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빛의 성지 (27/42)

2장 빛의 성지

빛의 성지

여름의 대륙에 있는 숲 중 가장 거대한 크라우트 숲은 쨍쨍하게 내리쬐는 날씨 속에서도 초록의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곳이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은 곳곳에서 물이 솟아나고 계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푸른 나무들과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푸른 풀들이 펼쳐져 있는 크라우트 숲은 크기도 엄청나 이 지역을 얻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했다. 더구나 크라우트 숲은 여름의 대륙의 한복판에 있었다.

여기 크라우트 숲과 몰딘 왕국이 바로 주변 나라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1순위의 땅일 것이다.

현재는 빈트러드 제국의 영역 안에 있는 이 숲은 지금 절반이나 파괴되어 있었다. 나무가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고 떨어져 내린 풀잎들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어 원래의 푸른 숲으로 돌아가려면 몇 년이 걸릴지 측정이 불가능했다.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고 난 뒤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크라우트 숲으로 수십,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스르륵.

뚜벅뚜벅.......

다른 그림자들은 소리없이 이동했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뚜벅뚜벅.......

검은 흑발을 휘날리며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허리에 매여 있는 두 개의 기다란 검이 철그렁거렸다.

차갑다 못해 서늘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 그는 바로 흑안의 검사라 불리는 로얀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은 당연히 어둠의 정령들이었다.

로얀은 어딘가에서 유희를 즐기고 있을 드래곤을 찾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는 길을 나선 것이었다.

스르륵.

뚜벅뚜벅.......

그들이 향하는 곳은 뮤트라는 곳으로 빈트러드 제국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바로 옆에 이 울창한 크라우트 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뮤트가 크라우트 숲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크라우트 숲을 지나면 작은 사막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뮤트가 나오는 것이었다.

푸스스.

사막이 가까워오는지 황폐해진 크라우트 숲을 거니는 로얀의 발에 모래가 휘날리며 채였다. 그리고 로얀의 등 뒤를 따라오고 있는 어둠의 정령들은 모래를 흘려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로얀에 의해 폐허가 된 크라우트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 사막 때문에 되살아나지 못하고 점점 사막화되어 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르륵.

얀에게 갔던 네 명의 세드니스도 언제 돌아왔는지 로얀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바스락!

로얀은 걷던 길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이 눈에 들어왔다.

휘오오오!

모랫바람이 휘날리는 가운데 로얀은 자신의 시력을 늘려 사막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묘한 흑빛을 살짝 뿌리기 시작했다.

“이곳을 지나면 뮤트라는 곳이라고 했던가?”

[예, 마스터.]

로얀의 물음에 그의 그림자 속에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크라우트 숲에서 어둠의 최상급 정령 다크니스로 진화한 다크로드였다.

그 덕분에 로얀 또한 다양한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아직 그 기술들을 실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사박, 사박.......

로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눈은 어느새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사박, 사박.......

로얀이 골든 마스터가 되었기 때문일까? 그의 발은 생명체의 발을 잡아끄는 모래 속에 잠기지 않고 있었다. 아니, 사실 발걸음 소리조차도 그가 힘을 쓴다면 얼마든지 없앨 수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사막에 발도장을 찍은 지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로얀은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었다. 사람 모양을 한 모래가 떼지어 다른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로얀은 품속에서 너덜거리는 책자를 꺼내 뒤적거렸다. 바로 그와 함께 거친 싸움을 거쳐온 ‘몬스터 도감’이었다. 그것이 아직도 로얀의 손에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낡은 책장을 넘기던 로얀은 드디어 모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샌드맨... 사막에서만 사는 그것은 상당히 착한 몬스터라 할 수 있었다. 상대가 공격하지 않는 한 먼저 덤벼들지 않았고,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고 해봐야 상대방을 잠재우는 슬립마법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촤아아!

샌드맨은 사막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답게 모래를 타고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어찌나 많은 수가 모래 위를 지나가는지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처럼 들려왔다. 샌드맨은 원래 항상 무리 지어 다닌다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많은 수였다.

바스스슥.

로얀은 뭔가에 쫓겨 도망가는 듯한 샌드맨 무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사막을 훑어보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샌드맨을 쫓아낸 존재를 찾기 위함이었다.

