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짧은 재회 (32/42)

7장 짧은 재회

짧은 재회

콰하하항......!

쿠르르릉......!

보통 하늘에서 치는 천둥소리가 지금은 땅 속에서 흘러나왔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사막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모래만 가득한 사막의 땅이 밑으로 폭삭 내려앉았고 거기서 나오는 자욱한 모래 먼지가 흡사 안개처럼 하늘에 연막을 치며 넓게 펼쳐졌다.

후우웅.......

폭삭 내려앉는 대지 속에서 검은 빛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바로 검은 날개를 나부끼며 날아오른 로얀이었는데 그의 양손에는 마검과 성검이 들려 있었다.

“라이트닝 프리쉬먼트.”

콰르르르릉!

우르릉!

파지지지직......!

로얀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 하늘이 미쳐버린 걸까? 어디선가 고운 음성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하늘이 검게 타버리며 번개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쾅! 쾅! 쾅!

번개가 작렬하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대지가 움푹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번개는 라이트닝 프리쉬먼트라는 마법으로 인한 것으로 광범위하게 번개의 비를 내리는 9서클의 마법이었다.

훙 훙!

쾅! 쾅!

한여름에 쏟아지는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번개 속에서 로얀은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 검은 날개는 형체가 없었기에 번개를 그대로 통과시켰고 로얀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콰르르릉!

쾅! 쾅! 쾅!

그러나 번개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만 갔고 그에 따라 로얀도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번개를 그대로 맞은 사막의 대지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처참하게 변한 사막은 뿌연 연기와 함께 모래 먼지를 가득 피워 올리며 하늘까지 뒤덮기 시작했다.

“정말 살아 있었잖아?”

“내가 살아 있다고 했잖아.”

내려치는 번개 속에서 두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먼저 들려온 목소리는 고운 음성으로 여성의 것이었는데, 그것은 번개의 시작을 알리던 그 음성과 동일했다. 그리고 그 뒤에 들려온 것은 남자의 것으로 그 역시 상당히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콰르르릉......!

하늘이 마지막으로 포효하더니 번개가 잠잠해져 갔다.

뮤트 크기 정도의 범위로 내려친 번개의 파괴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만약 이 번개가 정말 뮤트에 떨어졌다면 그 도시는 지도 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만큼 파괴적이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번개의 소나기는 그렇게 멈추어져 갔다.

내려치는 번개 속에서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은 로얀은 허공에 뜬 채로 목소리가 들려왔던 곳을 바라보았다.

모래 먼지와 번개로 인해 생긴 하얀 연기가 사막의 바람에 서서히 사라져가자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그 모습을 나타냈다.

“......!”

발록이나 천사를 봐도 놀라지 않던 로얀이 모습을 나타낸 이들을 보고 크게 놀라며 그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모습을 나타낸 것은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었는데, 그 중 남자는 발록 파라무트와 함께 로얀이 던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본 금발의 미청년이었다.

로얀은 그들을 보자마자 곧 알 수 있었다. 그들 세 명 모두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로얀이 지금 온몸을 떨며 놀라는 이유는 눈앞에 나타난 세 마리의 드래곤 때문이 아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드리운 여인! 그녀는 귀가 뾰족한 엘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붉은 머리카락 때문에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다.

로얀은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몽마 나세스가 만든 마법진이 보여준 환상 속에서 그녀는 이리아라는 이름으로 그의 앞에 보여졌던 것이다.

“이리아.......”

꾸욱.

로얀의 두 손이 에리오네와 다크리온의 그립을 각각 강하게 움켜쥐었다. 검신이 저절로 바르르 떨릴 정도로 그것을 꽉 움켜쥔 로얀의 눈동자에 핏발이 일었다. 붉어지는 그의 눈동자가 이리아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응? 이실리아, 저 인간을 알아?”

“.......”

금발 머리 미청년의 말에 이실리아라 불린 여인의 고운 아미가 치켜 올라갔다. 드래곤인 자신이 눈앞의 인간에 대한 것을 떠올리지 못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 인간은 분명 자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머릿속에서 그의 모습을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알 듯 말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날 어떻게 아는 거지?”

