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풀려진 봉인 (40/42)

7장 풀려진 봉인

풀려진 봉인

로얀을 돕기 위해 룬을 찾은 페어리족의 여왕 레아는 드래곤 로드를 통해 모든 자초지종을 들었고, 급히 정령계로 들어갔었다.

그 모든 것이 로얀이 봉인을 풀면 바로 정령왕들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도 엘라임에게 로얀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봉인이 풀리기도 전에 로얀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슈아앙.

정령왕이 사라져 버린 정령계는 혼란스러웠다. 정령왕이 없는 정령계는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최상급 정령들과 상급 정령이 날뛰는 중급과 하급의 정령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급 정령과 중급 정령의 수는 최상급 정령과 상급 정령의 수를 훨씬 넘기 때문이었다.

최상급 정령과 상급 정령은 날뛰는 정령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리 저리 돌아다녔고, 중급 정령과 하급 정령들은 그들이 분주히 움직이든 말든 정령계를 누비며 날뛰었다.

콰르르릉!

쏴아아아!

천둥이 치고 대지가 솟아올랐다. 불의 비가 내리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에 봉인되어 있는 거야?”

작은 날개를 퍼득이며 레아는 정령계의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불의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다시 날아오르기도 했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정령계를 누비던 레아에게 너무도 반갑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아님?]

“앗! 실레스틴!”

레아에게 말을 거는 이는 바람의 정령이었다. 바람의 최상급의 정령 중에서도 바람의 정령왕인 실피드의 보좌관이라 할 수 있는 정령인 실레스틴이었다.

실레스틴은 실피드와 함께 레아를 몇 번 만난 적이 있기에 레아를 금방 알아차렸다. 정령계에 있는 실레스틴 중에서 유일하게 레아를 아는 이였다.

“마침 잘 만났어! 실피드 언니와 다른 정령왕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날 좀 데려다줘. 어서!”

레아의 다급한 표정을 바라보며 실레스틴은 말했다.

[어서 제 등에 올라타세요.]

거대한 새의 형상을 한 실레스틴이 등을 내밀었고 그의 등 위에 레아가 내려앉았다.

그녀가 자신의 등에 앉자 실레스틴은 바람을 가르며 정령계의 하늘을 날아올랐다.

슈아아앙!

바람을 가르며 실레스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간 곳은 정령계의 중앙에 솟아 있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 산은 네 개로 나뉘어져 있는 정령계가 하나로 만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산속으로 들어간 실레스틴은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레아와 실레스틴이 도착한 곳은 오래전 실피드의 초대로 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정령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정령왕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한 곳이었다.

하지만 꽃으로 뒤덮여 있던 바닥에는 검붉은 대지만이 존재했다.

꽃 대신 푸른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마법진의 주위엔 그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법진이 대지를 썩히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정령왕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지만 정령계로 온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했다.

정령왕들이 이곳에 봉인당한 것은 정령왕들이 천신과 마계의 루시퍼를 이곳에서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평소에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항상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 있던 천신과 루시퍼가 나란히 정령계로 찾아오자 정령왕들은 그들은 이곳으로 안내했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그들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정령왕들이 모두 모였고, 이곳에서 그들을 만났었다.

그리고 힘이 많이 약해져 있는데다 슬픔에 빠져 있는 엘라임을 실피드가 억지로 데리고 왔었다.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모든 정령왕들이 모였고, 천신과 마계의 루시퍼는 합심하여 만든 봉인마법을 펼쳤고 정령왕을 가두었다.

이미 마계와 천계에 기다란 탑을 세우고 그곳에 무구를 설치해 둔 뒤였다.

실레스틴은 정령왕들이 갇혀 있을 마법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마법진 속에 계십니다.]

“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저렇게 작은 마법진 속에 친한 이들이 갇혀 있다고 하자 레어는 슬픔이 밀려왔다.

[네. 대화는 가능해요.]

실레스틴의 대답을 뒤로하고 레아는 급히 마법진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곤 레아는 마법진 위에 주저앉은 채 마법진을 향해 외쳤다.

“실피드 언니!”

[레아니?]

레아의 말에 마법진 속에 갇혀 있는 실피드가 그녀가 걱정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언니, 괜찮은 거야?”

[그래. 천계와 마계의 전쟁이 시작된 거니?]

그녀는 레아가 이곳을 찾은 것이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온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아직 시작되지는 않았어. 아! 거기 엘라임 언니도 있지?”

[나도 여기 있어. 지금은 힘을 많이 되찾았고.]

[여~ 할망구 왔어~?]

[허허허. 여기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겐가.]

