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혼돈의 정령왕
혼돈의 정령왕
로얀은 허공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크크큭.”
스팟.
괴이한 웃음을 짓던 로얀의 모습이 허공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더니 천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헛!”
슈아아앙!
그의 등장에 천신은 빛의 무구를 즉시 움직였다.
빛의 무구는 맹렬히 회전하며 로얀을 향해 날아갔다.
피식.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빛의 무구를 보는 로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손을 들어 빛의 무구를 잡아버렸다.
턱.
가가가각!
“어, 어리석... 헉!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파지지지직!
로얀의 행동을 비웃으며 말을 잇던 천신은 숨이 멈출 듯한 충격을 받았다.
로얀의 손에 붙잡힌 채 맹렬히 회전하던 빛의 무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로얀의 손에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며 빛의 무구를 휘감았다.
쾅!
뒤이어 들려온 폭발음.
빛의 무구의 찬란한 파편이 바람에 휘날렸다.
“크크크큭.”
“이, 이런 말도 안.......”
퍼어억!
콰가가강!
“꾸어억!”
말을 떠듬거리며 말을 하던 천신은 결국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로얀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입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로얀의 주먹에서 천신이 느낀 무게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그 주먹을 맞은 천신은 피를 뿜으며 마계의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 루시퍼는 어둠의 무구를 휘둘렀다.
그의 눈에 잡힌 것은 로얀의 뒷모습이었다. 등 뒤를 노려 기습 공격을 하려는 것이었다.
스가가각!
“큭큭.”
스팟!
하지만 어둠의 무구가 쏘아내는 검기의 다발은 허공을 할퀴었다. 로얀이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턱.
흠칫.
로얀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루시퍼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느낌과 자신의 팔을 붙잡는 누군가의 손길에 몸을 떨며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그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어둠의 무구를 쥐고 있는, 자신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는 로얀의 팔을 볼 수 있었다.
우두둑.
루시퍼의 팔을 움켜쥔 로얀의 손에 박혀 있는 힘줄이 불끈거렸다.
우둑!
“끄아아악!”
그리고 루시퍼의 팔이 붉은 피를 뿌리며 뽑혀져 나왔다.
사람의 팔을 한 팔로 뽑을 정도의 엄청난 괴력을 선보인 로얀이었다.
어둠의 무구를 쥐고 이는 팔이 뽑힌 루시퍼는 붉은 피를 철철 흘리며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큭큭큭.”
로얀은 손에 들려 있는 루시퍼의 팔과 그 팔에 있는 어둠의 무구를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빛에 반응하듯 로얀의 몸에서 검은 기류가 휘몰아치며 손에 들려 있는 루시퍼의 팔과 어둠의 무구를 휘감았다.
콰지지직!
콰하하항!
펑!
그렇게 어둠의 무구도 빛의 무구와 마찬가지로 처참히 부서져 내렸다.
검은 가루를 뿌리며 어둠의 무구는 루시퍼의 붉은 피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크으윽.”
바닥으로 추락했던 루시퍼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키고는 괴이한 웃음을 흘리는 로얀을 바라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족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저 괴물을 죽인다! 전원 공격하라!”
화아아앗!
루시퍼의 명이 마계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모든 마족들이 검은 박쥐 날개를 퍼덕이며 로얀을 향해 날아올랐다.
츄아아앙!
츄아아앙!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는 로얀의 양손에 검이 솟아 나왔다. 그의 양손의 손등에서 솟아 나온 검날은 각각 흑빛의 검신과 백광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모두 돌격!”
슈아아앙!
마족들이 머뭇거리자 최고위급 마족이 우렁차게 외치며 날아올랐다. 다른 모든 마족들이 일제히 그의 뒤를 쫓아 로얀을 향해 돌진했다.
“크크크크. 크하하하!”
그 모습을 보는 로얀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두 손을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미친 듯이 웃었다.
스가가가각!
콰지지직!
그의 양손에서 검은 기류의 검기 다발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어둠의 무구가 펼치던 그 괴이한 기술이었다.