결국 이실리아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아는 듯한 인간에게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시엔... 네가 한 유희 속의 인형이자 벌레처럼 죽임을 당했던 팔레인이란 마을의 시엔이다.”

“아!”

로얀의 말을 듣자 이리아는 시엔이라는 청년과 레이나라는 소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외모가 너무도 바뀌어 있었기에 그녀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로얀의 지금 모습은 과거 시엔이었을 때와는 너무도 달라져 있어 아무리 드래곤인 그녀라 하더라도 기억을 못 해내는 게 당연하다 여겨질 정도였다.

이미 첫 만남에서 이실리아의 기분을 상하게 한 로얀이었기에 이어지는 그녀의 음성은 곱지 않았다.

“그때 그 인간은 마을과 함께 깨끗이 지워버렸을 텐데?”

마을을 지워버렸다는 것을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이실리아를 보고 로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죽, 여, 버, 리, 겠, 다!”

웅! 웅! 웅! 웅!

콰지지직!

차갑고도 처절함이 묻어 있는 음성이 울려 퍼짐과 동시 에리오네와 다크리온이 크게 진동하며 금빛 오러를 뿜어내었다. 지금까지 로얀이 사용했던 힘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힘이었다.

흠칫!

세 드래곤이 모두 놀라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하아아압!”

로얀이 커다란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등에 있는 날개가 흑색 잔상을 흩뿌렸다.

“카이저 실드!”

세 마리의 드래곤이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세 겹의 카이저 실드가 그들 앞에 생성되었다. 그리고 로얀의 두 검과 카이저 실드가 맞부딪쳤다.

콰가가강!

쩌쩌쩡......!

“이, 이런!”

“꺄악! 이실리아 언니!”

로얀의 일격에 두 사람보다 어려 보이는 은발 소녀가 뒤로 살짝 밀려났다. 그녀의 실드가 가장 앞에 있었는데 로얀이 그것을 부수자 그 여파로 뒤로 밀려난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 옆에 있던 금발 청년이 당황한 듯 로얀을 노려보았다.

“당황하지 마. 루시어스, 페르디난드!”

이실리아가 담담히 말했다.

콰지직!

로얀의 검은 한 개의 카이저 실드를 격파하고 두 번째에서 멈춰 있었다. 세 마리의 드래곤이 하는 협공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마계와 천계의 전쟁과 같은 큰 싸움이 아니라면 절대 뭉쳐서 움직이지 않는 드래곤들은 항상 홀로 싸웠다. 그리고 매번 승리를 거두어 중간계의 최강자가 된 것이다. 그런 드래곤이 세 마리나 모여 한 사람을 상대로 협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들은 로얀과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인간과 드래곤 세 마리의 싸움이라니? 자존심 강하고 자신들의 위상을 세우기에 급급한 그들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거대한 제국을 상대로 싸운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드래곤이 세 마리나 모여 인간 한 명을 죽여봤자 그건 이긴 것도 아니었다. 싸움 뒤에 돌아오는 것은 같은 드래곤들의 차가운 시선과 비웃음일 테니 말이다.

이실리아를 포함한 여기 있는 드래곤들은 그저 로얀을 가지고 놀 생각에 모인 것이었다. 카엔이 멍청해서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에이션트 드래곤이었고 앞의 인간은 그 드래곤과 싸워 이긴 이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들은 이실리아의 계획 하에 로얀을 함정 속에 밀어 넣었다. 고서에 나오는, 발록들의 수장인 파라무트가 갇혀 있는 곳이 바로 그들이 로얀을 위해 준비한 함정이었다.