촤아아......!

그러는 동안에도 샌드맨의 집단 이동은 계속되었고, 이윽고 로얀은 사막을 살펴보던 것을 멈추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 한 이들을 쫓아낸 존재에게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꽈앙!

“크하하합!”

키르르륵!

그런 로얀의 귓가로 굉음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람들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몬스터 특유의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박, 사박.......

로얀은 그것을 무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쪽은 로얀의 목적지 방향이었기 때문에 그가 걸으면 걸을수록 누군가가 몬스터와 싸우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모습도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몬스터 네 마리가 용병으로 보이는 다섯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데 그들 중 늙은 마법사 한 명과 정령술사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로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둘 다 마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보다.

그리고 20대 중반 정도의 남자 검사와 그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젊은 여자 검사가 보였다. 마지막 한 명은 사람이 아니라 도끼를 휘두르는 드워프였다.

키르르륵......!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몬스터는 거대한 크기의 스콜피온이었다. 주로 사막에서 서식하는 그것은 단단한 강철 갑주 같은 붉은 피부에 꼬리에는 맹독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로 사막에서는 가장 강한 녀석이었다.

모래 속에 숨어 있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갑자기 솟아올라 덮치는 이들은 눈이 없어 소리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했고, 항상 혼자 다니며 사냥을 하는 몬스터였지만 지금은 특이하게도 네 마리가 함께 이들 용병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박, 사박.......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로얀을 용병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거대한 스콜피온이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에 예민한 스콜피온은 로얀의 등장을 눈치 채고 있었다.

스콜피온 네 마리는 로얀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들은 모랫바람 속에서 로얀의 발걸음 소리 하나만을 들었지만 왠지 그의 뒤에 엄청난 대군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소울 바인드.”

스스스슷.

로얀이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린 스콜피온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나직이 중얼거리자 그의 등 뒤에 있는 그림자에서 검은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더니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다크로드나 어둠의 정령이 앞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바로 다크로드가 최상급 정령으로 변하면서 새로 생긴 로얀 기술 중 하나였다.

스스슷!

검은 덩어리는 순식간에 스콜피온에게 당도했고 그들의 그림자로 흡수되었다. 순간, 스콜피온들은 돌이 되어버린 듯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드래곤이 사용하는 드래곤 피어는 극도의 공포감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두려움이 없는 존재나 마음이 강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로얀이 사용한 것은 영혼을 묶는 것으로 웬만한 존재는 모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영혼이 강한 존재가 아니라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그림자가 없다면 쓸 수 없는 단점이 있기도 했다.

갑자기 멈추어 버린 몬스터를 다섯 용병들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사박, 사박.......

그리고 그제야 멀리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로얀을 보았다.

로얀은 동상이 되어버린 스콜피온을 지나 다섯 명의 용병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키르륵......!

로얀이 점점 멀어져가자 굳어 있던 스콜피온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들의 기다란 꼬리가 움찔거렸고 그들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멈춘 스콜피온과 로얀의 등장으로 로얀의 기술에 당한 것도 아닌데 굳어 있던 다섯 명의 용병은 그제야 스콜피온들에게 급히 달려들었다.

까까깡!

하지만 강철 같은 스콜피온의 단단한 피부는 쉽게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로얀을 따라 도망가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때를 놓치고 말았다.

“하아아압!”

키르륵!

사박, 사박.......

스콜피온이 내는 소리와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러나 로얀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심히 가던 길을 걸어갔다. 바로 그 순간, 로얀의 몸으로 친숙하고도 그리운 기운이 전해져 왔다.

스윽.

그 기운을 쫓아 로얀은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린 정령술사가 세 명의 실프를 정령계로 돌려보내고 이제 막 물의 중급 정령인 운다인을 소환해 싸우고 있었다.

물의 정령까지 사용하는 저 어린 소녀는 아마 이 여름의 대륙에서는 꽤나 값을 쳐줄 것이다. 이곳은 물이 귀한 곳이니 말이다.

어린 소녀가 소환한 운다인은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살짝 얼굴을 찌푸린 채 끊임없이 물줄기를 허공에서 쏘아대며 스콜피온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스콜피온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물의 정령.......”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로얀의 의도를 알아차린 다크로드가 그렇게 말하자 로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처리하겠다. 아무도 나서지 마라.”