하늘엔 로얀이 만든 검기의 거미줄이 쳐졌다. 그 거미줄에 걸린 마족들은 갈기갈기 찢어지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멀리서 본 마족들의 죽음은 곤충이 바람에 찢기는 듯했다. 검은 날개와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물러나는 이가 없었다. 두려움이 없기로 소문난 마계의 용맹한 마족들답게 그들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로얀을 달려들었다.
“크하하하!”
마족들이 그럴수록 로얀의 웃음소리는 커져갔다.
그때 루시퍼가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뒤를 다른 마족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강한 마기를 뿜어내는 이들이 뒤따랐다. 마계의 신이라 할 수 있는 마왕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으드득.
가장 먼저 로얀에게 주먹을 얻어맞고 마계의 바닥으로 추락했던 천신이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천계에 있는 대천사장에게 명했다.
[지금 즉시 모든 군을 이끌고 마계로 와라.]
[정령왕들이 모두 풀려났는데, 전쟁을 벌이시는지요?]
[닥쳐라! 명령이니 아무 소리 말고 어서 와라!]
천신은 이를 갈며 천천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얼굴을 주먹으로 얻어맞고 마계의 바닥을 구른 것도 더할 나위 없는 치욕이었지만, 그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빛의 무구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스거거걱!
콰지지직!
크아아악-!
섬뜩한 살 베이는 소리와 마족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마계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게이트 앞에 있던 발록들은 수장인 파라무트의 명대로 마족들을 억지로 끌고 로얀에게서 멀리 떨어져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 중엔 로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파라무트도 끼어 있었다.
게이트 앞의 다크로드는 로얀의 모습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모습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어둠의 정령들이 그와 같은 심정이었다. 왕을 공격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느새 하늘로 다시 날아오른 천신은 루시퍼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을 느낀 루스퍼는 팔이 잘린 곳에서 철철 흘러나오는 붉은 피를 바라보았다.
으드득!
루시퍼는 이를 악물며 손에서 붉은 화염을 일으켰고 팔이 사라져 피가 흐르는 곳으로 손을 가져갔다.
치지지직!
고통에 찬 신음성이 흘러나오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며 상처를 불로 지져 버린 루시퍼는 천신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꽈악.
루시퍼는 왼손에 어둠의 힘을 집중했다.
빛의 무구를 잃은 천신은 두 손에 환한 빛무리를 생성시켰다.
스윽.
두 사람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꽂혔다.
“크크큭.”
그들의 시선이 꽂힌 곳에 있는 이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마족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있는 루얀이었다.
스윽.
그들에게서 잠시 시선을 옮기며 천신과 루시퍼는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로얀을 향해 날아갔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사건. 천계의 천신과 마계의 루시퍼가 힘을 합친 것이었다.
정령왕들을 가두기 위해 음모를 꾸민 전례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천신과 루시퍼가 힘을 합친 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대사건이다.
천신과 루시퍼는 온 힘을 끌어올렸다. 로얀을 향해 날아가는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빛과 어둠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스가가각!
“크아아악!”
그 와중에도 로얀은 달려드는 마족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던 마족들이 그의 손에 하나둘 죽자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거대한 빛과 어둠의 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큭큭큭.”
로얀은 달려드는 둘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온 힘을 끌어올리며 합심하여 달려드는 천신과 루시퍼를 그는 너무도 느긋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느긋하다 못해 장난기 어린 미소까지 그려져 있었다.
슈아아앙-!
콰하하항!
하지만 로얀의 생각과는 달리 천신과 루시퍼는 역시나 신들의 왕답게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단지 로얀이 일말의 신음소리를 조금도 내지 않았을 뿐이지 빛과 어둠의 두 힘에 몸이 뒤로 쭈욱 밀러나고 있었다.
가가가각!
두 빛 무리는 로얀의 몸을 들이받았고, 그대로 뒤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콰과과곽!
이 정도라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죽어야 했지만 로얀은 태연히 빛과 어둠의 힘을 감당해 내고 있었다. 마치 느긋하게 안마를 받는 듯한 모습이었다.
콰가가각!
