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
“빌어먹을!”
새끼 거미 두 마리가 부대원을 지나 장철중 소령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죽어!”
장철중 소령은 쿠크리 나이프로 정면으로 향하는 거미 한 마리를 베었다. 하지만 다른 거미 한 마리가 어느새 뒤로 돌아 장철중 소령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무방비 상태로 장철중 소령의 등이 새끼 거미에게 노출되었다.
‘나밖에 없어!’
“으아아악!”
학철은 자신도 모르게 기합 소리를 내며 새끼거미의 등을 향해 쿠크리 나이프를 휘둘렀다.
퍽!
부드러운 것에 칼날이 박히는 끔찍한 감각과 함께 시커먼 체액이 학철의 얼굴로 튀었다. 기름 냄새와 비린내가 섞인 아주 고약한 냄새도 났다.
어쨌거나 학철이 노린 거미는 그대로 죽었다.
“괘, 괜찮으세요?”
학철은 긴장과 흥분으로 호흡이 거칠어졌다.
“남는 거 줬더니 쓸데없는 짓을 하네. 내가 해치우려고 했는데 뭐 하러 나섰어?”
장철중 소령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긴 했지만 학철은 장철중 소령이 손을 떨고 있는 걸 놓치지 않았다.
‘진짜 츤데레도 아니고….’
학철은 이런 생각을 하며 성체 거미 쪽을 바라보았다.
혼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끼 거미와 부대원, 그리고 쟈론과 세이라는 갑자기 등장한 새끼 거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검은 거미의 체액이 튀었다. 병사 하나는 새끼 거미의 발톱에 베어 피를 흘렸다.
휙!
성체 거미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앞발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부대원 하나가 거미의 발톱에 그대로 관통이 되었다.
“어… 어….”
부대원은 구멍이 뚫린 자신의 배를 보다가 앞으로 무릎을 꿇었다.
“정수야! 김정수!”
장철중 소령이 고함을 쳤다. 그러자 리얀은 무릎 꿇은 병사 쪽으로 달려가더니 손에서 피를 내었다.
“어, 안 아파요! 안 아파!”
피가 배에 닿기가 무섭게 부대원이 이렇게 말했다. 학철도 경험했던 마법이었다. 갑자기 통증이 사라지는 게 얼마나 신기했던가. 학철은 부대원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장이 제 위치를 찾을 때까지 누워있어라, 병사.”
리얀이 말했지만 부대원은 자리에서 일어선 뒤, 쿠크리 나이프를 고쳐 잡았다.
“전투가 한창인데 이대로 누워있을 수는 없습니다!”
부대원은 성체 거미 쪽을 향해 받을 딛으며 당당하게 외쳤지만 바로 다음 순간 배를 잡고 앞으로 쓰러졌다.
“으아아아악!”
고통 때문에 데굴데굴 구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진짜로 고통 때문에 구르는 사람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대원은 좌우로 구르며 끔찍한 비명을 내었다.
“그대로 엎드려서 숨을 쉬어라, 병사. 곧 회복될 것이다.”
부대원은 끄응, 하는 신음을 내며 엎드린 자세 그대로 멈췄다. 통증이 심한지 목덜미를 따라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부대원 하나를 전투 불능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한 성체 거미는 갑자기 기세가 오른 모양이었다. 쟈론과 세이라에게 발톱을 한 번 날려 본 성체 거미는 이 두 사람이 공격을 막고 피한다는 걸 배웠다.
성체 거미의 선택은 일반 부대원이었다.
휙!
성체 거미가 새끼 거미를 사냥하고 있는 부대원에게 발톱을 날렸다. 발톱은 머리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부대원은 성체 거미가 앞발을 들어 올린 순간 방패를 이용해 머리를 방어했지만 소용없었다.
콰직!
방패가 뚫리는 소리와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는 거의 동시에 들렸다.
“성체를 공격해! 공격하라고!”
장철중 소령이 발을 동동 구르며 쟈론과 세이라를 향해 외쳤다.
쟈론과 세이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성체 거미를 공격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야 부대원들을 향해 발톱을 날리는 것도 막을 수 있고, 독화살을 쏠 수 있는 빈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달려들고 있는 새끼거미들 때문에 쉽게 성체 거미에게 접근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콰직!
“으악!”
부대원 하나가 또 머리를 잃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옆에 있던 부대원이 마치 대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빨리! 성체 거미를! 제발!”
장철중 소령이 간절한 마음으로 외쳤다.
