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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옥상으로 가겠다고요?”
진 팀장이 믿기 어렵다는 듯 쟈론과 오툴을 향해서 물었다.
“그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뒤에서 뒷짐만 지고 서 있을 거로 생각했어? 내가? 이 쟈론이?”
쟈론이 진 팀장에게 되물었다.
“제가 이야기 한 거, 못 들었어요? 지원요청 들어갔고, 출격 명령 떨어졌다고요. 이제 곧 아파치 헬기가 여기 옥상을 공격할 거라니까요?”
진 팀장은 여전히 쟈론이 한 말을 믿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 장난감 너무 믿지 마. 흑마법사가 우리 살던 곳에서 행한 기적을 안다면 그런 장난감 하나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걸 알 텐데,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깝네, 진 팀장.”
쟈론이 몸을 좌우로 살짝 비틀면서 말했다. 배에 뭔가 신호가 오는 모양이었다.
“올라가지 않고도 싸울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이를테면 오툴, 당신은 괴물들을 조종할 수 있지 않아요? 고양이도 조종했잖아요.”
진 팀장이 오툴에게 물었다.
“조종… 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아요. 협상을 하는 거죠. 내가 원하는 걸 알려주고, 그쪽이 원하는 걸 알고, 그래서 합의점을 찾는 거요. 그런데 지금 여기를 공격하고 있는 친구들은 원하는 게 없어요. 살아남기만을 바라죠. 그리고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다들 죽기를 바란다는 걸요.”
오툴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조종… 아니, 협상할 수 없다는 건가요?”
“예. 예를 들어서 바다전갈은 바닷가에서 살아요. 그런데 흑마법사가 강제로 차원이동문을 통해서 여기로 끌고 왔죠. 바다전갈은 이런 곳에서는 반나절만 지나면 수분이 말라서 죽어버려요. 그리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은 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요. 그런데 어떻게 협상이 가능하겠어요? 다른 경우도 그래요. 원래 깊은 숲속에서 작은 동물을 사냥해서 사는 사마귀들도 마찬가지고, 늑대도, 곰도 그래요. 어차피 여기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바로 이해한다는 거죠.”
오툴이 설명했다. 학철은 조금 전 보았던 동물들과 개미, 그리고 기름거미를 생각했다. 흑마법사는 그저 그 동물들을 활용했을 뿐이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배치했을 뿐, 특별히 인간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진 팀장님. 그런데요, 흑마법사가 지금 옥상에서 불러낼 친구들하고는 협상할 수 있을지 몰라요. 흑마법사는 바로 옆에 둘 수 있는 친구들을 부를 거예요.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무작정 공격하는 친구들을 부르진 않을 거라고요. 그렇게 했다가는 본인도 위험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협상할 수 있을 거야, 오툴. 만약 실패하더라고 리얀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도 있고. 그거면 충분할 거야.”
쟈론이 말했다.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요, 지금 상황, 확실하게 이해하고 계신 게 맞죠?”
진 팀장이 쟈론과 오툴에게 말했다.
“물론이지. 우리가 돕지 않으면 리얀과 세이라는 죽어. 옥상에서. 흑마법사에게.”
“그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진 팀장은 화를 냈다.
“그 이야기 맞아, 진 팀장. 우리는 옥상으로 갈 거야. 가서 흑마법사를 해치울 거야. 복잡할 거 없어.”
쟈론이 말하자 진 팀장은 뭐라고 반론을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그러더니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둘게요. 만약 두 분이 올라가신다고 해도 우리는 아파치의 공격을 늦추거나 할 수가 없어요. 아파치는 여기 현장에 도착하면 바로 지체없이 공격할 거예요. 30mm 기관포를 쏟아부을 거고, 헬파이어 미사일을 쏠 거라고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해요! 옥상에 올라가 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죽는다고요!”
진 팀장은 말하다가 감정이 올라오는지 점점 크게 말하다가 마지막에는 거의 절규하듯 소리를 쳤다.
진 팀장 목소리가 상가 1층에 메아리쳤다. 다들 침묵했다. 격해진 진 팀장에게 과연 누가 어떻게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부우우우우우욱!
침묵을 깬 것은 쟈론이었다. 정확하게는 쟈론의 방귀였다.
“아! 시원하다! 하루에 세 번이나 이런 방귀를 뀐 건 기록이야, 기록! 크하하하핫!”
쟈론은 기지개를 켜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뽕, 하는 소리와 함께 남아 있던 방귀가 쟈론의 몸 밖으로 밀려 나왔다. 진 팀장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입을 쩍 벌리고는 쟈론의 행태를 멍한 눈동자로 지켜보기만 했다.