팟!

로얀은 그 자리에서 바닥을 힘껏 밟으며 날아올랐다. 뒤로 점프한 그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자 그의 등에 매달린 땅의 숨결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파라락!

타탁.

거대한 스콜피온 위로 떨어져 내린 로얀은 곧바로 에리오네를 뽑아 들고는 그것을 내려찍었다.

푸걱!

키에에엑! 크르륵!

머리를 관통당한 스콜피온을 괴성을 지르다 곧 잠잠해졌고, 하늘을 향해 솟아 있던 꼬리도 바닥으로 힘없이 처졌다.

키르륵!

로얀의 갑작스런 등장에 스콜피온과 한창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다섯 명의 용병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타탁.

사사삭.

에리오네를 뽑아낸 후 죽은 스콜피온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린 로얀은 이번에는 다크리온을 검집에서 뽑아내며 다른 스콜피온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다섯 명의 용병 중 그 누구도 정확하게 보지 못했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나마 두 검사와 드워프만이 그의 신형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을 뿐이다.

퍼걱!

로얀은 오른손에 들린 다크리온을 수평으로 눕히고 스콜피온의 입을 향해 돌진했다. 곧 이어 다크리온의 커다란 날이 스콜피온의 쭉 찢어져 있는 입을 가르며 꼬리까지 나아갔다.

키에엑!

쿠쿵......!

몸이 횡으로 갈라진 스콜피온은 짧고도 괴이한 소리를 냄과 동시에 풀썩 쓰러졌다. 그 순간, 다크리온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죽은 스콜피온의 몸에서는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키르르륵!

드디어 로얀의 모습이 드러나자 남은 스콜피온 중 한 마리가 그의 등 뒤로 빠르게 돌진해 왔다.

빙글.

자신의 등 뒤로 다가오는 스콜피온을 느낀 로얀은 몸을 돌려 왼손에 있던 에리오네를 가볍게 던졌다.

쉐에에엑!

그러자 에리오네는 금빛 가루를 흩뿌리며 엄청난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푸가가가각!

그리고 스콜피온의 입으로 들어가 그의 몸 속을 여행하고 나온 후 모래 속에 깊숙이 박혔다.

쿠쿠쿵.......

또 한 마리가 쓰러지자 마지막 남은 스콜피온이 맹독이 들어 있는 꼬리를 앞세운 채 로얀을 향해 돌진해 왔다.

쉬에엑!

그리고 뱀이 내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그 거대한 꼬리를 로얀을 향해 내려찍었다.

하지만 로얀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어린 정령술사 소녀는 눈을 가렸고 다른 용병들도 고개를 살짝 돌렸다.

턱.

키륵?

그러나 당장이라도 로얀의 몸을 찍어누를 것만 같았던 스콜피온의 거대한 꼬리는 허공에서 멈춰 있었다. 로얀의 손이 그것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로얀은 그 상태에서 힘을 주었다.

꽈악.

펑!

그의 손힘에 그 단단하다는 스콜피온의 껍데기가 찌그러지더니 초록색 체액이 터져 나왔다.

키에에엑!

스콜피온은 엄청난 고통에 괴성을 질렀다.

사박, 사박.......

로얀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스콜피온을 향해 다가갔다.

스거걱.

그리고 오른손을 휘둘러 다크리온을 움직이자 흑색 검날이 스콜피온의 앞부분에 있는 네 개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스콜피온은 수십 개의 다리가 아직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잡지 못해 그만 앞으로 무너져 버렸다.

“다크리온은 관통시키기에는 부적합한 검이거든.”

그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스콜피온의 꼬리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푸걱.

날카로운 스콜피온의 꼬리가 주인의 붉은 머리를 뚫고 박혔다. 그러자 스콜피온은 풀썩 쓰러져 버렸다.

빙글.

사박, 사박.......

네 마리의 스콜피온을 모두 처리한 로얀이 에리오네가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하자 그의 뒤를 다섯 명의 눈동자가 따라갔다.

사박, 사박.......