엘라임의 목소리가 들려 왔고 뒤따라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와 땅의 정령왕 노아스의 말도 들려왔다.

“시끄러워!”

레아는 이프리트의 발끈 하며 마법진을 주먹으로 힘껏 내려쳤다.

퍽.

“꺄악.”

그러나 딱딱한 바닥이었기에 그녀의 여린 손은 상당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하.]

[이프리트, 그만 놀려!]

[쿡쿡. 하지만 너무 웃기잖아, 실피드.]

붉어진 손을 만지작거리며 마법진을 노려보던 레아는 뭔가를 떠올리곤 급히 마법진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이제 곧 봉인이 풀릴 거야!”

[풀리다니?]

마법진 안의 정령왕들이 의문을 표하며 레아를 향해 물었다. 이 봉인을 풀려면 마계와 천계의 중심부로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응. 내가 로얀을 불렀거든.”

[오우, 나의 친구가 날 구하기 위해 왔구먼.]

[허허 그 친구가.......]

[그, 그가 천계와 마계로 간 거니?]

이프리트와 노아스와는 달리 엘라임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진정해! 엘라임!]

실피드가 안에서 엘라임을 진정시키며 레아를 향해 말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 줘.]

레아는 드래곤 로드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 로얀이었다.

로얀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이실리아와 두 마리의 드래곤들을 모두 죽였다는 이야기에 엘라임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어진 로얀의 동생에 관한 이야기에 엘라임은 어쩔 수 없이 그 동굴에서 나갔을 로얀을 생각하며 슬퍼했다.

이 모든 것은 드래곤 로드가 다른 정령왕들이 알아두면 좋을지도 모른다며 해준 이야기였고, 레아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알려 주었다.

특히 그 이야기를 엘라임에게 해주라고 한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다크로드였다.

다크로드는 로얀의 봉인에 관한 것을 아는 엘라임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뭐?! 로얀이 한번 죽음을 맞이했다고?]

너무도 놀란 듯한 엘라임의 목소리에 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이번에 그 드래곤들과의 싸움에서 한번 죽음을 맞이했대.”

레아의 말에 엘라임은 목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다른 정령왕들은 그 말의 뜻을 모르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콰하하항!

콰르르릉!

그때 정령계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응? 무슨 소리지?]

[설마 전쟁이 시작된 건.......]

이프리트와 실피드가 동시에 답했다.

화아아앗!

그리고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꺄앗!”

굉음에 놀랐던 레아는 갑자기 바닥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이 빛나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화아아아앗!

그리고 마법진 위에 네 사람이 나타났다.

수북한 수염이 인상적인 드워프 노인은 편안히 앉아 있었고,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엔 초록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여인과 푸른 머리카락의 여인이 있었다.

초록 머리카락의 여인은 편안히 앉은 채 있었지만 푸른 머리카락의 여인은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고 초조해 보였다.

그들은 마법진 속에서 나온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땅의 정령왕 노아,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그리고 물의 정령왕 엘라임이었다.

“엇! 봉인이 풀렸잖아!”

이프리트는 폴짝 뛰어 오르며 몸을 일으켰고, 노아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실피드님!]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실피드를 향해 실레스틴이 날아왔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어.”

그렇게 말하곤 실피드는 활짝 웃어 보였다.

“로얀!”

그때 엘라임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주위를 급히 둘러보던 엘라임은 그제서야 봉인이 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엘라임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친구인 실피드가 붙잡았다.

“일단 진정 좀 해!”

“하, 하지만.”

“휴. 정령계는 우리가 풀려난 것만으로도 이제 서서히 질서가 잡힐 테니 우리 다 같이 그를 찾으러 가보자. 지금 너의 힘은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잖아.”

실피드의 말대로 정령왕들의 봉인이 풀린 이상 모든 정령들이 원래의 힘을 되찾을 것이며, 폭주하며 날뛰던 정령들은 모두 스스로 진정될 것이다.

실피드의 말에 엘라임은 입술을 깨문 채 머뭇거렸고 실피드는 레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레아는 여기 있어.”

“그치만.......”

레어는 함께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실피드의 눈빛을 대한 그녀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실피드는 엘라임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프리트와 노아스를 포함한 네 명의 정령왕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령계, 마계, 천계는 모두 이어져 있는 것이기에 그들은 굉음이 들려온 마계를 향해 곧장 워프했다.

화아앗!

화아아앗!

워프를 사용하여 마계로 도착한 네 정령왕들에게 처음 보인 것은 빛의 무구와 어둠의 무구를 맞이하는 로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가 뿜어내는 어둠의 기류와 함께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로얀!”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엘라임의 슬픈 외침도 울려 퍼졌다.