빛과 어둠의 힘은 결국 로얀을 정령계, 마계, 천계가 하나로 모이는 중심까지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로얀과 천신, 루시퍼가 마계를 떠났고, 마계에 있던 이들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명의 정령왕이 먼저 급히 로얀의 뒤를 쫓았다. 그 뒤를 마족들이 뒤 쫓았고, 뒤이어 다크로드가 어둠의 정령들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마계에 남아 있는 파라무트와 발록들은 남아 있는 마족들을 확인하며 그들을 대피시켰다.
마계를 둘러보며 로얀과 싸움을 했던 이들 중 살아남은 이가 있는지 찾아보던 파라무트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로얀과 조금이도 가까이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 갈기갈기 찢겨진 채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파라무트의 입에서 더욱 깊은 한숨이 나오게 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그건 바로 게이트를 통해 건너온 드래곤 로드와 수백의 색색 깔의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은 넘어온 즉시 멀리 사라지는 로얀과 천신, 루시퍼, 그리고 그들을 따라가는 존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뒤 쫓아 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드래곤들을 보며 파라무트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하~. 그 환상대로라면 브레스의 소나기가 내리겠군. 아니지, 피의 소나기가 먼저 내리려나? 멍청한 드래곤들이 자기 무덤을 파는구먼. 쯧쯧쯧.”
혀를 차며 파라무트는 다시 하늘을 날아올랐다. 하필이면 마계에서 싸움이 벌어졌기에 마계의 피해가 심각했다.
* * *
“크크크크.”
“흐아아압!”
로얀을 쭈욱 밀고 가던 천신과 루시퍼는 그가 상처 하나 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자 이를 악물며 온 힘을 퍼부었다.
콰하하항!
대지를 울릴 정도로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빛과 어둠이 어우러져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섭도록 강한 파괴력을 표출했다.
그들의 협공은 마검과 성검이 만났을 때 일으키던 폭발과 같은 원리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검이 일으키는 폭발과 그들이 일으킨 폭발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강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폭발음과 함께 퍼진 섬광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악, 하악, 끝났나?”
“헉헉, 끝났겠지. 크흐흑.”
천신과 루시퍼는 숨을 헐떡이며 로얀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크하하하하!”
그때 웃음을 흘리던 천신과 루시퍼의 표정을 싹 바꾸는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서, 설마!”
“크크크.”
섬광 속에서 드러난 로얀은 상처라곤 티끌만큼도 입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괴기한 웃음을 흘리며 천신과 루시퍼를 바라보았다.
로얀은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콰하하항!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거대한 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콰하하항!
로얀을 향해 날아오는 검붉은 화염덩어리는 단숨에 그를 삼켜버릴 듯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로얀은 천신과 루시퍼의 공격을 받아내던 때와 마찬가지로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화염은 로얀의 몸과 부딪혔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역시나 로얀은 전혀 상처를 입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었다.
[자네 미쳤는가!]
그리고 그때 그에게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급히 뒤따라 온 드래곤 로드의 것이었다.
드래곤 로드와 드래곤들을 본 천신과 루시퍼의 얼굴이 환해 졌다. 둘은 일단 그들의 뒤로 몸을 피했다.
드래곤 로드는 천신과 루시퍼의 협공을 받아낸 로얀이 자신의 브레스를 받아낼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로얀의 행동을 저지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자네 대체.......]
콰하하항!
로얀과 대화를 시도하려던 드래곤 로드는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덮치는 거대한 화염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흡!]
자신의 초고온의 화염 브레스를 잘 받아 넘긴 드래곤 로드는 로얀을 바라보았다.
그는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손을 들어올린 채 괴이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로얀을 말이다.
로얀을 보며 대화를 하려던 드래곤 로드는 망설였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그런 드래곤 로드를 보며 블랙 일족의 수장이 큰 소리로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곤 외쳤다.
[모두 공격하라!]
카엔으로 인해 블랙 일족은 망신을 당했다. 그 원인은 로얀에게 있었다. 로얀은 블랙 일족의 원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였다.
그들에게 이 순간 로얀이 정령왕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자존심을 박살내놓은 상대를 합법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뿐이다.
이미 마계와 천계에서도 그를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아, 안 돼!]
