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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79화 (7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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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츠츠츠츳!

거미가 거친 숨소리를 몰아서 내었다.

“대장님!”

쇠뇌로 무장한 대원 하나가 쟈론을 향해 앞다리를 들어 올린 거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미의 배가 불규칙적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고 있었다. 호흡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지금이야! 세이라!”

쉬쉬쉭!

장철중 소령이 세이라의 이름을 다 발음하기도 전에 세이라는 거미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거미는 들어 올린 앞다리로 세이라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지만 움직임이 지금까지와 비해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느렸다. 세이라의 단검이 몸통을 길게 가르고 지나갔다.

- 츠츳츳츳! 츳츳!

거미는 몸통을 뒤틀며 격한 숨소리를 토해내었고, 그 틈을 타 쟈론은 거미의 머리 위로 올라섰다.

“가족들 만날 시간이야.”

쟈론은 거미의 목덜미에 자신의 긴 칼을 박아 넣었다.

- 츠츠츠츠… 크르르르….

거미는 사람이 심하게 코를 고는 것 같은 숨소리를 내면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공격이 제대로 박힌 것이다.

- 그아아아아… 그아아… 그아아아아아아아…

뉴트리아들이 공명하듯 크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끄, 끝난 건가?”

장철중 소령이 믿기 어렵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 사이, 리얀은 바람을 탄 것처럼 빠르게 바닥을 미끄러져 쟈론에게 다가갔다.

“나는 가족들 안 만나겠지? 응?”

쟈론이 배를 감싸 쥔 상태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리얀에게 말했다.

“만나겠지. 언젠가는.”

리얀은 손바닥에서 피를 내어 쟈론의 배에 흘렸다.

“하지만 오늘은 만나지 않을 것이다, 쟈론.”

“단정 짓지 마. 오늘은 아직 많이 남았다고, 리얀.”

쟈론은 이렇게 말하면서 뒤로 길게 누웠다. 총에 맞았을 때도 리얀의 마법 치료를 받은 뒤 쟈론은 저런 자세를 취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많이 다쳤어?”

뒤늦게 달려온 장철중 소령이 쟈론에게 물었다.

“하필 갑옷 사이에 박혔네. 운이 없었어. 그러고 보니 오늘 갑옷 틈으로 총도 맞았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운이 없는 날인가 보네.”

쟈론은 가벼운 투로 말했지만 장철중 소령은 쟈론의 상처 부위에서 흐르고 있는 피를 보며 얼굴이 굳었다. 아마 치명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엄살이다. 마법으로 치료했으니, 창자만 제자리를 잡으면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리얀이 쟈론의 상처를 유심히 살피면서 말했다.

“이봐! 배에 발톱을 맞아서 구멍이 뚫렸는데 엄살이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쟈론은 농담조로 말했다. 마법 치료를 받아서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사, 상처가….”

장철중 소령이 쟈론의 배를 보며 깜짝 놀랐다. 거미의 발톱이 뚫고 들어가서 큰 구멍이 났던 쟈론의 배는 언제 상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장철중 소령이 놀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거였다.

“마법… 이구나, 이게… 그런데 리얀. 이 마법으로는 이세계인만 치료할 수 있는 건가?”

장철중 소령이 리얀에게 물었다.

“그렇진 않소. 저기 학철도 치료한 적 있으니까 말이오.”

리얀의 말에 학철은 코가 부러졌던 끔찍한 경험이 떠올라서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내 부하들은? 아까 전사한 내 부하들은?”

“내 마법은 어디까지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뿐이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마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소. 여기 쟈론도 만약 머리나 심장을 공격당해 즉사했다면 세상 그 어떤 마법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을 것이오.”

리얀의 말에 장철중 소령은 숙연한 태도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니까 심장이나 머리를 당하지 않고 배에 맞은 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모르겠네. 불행이라면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고, 다행이라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쟈론이 여전히 농담하는 투로 리얀에게 말했지만 리얀은 쟈론의 말에 답하지 않고 손바닥에 피를 내서 빈 생수병에 핏물을 채우고 있었다.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학철은 리얀의 상태를 보았다. 리얀의 하얀 얼굴은 어쩐지 어제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리얀은 어제부터 계속해서 피를 내고 있었다.

‘저렇게 피 많이 흘려도 상관없는 걸까?’

하지만 이 질문의 답은 리얀만이 알고 있을 것이고, 리얀은 묻는다 해도 대답을 하지 않을 거였다.

‘흑마법사와 마주쳤을 때 이 피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쟈론. 에테르 없이 흑마법사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리얀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오직 흑마법사를 죽이기 위해서 이곳에 온 리얀이니 본인 상태와 관계없이 리얀은 피를 모을 것이고 그 피를 마지막 전투에 사용할 거였다.

