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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85화 (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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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거미를 문지기로 둔 문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괴물을 데리고 와서 지킨 문이었다.

학철은 저 너머에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어서 흑마법사가 거미 같은 괴물을 문지기로 둔 걸까, 그리고 왜 진 팀장은 저 문으로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의문의 해답은 문 너머에 존재할 거였다.

문이 활짝 열리자 차가운 LED 조명이 쏟아져 나왔다.

안에는 사무실이 있었다. 깔끔하게 정비된 사무실이었다.

“뭐야, 이거?”

장철중 소령이 실망이라는 듯 내뱉었다. 하지만 세이라와 쟈론은 차분한 눈으로 사무실 내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사무실의 중앙에는 거대한 서버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무실의 책상 배치는 모두 서버를 향해 있었다. 학철은 쌓여 있는 서버에서 점멸하는 LED 빛을 보며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이곳이 흑마법사의 일터였다는 것을 알고 있소, 진 팀장.”

리얀이 진 팀장에게 말했다. 진 팀장은 못 들은 척하려는 것인지 리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리얀은 진 팀장이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어갔다.

“흑마법사가 이곳에 와서 기존 폭력조직을 접수하고, 건물을 사들이고, 사업을 벌였다는 걸 알았을 때 아주 간단한 의문이 들었소. ‘어째서 이곳 사람들이 흑마법사가 그러도록 내버려 두는가? 어째서 이곳 사람들은 흑마법사를 돕는가?’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오, 진 팀장. 흑마법사도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하듯, 거래를 했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소.”

“그야 흑마법사를 통해서 그쪽 세계와 외교를 하려고 했으니까요.”

진 팀장이 말했다. 하지만 잘 모르는 학철이 듣기에도 옹색한 변명이었다.

“외교를 하려고 했다면 외교관을 파견했으면 되었을 것이오. 이 국가의 수도 한복판에 불법조직을 만들고, 그 불법조직을 활용해 사업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이유가 없소.”

“잠깐. 그럼 흑마법사가 여기서 뭘 했다는 거야?”

쟈론이 물었다.

“나는 어제, 이곳에서 이곳의 전자기기에 정신감응 마법이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새로운 물건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것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힘이라고?”

“그렇다. 제대로 된 장비만 갖추게 된다면 정신감응 마법을 통해서 전 국민을 감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전 국민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화 내용은 무엇인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모든 것을 감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거, 정보를 다루는 부서라면 낙원 같은 거네요. 누구나 상상은 하지만 가질 수 없는, 그런 거요.”

세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진 팀장을 바라보았다.

“리얀 님. 과장이 지나치세요. 전 국민을 감시한다니… 이 나라 국민 수가 5천만 명이에요. 5천만 명을 감시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이곳에 이런 것을 지은 것이오, 진 팀장. 이곳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도 정보부에서 지급했을 것이오. 부족한 부분은 흑마법사가 금화로 아낌없이 지급했을 것이고. 나도 마법사이기에 마법사가 금화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잘 알고 있소.”

금화를 하찮게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학철의 마음이 조금은 복잡해졌다. 금화 1천 개를 지급하는 게 마법사 입장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덜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자신의 가치가 하찮아진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전 국민의 정보를 추적한다는 건 이 나라 윤리로 볼 때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인 것일 수도 있소. 하지만 나는 다른 세계에서 온 마법사이고, 그대들이 무슨 일을 하건 상관할 바 아니오.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소. 내 목적은 오직 흑마법사를 제거하는 것뿐이오. 그대들이 저지른 일을 안다고 해서 협박을 한다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거나 할 이유가 내게는 없소.”

리얀의 말에 진 팀장은 조금 안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속인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용서하기 힘든 일이오, 진 팀장.”

리얀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리얀의 목소리가 고조되자 다들 그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숨을 죽였다.

“우리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동료 입장이오. 동료의 기본은 신뢰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공동의 적이 사라진 뒤에는 어찌 될지 모르나, 그래도 동료 입장을 하고 있을 때 사실을 숨기고 왜곡한다면 어떻게 신뢰를 가질 수 있겠소?”

“죄송해요. 사과드릴게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흑마법사와 이곳에서 벌인 정보부의 공작은, 만약 세상에 알려진다면 정권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는, 그 정도의 사건이에요. 그래서 숨겼어요. 너무 위험해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가거든요. 죄송해요.”