하지만 드래곤 로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로얀을 공격하는 것을 급히 말렸다. 그는 로얀의 상대의 기술을 복사하는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족 모두가 브레스를 쏜다면 그 대가는 드래곤족의 멸족에 이르는 타격일 것이다.
콰하하항-!
쿠하하항-
허나, 드래곤 로드의 절규 어린 외침으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었다. 이미 블랙 일족의 모든 드래곤들이 브레스를 쏘았기 때문이었다.
콰하하항-!
블랙 일족에게 지지 않으려 다른 드래곤들도 경쟁하듯 브레스를 쏘았었다.
콰하하항-!
그들이 쏜 브레스가 하늘을 가득 메우며 로얀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브레스의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콰하하항-!
콰쾅-!
브레스는 로얀과 부딪히며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갖가지 브레스가 로얀을 덮쳤다.
그렇게 일어나는 폭발음은 한동안 쭈욱 이어졌다.
드래곤들은 로얀이 입었을 피해를 기대했다.
천신과 루시퍼가 힘을 합쳐도 그에게 티끌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못했는데, 자신들의 브레스에 그가 없앤다면 드래곤들의 입지가 더욱 높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콰가가강-!
[크아아악!]
[커어억!]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드래곤족의 드높은 위상이 아니라 잔혹한 학살과 고통에 찬 신음성이었다.
더욱 강해지고 배로 불어난 브레스의 비가 드래곤들을 덮치고 있었다.
그 비는 로얀에게서 시작되었다. 그의 몸 주위에서 브레스들이 빛과 함께 쏟아져 나오며 드래곤들을 덮치고 있었다.
로얀이 드래곤들의 브레스를 모두 맞은 뒤, 그들의 브레스를 복사해 그대로 되돌려 주고 있는 것이었다.
드래곤들이 쏜 브레스의 비가 가랑비라면 로얀이 쏜 브레스의 비는 소나기를 뛰어넘는 폭우였다.
콰가가가강-!
크아아악-!
브레스를 연타로 맞은 드래곤들이 하나둘 피를 뿌리며 추락해 갔다.
그들은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밑으로, 밑으로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드래곤 로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멸족당할 순 없었다.
[모두 급히 퇴각한다! 물러나라!]
콰하하항-!
크아아악-!
드래곤 로드는 쏟아지는 브레스를 막으며 그렇게 외쳤다. 드래곤들은 하나둘 뒤로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허나, 이미 같이 왔던 드래곤족의 반 이상이 브레스의 폭우 속에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드래곤족이 그렇게 물러나자 루시퍼는 자신을 따라온 마왕들과 마족들과 함께 다시 로얀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했다.
탁.
그때 상황히 급박하게 돌아가자 잠시 로얀이 벌이는 싸움에 한눈을 팔고 있던 실피드의 팔을 뿌리치며 엘라임이 로얀을 향해 날아갔다.
로얀은 물러가는 드래곤들을 보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엘라임을 보며 그녀가 혼자이자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둘렀다.
“이런!”
그 모습을 보며 이프리트가 급히 몸을 움직였다. 엘라임의 몸을 뒤덮는 검은 검기의 다발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화르르륵.
콰하하항!
이프리트의 팔에서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며 폭사해 나갔고 엘라임을 덮치던 검은 검기의 다발과 부딪혔다.
이프리트가 화염으로 로얀의 공격을 막으며 엘라임을 뒤로 물러나자 로얀이 그 모습을 보며 붉은 혈광을 빛냈다.
“크크큭.”
스팟!
달려드는 마족을 죽이는 것보다 화염을 쏘아 보내며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이프리트에게 흥미가 동한 것이었다.
“읏.”
갑자기 나타난 로얀으로 인해 놀랄 틈도 없이 이프리트는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스릉.
퍼억!
“커헉.”
로얀의 손에 솟아 있던 검이 다시 그의 팔 속으로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그의 오른 손이 이프리트의 복부 깊숙이 박혀들었기 때문이었다.
퍼억.
