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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론이 초반에 승부수를 띄울 거라는 건 학철도 알 수 있었다. 스트라이어 장군이 모를 리가 없었다.
챙! 챙! 챙!
쟈론이 매섭게 공격을 이어갔지만 스트라이어 장군은 방어에 치중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방어에 치중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공격의 실마리를 주는 것이다. 학철은 축구에서 수비에 치중하다가 역전 골을 먹는 경기를 수도 없이 보았다.
“여전히 매섭구나, 쟈론! 방패 들고 오길 잘했구나 싶다!”
스트라이어 장군이 여유 넘치는 음성으로 말했다.
“입 닥쳐!”
쟈론은 이렇게 일갈하고는 공격을 이어갔다.
“아….”
장철중 소령이 탄식했다. 방어에 치중하기로 한 스트라이어 장군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초반에는 날카로웠던 쟈론의 공격속도가 학철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느려졌다.
“쟈론이 죽으면 우리 다 죽겠지?”
장철중 소령이 학철에게 물었다.
“…그렇겠죠?”
학철이 대답했다.
“어떻게든 주의를 좀 끌어봐. 그사이에 내가 총을 집을 테니까.”
장철중 소령이 말했다. 어차피 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돕지 않는다면 쟈론이 칼에 맞아 죽는 것을 보게 될 거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죽음을 쟈론이 원하건 말건 그건 상관없었다. 쟈론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이것에 학철과 장철중 소령의 생각이었다.
다음 순간, 쟈론이 몰아치던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렀다.
“멈춰! 소령!”
쟈론이 스트라이어 장군과 거리를 두고 장철중 소령에게 소리쳤다. 어찌나 크게 소리쳤는지 옆에 있던 학철까지 움찔했다.
“내 승부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지! 끼어들지 마!”
쟈론은 이렇게 딱 잘라 말하고는 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자존심인가….”
장철중 소령의 어깨가 축 처졌다. 패배할 것 같을 때 꼼수를 쓰는 것은 보통 비겁한 행동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이건 그냥 보통 승부가 아니라 목숨이 걸린 승부다. 꼼수를 쓰건 말건 이겨야 살아남고 지면 죽는 승부인 것이다.
학철은 이런 승부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세이라가 말한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시 간다!”
쟈론은 학철이 뭐라고 생각하건 관계없이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잠깐이었지만 쉬어서 그런지 공격의 날카로움이 다시 살아났다.
챙! 챙! 챙!
쟈론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에서 깨질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잠시였다. 쟈론의 공격은 곧 무뎌졌다. 배에서 흘러나오는 출혈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아, 몰라! 승부고 나발이고….”
장철중 소령이 잽싸게 고개를 숙이더니 바닥에 뒹굴고 있던 HK433 자동소총을 집어 들었다. 아마도 미니건 사수가 들고 있던 총이었으리라.
철컥!
장철중 소령은 장전을 마친 후 바로 사격 자세를 잡았다. 학철은 비록 무뎌지긴 했어도 끊어지지는 않고 있는 쟈론의 공격에 시선을 집중했다.
콰콰쾅!
엄청난 폭음이 상가 1층에 울려 퍼졌다. 잠깐 동안 학철은 태어나서 들어본 총성 중에서 가장 큰 소리라고 생각했다.
폭음이 남기고 간 상처는 엄청났다. 학철은 스트라이어 장군을 바라보았다. 스트라이어 장군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텅 빈 공간만 있을 뿐이었다. 남은 몸체가 아직 싸울 수 있다는 듯 잠시 움찔거리다가 이내 곧 힘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칼과 방패가 바닥에 떨어져 차가운 금속음이 울렸다.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쟈론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미안하다, 쟈론. 낭비할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었다.”
리얀이 말했다.
머리 없는 시체는 간밤에도 보았다. 리얀이 마법으로 사람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건 이미 보아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니, 리얀! 어떻게 내 승부를 하루에 두 번이나 방해할 수가 있어!”
쟈론은 정말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성난 음성이 마치 투정 부리는 어린애처럼 들렸다. 투정을 마친 쟈론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주저앉았다. 오른손에 칼을 쥐고는 있었지만 왼손으로는 상처 부위를 감싸고 있었다. 출혈이 여전히 심했다.
“하루에 세 번이나 부상 당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리얀은 이렇게 말하며 쟈론의 상처를 치료했다. 리얀이 자신의 피에 담겨 있는 에테르를 사용해 상처를 치료하는 광경은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학철은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리얀이 손에 생수병이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고 왔으니 피를 많이 소모했을 텐데, 생수병에는 피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리얀, 얼굴 안 좋네.”