그리고 로얀이 네 개의 스콜피온 시체를 지나 사막의 바스락거리는 모래 위를 걸어가자 그 뒤를 다섯 명의 사람들이 따라갔다.

로얀은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일부러 사막의 모래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렇게 그들이 뮤트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머리카락이 짧다 뿐이지 엘프 여검사 타니아와 비슷한,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늘씬한 몸매의 여인이 동료들을 향해 물었다.

“도대체 누굴까?”

그녀는 당연히 로얀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상급 몬스터인 스콜피온을 네 마리나 순식간에 해치워 버린 로얀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언니, 혹시 그 소문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아닐까?”

“쯧쯧! 아무리 흑안의 검사가 젊다고는 해도 20대 초반은 아닐 거야.”

어린 정령술사 소녀의 말에 짧은 갈색 머리에 양 귀에 작고 동그란 금색 귀고리를 한 남자 검사가 중얼거렸다.

“아까 언뜻 보기에 두 개의 검이 금빛을 뿌리고 있었어. 아마 마법검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 그리고 그 엄청난 움직임도 내 생각엔 신발이나 장비에 마법이 걸려 있어서 그런 것 같아.”

“와아! 그럼 저 사람은 부자겠네?”

어린 소녀의 감탄사에 젊은 용병 검사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웃음 지으며 아주 작게 말했다.

“우리가 가는 곳엔 분명 저 사람이 들고 있는 것보다 더 굉장한 게 있을 거야.”

“정말?”

“그럼.”

네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소곤거리며 말하는 것은 세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조용하고 과묵한, 털이 덥수룩한 드워프였다. 그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보통 인간보다는 오래 살았을 것이다.

드워프라면 누구나 장인의 기질과 함께 엄청난 대장장이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그가 로얀의 두 검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그는 앞의 청년이 마검과 성검 두 개를 동시에 들고 다닌다는 소문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괜한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 이런 사실을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 늙은 마법사는 로얀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로얀은 자신의 뒤에서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고 있는 그들의 말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아니, 저절로 들렸다. 게다가 옆에서 끊임없이 조잘대는 늙은 마법사 때문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가 이들을 도운 건 오로지 물의 정령을 부를 줄 아는 어린 정령술사 때문이었다. 물의 정령에게 엘라임에 대해 묻고 싶었기 때문에 힘을 쓴 것뿐인데 자신의 옆에 붙어 조잘대는 늙은 마법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에게서 그들의 이름을 수십 번도 더 들었기에 저절로 머릿속에 그들의 이름이 각인되어 버린 로얀이었다.

늙은 마법사는 도리스, 붉은 머리의 여검사는 타냐, 작은 귀고리를 한 남자 검사는 클라토스, 과묵한 드워프는 록, 마지막으로 물의 정령을 부려 로얀의 발걸음을 돌렸던 어린 정령술사는 루이였다.

이들은 모두 용병으로 오래 전부터 한 팀으로 같이 행동해 왔고, 용병 일을 하며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나이로 따지자면 드워프 록이 리더가 되어야 하지만 그는 그런 직책을 싫어해 그 다음으로 나이가 많고, 머리 좋은 사람들의 직업이라는 마법사인 도리스가 이들의 리더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 리더가 누가 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용병들은 대부분이 그런 직책을 귀찮아했던 것이다.

이들 용병들은 원래 봄의 대륙에서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도리스가 갑자기 어떤 지도를 들고 왔는데, 그 지도엔 고대 유적으로 가는 길이 그려져 있었다. 지도에는 고대어로 빛의 성지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우연히 입수한 이 지도로 인해 이들은 빛의 성지를 목표로 잡고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도는 여름의 대륙을 기점으로 길을 나타내고 있었고, 이들 용병들은 용병 의뢰를 마다하고 합심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한데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도리스가 왜 처음 보는 로얀에게 말하는 것일까?

“자네도 합류하지 않겠나?”

결국 도리스의 의도는 이것이었다. 거기까지 가는데 또 어떤 몬스터가 덤벼들지, 그리고 그 유적에 어떤 함정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판국에 로얀이 마법검을 들고 있든 말든 그 실력이 굉장한 것만은 사실이었기에 도리스는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로얀은 과거 빛의 정령 윌오위스프를 통해 빛의 성지라는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한데 그때 분명 지도는 어떤 드래곤이 가지고 갔다고 그린 드래곤 그라시드가 말했다. 게다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그 지도를 왜 도리스가 들고 있는 것일까?