로얀은 연이어 이프리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그 힘에 이프리트는 밑으로 추락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연인인 실피드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멍하니 로얀의 이름만을 부르고 있는 엘라임을 향해 날아갔다.
턱.
그리고 그녀의 팔을 붙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그 모습을 목격한 로얀이 몸을 날리려 할 때 그의 등 뒤로 환한 빛의 소나기가 떨어져 내렸다. 어느새 천신의 부름을 받고 이곳으로 온 천족이 천신과 함께 로얀을 향해 빛의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슈아아앙-!
콰가가가강-!
실피드와 엘라임을 목표로 삼고 있던 로얀은 갑작스런 천신과 천족의 공격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뒤돌아 눈 안 가득 메워진 빛의 화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오오오!
그의 손끝에서 검은 기류가 휘몰아쳤고 그곳으로 빛의 화살이 떨어져 내렸다.
콰가가가강!
작렬하는 빛의 화살이 내는 섬광이 마계에 있는 이들의 시야를 가렸다.
쿠오오오-!
그리고 천천히 드러난 시야 속에 로얀의 모습이 보였다.
“크크큭.”
괴이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며 그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상처라곤 역시나 티끌만큼도 입지 않은 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켰다.
“어, 어떻게!”
천신은 너무도 놀라 손을 들어 로얀을 가리키며 부르르 떨었다. 그런 천신을 올려다보며 로얀은 손을 뻗었다.
후우우우웅!
그리고 그의 몸 주위로 빛의 화살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개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빛의 화살이 끊임없이 생성되었다.
슈아아아앙-!
로얀의 주변에 생성된 빛의 화살은 천족이 쏘아 보낸 빛의 화살이 가랑비처럼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폭우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지면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내리는 빛의 폭우였다.
콰가가강!
잔인할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동반한 빛의 화살은 천족들이 펼친 방어벽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쏘아져 오는 빛의 화살 때문에 그 방어벽은 오래가지 못한 채 뚫려버렸다.
방어벽을 부순 빛의 화살은 천족의 몸을 관통했다.
“크아아악!”
콰가가강!
“으득.”
천신은 빛의 화살로 인해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자신의 옆으로 떨어져 내리는 천사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크아아앗! 모두 돌격하라!”
결국 격분하다 못해 평정심을 잃은 천신은 외침에 그의 명을 받은 천족은 로얀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 저놈을 향해 돌격하라!”
그리고 지켜보고 있던 루시퍼도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며 마족들에게 명을 내렸다.
하늘을 가득 뒤덮은 천족과 마족들은 저마다 함성을 지르며 로얀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아아앙!
그렇게 로얀은 양쪽에서 천족과 마족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여유로워 보였다.
씨익.
오히려 진한 웃음까지 그려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천족과 마족을 보며 로얀은 천천히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팔에서 검은 잔상이 흘러내렸다. 그 잔상의 정체는 검은 기류였다.
마기도 아닌 것이 검은 연기 같은 그 기류는 로얀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든 천족과 마족을 휘감기 시작했다.
“쿡쿡, 크하하하하!”
스가가가각!!
콰가가각-!
그리고 이어진 광경은 너무도 참혹했다.
검은 기류에 휩싸인 천족과 마족은 갈기갈기 찢기며 바람에 휘날려 떨어져 내렸다.
대지에는 때아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붉은 피가 비가 되어 정령계, 마계, 천계가 한곳에서 만나는 이 세계 위에 적셔졌고, 천족과 마족의 갈기갈기 찢겨진 시체가 한데 어우러져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악-!”
“끄아아악-!”
천족과 마족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들의 고통에 찬 음성 뒤에 로얀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뒤이었다.
“크하하하하!”
얼마 지나지 않아 로얀을 향해 달려들던 천족과 마족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어 버렸다.
로얀의 무자비한 학살 때문이었다.
휘오오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이 줄어들자 로얀의 몸을 감싸고돌던 검은 기류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제 하늘에 남은 것은 아주 적은 수의 천족과 마족, 천계의 신들과 천신, 그리고 마계의 루시퍼와 마왕들뿐이었다.
