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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쇠뇌로 무장한 2중대가 쉴 사이 없이 거미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 츠… 츠츠…
복도에서 정면으로 맞선 거미는 화살이 몸에 박힐 때마다 몸부림을 치며 체액을 흘렸다. 하지만 쇠뇌의 화살 비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5명씩 교대로 발사하는 화살 덕분에 거미는 순식간에 고슴도치처럼 변해버렸다.
- 츠츠츠…
마침내 거미는 여덟 개의 다리를 모두 쭉 뻗고 바닥에 배를 댔다.
“2중대! 돌격해서 타격해!”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방패를 들고 경계하고 있던 2중대 병력이 앞으로 달려가 쿠크리 나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다음 일어난 일은 그저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푹! 푹! 푹!
연이어 세 번의 기괴한 소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어, 어어….”
세 명의 특수부대원이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며 동작을 멈추었다. 거미의 날카로운 발톱이 특수부대원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거미의 발톱이 움직이는 속도는 너무나도 빨라서 특수부대원 중에는 아무도 발톱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방패! 방패 똑바로 들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장철중 소령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부대원들은 재빨리 들고 있던 방패로 몸을 가렸다. 다들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명령을 따르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방패가 아니었다.
콰! 콰쾅! 쾅!
이번에도 연이어 세 번의 소음이 복도에 울렸다. 이번에 날린 거미의 발톱은 방패를 정면으로 관통한 다음, 방패 뒤에 서 있던 특수부대원의 몸통을 꿰뚫고 들어간 뒤,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역시 너무 빠른 움직임 때문에 발톱이 움직이는 것을 본 부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후, 후퇴! 후퇴!”
장철중 소령이 악을 쓰며 후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전방에 있던 부대원들은 그대로 뒤로 도망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퓻퓻퓻!
거미는 그 틈을 노리고 엉덩이를 치켜들더니 전방으로 거미줄을 뿜어냈다. 도망치던 부대원 몇이 거미줄에 걸리며 뒤로 넘어졌다.
“쇠뇌! 쇠뇌를 쏴! 어서!”
슈슈슉! 슉!
“으아아아아!”
쇠뇌로 무장한 대원들이 기합을 지르며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기합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것이었고, 초반에 날렸던 화살과는 달리 이번에 날린 화살들은 모조리 바닥에 떨어졌다. 쇠뇌를 잘못 조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보다 정확한 화살들이었다. 하지만 거미는 더 이상 화살이 자신의 몸에 박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미는 날아드는 화살을 모두 발톱을 사용해 방어해냈다.
“눈! 그래! 눈을 노려! 눈을!”
“소용없을 것이오.”
뒤늦게 도착한 리얀이 소령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용감한 병사 하나가 명령을 따라 거미의 눈을 향해 석궁 화살을 날렸다. 거미는 화살을 방어하지 않았다.
탱!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화살이 튕겨 나갔다.
“거미의 눈은 고밀도를 가진 방해석(方解石) 재질로 되어 있소. 일반적인 무기로는 흠집 하나 낼 수 없소.”
“도, 도대체 저건….”
“저것은 창가에 거미집을 치고 사는 작은 거미와는 다른 생명체라오. 외형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동물이오. 원숭이와 인간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생명체인 것처럼 말이오. 게다가 이곳은 복도. 공격이 전방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소. 이런 환경에서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내는 것은 저 거미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라오.”
리얀이 절망하고 있는 장철중 소령에게 설명했다.
“그, 그렇다면 저, 저, 괴물이 우리를 여기로 유인했다는… 그런 거야?”
장철중 소령은 당황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소. 첫 공격으로 최대한 많은 부대원을 잡기 위해 초반에는 화살을 일부러 맞아준 것이오. 내 충고하지 않았소? 상처 입은 야수를 추적하는 일은 늘 신중해야 한다고 말이오.”
소령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거미를 바라보았다. 복도의 푸른 조명을 받은 거미가 음산한 검푸른 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이제부터 쟈론과 세이라가 거미의 발톱을 상대할 것이오. 뒤에서 지원사격을 부탁하오. 아무리 한 방향으로 날아드는 화살이라지만 계속된다면 분명 실수도 할 것이오.”
“우리 뒤통수를 명중시키진 말라고!”
