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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리얀이 숨을 헐떡이며 자론을 바라보았다.
“뭐야? 혼자서 흑마법사를 해치운 공을 독차지할 생각이야? 나도 같이 가야지, 혼자 가긴 어딜 간다 그래?”
“혼자가 아니라… 세이라와 함께 갈 것이다, 쟈론.”
이렇게 말하는 리얀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켰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건강상태는 아닌 게 분명했다.
“지금 옥상에는 나하고 비슷한 급의 칼잡이들이 적어도 셋은 기다리고 있어. 저기 머리통 날아간 스트라이어 장군이 알려줬다고.”
쟈론은 누운 상태로 목 없는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셋이라. 좋은 숫자다. 하루에 세 번 나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이 또 있었던가 싶다, 쟈론.”
리얀은 짐짓 여유 있는 척을 하려는 건지 농담조로 말했다.
“세 번이나 갑옷 사이에 공격을 받다니, 이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이러다가 네 번째는 심장이나 머리에 맞을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적어도 다시 나를 치료할 일은 업을 거야, 리얀. 크크크.”
쟈론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기분 나쁜 농담을 했다.
“그래, 그런 일 없어야 할 것이다. 피를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쟈론.”
리얀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살짝 휘청거렸다. 세이라가 반사적으로 리얀의 어깨를 잡았지만 리얀은 곧 자세를 회복한 다음 세이라의 팔을 뿌리쳤다.
“지금 옥상에 올라간다고 해도 흑마법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실 것 같으신가요?”
진 팀장이 리얀에게 물었다.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물론이오, 진 팀장.”
리얀은 생수병에 가득 담겨 있는 자신의 피를 흔들어 보여주면서 말했다. 학철은 피 몇 방울로 리얀이 얼마나 강력한 폭발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봐서 알고 있었다. 저 정도 양이라면 이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얼굴이….”
“내 얼굴에는 신경 쓰지 마시오, 진 팀장. 신경 써야 할 건 지하에 있소.”
“…지하요?”
“그렇소. 지하의 개미. 흑마법사가 여왕개미를 데리고 온 모양이오. 내가 흑마법사를 해치우고, 또 다른 괴물들을 그대의 군대가 물리친다고 해도 지하의 개미는 그대들이 해결해야 할 것이오. 더 많은 개미가 태어나기 전에, 빨리.”
리얀은 이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개미의 잔해를 가리켰다.
“보아하니 그대들의 무기로 개미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것 같소. 소령. 그대의 남은 부하들만 가지고도 충분할 것이오.”
“하지만 옥상에….”
“흑마법사와의 싸움은 그대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오. 그리고 개미는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화가 닥치게 될 것이오. 여왕개미를 죽여야 하오. 그래야 개체 수가 더 불어나지 않소.”
“알겠어, 알겠어. 이야기 들었지? 우리는 개미, 여왕개미를 상대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장 챙겨!”
장철중 소령은 남은 병력과 미니건을 챙겼다. 25kg이나 나가는 미니건은 부대원 셋이 나누어 들었다. 한 명은 본체를 들고, 다른 한 명은 배터리를, 나머지는 미니건 총탄을 들었다.
“지금은 네가 제일 무겁지만 돌아올 때는 제일 가벼울 거야.”
장철중 소령이 총탄을 몸에 두른 부대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부대원들이 키득거렸다.
“그럼 우리는 개미를 추적하겠소. 진 팀장. 뒤를 부탁해.”
장철중 소령이 말했고, 진 팀장은 거수경례를 붙였다. 장철중 소령 일행은 곧 개미들이 사라진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출발했다.
“세이라!”
상황이 정리되자 리얀이 세이라를 불렀다. 세이라는 리얀의 허리를 둘러서 안았다.
학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저, 저는….”
하지만 결국 학철은 용기를 내어 리얀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학철은 리얀과 어떤 위험한 곳도 함께 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다려라, 학철.”
이렇게 말하는 리얀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학철은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어쩐지 마지막 인사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면 약속한 금화를 지급할 테니 걱정 말아라. 흑마법사가 죽으면, 학철, 너의 임무도 끝이다.”
“그, 그래도….”
“이건 이세계인의 싸움이에요. 이세계인들끼리 싸우도록 놔두죠.”
진 팀장이 학철에게 말했다. 리얀은 진 팀장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자, 세이라.”
“예, 출발할게요.”