“책임지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진 팀장. 죽어서 귀신이 되어 원망을 하면서 꿈에 나온다거나 하지도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는 쟈론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리얀이 지은 희미한 미소와 같았다. 학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는… 쟈론까지?’
학철은 리얀을, 세이라를, 그리고 쟈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버렸다.
“가만있자. 나는 어떻게 벽 타고 바로 올라가면 되지만 오툴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세이라나 리얀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하고는 같이 못 올라가.”
쟈론이 오툴에게 말했다. 그러자 오툴은 입고 있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진 팀장이 당황해서 오툴에게 물었다.
“올라갈 준비요.”
오툴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고는 벗은 옷을 상가 출입문 바로 앞, 바닥에 펴기 시작했다. 학철은 꼬마의 알몸을 보는 게 불편해서 시선을 멀리 향했다.
밖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여기저기로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멀리서 마치 콩을 볶을 때 나는 것과 같은 총성이 들려왔다. 학철은 사격장에서 들은 경험으로 미루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동소총을 발사하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총성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이미 병력을 파견해서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오툴은 옷을 다 벗고는 자신이 벗은 옷 위에 올라섰다. 학철은 처음 오툴 이름을 언급했을 때, 세이라가 오툴을 변태 꼬맹이라고 불렀던 걸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게… 이런 뜻이었나?’
학철은 쓴웃음이 나왔다.
“오툴! 그 사이에 비행체를 준비했군! 역시 오툴이야! 다른 세계에서도 제 몫을 다 하네?”
쟈론이 벌거벗고 있는 오툴을 보면서 말했다.
“비행체 운용하는 거, 오랜만이라 좀 떨려요.”
오툴은 이렇게 말하면서 엎드린 다음 바닥에 펼쳐놓은 옷을 구석구석 주름지지 않게 폈다.
“그리고 학철.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할 게. 일단 들어봐. 절대로 강요하는 건 아니야.”
쟈론이 학철에게 말했다. 학철은 절로 긴장이 되었다.
“지금 옥상에 올라가면 흑마법사가 있을 거고 칼잡이 셋이 있을 거야. 셋 다 내 수준의 최고 칼잡이지. 그걸 상대하는 건 리얀하고 나하고 세이라가 할 거야. 그리고 흑마법사가 불러낼 괴물들, 그건 여기 오툴이 상대할 거고. 그런데 걱정되는 게 있어.”
쟈론은 여기까지 말하고 학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도 그렇고 리얀도 그렇고 우리 세계에 속해있는 것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사실 우리 말고는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테지. 그런데 이 세계, 학철의 세계에 속해있는 것들은 불안해. 현지인이라면 단숨에 알 수 있지만 우리는 뭔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옥상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다고.”
학철은 쟈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죠?”
학철이 확인했다.
“바로 그래. 하지만 이건 마지막 싸움이야. 아주 위험한 싸움이 될 거고. 빠져있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어. 그냥 해 보는 말이야. 도움이 필요하니까. 마지막 싸움답게, 모든 도움을 다 받고 싶으니까.”
쟈론이 말했을 때, 학철은 미해의 눈치를 살폈다. 미해는 이제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서 쟈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갈게요.”
학철은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냐는 투였다.
“가려고 생각했어요. 저는 리얀 님이 고용한 현지인이에요. 마지막까지 같이 하는 게 맞아요. 그래야 금화 1천 개를 받을 자격이 있죠.”
학철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미해의 눈치를 살폈다.
“뭐? 학철 씨! 정신 나갔어?”
학철이 말하자마자 진 팀장이 고함을 쳤다.
“지금 옥상에 저 이세계인들은 모르고 현지인들만 아는 거, 있어! 아파치 헬기!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아파치 헬기! 그리고 그게 뭔지 이미 설명해 줬고!”
진 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파치 헬기에 관해서 설명을 듣고도 태연한 리얀, 그리고 쟈론의 태도는 학철에게 용기를 주었다.
‘무슨 대비책이 있겠지. 마법이나 뭐 그런 거.’
그리고 학철에게 있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해였다. 학철은 미해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인간인지, 그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쟁통에는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가치를 증명하다가 죽는다고 했지.’
학철은 쓴웃음이 나왔다. 세이라가 한 말 그대로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은 분명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저는 옥상에 어떻게 올라가요?”
학철이 쟈론에게 물었다. 쟈론은 턱으로 오툴을 가리켰다. 오툴은 하얀 천으로 아주 최소한만 가리고는 자신의 옷 위에 서 있었다.
“비행체야. 거기 올라타.”
“…마법 양탄자 같은 건가요?”
“마법 양탄자가 뭔지는 모르지만 아마 비슷할 거야. 오툴!”
쟈론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위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학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 구름이 학철의 머리 위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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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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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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