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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거미의 집이오. 글자 그대로 거미집이라는 말이오. 거미와 싸울 때 거미집에서 싸우지 말라는 말은 아마 이곳 병법에도 있는 금언일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거미와 거미집에서 싸우는 무모한 작전을 감행해야만 하오.”
리얀은 복도를 걸어오는 동안 이 말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리얀의 연설에 다들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 보게 될 거미줄은 지금까지 본 거미줄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오. 새끼 거미들이 내는 힘없는 거미줄과는 다른 거미줄이오. 끈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고, 단단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미줄이라고 생각하시오. 만약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뎠다가는 그대로 거미줄에 엉켜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오.”
“거미줄을 밟기만 해도… 움직일 수 없다고?”
장철중 소령이 물었다.
“그렇소. 손이 닿으면 손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고, 밟으면 발을 뗄 수 없을 것이오. 움직이는 순간 주변의 거미줄이 이중, 삼중으로 달라붙을 테니 말이오. 성체가 거미집에 친 거미줄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가장 강한 물질이오. 거미줄을 채취해서 나무에 걸어두면, 말을 타고 달리는 상대방 기수의 목을 자를 수도 있소.”
“그럼 거의 피아노 줄이나 낚싯줄 정도로 강력하다는 거네요. 그런데 끈끈하기까지 하다고요?”
듣고 있던 학철이 궁금해서 리얀에게 물었다.
“거미줄을 낚싯줄로 쓰기도 하니까 아마 너희 세계의 낚싯줄과 비슷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상대해야 할 거미의 거미줄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상대는 일반 거미가 아니라 기름거미다. 체내에 기름을 가지고 있어서 불을 붙이면 폭발해 버린다. 거미줄에도 기름기가 많아 불을 붙이면 바로 폭발을 일으킨다.”
“그래. 들었어. 그래서 화기를 가지고 상대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이렇게 칼하고 쇠뇌로 무장하고 온 거잖아. 그런데 그런 끔찍한 놈을 도대체 그 세계에서는 왜 그냥 놔두는 거야? 그냥 아프리카 사자처럼 희귀한 동물이라고 내버려 두는 거야?”
장철중 소령이 리얀에게 물었다.
“아프리카 사자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기름거미는 동굴 깊은 곳에서 동굴 속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사냥해서 살기 때문에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소. 간혹 희귀한 광물이 있는 동굴을 거미가 장악한 경우에는 불을 질러서 간단하게 퇴치할 수 있소.”
“대신에 동굴 안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다 통구이가 되어버리지. 혹시 값나가는 책이나 귀한 그림 같은 걸 동굴 안에 숨겨두었다가는 그것들도 다 잿더미로 변해 버리고.”
쟈론이 리얀의 설명을 보충했다.
“자. 이제 내 설명은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생각하오. 그럼 이제 소령도 나에게 이야기해 주시오.”
“이야기? 뭘?”
장철중 소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소령. 나는 그대가 왼쪽 주머니에 뭔가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소.”
장철중 소령은 리얀의 말에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학철은 그것이 뭔지 단숨에 알아보았다.
“수류탄?”
학철은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내뱉었다.
“수류탄이라고 했는가? 폭탄의 일종인가?”
리얀이 물었다.
“예. 안전핀을 제거하면 5초 뒤에 폭발하는 폭탄이에요.”
“잠깐만. 내 설명을 들어봐.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임무 수행이 어려워질 경우, 거미와 함께 가기 위해서 준비해 온 거야. 저런 괴물이 밖으로 나간다면… 그런 일은 막아야 하니까.”
장철중 소령이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부대원들의 표정을 보니 부대원들과는 이미 출발 전에 이야기가 된 모양이었다. 만약 임무에 실패하게 될 것 같으면 자폭하겠다는 동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리라.
“제가 말씀드릴게요.”
세이라가 말했다.
“여기서 그 폭탄을 쓰면 여기 전체가 불바다가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거미도 죽고, 우리도 다 죽어버리겠죠. 다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진 않을 거예요. 제 계산으로는 여기 지반이 붕괴가 되어서 홍대 인근 건물들이 전부 다 주저앉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수천, 아니, 수만 명이 죽는 대형사고로 이어지겠죠.”
세이라도 자기 의견을 말했다.
“거, 건물이 무너진다고?”
장철중 소령이 당황해서 세이라에게 물었다.
“예전에 비슷한 전략으로 성벽을 무너뜨린 적이 있어서 알아요. 성벽 밑에 있는 지하 동굴에 살고 있던 기름거미를 폭파시켜서 불을 질렀거든요. 제가 말이죠, 원래 살던 곳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군사작전을 좀 수행해 본 적이 있어요. 나름 유능한 암살자였거든요.”