세이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리얀을 안고서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학철은 간밤에 세이라와 함께 옥상에 올라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리얀과 세이라가 곧장 옥상으로 쉽게 올라갔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리얀 님은 나하고는 달리 올라가는 게 무섭지 않겠지.’
학철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뭐 하는 거야… 날 이대로 내버려 두고!”
쟈론은 분하다는 듯 말했지만 누운 상태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학철은 창자가 제 자리를 잡기 전에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쟈론이 빈말로 하는 소리는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마지막 싸움은 못 보게 생겼네요.”
“100억 원은 아무래도 받기 어렵게 생겼네.”
미해가 불쑥 학철에게 말했다. 학철은 못 들은 척했다.
“아파치 헬기가 출격하면 옥상을 완전히 쓸어버릴 거야. 마법이고 나발이고 옥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
조금 전 보았던 아파치 헬기 전술 시범 영상이 떠올랐다. 구름 위에서 날아오는 기관 포탄은 도착한 후에나 발사음을 들을 수 있다. 제아무리 리얀이라고 해도 흑마법사와 싸우면서 구름 위에서 접근하는 헬기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100억은 못 받겠지만, 햇살 용역 건물 지분은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학철 씨.”
진 팀장이 말했다.
“예?”
“햇살 용역 건물, 앞으로는 정보부에서 운영할 거예요. 이름은 게스트하우스 사장하고 학철 씨 이름, 공동명의로 들어갈 거고요. 지금 홍 대표가 작업 중이에요. 일 다 끝나면, 학철 씨도 건물주예요.”
“아, 예….”
정보부가 소유한 건물의 이름만 올리겠다는 뜻이었다. 아마 세금이나 월세 같은 복잡한 문제가 얽히겠지만 아마 홍 대표가 다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수수료를 받을 것이고. 결국 학철에게 돌아올 몫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알바보다야 낫겠지.’
그리고 100억보다는 적을 것이다.
학철이 옥상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하고 있는데 진 팀장의 전화가 울렸다.
“예! 2과 거울 팀 팀장 김세진입니다!”
진 팀장은 전화를 들고는 구석으로 향했다.
“이제 출격 명령 떨어질 거야. 마음에 준비해 둬.”
미해가 말했다.
학철은 조금 전 리얀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학철을 바라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게 마지막 인사였을까?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학철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인간이 아파치 헬기와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조금 전 그 거대 개미들도 미니건 앞에서는 그저 살육의 대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쟈론 님!”
학철이 상념에 잠겨 있는데 등 뒤에서 귀에 익은 어린아이 음성이 다급하게 쟈론을 불렀다.
“어이, 오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네?”
“괜찮으세요? 괜찮으신 거죠?”
오툴은 누워서 회복 중인 쟈론 옆으로 가서 상태를 살폈다. 쟈론은 여유 있게 웃으며 오툴의 어깨를 토닥였다.
“리얀 님은요? 리얀 님은 옥상으로 올라가셨나요?”
“그래. 날 이렇게 여기 내버려 두고 세이라하고 둘이 옥상으로 올라갔어.”
“안 돼요. 도와야 해요. 도울 수 있어요.”
오툴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됐어! 출격 명령 떨어졌어! 흑마법사고 뭐고 이세계인들, 이젠 끝이야!”
진 팀장이 통화를 마치고는 환한 얼굴로 미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쟈론과 오툴이 진 팀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외면했다.
“끝 아니에요. 그렇게 끝나지 않아요.”
오툴이 진 팀장에게 말했다.
“아, 그러니까 내 말은, 흑마법사의 위협이 끝이다, 뭐 이런 거였어요. 흠흠. 아파치 헬기가….”
“오면서 들었어요, 아파치 헬기. 이곳에서는 그런 무기가 최강의 무기일지 몰라도 제가 살던 곳에서는 장난감에 불과해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킬타스가 있었다고요.”
학철은 오툴이 킬타스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던 것을 기억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한 용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곳에 킬타스는 없다. 여기서 오툴이 킬타스라고 부른 것은 그저 고양이 한 마리에 불과했다.
“좋아, 좋아. 장난감이든 최강 무기든 상관없어. 나는 흑마법사하고 싸워야 한다고.”
쟈론은 누운 상태로 팔을 뻗어 오툴의 어깨를 꽉 잡았다.
“옥상으로 가야 해. 리얀을 도와야 해. 방법이 있지? 그렇지?”
쟈론이 오툴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방법, 준비해 왔어요. 쟈론하고 같이 옥상으로 올라갈 거예요.”
오툴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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