물론 드래곤 로드에게는 카엔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러 간다고 하고 나왔기 때문에 카엔과 로얀의 싸움에 대해 세세히 조사하는 모습을 일부러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한 그들은 로얀을 몽마 나세스가 만든 던전 속에 밀어 넣어 버렸다. 혹 던전에서 살아남아 그 중심부로 들어간다 해도 그곳에는 파괴의 제왕이라 불리는 발록 파라무트가 있을 테니 인간은 그 순간 죽은 목숨일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로얀은 당당히 살아 나왔고, 두 드래곤들의 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로얀에게 내기를 건 골드 드래곤 페르디난드는 정말 뜻밖에도 그들에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실리아는 페르디난드가 내기에서 이긴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그 인간이 나세스의 던전에서 살아 나왔다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실리아는 리치 콘이 로얀과 싸울 때 썼던 방법을 써먹기로 했다. 그건 바로 정령석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다른 두 드래곤들은 미리 빛의 성지 주위의 사막에 최상급 정령석을 설치해 두었다.

루시어스와 페르디난드가 정령석을 설치하는 동안 이실리아는 몬스터들을 몰고 왔다. 그들은 로얀이 정령석이라는 우리 안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며 서서히 죽어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일을 진행시켰다.

로얀이 빛의 성지에서 나오고 루시어스의 카이저 실드를 부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 힘도 곧 정령석에 의해 사라지리라! 그리고 힘을 잃고 인형이 된 로얀은 몬스터들에게 이리저리 굴러다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시어스와 페르디난드의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는 상상이었다. 그러나 이실리아는 로얀을 바라보면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강한 인간이라... 그 몸에 들어 있는 영혼도 강하겠지?”

로얀을 바라보는 이실리아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녀의 미소에 같은 편인 페르디난드는 절로 오싹해짐을 느끼고는 뭔가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실리아, 아직도 그 실험 해?”

“호호호! 얼마나 흥미로운데, 영혼이라는 건 말이야!”

아름답게 웃으며 말하는 이실리아에게서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이실리아의 그 모습에 페르디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기한 것과 특이한 것을 좋아하고, 어떤 대상을 정해 놓고 실험하기를 좋아하는 이실리아의 성격을 그녀의 몇 안 되는 친구이기도 한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그런 성격은 폴리모프를 할 때 레드 드래곤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엘프를 고집하는 점에서도 나타났다. 물론 유희를 나갈 때는 빨간색 머리를 일부러 금발로 염색까지 한 뒤 나가는 그녀였다.

“루시어스는 그걸 발동시켜 줘.”

이제 갓 에이션트 드래곤이 된 루시어스는 이들 중 가장 어린(?) 드래곤이었기에 힘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루시어스는 이실리아의 말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페르디난드가 팔짱을 끼고 이실리아 곁으로 날아왔다.

“그냥 죽이지 귀찮게 꼭 그렇게 해야겠어?”

“난 죽인다고 한 적 없어.”

“그래, 그래! 영혼을 가지고 놀겠지. 뭐, 어쨌거나 재미는 있겠는데?”

* * *

한 번의 공격으로 로얀은 드래곤 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눈앞에 원수를 두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죽어 봉인을 풀 생각까지 하는 그였다. 그만큼 이리아에 대한 그의 증오심은 엄청났다.

웅웅웅......!

뒤로 물러나 드래곤의 움직임을 살피던 로얀이 검을 고쳐 쥐며 다시 돌진했다. 그의 날개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흑빛 광채가 뿜어지고 있었다. 금빛과 흑빛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광경!

“사신의 춤!”

콰하하항......!

“크윽!”

이실리아는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로얀을 바라보았고 페르디난드가 앞으로 나서며 로얀의 공격을 막았다. 앞의 인간이 블랙 드래곤 카엔을 죽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에 페르디난드는 그를 얕보고 있었다.

쾅!

하지만 엄청난 마나를 퍼부은 카이저 실드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지자 그는 앞의 인간이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정령의 힘이 깃든 마법구로 공격하는 주제에 이렇게 자신에게 강한 충격을 주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 그였다.

우습게도, 그들 또한 자신들이 멍청하다고 한 카엔처럼 로얀이 마법구에서 힘을 얻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폴리모프.”