* * *

콰하하항-!

거대한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거대한 기운은 중간계까지 미치고 있었다.

중간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하늘에서 들려온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정령왕들이 깨어났기에 하늘은 다시 푸르름을 되찾았었지만 굉음이 일어난 뒤의 하늘은 다시 검게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정령왕들이 봉인당했을 때의 하늘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검은색의 하늘거리는 천이 하늘에서 나부끼는 것만 같았고, 마치 검은 오로라처럼 보였다.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기운을 드래곤 산맥의 드래곤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 굉음과 이 힘이 마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차렸다.

“이게 대체.......”

로얀을 마계로 보낸 장본인이자 전 드래곤들의 수장인 드래곤 로드는 이 현상으로 인해 크게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룬에 있던 어둠의 정령들은 마계에서 일어난 폭발음과 기운에 이미 룬을 떠나 마계로 간 뒤였다.

이렇게 당황해 하는 드래곤 로드의 모습은 평소 잘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룬으로 모여든 각 드래곤족의 수장과 많은 드래곤들이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지금 룬은 모여든 드래곤들로 인해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룬 위에 있는 이들은 폴리모프를 한 상태였는데, 그 종족은 너무도 다양했다. 인간은 물론이고 엘프, 드워프도 있었다. 심지어는 몬스터로 분류되는 오크도 있었다.

룬 주위에는 지금의 사태를 알아 보기위해 몰려든 드래곤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드래곤 로드에게 이 현상에 대한 것을 물어 보기위해 온 것 같았다.

[로드,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당황해 하던 로드가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검은 머리의 잘생긴 남자가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드래곤 로드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드래곤 로드에게 물었던 검은 머리의 잘생긴 남자는 바로 블랙 드래곤 일족의 수장이었다.

블랙 드래곤의 수장인 그의 물음이 있은 직후, 그와 같은 의문을 품고 있던 드래곤들은 들려올 드래곤 로드의 대답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후~.”

먼저 들려온 것은 드래곤 로드의 긴 숨소리였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가 입을 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네만, 그때 왔던 혼돈의 정령왕이 봉인당한 정령왕들을 꺼내는데 성공은 했어.”

“혼돈의 정령왕?”

“자네들이 핍박하던 검은 머리의 드래곤 슬레이어 말이야.”

그 말과 함께 드래곤 로드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웃음을 흘렸다.

그의 말에 모든 드래곤은 잠시 침묵했다. 그들도 긴가민가하던 사실이 진실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다섯 번째 정령왕이자 자신들보다 높은 존재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정령계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어요.”

이번에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골드 일족의 수장의 것이었다. 골드 일족의 수장은 긴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였다.

그녀의 말대로 드래곤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검게 죽었던 하늘이 새생명을 얻은 듯 잠시 동안이지만 환하게 빛나며 파랗게 돌아왔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하늘이 지금은 다시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마계에서 흘러나오는 힘도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 힘과 그 검은 빛은 대체 뭐죠?”

다시 들려온 골드 일족 수장의 말에 드래곤 로드는 눈을 굳게 닫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계로 간 혼돈의 정령왕 다크로얀에게 무슨 일이 생긴 듯하군. 흘러나오는 힘도 심상치가 않아. 모든 드래곤족의 수장은 자신들의 일족을 지휘하게. 모두 마계로 가세나.”

“마계로 말입니까?”

“내가 앞장설 터이니 모두 따라오게. 이번에는 우리 드래곤족도 이 차원계에 큰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 말과 함께 드래곤 로드는 천천히 마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화아아앗!

그는 붉은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고 남아 있던 드래곤들의 각 수장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움직였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들의 일족을 대동한 채 마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화아아앗!

드래곤들이 자리를 비운 드래곤 산맥에 찬바람이 불어왔다.

* * *

쿠쿠쿠쿵!

쿠오오오오-!

로얀은 빛의 무구와 어둠의 무구가 일으키는 폭발이 있은 직후 어둠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너무도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 검은 기류는 로얀의 온몸을 감싸 안아 주었고 로얀은 스르륵 감겨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휘오오오-!

그리고 눈이 감기고 잠들기 직전 그의 머릿속으로 묘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 네 번째의 봉인이 풀렸다. 이로써 너는 완전한 혼돈의 정령왕의 힘을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 봉인의 대가는 너의 심장이다. 심장은 신체의 중심. 모든 피가 심장을 통하며 너의 육신이 숨 쉬는 곳. 심장이 사라짐과 동시에 너의 육체 또한 사라졌다. 정령은 원래 형체가 없는 것. 이제 너의 영혼도 육체도 정령이 된 것이다.]

