다, 내 직접 보겠다.”

    카르세크는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 본부를 나섰고 그 뒤를 레온과 직속수하들 그리고 참모진들이 차례대로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카르세크와 참모진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멀리 한 진형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가는 하류검사 선발진!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자들이 그야말로 강력한 전투력을 앞세워 병사들을 추풍낙엽과도 쓰러트리며 빠르게 전진해 들어가고 있었다.

    파파파팟

    “아악!”

    파팟!

    “욱!”

    삭― 슥!

    “아아.”

    그저 겉으로 보이는 위력도 위력이지만 무엇보다도 기상천외한 전투 기술로 인정사정없이 박살을 내버리는 여러 명의 존재들.

    그들이 닿는 곳에선 방패와 방어 구조물, 심지어 장교들의 철 보호 군장마저 팍팍 찌그러지며 그들을 밟고 숙영 진영마저 통과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제5구간과 합류키 위해 앞으로 진격했고 수많은 하류검사들 역시 그들의 뒤를 따르며 기세를 드높였다.

    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지…… 카르세크는 잠시 멍한 표정이었고 그저 저 멀리 진영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두 눈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저들의 정체가 뭐야.’

    그때 레온이 그의 곁에 가까이 와서는 귀에다 대고 뭐라 속삭였다.

    “혹시 저들을 모르십니까?”

    “모르다니.”

    “지난번 황자님이 첫사랑 아카시안을 만나러 방문했을 때 바로 그 건물에 있던 경호대장과 경호원들 말입니다.”

    그제야 카르세크는 기억났는지 눈빛을 반짝였다.

    “아…… 그렇군.”

    그때 그의 눈에 띄는 자가 있었으니 7호였다. 자신의 젊었을 때 외모와 너무도 닮은 젊은 청년의 모습, 그저 심증이지만 그가 혹시라도 자신의 아들일까 싶어 레온에게 은밀히 뒷조사를 시킨 일이었었다.

    그때 레온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제가 수하들과 함께 저들을 제지할 까요?”

    카르세크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닐세.”

    레온이 의외의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라니요! 그냥 저들을 두고만 보실 겁니까.”

    “저들은 5구간에 합류하기 위해 한쪽 통로만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지. 제국에 대항하는 자들이 자기들이 알아서 5구간에 모두 모이게 될 테니 말일세. 그 다음에 우린 더 많은 지원군을 받고 그야말로 대규모 총공격을 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라 보는데.”

    “아…… 네.”

    레온은 마지못해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을 했다. 지금이라도 부하들과 함께 출동해서 저들의 선발진을 제거한다면 하류검사들 역시 지리멸렬할 테고, 굳이 5구간의 합류조차 허락지 않는 상황이건만…….

    아무래도 주군은 저들을 방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만 같았다.

    ‘굳이 나두어야만 할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카르세크는 레온의 굳은 얼굴을 보고 결국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이보게, 레온.”

    “네, 수장님.”

    “자네에게 확실히 말해 둠세. 저기 7호라는 젊은 청년 말일세. 아무래도 내 아들 같다는 생각이 드네만.”

    그제야 레온이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일전에 저자에 대해 신상 조사를 명하셨고요.”

    카르세크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그건 어떻게 되었나.”

    “그 건이라면 이미 본부에 있는 정보원들에게 시켜 놓았습니다.”

    “여하튼 내가 말한 청년에 대해 인적사항이 나오면 곧바로 알려 주게나.”

    “알겠습니다.”

    붕!

    “아악”

    “컥!”

    1호 비스크가 그 큰 도끼를 한번 휘둘러 치면 병사들 대여섯 명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부법을 연공한 지 어언 2년 만에 패도적인 경지에까지 오른 그는 이번만큼은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치열한 백병 전투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은 기분이랄까.

    “물러서라! 앞을 막아서는 놈들은 모두다 절단을 내주겠다!

    붕!

    “억!”

    2호 게리의 창법(槍法) 역시 가히 예술적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대원들 중에 제일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유자, 그런 신체적인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 처음부터 창을 택했던 그의 결심은 지금에 이르러야 결실을 맺는 것 같았다.