쟈론이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세이라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자! 다시 붙어보자!”
쟈론은 이렇게 외치고는 먼저 거미를 향해서 거미의 왼편에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저는 뒤를 노릴게요!”
세이라도 거미의 오른편에서 칼을 휘둘렀다.
“들었지? 쏴! 어서 쏴!”
장철중 소령이 부대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슈슈슉! 슈슉!
다시 정렬한 부대원들은 5명씩 교대로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거미는 앞의 다리 두 개로는 각각 쟈론과 세이라를 상대하면서, 두 번째 다리로 화살을 방어해냈다. 하지만 리얀의 말 그대로 화살이 계속해서 발사되자 한두 발씩 몸에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거미의 움직임에 작은 균열이 생겼고, 쟈론과 세이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으로 다가가 거미의 몸통에 상처를 입혔다.
“저렇게 빠른, 저렇게 빠른 움직임은…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봤어….”
장철중 소령이 탄식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이라가 말하지 않았소? 지금 상대하는 적은 이곳 군대가 상대해온 적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이오.”
리얀이 말했다. 어쩐지 상대를 조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투였지만 장철중 소령은 더 이상 불쾌하다거나 하는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슈우욱!
화살 하나가 거미의 몸통 정 가운데에 명중했다. 시커먼 체액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거미의 여덟 개의 다리가 일순간 경련을 일으켰다.
“지금이야!”
쟈론이 크게 칼을 휘두르고 앞으로 전진하며 소리쳤다. 거미는 쟈론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양다리를 다 써야만 했고, 그 틈을 타 세이라는 거미의 몸통 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죽어!”
세이라가 날카롭고도 큰소리로 외치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학철은 만약 귀신이 진짜로 있다면 이런 소리를 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 츠츳! 츠츠츠츠…!
기괴한 숨소리와 함께 거미의 몸통에 길고도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세이라가 단검을 이용해 몸통을 가른 것이다. 갈라진 곳에서 시커먼 체액이 마치 용암처럼 꿀렁이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거미는 자신의 몸통 위에 올라탄 세이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거미줄을 내뿜었지만 이미 균열이 생긴 몸통을 억지로 움직이려다 보니 오히려 터진 부분을 더욱 심하게 터지게 할 뿐이었다.
푸아아악!
거대한 자루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거미의 내장이 완전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세이라는 몸을 띄워 천장을 한 번 밟은 다음, 안전한 후방으로 빠져 나왔다.
이제 곧 죽음을 앞뒀음에도 불구하고 거미의 다리는 여전히 날카롭고 매서웠다. 쟈론은 그 공격을 받아넘기며 천천히 뒤로 빠졌다.
- 츠츠츠츠츠…
거미의 몸통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길게 울렸다.
“이, 이겼다!”
“우리가 잡았어!”
“이 빌어먹을 새끼가!”
부대원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쿠크리 나이프를 들고 거미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쟈론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부대원은 거미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고, 그 순간 거미가 앞다리를 길게 뻗었다.
거미의 발톱이 부대원의 등을 뚫고 타오는 것이 똑똑하게 보였다. 하지만 일단 뻗은 다리를 회수할 기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거미의 다리는 그대로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다들 그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거미는 사후경직이 있어서 이제 막 몸을 떨 거예요! 근처에 있다가는 발톱에 찔려 죽어요!”
세이라가 고함을 쳤고, 부대원들은 황급히 거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다.
잠시 후, 거미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좀 전에 싸울 때 본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고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았고, 이내 곧 거미는 완전히 늘어진 뒤 다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끝난… 건가?”
장철중 소령이 리얀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미의 생명이라면, 끝난 게 맞소.”
리얀이 답했다.
“망할!”
“이 개 같은….”
부대원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조금 전까지 거미였던 살덩이에 달려들었다.
순수한 분노였다. 부대원들은 다들 분풀이를 시작했고, 이내 곧 거미는 쿠크리 나이프 세례에 조각조각으로 분리되었다. 배가 깔끔하게 갈라져서 창자가 완전히 쏟아진 것을 시작으로 거미는 곧 잘게 다진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복도에 기름 비린내가 가득 찼다.
“이제, 진짜, 끝이겠지?”
부대장이 리얀에게 다시 물었다. 리얀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오, 소령.”
리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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