틈을 먼저 잡은 것은 세이라였다. 세이라는 자신을 향하는 새끼 거미 하나를 밟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뒤 성체 거미의 몸통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챙!
성체 거미는 앞발로 세이라의 공격을 튕겨내었다. 거미와의 전투를 벌이며 지금까지 들어본 소리 중 가장 묵직하고 울림이 있는 소리였다. 세이라의 몸은 거미 발톱에게 받은 충격으로 그대로 반대 방향을 향해 튀어 거의 벽면까지 날아갔다.
“성체는 느리다고 하지 않았어요?!”
세이라가 쟈론에게 말했다.
“아까 그 녀석들보다는 느려!”
쟈론이 답했다. 하지만 저 정도 힘이라면 조금 느린 게 약점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리얀! 아래!”
쟈론이 새끼 거미를 베며 리얀을 향해 소리쳤다. 거미줄 위에 깔린 에테르의 붉은 바닥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알고 있다.”
리얀은 쟈론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생수병에 자신의 피를 채우기 시작했다. 리얀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가 천천히 생수병 안으로 들어갔다.
“리얀 님….”
학철은 리얀의 얼굴을 보았다. 리얀의 창백한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입술의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뭐냐?”
리얀이 학철에게 날카롭게 반응했다.
“저, 피를….”
“괜찮다. 피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기 마련이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피를 이렇게 많이 흘린다면 분명 몸에 이상이 생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피를 내지 않을 수도 없고….’
희미해지면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붉은 기운을 보며 학철은 이렇게 생각했다.
챙!
다시 한번 묵직한 금속음이 울렸다. 성체가 휘두른 앞발을 쟈론이 받는 소리였다. 조금 전 세이라를 날려버린 성체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그 성체 거미의 공격을 칼 한 자루로 받아내고 있는 쟈론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서둘러!”
쟈론이 성체가 휘두른 앞발을 칼로 밀면서 소리쳤다. 성체의 다른 발이 칼로 앞발을 받고 있는 쟈론의 몸으로 날아갔다.
‘맞는다!’
학철은 조금 전 쟈론의 배에서 피가 튀어 올랐던 기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세이라가 거미보다 조금 더 빨랐다. 세이라는 두 번째로 날아든 발톱을 막아냈다.
“거 봐! 내가 느리다고 했지!”
쟈론이 낄낄거리면서 말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하면서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건 도대체 뭘까 싶었다. 수많은 전투경험일까?
‘아마 그냥 성격이겠지.’
학철은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화살을 날려요!”
세이라였다. 세이라는 온 힘을 다해 성체 거미의 앞발을 밀어내면서 장철중 소령을 향해 외쳤다.
슈슈슈슈슉!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섯 발의 화살이 성체 거미의 몸통을 향해 날아갔다.
티티팃!
성체 거미는 나머지 발로 날아오는 화살 세 개를 막아냈지만 두 발의 화살은 몸통에 박혔다.
“성공이야!”
장철중 소령이 기뻐 펄쩍 뛰면서 외쳤다.
“아직 멀었어?”
하지만 쟈론은 그런 것에 기뻐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쟈론은 기쁨은 드러내지 않고 피를 채우고 있는 리얀을 향해서 재촉했다.
“다 됐다!”
리얀이 피가 가득 찬 생수병을 바닥을 향해서 뿌렸다. 그러자 희미해져 가고 있던 바닥의 붉은 기운이 선명하게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이번 바닥이 사라지기 전에 만약 저 거미를 잡지 못한다면….’
학철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새끼거미는 이제 정리가 되었고, 방패와 쿠크리 나이프로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은 일단 후퇴했다. 쇠뇌를 든 사수들은 다시 기회를 보고 있었고, 이제 성체 거미와 싸우는 것은 쟈론과 세이라 뿐이었다.
“이제 독 기운이 돌기만 하면 승산이 있다.”
리얀이 말했지만 학철은 바닥에 신경이 쓰였다. 저 붉은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성체 거미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성체 거미의 밥이 될 거였다.
‘제발… 제발….’
간절한 심정으로 기원하고 있는데 거미가 갑자기 쟈론과 세이라를 포기하고 천장 쪽으로 타고 올라갔다.
“도망치는 건가!”
장철중 소령이 거미를 향해서 외쳤다. 하지만 도망이 아니었다. 거미는 그대로 자신의 체중을 모두 싣고 공격을 감행했다.
“위험해!”
“위험해요!”
쟈론과 세이라가 동시에 외쳤다. 거미의 공격이 향하는 곳은 바로 리얀이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