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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1중대 대원들입니다!”
눈이 좋은 부대원 하나가 멀리서 보고 확인한 뒤 이렇게 외쳤다. 부대원의 말이 맞았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킬타스의 시선으로 보았던 바로 그 부대원들이었다.
하지만 킬타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와는 달리 부대원들은 모두 마비되어 침을 질질 흘리는 꼴로 거미줄에 갇혀 있었다. 이미 한 번 본 것이긴 하지만 초점 없는 눈동자도 여전히 섬뜩했다.
“뭐 해! 얼른 달려가서 구해!”
장철중 소령이 고함쳤다.
“안 돼! 모두 멈추시오!”
리얀이 큰소리로 외쳤다.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방 안에 사육당하고 있던 뉴트리아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을 정도였다.
“그대의 부대원들 주변에 거미줄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거미줄을 건드리면 그것을 신호로 새끼거미들이 몰려올 것이오.”
리얀이 경고했다.
“진짜야. 좀 전에 우리도 한 번 체험했다고.”
쟈론이 리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보탰다.
“그럼… 어쩌지?”
장철중 소령이 리얀에게 물었다.
학철은 대규모로 뉴트리아를 사육하고 있는 이 방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큰 방이라니. 언젠가 동경 지하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하 빗물제어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축구장보다 큰 시설로 수십만 톤의 물을 가둘 수 있어서 동경에 장마나 태풍이 닥쳐도 수해를 입을 일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거대한 사육장도 그 정도 규모가 될 것 같았다. 방에 설치된 십여 개의 거의 집채만 한 큰 기둥들이 웅장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기둥 옆에 쌓여 있는 포댓자루들. 아마도 뉴트리아의 사료일 것이다. 도대체 몇 달 분량일까? 산처럼 쌓여 있는 사료를 보며 학철은 도대체 이곳에 이런 사육장을 만든 흑마법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어쩌긴. 경험자가 다시 시도해야지.”
쟈론이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조금 전에 해 봤는데, 사실 잘 안 되더라고. 거미줄 간격이 너무 촘촘해. 그러니까 아마 밟을 거야, 틀림없이.”
모두의 시선이 쟈론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미들은 거미줄을 밟은 나를 먼저 공격할 거야. 그러니까 그 틈을 노려. 새끼거미들은 약해. 그 허리 꺾인 칼, 쿠크리 나이프라고 했나? 그게 잘 먹힐 거야. 화살도 잘 박힐 거고.”
쟈론은 이렇게 말하면서 거미줄에 묶여 있는 부대원들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장철중 소령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전투를 피해갈 수는 없다. 우리 전우를 구출하려면 거미줄을 건드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 다들 무운을 빈다. 전투준비!”
장철중 소령의 명령에 부대원들은 다들 전투를 준비했다.
칼을 고쳐 잡고 쇠뇌의 조준을 바로 한다. 투구를 고쳐 쓰고 전투화를 바닥에 단단하게 딛는다. 학철도 별 소용 없을 줄 알면서도 장철중 소령에게 받은 쿠크리 나이프를 고쳐 쥐었다.
“자, 그럼 다들 준비하시고….”
쟈론이 이렇게 말하며 거미줄을 밟았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거운 정적이었다.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츠츠츠츠츠…
이미 들었기 때문에 익숙한, 거미의 숨소리, 그리고 발걸음 소리였다. 소리는 사방에서 서서히 다가왔다.
“온다!”
장철중 소령의 고함에 맞추어 새끼거미들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거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한 것은 쿠크리 나이프와 방패로 무장한 부대원들이었다. 쟈론이 말한 그대로였다. 쿠크리 나이프는 새끼거미에게 꽤 효과적이었다. 부대원이 쿠크리 나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시커먼 거미의 체액이 허공으로 솟구쳤고, 거미의 몸통이 토막 났다.
쇠뇌 사수들도 신중하게 한 발씩 화살을 날렸다.
“독! 독을 아껴!”
장철중 소령이 외쳤고, 쇠뇌 사수들은 독을 묻히지 않은 화살을 먼저 날렸다. 물론 다음에 있을 성체 거미와의 전투를 대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전투는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쟈론과 세이라가 전방에서 가장 많은 새끼 거미들을 토막 냈고, 부대원들도 나름대로 제 몫을 해 주고 있었다. 거미의 수는 금방 줄어들었고, 바닥에 거미의 시커먼 잔해들이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했다.