묘한 음성은 연이어 로얀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마지막 봉인으로 인해 육체와 함께 너 자신도 잃게 되겠지만 만약 자신을 찾는다면 너는 카오스를 제외한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강한 힘을 지닌 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휘오오오-!

로얀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잠들려 할 때 그를 바라보는 천신과 루시퍼는 눈은 부릅떠졌다.

휘오오오-!

로얀이 폭발 속에서 검은 기류에 휩싸인 채 서서히 검은 연기로 변해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는 천신과 루시퍼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크리온과 에리오네도 연기가 되어 로얀의 육체와 하나가 되어 버렸다.

쿠오오오-!

검은 기류 속에서 거대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천신과 루시퍼마저 몸이 가늘게 떨릴 정도의 거대한 힘이었다.

“로얀!”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 중 그를 향해 외치며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바로 물의 정령왕 엘라임이었다.

턱.

“엘라임, 멈춰!”

실피드는 급히 엘라임의 팔을 붙잡으며 그녀를 막았다. 검은 연기로 변한 로얀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너무도 강대했기에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피드, 제발 놔줘!”

엘라임이 실피드의 팔을 떨쳐보려 했지만 실피드는 그녀의 팔을 절대 놓지 않았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와 땅의 정령왕 노아스도 온 힘을 끌어올리며 엘라임의 앞을 막아섰다.

검은 기류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으로 인해 정령왕이 왔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놀란 천신과 루시퍼는 검은 기류로부터 급히 뒤로 물러났다.

“크윽,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이게 대체.......”

휘오오오-!

그리고 검은 기류의 소용돌이는 한 존재를 탄생시키고 있었다.

“하악, 하악, 크크큭.”

검은 기류 속에서 섬뜩한 음성이 흘러나왔고, 연기를 뚫고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팔이 드러났다.

화앗!

그리고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거대한 날개가 솟아났다. 연기로 이루어진 검은 날개는 바람에 하늘거리며 흑빛 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휘오오오!

검은 기류는 휘몰아치며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은 네 명의 정령왕과 천신과 루시퍼 외에도 많았다.

마계의 모든 마족들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날아올라 있었으며, 게이트를 지키던 발록들 또한 이 심상치 않은 광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다크로드와 어둠의 정령들 또한 하늘을 바라보며 검은 기류를 주시하고 있었다. 굉음을 듣고 불안한 느낌이 든 다크로드가 어둠의 정령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휘오오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검은 기류는 바람에 씻겨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낸 이는 분명 로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아니었다.

“크크큭.”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그의 등엔 땅의 숨결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있었다. 항상 그의 허리에 자리 잡고 있던 다크리온과 에리오네가 사라져 있었다.

외향은 같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그 모습 자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이 솟아나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물러나라!”

그 목소리의 주인은 게이트의 앞을 지키고 있던 발록들의 수장인 파라무트였다. 장난기 가득 하던 그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심하게 떨렸다.

그의 그런 모습을 처음 접하는 발록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네?]

“어서!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모두 뒤로 물러나라! 저놈을 피해 도망치라고!”

파라무트는 로얀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너무도 강한 힘을 지닌 괴물 같던 그의 본성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몽마 나세스가 만든 던전 속에서 로안이 만들어낸 환상에서였다.

“모두 물러나!”

파라무트는 다시 한 번 부하들을 향해 외치곤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가 향하는 곳은 정령왕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 나름대로 정령왕이 죽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 소멸하는 것만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화아아앗!

“모두 여기서 피해!”

파라무트는 처음 보는 정령왕들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쳤다.

“넌 누구지?”

이프리트는 갑자기 다가와 반말을 하는 파라무트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이런 씨팔! 저 녀석을 아주 잘 아는 놈이다. 저 모습을 나세스의 환상 속에서 본 적이 있단 말이다!”

“환상?”

“그래! 그 속에서 저 모습을 한 저 녀석은 차원계를 아주 아작을 내버렸지. 저 녀석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 어서 몸을 피해!”

파라무트가 버럭 화를 내며 서둘러 외쳤다.

그는 다시 부하들이 있는 마계로 내려갔다.

타탁.

도착한 파라무트는 부하들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모두 마계의 마족들을 최대한 많이 데리고 이곳에서 멀리 떠나라!”

[하지만 다른 마족들이 도망간다는 것에 찬성할까요?]

“그럼 다 개죽음 당할래? 억지로 잡아 끌어서라도 어서 멀리 피해라!”

파라무트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외치며 손수 앞장서며 다른 마족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대피시킨다기보단 어깨에 들쳐 메고 나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모든 발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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