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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4일 뒤
“수색해!”
문이 열리자 장철중 소령은 명령을 하달했다. 부대원들이 앞으로 나서서 수색을 시작했지만 사실 수색할 것도 없었다. 방에는 시체뿐, 아무것도 없었다.
식당으로 썼던 방이었다. 그리고 킬타스가 전달해 준 영상으로 이미 보았던 방이기도 했다.
줄을 맞춰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던 테이블은 엄폐물로 쓰기 위해 쓰러져 총알구멍이 박혀 있었고, 나머지 테이블도 부서지거나 쓰러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부대원과 전투를 벌였던 흑마법사의 현지 부하들이 죽어 쓰러져 있었고, 한 구의 특수부대원 시체가 방구석에 안치되어 있었다. 치열한 교전의 흔적으로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방 안을 여전히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방 어디서도 영상에서 보았던 아홉 명의 부대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철진이하고 석구 시체는 오는 길에 봤는데… 태원이 시체인가?”
장철중 소령이 방구석에 안치된 시체를 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태원이입니다.”
부대원 하나가 안치된 시신을 확인한 후 답변했다.
“그럼 지원을 기다리던 1중대 아홉 명이 방에 있었던 게 분명한데….”
“조금 전 그 거미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시오?”
리얀이 장철중 소령에게 물었다.
“길은 우리가 지나온 복도 하나뿐인가?”
“그렇소.”
장철중 소령의 얼굴에 낭패의 빛이 떠올랐다. 다른 부대원들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이지 다들 같은 생각일 거였다.
조금 전 모두가 힘을 합쳐 쓰러뜨린 거미는 이 방을 지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방은 현재 비어있다.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실망하긴 아직 이르오, 소령. 거미는 독액으로 먹잇감을 마비시킨 후, 자신의 집으로 가지고 가서 보관해 두는 습성이 있소. 부대원들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곳 어딘가에 살아서 붙잡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오.”
리얀이 설명했다. 장철중 소령은 듣기 싫은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긴 했지만 리얀의 말을 끝까지 잘 참고 들었다.
“만약 우리가 그 다 자란 성체 거미를 죽여 버린다면 구출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잠깐. 오툴과 대화를 해야겠소.”
장철중 소령이 리얀에게 물었지만 리얀은 대답 대신 이렇게 대답했다.
- 저기요, 리얀 님. 지금 여기서 뭔가… 찾아낸 거 같아요. 본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찾았다고 해요. 아, 그리고, 지원하러 가려고 해요. 도와주러 가려고요. 그런데 뭐라고 전해요? 뭐라고 해야 알아들을 수 있나요? 이동지휘본부? 그렇게 말하면 되나요?
오툴이 리얀에게 정신감응 마법을 이용해서 말했다. 진 팀장과 대화를 나누며 말을 전하고 있는 건지 오툴의 말은 두서가 없고 맥락이 끊어졌다.
“진 팀장이 지원을 오겠다는 것 같소.”
리얀이 오툴의 말을 해석해서 장철중 소령에게 말했다.
“…여기, 지하라서 무전기는 안 터지는데. 진짜 마술로 통신을 할 수 있나?”
장철중 소령은 믿기 어렵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오. 지금 진 팀장이 이동지휘본부를 구성해서 지원을 오고 있다고 하오. 다른 상황이 발생한 것 같은데, 오툴이 그다지 조리 있게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 같소.”
리얀이 말했다.
“정확한 건 지원이 온 다음에나 알 수 있겠네.”
쟈론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다음 방으로 수색을 갈지, 아니면 이 방에 남아 진 팀장의 지원을 기다릴지, 그건 지휘관인 그대의 선택이오, 소령.”
리얀이 장철중 소령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나는 어느 쪽도 상관없소. 수색을 가는 것도 위험하고, 여기서 지원을 기다리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오. 다만….”
“다만?”
“이 방에 있던 그대의 동료들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오.”
리얀이 이렇게 말했을 때, 학철은 쟈론이 오는 길에 복도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편을 희생시켜서 성과를 얻은 거잖아?’
학철은 또 한 번 리얀이 부대원들을 희생시키려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장철중 소령은 고민에 잠겼다.
많은 생각이 오갈 것이다.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인이라는 신분도 떠오를 것이고, 부대 지휘관의 책임감도 막중할 거였다. 지금 현재 살아있는 자신의 부하들과, 또 거미에게 잡혀가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에 처한 부대원들도 고민의 대상일 터였다.
“모두 주목!”
고민이 끝난 모양이었다. 부대원들이 장 소령 앞으로 모였다.
“아마 다음 방에 성체 거미가 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 전우들이 거미에게 잡혀있을 것이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전우를 구출하려고 한다. 다만….”