넓은 공간이었다. 때문에 거미가 사방에서 수로 밀어붙였다면 포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쟈론이 먼저 거미줄을 건드렸고, 거미들의 방향이 쟈론 쪽으로 몰렸기 때문에 부대원들이 거미들을 각개 격파할 수 있었다.
뉴트리아들도 승리를 응원하는지 울음소리를 냈다.
- 그아… 그아아아… 그아아아….
소가 음메, 소리를 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생각보다 구슬픈 느낌이 나는 울음소리여서 뉴트리아의 귀여운 외모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기는 했다.
다만 거미의 수는 예상보다 많았다. 그래도 앞선 방에서 수십 마리를 해치웠으니 이제 수십 마리를 더 해치우면 당연히 전투가 끝날 거라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새끼 거미들은 끝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구경만 하고 있는 입장이긴 했지만, 학철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 피해 없이 전투가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강해서 그랬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지나자, 거미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뒤쪽 다리 네 개만을 이용해서 고개를 쳐들고는 자신들이 들어왔던 환풍구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뭐, 뭐지? 도망치나?”
“다들 조심해! 추격하지 말고 경계해, 경계!”
이미 거미의 검은 체액을 뒤집어쓴 장철중 소령이 고래고래 고함을 쳐서 명령을 하달했다. 병사들도 비슷한 몰골로 각자 무기를 들고 거미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새끼 거미들은 잠시 몸통을 세우고 서 있다가 마치 누군가 구령이라도 붙인 것처럼 일제히 환풍구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이겼다!”
부대원 하나가 소리쳤다. 그러자 다들 함성이라도 부를 태세로 장철중 소령의 눈치를 살폈다.
“조용!”
하지만 장철중 소령은 전혀 기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용히 하라고 외치고는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병사들도 장철중 소령을 따랐고, 쟈론과 세이라도 아무 소리 내지 않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오고 있소, 소령.”
침묵을 깬 것은 리얀이었다.
“빌어먹을….”
장철중 소령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뿌드득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 츠츠츠츠츠…
새끼 거미와는 다른 소리였다. 그리고 이미 한 번 들은 소리이기도 했다.
다른 점은 한 마리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음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 바로 전 방에서 상대했던 아직 성체가 되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거의 호랑이나 사자만 한 크기의 거미가 등장했다.
세 마리였다.
“무, 물러서! 후퇴! 후퇴!”
저 거미의 발톱은 방패로 막을 수 없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대원들이었다.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부대원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쇠뇌로 무장한 부대원들도 허둥거리며 도망을 쳤다. 바닥에 흩어진 거미의 시커먼 체액을 밟아 미끄러지고 쓰러지는 부대원들이 속출했지만 모양 빠진다고 신경 쓰기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잠시 후, 남은 것은 쟈론과 세이라였다.
“다시 만났네? 너희 형제 죽여서 화났니? 응?”
쟈론은 짐짓 여유 있게 웃으며 칼을 돌렸다.
- 츠츠츠…
거미가 꼭 쟈론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곧 가족들이 한자리에 다 모일 테니까 말이야.”
쟈론이 왼쪽 거미 쪽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세이라는 쟈론과는 달리 긴장한 얼굴로 오른쪽 거미 쪽으로 다가갔다.
중앙에 있는 거미는 쟈론과 세이라를 번갈아가며 살피고 있었다. 아마도 어느 쪽으로 합세할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쟈론과 세이라의 발이 끈적였다.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하신 건가요?”
세이라가 쟈론에게 물었다. 실은 학철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난 언제나 자신만만해.”
쟈론의 답은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비참하게 겁먹은 것보다는 나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리얀! 뭔가 수가 있겠지?”
쟈론이 해맑게 웃으며 리얀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리얀은 들고 있던 생수병을 들어서는 통째로 바닥에 부었다. 핏물이 붉은 안개로 변해 리얀과 세이라의 발밑으로 흘러갔다. 그러자 끈적이던 쟈론과 세이라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싸워라, 쟈론.”
“그거 말고 다른 말은 없어?”
리얀은 말이 없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쟈론이 먼저 선공을 퍼부었다. 빨리 하나를 끝내 상대의 수를 줄일 심산인 모양이었다. 오른쪽 거미를 향해 걸어가던 세이라도 그대로 몸을 날려 왼쪽 거미 쪽으로 다가가 쟈론과 합류했다.
둘의 협공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나머지 두 마리의 거미가 주춤거렸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휙!
중앙에 있던 거미는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세이라를 향해 발톱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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