진 팀장이 리얀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의외인 것은 미해의 반응이었다. 학철은 미해도 정보부 사람이니까 당연히 지금 리얀이 말한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해의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경악이었다. 미해는 진 팀장이 말하는 동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 생각을 말해보겠소, 진 팀장. 아마도 진 팀장은 흑마법사의 존재와 능력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흑마법사를 활용해 정보부가 꿈꾸는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자 했을 것이오. 모든 국민을 추적하고 감시할 수 있는 체계 말이오. 그리고 아마 그중 일부는 활용하기도 했을 것이오. 그 활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보부 내에서 입지도 다졌을 것이고. 여기까지 내 말이 맞소?”

“…예. 대체적으로는 맞아요.”

진 팀장이 순순히 수긍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토록 이용가치가 높은 흑마법사를, 왜 버리기로 마음먹었느냐 하는 것이오, 진 팀장.”

리얀이 물었다. 진 팀장은 사무실 의자를 하나 끌고 와서는 거기에 편하게 앉았다.

“이해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권력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이곳의 권력 구조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쯤은 이미 이해하고 있소, 진 팀장.”

리얀이 말했다. 계속하라는 뜻이다.

“알았어요. 이 나라에는 크게 두 개의 권력이 존재해요. 이해하기 쉽게 빨간 당, 파란 당이라고 할게요. 빨간 당이 권력을 잡으면 파란 당을 무너뜨릴 방법을 고안하죠. 반대로 파란 당이 권력을 잡으면 빨간 당을 무너뜨리려고 하고요. 이게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됐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공격수단을 보유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흑마법사를 발견하게 된 거죠.”

진 팀장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사실 저, 승승장구했어요. 강력한 흑마법사를 담당하는 요원이 바로 저니까요. 물론 재미도 많이 봤어요. 야당 정치인 몇 명 비리로 날려 보낸 것도, 시민단체 대표의 사생활을 캐서 무너뜨린 것도 다 제 손에서 흑마법사 통해서 성공한 공작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왜?”

리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제가 간과한 게 있었던 거죠. 사실 빨간 당과 파란 당은 서로 상대를 필요로 한다는 걸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빨간 당 입장에서는 파란 당이 있어야 하고 파란 당 입장에서도 빨간 당이 있어야만 해요. 그래야 노란 당, 초록 당, 보라 당, 이런 당들이 권력을 잡을 수 없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리얀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충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소. 아무튼 그런 이유로 흑마법사가 실행하고 있는 일을 폐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오?”

“예. 사실 명령을 받은 건 꽤 오래됐어요. 처음엔 좋았죠. 아주 요긴하게 몇몇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위쪽 사람들 마음이 바뀐 거예요. 재미 좀 보는 수준에서 그쳐야지 빨간 당 파란 당 체제를 무너뜨릴 만한 배짱이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진 팀장은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곧 결심한 듯 바로 말을 이어갔다.

“흑마법사의 힘을 두려워한 것도 있었다고 봐요. 빨간 당을 공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파란 당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본 거죠.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죠. 게다가 아무리 이세계인이라고 해도 너무 막강한 무기를 가지게 되면 다른 마음 먹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우리가 사는 이곳을 통치하려고 들 수도 있고요. 충분히 그럴만한 인물이라고 판단 한 거죠.”

“그래서 이곳 정보부의 선택은 흑마법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었소?”

“예, 맞아요. 그리고 오늘 그 계획을 실행하게 된 이유는 이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어젯밤 흑마법사를 공격하기 위해 왔다는 걸 CCTV를 통해서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사실 흑마법사는 이세계 사람이니까 이세계인 손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깔끔하잖아요? 그런데… 어제 CCTV에 잡힌 영상을 보면 이세계에서 온 영웅들이 흑마법사의 함정에 빠져서 죽어나가는 거였어요. 물론 함정을 피한 쟈론 님도 있었고, 오히려 역습을 가한 리얀 님, 세이라 님도 있었지만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거였어요.”

“흑마법사는 물론이고 그 수하들까지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고 이해하면 되겠소?”

리얀이 물었다.

“예, 맞아요. 그래서 아침부터 그렇게 큰 소란이 일었던 거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이라니, 저도 꺼려지긴 했어요. 하지만 별수 있나요? 결정했으면 하는 거죠.”

“잠깐만요, 진 팀장님. 저도 이런 정보부 비슷한 일을 해서 잘 아는데요, 흑마법사뿐만 아니라 그 수하들도 모두 죽이기로 한 것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아닌가요?”

세이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 그렇죠.”

“그럼 우리도 다 죽일 생각인가요? 여기 없는 게스트하우스 사장이나 홍 대표, 모두 다?”

세이라가 물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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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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