    긴 잿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기다란 은빛 창이 허공을 수십 수백 쪽을 가를 때 여기저기에서 피분수가 일어났다.

    파파파팟!

    “컥!”

    파! 팟!

    “칵!”

    3호, 4호, 5호, 6호 사대천왕은 마치 두 개의 조를 이루듯 두 사람 앞서 치고 나가면 다른 둘이 그 앞으로 공격해 들어가면서 엎치락뒤치락 저들끼리 경쟁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그러한 공격 기술은 사전에 철저히 짜인 일종의 매화진행보란 전진 공격 형태로서, 이런 전쟁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쓰이는 화산파 진법의 일종이었다.

    “형님! 앞에서 너무 끌지 마요! 그러다나 진법이 흐트러지면 어떡하라고요.”

    “알았어! 조심하지.”

    언제나 그렇듯 죽이 척척 맞는 사대천왕이랄까. 그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꽤 시끄럽게 으르렁거리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7호 이든과 8호 아레스였다.

    휘잉

    슥삭! 슥삭!

    7호는 검을 휘둘러 칠 때마다 신기하게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적들의 망토가 펄럭일 정도로 제법 강풍이었는지라, 그 틈을 이용해 쾌검으로 적들을 무수히 베어 나갔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깎아 내리려는 사람이 있었으니 아레스였다.

    “형님의 광풍검법(光風劍法)이 왜 그리 약해지셨소. 요즘 피죽도 못 먹은 거 아니오?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힘이 느껴지지 않냐 이 말이지!”

    우웅!

    팍! 쾅!

    “악!”

    아레스의 천류검법(天流劍法)은 한자어로 하늘의 기류를 이용하는 검법서이다. 아레스는 원래 마법에 관심이 많았는지라 나름대로 포스의 매개체를 연구하여 왔고, 같은 맥락인 이 검법에 접목시켜 나름 괜찮은 결과를 얻은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공간 에너지를 모은 다음 지면을 내리치면 떵이 갈라지고 그 충격으로 적들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검술로서 물론 그 원조는 천류검법이라 할 수 있었다.

    “보셨소!”

    아레스의 건방진 말투에 이든이 인상을 찡그렸다.

    “겨우 그 정도 실력 가지고 감히 나를 내리까다니, 가소로운 녀석!”

    “물론 그러시겠죠.”

    “시끄럽다. 지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투인데 네 놈하고 잡담할 시간 없다고.”

    휘잉―

    삭! 슥! 삭! 슥!

    그가 검을 휘둘러 치자 여지없이 강풍이 일어났고 쾌검이 여기저기에서 번쩍거렸다.

    “아아아!”

    사실 하류검사 선발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자는  그야말로 강함이요, 현란함과 위력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지드였다!

    그의 전투력은 가히 신비롭다고나 할까.

    숙영지의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묵직한 발걸음은 가히 일당백의 무적 검사와 다를 바 없었다.

    휘이잉!

    파파파팟!

    사방 천지 무수한 매화 환영에 이어 강력한 파공음이 들릴라 치면 수십 명이 피를 토하고 고꾸라졌다.

    그들은 5구간의 죄 없는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무참히 학살한 주범들인 만큼 지드는 살수를 펼치면서도 일말의 흔들림이 없었다.

    파! 파! 파! 팟!

    “아아악! 살려 줘.”

    피를 뒤집어 쓴 채 현철중검을 마구 휘둘러 대는 그의 모습은 흡사 방금 지옥으로부터 강림한 사자와도 같았다. 대원들 역시 다를 바 없었다.

    5구간으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속전속결로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다.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배고 또 베며 전진만 할 뿐이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 돌격대장 스카페트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뒤를 따라갔다. 대체 지드와 그의 부하들은 어느 세상에서 왔단 말인가.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강력한 검술을 시전하며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 주니 말이다.

    ‘대체 이자들, 진짜 정체가 뭐지.’

    지드와 대원들의 뒤를 따라는 수많은 하류검사들 역시 자신들의 새로운 용병대장의 활약에 고무되어 엄청난 기세로 당당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제국의 숙영 진형을 당당히 통과하고 있음에 결국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함성마저 질렀다.

    “지드 용병단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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