장철중 소령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이 임무가 너무도 위험하고, 또한 진 팀장이 우리를 지원하러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 팀장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전우를 구하러 가는 것이 맞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다. 진 팀장을 기다릴 사람들은 기다려라. 절대 불이익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를 따를 자는 따르라. 이게 내 선택이다.”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부대원들도 장철중 소령의 고민의 무게가 느껴지는지 다들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가야죠. 대장님 가시는 데 따라가야죠.”
“위험하다는 거, 그게 뭐 대수입니까? 언제는 우리가 그런 거 따졌습니까?”
“우리가 버려졌으면 1중대가 안 오고 시간 끌었겠습니까?”
부대원들이 한마디씩 하며 장철중 소령 앞으로 한 걸음씩 나왔다. 학철은 혹시 내키지 않는데 나서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어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모두 다 하나같이 결연한 표정이었다.
“다들 고맙다. 리얀, 쟈론, 그리고 세이라. 이렇게 결정했어. 도와주겠지?”
“물론이지. 여기서 거미 잡고, 그리고 흑마법사 잡고. 그게 내가 할 일이야.”
쟈론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쟈론의 말투는 이럴 때 사기를 올려주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쟈론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다들 피식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럼 가자. 출발!”
장철중 소령은 앞장서서 다음 방을 향해 복도로 나섰다. 부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소령.”
리얀이 장철중 소령에게 말했다.
“무리 안 해. 전우를 구출하는 게 최우선이니까. 만약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그 앞다리, 쟈론하고 세이라가 막아줄 거라고 믿어. 그 사이 우리 대원들이 전우를 구출할 수 있을 거야. 아무 피해 없이.”
계획이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듣고 있자니 학철도 자연스럽게 장철중 소령의 말처럼 되기를 빌게 되었다.
“그리고 이거 받아.”
장철중 소령이 쿠크리 나이프 하나를 학철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남는 거다.”
츤데레도 아니고 이게 뭐람 싶었지만 학철은 빈손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쿠크리 나이프를 받았다. 속에 숨겨둔 권총은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말 필요한, 최후의 순간이 아니라면.
‘쓸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지만….’
다시 한번 긴 복도가 이어졌다. 학철은 다른 것보다 갑갑한 공기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풍구를 통해 지상에서 내려온 공기는 눅눅하고 무거워서 숨을 쉴 때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나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다들 비슷한 심정일 거였다. 그럼에도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어쩌면 가장 깊은 곳에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게 될지도 몰라.’
학철은 이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버틴다는 심정으로 발을 내디뎠다.
일행은 어느새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다음 방에 당도했다. 장철중 소령은 문을 열기 전, 부대원들을 집결시킨 후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면서 이야기한 그대로야. 문을 열면 신속하게 안으로 들어가서 전우들을 구출한다. 쿠르키 나이프가 거미줄은 끊을 수 있으니까 빨리 구출해서 퇴각해. 만약 거미가 추격해 온다면….”
장철중 소령은 리얀을 바라보았다.
“막는 것은 우리가 하겠소. 지원사격을 부탁하오, 소령.”
“물론이지. 조금 전과는 다를 거야. 화살촉에 독이 묻어 있으니까.”
“독이 효과 있기를 빌어보자고요.”
세이라가 명랑한 목소리로 장철중 소령의 말에 덧붙였다.
“그럼 시작한다. 셋에 여는 거다. 하나, 둘….”
“셋!”
문이 열렸다. 그러자 고약한 악취가 풍겼다. 학철은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고약한 냄새였다. 지금까지의 탁한 지하 공기가 강원도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공기처럼 여겨질 정도로 지독했다.
“으악!”
“뭐, 뭐야, 이거!”
다들 방 내부를 보자마자 한마디씩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괴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것은 방의 넓이였다. 지금까지 거쳐 온 방들이 다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느껴질 정도의 넓이였다.
“이건 뭐야? 완전 대강당이잖아?”
부대원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정말 대강당을 연상시킬 정도의 넓이였다.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대규모 양계장을 연상시키는 철창으로 된 우리였다.
우리 안에는 뉴트리아가 가득했다. 언뜻 보아도 수천 마리는 될 것 같았다. 방에 들어섰을 때 풍겼던 냄새는 바로 뉴트리아의 악취였다.
“어마어마하군. 저걸 거미들 먹이로 준 거야?”
쟈론이 한 손으로 코를 틀어쥐고 말했다.
“그것보다, 이 정도 먹이를 먹어야 한다면 거미 새끼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부대원 하나가 투덜거렸다.
“저기! 저쪽에!”
장철중 소령이 대강당처럼 넓은 방의 구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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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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