화아아앗!

그러나 페르디난드는 카엔과 달리 로얀이 마법구를 쓰든 말든 그의 힘을 순순히 인정하고는 그 즉시 본체로 모습을 변환시켰다.

쿠오오오......!

주위의 마나가 요동치는가 싶더니 황금색 비늘을 가진 거대한 드래곤이 허공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본체로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응?]

그러자 이실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페르디난드의 뒤를 가리켜 보였다.

화아아앗!

그곳에는 루시어스가 있었는데, 그녀의 양손에서는 지금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자연의 원소들이여, 저기 평온한 안식처에 내려앉아 영원토록 기쁨을 누리리라.”

“이 주문은......?”

로얀은 루시어스의 조그마한 입에서 흘러나오는 주문을 한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크산의 협곡에서... 리치 콘이... 그것은 바로 정령의 힘을 빨아들여 정령석에 가두는 주문이었던 것이다!

빙긋.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영감탱이의 눈 때문에 너에 대해 꽤 조사를 했거든.”

아무리 이실리아가 강하다 해도 전 드래곤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드래곤 로드에게는 얌전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실리아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후우우웅!

이윽고 루시어스의 긴 주문이 끝나자 그녀의 손에 있던 푸른빛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사막 곳곳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앗!

그 빛은 로얀이 빛의 성지에서 나오기 전 그들이 미리 설치해 둔 정령석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리치가 아닌 드래곤이 직접 펼친 데다가 최상급 정령석이 사막 가득 깔려 있으니 그 위력은 정말 엄청났다.

[하하하! 너의 힘의 근원이 정령이 깃든 뭔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벌여왔던 싸움에 대해서 꽤 열심히 조사했거든. 이제 곧 너의 힘을 모두 흡수당하게 될 것이다. 하하하!]

페르디난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로얀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화아아앗!

로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정령의 힘이 빠르게 정령석에 흡수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등에 있는 검은 날개 또한 흩어져갔다.

스으윽.

날개가 사라져가자 로얀은 어쩔 수 없이 밑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빙긋.

로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루시어스가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사박.

로얀은 결국 사막에 착지했고 날개를 스스로 소멸시켰다.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이 정령의 힘을 더 빨리 흡수당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등에서 날개가 사라지는 것을 본 이실리아는 사막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제2부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녀의 음성이 멀리멀리 울려 퍼져 나갔다.

쿠어어어......!

쿵! 쿵! 쿵

쿠아아앙......!

“.......”

로얀은 무언가의 포효소리와 땅이 진동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내려앉은 검은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사막의 모래 안에서 튀어나와 저 멀리서 달려오는 것은 모두 몬스터 대군이었다. 사막에는 없는 오크나 오우거도 있었다. 사막의 흉폭한 늑대 떼도 있었고 로얀이 사막에서 처음 상대했던 스콜피온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쿵! 쿵! 쿵!

마지막으로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골렘이 있었다. 돌로 된 스톤 골렘은 모래 안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언니, 이렇게 일을 벌이면 로드께서 뭐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호호호, 상관없어! 나라를 엎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인간 한 명 가지고 노는 걸로 그 영감탱이가 뭐라고 할까?”

루시어스가 사막을 가득 메운 몬스터들을 보며 걱정스런 얼굴로 묻자 이실리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답했다.

* * *

쿵! 쿵! 쿵!

쿠어어어......!

두두두두......!

자신을 향해 질주해 오는 여러 몬스터와 느릿하게 다가오는 거대한 골렘을 쳐다보면서 로얀은 두 개의 검을 뽑아 수평으로 눕혔다.

스오오오......!

그의 몸에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족의 마기보다도 더 진한 흑색의 기운! 사막의 바닥을 가득 메운 정령석이 활발하게 그 빛을 빨아들였지만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그 흑빛 소용돌이는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로얀은 지금 모든 힘을 짜내고 있었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힘을 쓸 수 없게 될 바에야 그 전에 강력한 기술을 써서 몬스터를 하나라도 더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지금 정령의 힘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었지만 수백 개에 달하는 정령석의 흡수력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곧 정령석의 속도에 따라잡혀 자신의 정령력은 생겨날 때마다 흡수당하게 될 것이다.