치료를 받은 쟈론이 창자가 제 위치를 찾기를 기다리며 누워있는 상태로 리얀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리얀의 눈빛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좋았던 적도 없다.”
리얀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지만 분명 허세였다. 리얀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린 탓이다.
“진 팀장님. 아까 학철 통해서 리얀 님이 말씀하셨지만, 지금 흑마법사는 이 건물 옥상에 있어요.”
세이라가 진 팀장에게 말했다. 세이라는 몇 번의 전투를 통해서 오히려 몸이 풀린 모양이었다. 표정도 밝았고 목소리도 가벼웠다.
“예. 옥상에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진 팀장이 말했다.
“흑마법사는 옥상에서 차원이동문을 열고 제가 온 세계에서 괴물을 소환해 던지고 있어요. 물론 그냥 집어 던지는 건 아니고, 중력장을 이용한 거품 방울을 형성해서 그 거품 방울에 괴물을 담아서 던지는 거죠. 그렇게 하면 꽤 멀리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거든요.”
세이라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진 팀장은 물론이고 학철도, 미해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옥상에서 괴물을 던지고 있다는 건 이해하겠어요. 던질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되나요?”
“꽤 멀리 가요. 그러니까….”
세이라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심하는데, 미해가 태블릿PC를 들고 와서 부근 지도를 열어 세이라에게 보여주었다. 미해는 뭔가 열심히 해야 하니까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표정은 얼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너무 놀라운 일의 연속이라 아직 적응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략 이 정도 될 거에요.”
세이라는 미해가 보여준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북쪽으로는 모래내 고가차로, 남쪽으로는 서강대교 북단 입구에 이르는 원을 그렸다.
“그 정도 범위라면 우리 수도방위사령부에서 파견한 병력들이 상대할 수 있을 거예요.”
진 팀장이 말했다.
“시간이 없소, 진 팀장. 흑마법사는 이미 전쟁을 시작했소. 지금 막지 않으면 흑마법사는 차원이동문을 통해서 더 많은 괴물을 불러올 것이오. 지금 막아야 하오. 지금 당장.”
리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 팀장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공중지원 요청했어요. 흑마법사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몰라도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아파치한테는 그저 지상에 존재하는 표적에 불과해요.”
진 팀장이 답했다.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아파치가 뭐지?”
리얀이 미해를 보며 물었다. 미해는 거의 기계적으로 아파치 헬기에 대한 정보를 찾은 다음, 동영상을 골라 리얀 앞으로 가지고 갔다.
미해가 리얀에게 보여준 것은 아파치 헬기의 전술 시범 영상이었다.
구름 위로 날아오른 아파치 헬기는 구름 위에서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지상 목표물을 조준한다. 그리고 30mm 기관포와 헬파이어 미사일을 사용해 공격을 가한다. 지상 목표물은 자신이 어떤 무기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산산조각이 난다.
“이 아파치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인가?”
리얀이 진 팀장에게 물었다.
“예. 이제 부장님하고 통화연결만 되면 지금 상황 설명하고 바로 요청하려고 해요. 그러니….”
“먼저, 절차를 다 밟아야 가능한 거라면 너무 늦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난감으로 흑마법사를 상대하려고 하다니, 내가 보기엔 흑마법사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진 팀장.”
리얀이 진 팀장의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아파치를 장난감이라고 하시다니 그거야말로 아파치를 과소평가하시는 거예요. 게다가 지금 몸 상태를 보세요, 리얀 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당장 쓰러져도 하나도 안 이상해요.”
“맞아요. 얼굴이 창백해요.”
진 팀장의 말에 미해가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멀쩡하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건 옥상에서 흑마법사가…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지금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서 승부를 가려야 한다. 이 승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리얀이 피가 가득 담긴 생수병을 불끈 쥐고 말했다. 리얀의 말은 자꾸만 끊어졌다. 숨이 가쁜 모양이었다.
“그 전에 잠깐이라도 좀 쉬세요. 쟈론 님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리고 이 건물, 12층 건물이에요. 당장 2층 올라가는 것도 문제예요. 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어떤 괴물이 있을지,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2층 3층 차례로… 올라갈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없다. 세이라!”
리얀이 세이라를 부르자 세이라는 리얀의 허리춤을 잡았다.
“나는 단숨에 옥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하여 최후의 승부를 벌일 것이다.”
“리얀!”
쟈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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