* * *
로얀이 미쳐 날뛰고 있을 때 그의 몸엔 그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텅 빈 껍데기뿐인 그의 몸. 그는 자신의 몸속에 잠을 자고 있었다. 로얀은 어둠 속에 둥둥 뜬 채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나의 후손이자 혼돈의 정령왕인 다크로얀이여.]
그런 로얀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로얀은 그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이 딱 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나의 후손이자 혼돈의 정령왕인 다크로얀이여.]
그 기이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지?’
그리고 그때 잠을 자고 있던 로얀은 정신이 천천히 드는 것을 느꼈다. 잠이 완전히 깬 것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만나는 것은 이것으로 두 번째 만남인가? 나는 전대 혼돈의 정령왕이다.]
로얀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 목소리가 답을 해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로얀이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진득한 어둠 속에서 만난 혼돈의 정령왕의 것이었다.
‘당신은 소멸한 것이 아니었나?’
[나는 마지막 남은 기억의 파편.]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대 혼돈의 정령왕이 로얀의 몸에 걸린 봉인이 모두 풀렸을 때 그가 폭주할 것을 염려해 두고 남겨둔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로얀에게 항상 그가 뭔가를 궁금해 할 때 머릿속으로 답해주던 기억의 파편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이것을 남겼었다.
그 마지막 파편이 지금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는 나와 같은 절차를 밟지 않길 바랐거늘.]
‘무슨 뜻이지?’
지금 정령계, 마계, 천계가 만나는 곳에서 자신이 폭주하여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로얀은 전대 혼돈의 정령왕의 말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은 그대의 모든 봉인이 풀려 결국 폭주를 하고 말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로얀이 생각하기에 그의 정신은 말짱했다.
[그대는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있는가?]
들려오는 물음에 로얀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대는 지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대를 깊은 잠 속에서 잠시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럼 지금 내 몸은.......’
[과거 나와 마찬가지로 오직 파괴만을 원하며 움직이고 있겠지.]
그 말과 함께 로얀의 머릿속으로 지금 로얀이 벌이고 있는 피의 전쟁의 모습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대체.......’
로얀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은 분명 여기에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자신은 대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눈에 밟힌 것은 엘라임의 모습이었다.
엘라임은 실피드의 손에 꽉 잡힌 채 로얀의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로얀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 로얀의 머릿속으로 다시 전대 혼돈의 정령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나는 완전히 소멸한다. 더 이상 그대의 정신을 붙잡아 둘 수가 없다.]
‘무슨 소리지?’
[내가 사라지는 순간 그대는 깊은 잠에 빠질 것이고, 이 차원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어, 어떻게 하면 되지! 내, 내가! 어떻게 하면!’
로얀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흥분해 외치며 전대 혼돈의 정령왕에게 답을 요구했다.
[나 또한 폭주에서 잠에서 깨어난 것은 이미 모든 것이 종결된 뒤였기에 나 또한 알지 못한다.]
‘그, 그러면.......’
[그대 스스로 깨어나라. 그대 스스로 일어나라! 내가 해줄 말은 그것뿐이다.]
‘.......’
[시간이 없군. 묻겠다. 그대는 진정 깨어나길 바라는가?]
‘물론이다!’
[왜지? 이대로 잠든다면 고통도 없이 슬픔도 없이 편안히 꿈꿀 수 있을 텐데.]
‘훗날 꿈에서 깨어났을 때 본 것이 끝없는 악몽이라면....... 차라리 깊은 잠 속에서, 깊은 어둠 속에서 악몽을 겪는 것이 낫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가 나를 향해 웃어준다면 그 모든 것이 씻기겠지.’
[.......]
‘꿈은 꿈일 뿐이다.’
[진심으로 돌아가길 바라는가?]
‘물론!’
[그대의 결심이, 그대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라. 그대의 마음이 곧 그 모든 것을 억누르는 권능이 될지어다.]
‘그런 복잡한 건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일 초라도 빨리 엘라임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원했던 만남은 이와 같은 피 속에서 그녀를 만나는 게 아니었으니까!’
로얀의 외침이 울려퍼졌지만 전대 혼돈의 정령왕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 * *
주르륵.