로얀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몬스터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때까지 세 마리의 드래곤은 하늘에서 관람객이 되어 로얀과 몬스터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경기장에서 맹수와 싸우는 노예들의 싸움을 구경하러 온 귀족 같았다.

쿠어어어......!

두두두두......!

쿵! 쿵! 쿵!

몬스터들의 거친 숨소리와 땅을 울리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쿠웅......!

후웅!

그리고 로얀 바로 앞에 도달한 순간, 가장 앞서 다가오던 거대한 스톤 골렘이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막에 바람이 만들어졌다.

자신의 앞머리를 건드리며 지나가는 그 바람을 느끼며 로얀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스윽.

그리고 그의 입술이 열림과 동시에 그 안에서 왠지 모를 섬뜩함과 공포감이 느껴지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크 오브 데스티니.”

기이이잉!

그러자 가슴 앞에서 수평으로 눕혀 놓았던 두 검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사막을 덮어 나갔다.

갑자기 사막에 밤이 찾아오자 그를 지켜보고 있던 세 마리의 드래곤도 크게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쿠쿠쿵.

휘오오오오.......

왠지 모를 스산한 소리와 함께 검은 기류가 몬스터들 사이에 흘렀다. 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공중에서 피어난 그것은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차가움을 내뿜고 있었다.

갑자기 침묵이 흘렀고 어느 순간, 그 침묵 속에서 터진 굉음과 함께 피의 광란이 시작되었다.

콰가가가강......!

콰지지직!

검은 기류에 뒤덮여 있던 곳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고 몬스터의 몸이 갑자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돌로 만들어진 골렘도 예외는 아니었다.

와르르르......!

쿠어어어......!

크아악......!

스톤 골렘은 처참하게 부서져 무너져 내렸고 다른 몬스터들은 각기 다른 피를 내뿜으며 살 조각을 흩뿌렸다. 그것은 드래곤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참혹하고 역겨운 광경이었다.

피의 광란은 왠지 섭섭할 정도로 짧았다. 그 뒤에 남은 건 이것을 어떻게 치울지 걱정이 될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린 사막의 모습뿐이었다.

휘오오오.......

갖가지 피의 색으로 물든 사막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몬스터의 수가 워낙에 많았기에 모두 죽일 수는 없었지만 이 한 방으로 로얀은 절반에 가까운 몬스터 대군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하지만 이 결과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정령석에게 힘을 계속 흡수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많은 힘이 소모되는 광범위 기술을 썼기 때문에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힘들게(?) 모은 몬스터 군대가 절반이나 사라지자 이실리아는 분노했다. 꽉 주먹 쥐여진 그녀의 손이 떨려왔다. 정령석이라는 우리에 갇혀 있는 인간 주제에 자신의 부하를 죽이자 화가 난 것이었다.

“모두 저 인간을 공격해라!”

이실리아는 공포에 질려 로얀을 향해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몬스터들에게 드래곤 피어를 담아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로얀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의 인간에게 죽든 드래곤에게 죽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의 괴물 같은 인간이 드래곤 세 마리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승산이 있어 보였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그를 향해 달려든 것이었다.

쿠어어어......!

후웅!

콰가가강!

“너희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

로얀은 지쳐 있었지만 금빛 오러를 뿜어내는 그의 두 검은 달려드는 몬스터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 베고 가르고 부스며 에리오네와 다크리온은 이리저리 번뜩였다. 붉은 피가 튀고 녹색 체액이 튀었다.

쿵!

후웅.......

그의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스톤 골렘이 굵직한 주먹을 내뻗었다.

“헬 파이어.”

화르르르......!

콰가강!

그때 하늘에서 불꽃이 쏟아져 내려 골렘을 부수고는 그대로 로얀의 몸을 덮쳤다. 골렘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자신의 공격을 보지 못할 거라 생각한 루시어스가 마법을 시전한 것이었다.