세이라가 조금은 우쭐거리는 투로 말했다. 학철은 쟈론의 태도가 어쩐지 전염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해?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에 거미를 못 잡는다면…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야. 저런 괴물을 거리로 나가게 둘 수는 없어!”
장철중 소령은 흥분했다. 장철중 소령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게다가 저런 괴물이 거리로 나가는 건 학철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수류탄을 쓸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장철중 소령은 부대원들을 살펴보았다. 부대원들도 뾰족한 생각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불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잡을 수 있는 상대를 불을 쓰지 않고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침착하시오, 소령. 조금 전 독화살이 어느 정도 효력이 있다는 건 확인이 되었소. 성체 거미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둔화시킬 수 있다면, 여기 쟈론과 세이라가 충분히 잡을 수 있소.”
“물론 리얀의 마법으로 거미줄 위에서 우리가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된다는 가정하에 그렇지. 마법 지속시간은 얼마나 될 거 같아?”
쟈론이 리얀에게 물었다.
“거미줄의 범위에 따라 다르다, 쟈론. 하지만 에테르의 지속시간은 본질적으로 길지 않다. 고로 빨리 싸우고 빨리 끝내야만 한다. 길어진다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물론이야. 빨리 끝내야지. 안 그래도 여기 있는 거 지겨워. 오래 끌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고!”
쟈론이 활기차게 말하자 부대원들이 낄낄거렸다. 쟈론의 말을 긴장을 풀기 위한 농담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좋아. 시간 더 끌지 말고 시작하지. 지금 전우가 저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겠어? 간단해. 우리는 안에 들어가서 싸우고, 전우를 구하고, 바로 나올 거야. 어려울 거 없어. 단순하게 생각해. 다들 준비됐지?”
성체 거미가 지키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절대 일이 이렇게 단순하게 진행될 리 없지만 장철중 소령은 자신의 부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 준비됐습니다!”
부대원들은 다들 그렇다고 답했다. 우렁찬 목소리에 확신이 어려 있었다. 학철은 군복무시절 자신도 저렇게 확신에 찬 답변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오르지 못할 산을 앞에 두고도 오를 수 있다고 했고, 팔 수 없는 땅을 보고 팔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군대를 두고 까라면 까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걸 테지.’
문을 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부대원들을 보며 학철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쩐지 들고 있는 쿠크리 나이프가 군복무시절 들었던 삽자루처럼 느껴졌다.
“지금 간다. 고.”
장철중 소령이 수신호를 보냈다. 부대원들이 바로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
천천히 문이 열렸다. 내부는 어두웠다. LED 조명이 장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문을 연 병사가 외쳤다.
“적을 앞에 두고 당황하지 마라, 병사.”
리얀은 이렇게 말하곤 피 한 방울을 날렸다. 그러자 내부가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방 내부가 꼭 빛이 나는 붉은 안개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리고 빛나는 안개의 빛을 따라 거미집이 보였다. 촘촘하게 잘 짜인 거미집이었다. 거미집은 마치 바닥 문양처럼 넓게 쳐 있었다. 크기는 어지간한 진짜 집 한 채 정도였다. 하지만 붉은빛의 안개가 없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거미집 중앙에 성체 거미가 있었다.
- 츠츠츠츠츠츠…
자신의 영역에 뭔가가 들어온 것이 아주 불쾌하다는 듯, 성체 거미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었다. 세이라가 말했던 것처럼, 여기까지 타고 온 승합차와 비슷한 크기였다. 다만 여덟 개의 긴 다리를 뻗으면 실제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였다.
“빨리 싸우고 빨리 끝내야 한다, 쟈론, 그리고 세이라.”
리얀이 자신의 피가 가득 담긴 생수병을 들면서 말했다.
“태어나서 본 중에 가장 빠르게 움직일 작정이야, 리얀. 걱정하지 마.”
“준비됐어요.”
쟈론과 세이라가 각각 답변했다. 리얀은 숨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더니 단숨에 생수병 안에 들어있던 자신의 피를 거미집을 향해서 뿌렸다. 그러자 거미집 위에 붉은 카펫처럼 층이 하나 생겨났다.
“시작해!”
리얀이 소리쳤고, 쟈론과 세이라는 각각 성체 거미의 오른쪽과 왼쪽으로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성체 거미가 여덟 개의 다리를 이용해 자신의 몸통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몸통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끼 거미 수십 마리였다.
새끼 거미들은 마치 어뢰가 발사되는 것처럼 정면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지원해! 어서!”
장철중 소령이 명령을 내렸고, 방패와 쿠크리 나이프로 무장한 부대원들이 용감하게 새끼거미를 향해 앞으로 나섰다.
“우와아아아!”
부대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전투의 함성이었다. 쟈론과 세이라는 침착하게 달려드는 새끼 거미를 한 마리씩 베어 넘겼다.
“대장님! 뒤에!
부대원 하나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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