로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엘라임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몸을 돌려 자신의 팔을 꽉 붙잡고 있는 실피드의 손을 잡았다.
“실피드. 날 보내줘.”
“.......”
실피드는 말없이 엘라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프리트가 어느새 다시 날아올라 그들의 옆에 서서 실피드의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그에 따라 실피드의 손이 엘라임의 팔에서 떨어졌다.
엘라임은 자신의 팔을 놓아준 실피드를 향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로얀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를 다시 잡으려는 듯 실피드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이프리트의 손에 붙잡혔다.
“하지만! 조금 전에 봤잖아! 그는 엘라임의 목소리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어! 다가가는 즉시 죽이려들 거라고!”
“아니, 그 녀석은 결코 엘라임을 죽이지 못할 거야.”
실피드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이프리트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화아앗.
실피드의 손에서 벗어난 엘라임은 로얀은 향해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의 움직임을 눈치 챈 로얀은 팔을 크게 휘저었다.
슈아아앙!
그의 움직임에 검은 기류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엘라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츄아아악!
그 칼날은 엘라임의 몸 주위에 생성된 물의 장벽에 가로막혀 무산되어 버렸다.
스윽.
자신의 공격을 감히 가로막은 엘라임을 바라보며 로얀은 몸을 날렸다. 직접 다가가서 없애기 위함이었다.
스팟.
흠칫.
팟!
하지만 엘라임의 바로 눈앞에 당도했던 로얀은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며 급히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다가오는 엘라임을 바라보는 로얀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엘라임이 자신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리고, 괴이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 엘라임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전에 엘라임을 없애고자 멀리서 검은 기류를 생성시켰다.
“로얀.”
흠칫.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가 생성시킨 검은 기류는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스윽.
그렇게 엘라임은 천천히, 천천히 로얀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바로 눈앞에 마주 보고 섰다. 가느다란 그녀의 팔이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짜악.
엘라임의 하얀 손이 로얀의 뺨을 때렸다.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은 경악했다.
로얀의 고개는 조금도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던 로얀이 엘라임의 일격을 그대로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던 것도 아니었다. 아니, 평범한 인간 여인이 가볍게 휘두른 것만 같은 움직임이었다. 허나, 로얀은 그 공격을 그대로 허용했다. 시원스런 소리가 마계, 천계, 정령계 할 것 없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만큼 그 소리는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온 것이었다. 그 소리 하나로 이 세계는 침묵의 도가니가 되었다.
엘라임은 자신이 때린 로얀을 뺨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크르륵.”
엘라임이 자신의 뺨을 쓰다듬고 있을 때 로얀의 붉은 안광이 크게 흔들거렸다. 그리고 엘라임의 가는 손이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그녀가 그의 품에 안겼을 때 그의 눈동자가 정지했다.
와락.
“사랑해. 로얀도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돌아와 줘. 우리 이제 그만 슬퍼하자. 우리 이제 그만 아파하자.”
로얀의 품속에 안긴 엘라임은 흐느끼고 있었다. 평소 차갑기로 널리 알려져 있던 그녀가 뜨거운 눈물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스윽.
가늘게 떨리는 엘라임의 몸을 로얀의 팔이 천천히 들어올려... 껴안았다.
“엘라임, 엘라임, 엘라임.”
초점이 정지한 눈동자로 로얀은 멍하니 엘라임의 이름만 불렀다. 그의 손톱이 줄어들었고, 그의 손등에 솟아나 있던 다크리온과 에리오네가 사라졌다.
기괴한 음성으로 엘라임의 이름을 말하는 로얀의 이름도 점차 변화되어갔다.
“엘라임, 너무 만나고 싶었어. 너무...... 사랑해. 미치도록 사랑해.”
마지막 음성을 흘리는 로얀의 음성은 너무도 또렷했고 맑았다. 그렇게 차원계를 뒤흔들던 괴물이 사라져 버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잔뜩 긴장했던 많은 이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장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은 천계의 천신과 마계의 루시퍼였다.
천신은 비틀거리며 하늘 위에 가까스로 서 있었고, 루시퍼는 잘린 팔에 손을 가져가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