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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타스?”
학철은 오툴이 킬타스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을 해 보았다.
‘고양이가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까?
혹시 비둘기라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도저히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고양이가 흑마법사를 할퀴거나 해서 주의를 돌린다면… 그 사이에 리얀 님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학철의 망상이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
우르르르르….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킬타스!”
오툴은 다시 한번 더 킬타스를 불렀다.
우르르르르….
그러자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다시 한번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하늘을 날고 있던 용족들도 이상한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번쩍! 콰콰쾅!
다음 순간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쳤다. 학철은 한순간 하늘에서 내리꽂는 번개가 용족과 용족 사이를 빛줄기로 잇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것은 소리였다.
보통 번개가 치면 번쩍이는 빛을 본 다음, 몇 초 뒤에 소리가 도착한다. 그 빛과 소리의 차이를 가지고 번개가 친 장소와의 거리를 측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번개는 소리와 동시에 내리쳤다. 총성을 들으면 귀가 먹먹해지지만 바로 앞에서 듣는 천둥 소리는 고막이 찢기고 가슴이 울릴 정도로 웅장하고도 거대했다.
학철은 천둥 소리의 충격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번개에 맞은 용족들이 날개가 축 처져서는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게 뭐, 뭐야….”
학철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번쩍! 콰콰쾅!
번개는 다시 한번 이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전 것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난 것만 같았다. 충격파가 가슴을 지나서 뱃속 깊은 곳까지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흩어져! 어서!”
룩칼이 당황한 목소리로 황급히 지시했지만 이미 늦었다. 용족들은 이번에도 벼락을 맞고 추락했고, 남은 용족들은 룩칼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급하게 날갯짓을 하며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번쩍! 콰콰콰콰쾅!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 앞에서 안전한 곳은 없었다. 좀 전까지 하늘을 날고 있던 용족들은 모조리 지상으로 추락했다. 거리가 좀 있기는 했지만 학철은 그렇게도 당당하게 하늘을 날고 있던 용족들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커먼 숯덩이 꼴이 된 걸 볼 수 있었다.
“…하늘이 도운 건가?”
학철은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지는 걸 보며 하늘을 향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늘에는 환한 빛을 내뿜는 공간이 열려있었다. 조금 전 흑마법사가 마법을 열었던 공간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 바로 앞에 용이 있었다.
“킬타스!”
오툴이 용을 향해 외쳤다.
구오오오오오…
용은 오툴의 부름에 호응하듯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학철은 용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아마 홍대에 수많은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았다.
거대한 거미도 보았고, 사마귀도 보았다. 늑대도 보았고 흉물스러운 전갈도 보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분명 생명체였다.
용이라는 건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자연재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용은 도대체 어떻게 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마 어지간한 빌딩보다 클 것 같았다. 검은 비늘이 뒤덮인 몸 위로 시퍼런 빛이 마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지나며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진짜 전기인 모양이었다.
“제가 그랬죠! 킬타스!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한 용이라고!”
오툴은 진짜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다.
“저, 킬타스가 번개도 치게 만들어요?”
학철이 오툴에게 물었다.
“그야 기본이죠! 구름 위에서 구름을 조작해서 전기를 일으킨 다음에 그걸 조절해서 땅으로 쏘아 보낼 수 있다고요! 그뿐이 아니에요! 만약 유황으로 된 암석이 근처에 있으면 그걸 먹어서 뱃속의 불 주머니에 보관해 두었다가 불을 뿜을 수도 있어요!”
오툴은 꼭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자랑하는 것처럼 말했다. 학철은 굳이 오툴이 그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용이라는 존재의 위엄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용의 뒤편으로 빛나는 구체가 줄을 지어 등장하고 있었다. 구체 안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있었다. 칼과 창, 방패와 쇠뇌, 지팡이와 쇠스랑… 무기의 종류도 다양했다. 조금 전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구체 몇 개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수였다. 구체의 행렬이 마치 거대하게 빛나는 구름처럼 보였다.
홍대의 하늘이 빛으로 가득 찼다. 학철은 ‘빛의 군대’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면 지금 이들에게 딱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빛의 구체 선두에는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서 있었다.
“총사령관님!”
리얀이 하늘을 향해 외쳤다. 노인의 바로 옆에는 어린아이만 한 크기의 뿔피리를 든 여자가 서 있었다. 체구가 마치 운동선수처럼 거대한 여자였다.