“.......”

[다크로드를 제외한 다른 정령들은 모두 크라우트 숲으로 가 있어라.]

로얀이 도리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정령어로 그렇게 말하자 그를 따르던 세드니스와 정령들이 움찔거렸다. 그들은 거리가 너무 멀어 용병들이 자신들을 볼 수 없으리라 여기고 모두 그림자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마스터.]

다크로드가 로얀의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지 않겠나? 거기에 있을 보물들을 생각해 보게나.”

하지만 로얀은 여전히 도리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정령어로 정령들에게 말했다. 정령어는 소리로 전하는 것이 아니기에 도리스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내 옆의 도리스라는 자는 인간이 아니다.]

[네? 그럼 도대체!]

로얀의 말에 어둠의 정령들은 웅성거렸다.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 존재는 흔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드래곤 역시 아니다.]

혼돈의 정령왕이 되면서 눈을 얻게 된 로얀은 신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어도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을 통해 그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데 도리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드래곤의 거대한 마나의 힘이 아니었다.

“응? 응? 어떤가, 내 제안이? 그저 따라와 주기만 하게. 여행 경비도 내가 다 내주겠네.”

도리스는 웃음 지으며 로얀을 향해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가 마나를 잘 다루지 못해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최상급이 된 다크로드는 몰라도 너희들은 눈치 챌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모두 그 숲으로 물러가 있어라. 명령이다.]

[예.]

스르륵.

로얀의 명령이라는 말에 다른 정령들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물러났다. 그러나 다크로드는 그림자 속에서 로얀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래곤이 아니고, 중간계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마나를 잘 다루지 못한다면 도플갱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얀은 도플갱어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도리스가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서 책을 꺼내 읽을 수는 없었다. 정말 도리스가 도플갱어라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것을 눈치 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휴우... 마지막으로 부탁하네.”

한숨 섞인 도리스의 말이 들려오자 로얀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임을 알았다.

[빛의 성지라는 곳에 대해 아나?]

[네. 그곳은 빛의 정령과 관련된 곳입니다.]

아주 오래 전, 빛의 정령들은 중간계에 머물고 있었다. 빛의 성지라는 곳은 그런 빛의 정령들이 살던 곳이었다. 또한 그들을 친히 거두어 보살피겠다고 말한 천족이 빛의 정령을 데리고 천계로 올라간 통로가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 천족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때마침 전대 다크로얀이 일으킨 대학살을 무마시키기 위해 카오스가 많은 힘을 소진한 터라 그가 친 중간계와 천계를 막는 막 또한 얇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천족은 스스로의 힘으로 통로를 뚫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천계로 갈 수 있는 길이라는 말에 로얀의 눈빛이 빛났다. 천계로 갈 수 있다면 정령계로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그런 의도를 눈치 챈 다크로드가 말했다.

[마스터, 드래곤의 손에 있을 지도를 어떻게 저자가 들고 있는 것일까요?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이.......]

[상관없다. 어차피 그녀를 만나기 위해 드래곤 산맥을 뚫고 갈 생각이었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을까?]

사박, 사박.......

로얀의 발소리가 순간 더욱 크게 들려왔다.

[저는 그저 마스터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어쩌면... 빛의 성지에서 드래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신기한 물건과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까마귀 같은 드래곤이 고대의 유적에 눈독 들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로얀과 다크로드의 대화를 알지 못하는 마법사 도리스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로얀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안 되겠는가?”

“가겠다.”

“저, 정말인가!”

드디어 로얀의 입이 열리고 승낙의 말이 나오자 도리스는 뛸 듯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앞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뒤의 다른 용병들이 의아해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스터, 저자를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고 있다. 그나저나 도플갱어라.......]

그러는 동안 어느새 그들 일행의 눈앞에 사막도시 뮤트가 그 거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뮤트로 들어가 혼자 있을 때 몬스터 도감에서 도플갱어에 대해 찾아보기로 한 로얀은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도리스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렇게 로얀과 다크로드는 빛의 성지로 가는 여정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