그녀도 이실리아와 마찬가지로 로얀을 가지고 놀고 싶은 생각이 이미 싹 사라진 상태였던 것이다. 그저 죽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할 뿐!

팟.

자신을 덮쳐오는 헬 파이어를 그는 몸을 살짝 굴려 피했지만 불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볼케이노.”

콰드드드......!

루시어스 옆에 있던 이실리아도 합세해 마법을 시전하자 로얀의 발 밑으로 용암이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치이이익!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은 평범한 가죽 신발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얀 연기를 내며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쾅! 쾅! 쾅!

“흡!”

로얀은 바닥이 갈라지고 시뻘건 용암이 붉은 기둥이 되어 솟아 나오자 몸을 피하려 했다.

용암이 흐르는 대지 위에서도 그의 발은 붉게 빛날 뿐 녹지 않았지만 용암이 밑에서 솟아오른다면 그도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쿵! 쿵! 쿵!

그가 몸을 피하려 하자 골렘들이 달려들어 그 앞을 막아서더니 그대로 몸을 날려 그를 덮쳐왔다.

[죽어라, 인간!]

하늘에 떠 있던 페르디난드가 어느새 마나를 입에 머금고는 골드 드래곤의 불꽃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그것은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화염의 브레스는 아니었지만 그 대신 상당히 강력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콰하하항......!

콰가가강......!

직선으로 날아오는 브레스를 가만히 맞고 있을 로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실리아가 선수를 쳤다.

“파이어 스톰.”

화르르르......!

불의 폭풍이 로얀의 뒤에서 생겨나 그를 덮쳐갔다. 로얀이 뒤로 피하지 못하도록 그녀가 미리 손을 쓴 것이었다.

7서클의 썬더 스톰보다 파괴력이 월등하고 마나의 소모도 그만큼 많았기에 파이어 스톰은 8서클로 분류되는 마법이었다. 때문에 7서클까지만 복사가 가능한 로얀은 그것을 복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크아아압!”

로얀은 온 힘을 다해 덮쳐오는 골렘과 몬스터를 죽이며 다가오는 마법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거나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금빛 피부의 그는 웬만한 마법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지만 드래곤이 쏘는 브레스는 그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로얀 그라 해도 드래곤의 브레스를 견뎌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브레스에는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었다. 과거 로얀이 살던 팔레인을 지도에서 깨끗이 지워버렸을 정도가 아니던가!

콰하하항!

퍼걱!

콰르르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골렘을 부수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브레스를 로얀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는 불의 폭풍이 덮쳐왔고 정면에서는 브레스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두 마리의 드래곤이 하늘에서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한 조소를 흘리는 가운데 이실리아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로얀이 최후를 맞으려는 순간!

파하하핫!

허공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며 로얀과 브레스 사이를 가로막았다.

콰하하항......!

로얀은 브레스를 조금이라도 방어하기 위해 손으로 앞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빛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대체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려는 것일까?

브레스가 푸른 빛에 퉁겨져 나가 이곳저곳에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로얀은 푸른 빛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흠칫!

“아니!”

[어, 어떻게!]

브레스가 일으킨 빛이 사라지고 서서히 드러나는 광경에 세 드래곤은 할 말을 잃고 눈만 크게 떴다. 하나 그것은 로얀도 마찬가지였다.

“에, 엘라임!”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그가 잘못 본 건지, 유난히 창백해 보이는 피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떠 있는 엘라임이었다.

스르륵.

푸른 빛을 휘날리며 로얀에게로 날아온 엘라임은 그를 안았다. 그의 뒤에서는 불의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다가오는 불꽃의 소용돌이를 보며 엘라임은 마법을 시전해 이곳 사막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른 곳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로얀과 엘라임이 사막에서 사라졌고, 드래곤 세 마리는 황량하다 못해 마계의 데스랜드 같은 땅이 되어버린 사막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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