장철중 소령의 명령을 받은 부대원들이 마비된 상태로 거미줄에 갇혀 있던 부대원들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마비된 병사들을 움직이게 할 방법은 없었다.

“일단 방치해 두는 수밖에는 없겠군.”

“경계병 둘만 세워두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방패 병사 수는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부대원 하나가 건의했다. 장철중 소령은 두 명을 호명하고, 이곳에서 마비된 병사들을 지키고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여기 있는 건 다섯뿐이야. 2중대원이 9명 남았다고 들었으니까 나머지 넷은….”

“성체가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고 봐야 할 것 같소.”

리얀이 말했다. 학철은 성체 거미 앞에 먹잇감 신세가 된 부대원의 심정을 상상해 보았다. 의식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몸 내부가 녹아 빨리는 상황을 상상하자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팔등에 소름이 다 돋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장철중 소령이 부대원들을 정비시킨 후 리얀에게 물었다.

“나도 시간이 많은 건 아니오. 다음 방을 정찰하겠소.”

리얀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긴 했지만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어쩐지 빈혈을 앓았던 예전 학교 친구들도 저렇게 창백한 얼굴을 했던 것 같았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학철이 리얀에게 물었다. 별 소용없는 말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다.”

리얀은 이렇게 말하면서 피의 안개를 출입문 쪽으로 흘려보냈다. 리얀은 눈을 감고 자신이 흘려보낸 에테르의 흐름에 집중했다. 학철도 눈을 감고 리얀을 따라 했다.

“긴 복도를 지나면 방이 나올 것이오. 방 입구는 에테르의 방벽으로 막혀 있어서 더 이상은 알 수 없소. 다만 복도는 안전하오. 지금 시점에서는.”

“전투에서 매복이야 언제든 닥칠 수 있지. 다들 정렬해! 쇠뇌 사수들! 독화살 얼마나 남아 있어?”

장철중 소령이 쇠뇌 사수들에게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남은 독화살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사수 하나가 어렵게 답했다. 남아 있는 화살은 사수 당 두어 발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독이 효과가 없는 건 아닌데, 한두 방 먹여서는 효과가 없을 거 같은데… 게다가 상대는 성체라고 하니까….”

장철중 소령은 이번에도 고민을 했다. 지휘관답게 조금이라도 적은 희생을 치르고 승리를 얻고 싶은 것이다.

“걱정하지 마! 내가 쓸어버릴 테니까. 내가 상대해 봐서 아는데, 성체가 더 느려!”

반면 쟈론은 태평해 보였다.

“…느리지만 힘이 더 세죠.”

세이라가 말했다.

“힘을 이기는 게 속도야. 아무리 강해도 다 피해버리면 소용없잖아?”

“다 피하지 못하고 배에 발톱을 맞은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네요.”

“그야 성체가 아니라서 맞은 거지. 성체보다 훨씬 빠르다고, 우리가 상대한 어린 녀석들은. 그리고 세이라는 성체하고는 상대해 본 적 없잖아? 안 그래?”

“그야 그렇지만….”

“나만 믿어.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부우우욱!

쟈론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치더니 시원하게 방귀를 뀌었다. 그러곤 단 한 동작으로 몸을 튕겨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거미 잡으러 가 보실까!”

- 그아아아… 그아아아… 그아아아…

쟈론이 소리치자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뉴트리아들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수천 마리는 될 뉴트리아가 동시에 내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우리를 응원하는 거다! 우리가 이기면 녀석들은 거미 밥이 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크하하하하핫!”

장철중 소령은 짐짓 통쾌하다는 듯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뉴트리아 울음소리에 부하들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나름대로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부대원들도 그런 장철중 소령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억지로 따라서 웃었다.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억지로 농담을 짜내고 웃는 건 사기에 도움이 된다. 좋은 지휘관이고, 좋은 부하들이다.”

리얀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학철은 그런 리얀이 어쩐지 힘이 없어 보여서 불안했다.

“출발!”

일행은 다음 방을 향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시작된 길고 꼬여있는 복도 행군이었다. 학철은 복도가 너무 싫었다. 같은 길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만 같아서 머리는 멍해졌고 복도에 감도는 무겁고 탁한 공기도 싫었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밝기만 한 LED 조명이었다. LED 조명이 얼마나 밝은지 시퍼런 빛이 쏟아져 내려와 학철의 머리를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싫은 길이고 도대체 언제 끝나나 싶은 길이었지만 결국 끝은 있었다. 일행은 결국 다음 방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잠시 주목해주시오. 할 말이 있소. 중요한 이야기니까 잘 들어주시오.”

다음 방 진입을 앞두고 리얀이 모두에게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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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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