“공격 나팔! 공격 나팔을 불어! 어서!”
쟈론이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면서 외쳤다. 쟈론의 얼굴은 고통을 참는 것처럼 심하게 일그러져있었다.
뿌우우우우우우…
길고도 장엄한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추어 빛의 군대는 홍대 전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학철은 빛의 구체들이 조금 전 흑마법사가 뿌린 빛나는 구체를 향해 흩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공이야!”
쟈론은 이렇게 말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꿈이 이루어졌어! 공격 나팔 소리에 딱 맞춰서 시원하게 방귀를 뀌는 게 내 평생소원이었는데! 으하하하하!”
쟈론은 상쾌하게 웃으며 칼을 집어 들었다. 학철은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마음 편할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 전까지 칼을 맞고 생사를 오갔던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가 어려웠다.
“@%#%^#$$^@%”
하늘에서 글자 그대로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어라고 느꼈던 바로 그 리얀의 모국어였다.
“…이제 안심하시오. 우리가 도울 것이오.”
다음 순간 우리나라 말이 울려 퍼졌다. 아마도 리얀이 총사령관이라고 부른 사람이 정신감응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쟈론! 흑마법사를 포획하라!”
총사령관이 우리나라 말로 쟈론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쟈론은 이렇게 말하고는 흑마법사를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갔다. 쟈론이 걷는 걸음마다 흑마법사가 만들어 놓은 붉은 기운이 빛의 기운을 받아 투명하게 사라졌다.
“마, 말도 안 돼! 도대체! 어떻게….”
흑마법사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쟈론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모르지. 나중에 총사령관께 물어보라고.”
쟈론은 이렇게 말하면서 흑마법사의 머리를 향해서 칼끝을 내밀었다.
“저것은….”
쟈론의 대답과 상관없이 흑마법사는 답을 찾은 모양이었다. 빛의 군대의 뒤편으로 거대한 기둥들이 보였다. 흑마법사의 옆에 서 있는 것과 흡사한 기둥이었는데, 다만 수백 개의 기둥이 빛의 군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기둥 속에 채워진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환한 빛이었다.
“에테르의 기둥….”
흑마법사가 중얼거렸다.
“그래. 에테르의 기둥이다, 흑마법사. 이곳에 에테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총사령관께서 미리 준비하신 모양이다.”
이렇게 말하는 리얀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기쁜 얼굴은 아니었다. 뭔가 씁쓸한 것을 씹었을 때 지을 법한 미소가 리얀의 얼굴에 떠올라있었다.
에테르의 기둥에서 빛이 내려와 옥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붉은 기운을 몰아내었다. 그리고 이제는 환하게 밝아진 옥상 위로 총사령관이 내려왔고, 그 뒤를 빛의 군대가 이었다. 쟈론이 칼을 움직이자 흑마법사는 무릎을 꿇었다. 용은 착륙하지 않고 옥상 주변을 선회했다. 용이 착륙하기에 옥상의 공간은 너무 좁았다.
“킬타스!”
오툴이 거대한 용을 향해 달려갔다.
구오오오오….
용은 목을 높게 세우고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퍼덕이다가 오툴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오툴이 콧잔등에 오르자 용이 목을 세웠고, 오툴은 아주 자연스럽게 용의 목덜미에 올랐다.
“이제 됐어! 킬타스! 저 녀석들 다 쓸어버리자!”
오툴이 이렇게 외치자 킬타스는 바로 지상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이미 군대를 풀었건만 굳이 나설 것까지야… 용기사단장의 의욕이 과하군.”
총사령관은 이렇게 말하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굳이 막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항복한다면 최대한 고통 없이 단칼에 목을 베는 자비를 베풀 것을 약속한다고, 흑마법사여.”
총사령관이 무릎을 꿇고 있는 흑마법사에게 말했다.
“나도 분명히 말했을 텐데.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도 흑마법사는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상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흑마법사에게 빠져나갈 길은 없어 보였다.
“그래. 우리를 8년이나 괴롭혔던 자이니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고 당당하게 구는 건 높게 사겠네, 흑마법사여. 하지만 이제는 자비를 베풀 수 없게 되었다네. 그대는 이제 본국으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게 될 것이네. 아주 길고 괴로운 심문 과정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지. 모질고 고통스러운 고문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네.”
총사령관이 말했다.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흑마법사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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