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홍대 가다-73화 (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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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먼저 세이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마도 쟈론은 정면에서 상대할 만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슉! 슈욱!

거미의 앞다리 발톱이 공기를 찢는 굉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챙! 챙!

세이라는 양발을 땅에 붙이고 거미의 공격을 두 개의 단검으로 막아냈다.

“상체만 휘둘러서 공격을 막아내는 건 오래 못 가요!”

세이라가 리얀 쪽을 향해 소리쳤다. 리얀은 생수병을 들어 남아 있는 피의 양을 가늠해 보았다. 담겨 있던 피는 벌써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세이라!”

리얀은 남아 있는 자신의 피를 바라보면서 외쳤다.

‘벌써 절반이 사라진 게 아니라 절반이나 남아 있는 거야!’

학철은 이렇게 생각했다.

“리얀 님! 제발! 뭔가 수를 내주세요!”

학철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응원의 소리를 질렀다. 절박한 상황이었다. 끔찍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학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소리라도 질러야만 했다.

쎄에에액!

바로 그때, 뭔가가 학철의 뒤쪽에서 바람을 찢는 소음을 내며 거미 쪽으로 날아들었다.

푹!

묵직한 소리와 함께 뭔가가 거미의 몸통에 박혔다.

“오케이, 먹힌다! 1열 정렬하고 2열 사격 준비!”

학철의 뒤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철은 뒤를 돌아보았다. 낯익은 얼굴이 학철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어, 저기, 아까….”

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할 수는 없었다. 학철의 뒤에 서 있던 이는 정보부 타격대 소속 특임 중대 중대장 장철중 소령이었다. 리얀이 이마에 에테르를 폭파시켜 기절시켰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지원군이 왔어!”

쟈론이 거미의 공격을 흘려내며 외쳤다. 진심으로 반가운 음성이었다.

“공격해요! 어서!”

세이라는 다급하게 외쳤다.

세이라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특수부대원 다섯이 앞으로 나섰다. 손에는 사람들이 보통 석궁이라고 부르는 쇠뇌를 들고 있었다.

슈슈슈슈슉!

다섯 발의 화살이 거미를 향해 날아갔다.

- 츠츠츠츠츳!

거미가 기괴한 비명을 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배에 달린 호흡기에서 새어 나오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끔찍한 소리였다.

“1열 뒤로 빠지고 2열 앞으로! 2중대는 호위!”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화살을 쏜 5명이 뒤로 빠졌고, 뒤에 있던 5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10명의 부대원이 쇠뇌로 무장한 10명의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중간이 꺾인 기묘한 모양의 칼을 들고 있었다. 방패는 검은색으로 전경들이 쓰는 것보다 작지만 단단해 보였고, 칼은 네팔 구르카 용병들이 사용하는 쿠크리 나이프였다.

“발사!”

슈슈슈슈슉!

중대장이 명령을 내리자 5개의 화살이 동시에 거미를 향해 날아갔다. 거미는 두 번의 공격에 당황했는지 그대로 뒷걸음질을 쳐서는 다음 방으로 향하는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마치 자동문인 것처럼 문이 열렸고, 거미는 그대로 복도를 향해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다.

“오케이. 일단 물러섰다! 저기 1중대 막내지?”

중대장이 방구석에 의식을 잃고 거미줄에 갇혀 있는 부대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1중대 막내 경석이 같습니다.”

“구해주고 후송 보내. 우리 막내, 학성이가 다녀와라.”

“예! 알겠습니다!”

막내라고 불린 부대원은 개인 소지하고 있던 스트라이더 단검으로 거미줄을 끊은 뒤 의식을 잃은 부대원을 구해냈다.

“지원이 많이 늦었소, 소령.”

장철중 소령을 기억한 리얀이 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가 많이 막혀서. 그보다 적의 적은 친구로 만들라고 했었는데. 기억나? 우리, 같은 흑마법사를 노리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끼리 싸워봐야 흑마법사만 득 볼 거라고 했잖아.”

장철중 소령이 리얀을 보고 말했다.

“적의 적은 친구가 될 수 있소. 하지만 그건 공동의 적이 사라질 때까지만 유효한 우정이오, 소령.”

리얀은 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했고, 중대장은 그러시던지, 하면서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런데 저 친구, 괜찮을 거 같소?”

중대장이 거미줄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부대원을 가리키며 리얀에게 물었다. 부대원은 여전히 침을 질질 흘리면서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거미 독은 해독제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회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 간혹 장애가 남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젊으니 괜찮을 것이오.”

“그래. 여기서 죽는 것보다야 낫지.”

중대장은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잡담만 하고 있을 생각인가?”

쟈론이 칼날을 닦아내면서 물었다.

“아군이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럴 수 있나! 다들 정비! 전투를 대비한다!”

중대장이 명령을 내렸다. 스무 명의 특수부대원은 좌우로 정렬한 다음 이번에도 흐트러짐 없이 정비를 시작했다. 부대원들은 쇠뇌를 정비하고 쿠크리 나이프를 다듬었다.

“좋은 쇠뇌인 것으로 보이오, 소령.”

“저 칼하고 비슷한 칼, 예전에 어디 원주민들이 쓰는 거 본 거 같아. 역으로 휜 칼날. 초보자들이 저 칼로 사람 허리를 베어버리는 거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 거, 아주 효율적인 무기들로 무장했네, 소령?”

리얀과 쟈론이 중대장에게 한마디씩 했다.

“방패는 강화플라스틱이라 총알도 튕긴다고. 그리고 요즘은 소총 소음기가 잘 나와서 특전사나 해병대 애들은 무성 무기를 잘 안 쓰지만 우리 정보부 타격대는 아직도 쇠뇌를 쓰지. 테러리스트들이 인화성 물질을 쌓아두고 대치할 경우를 생각해서 말이야.”

“대장님.”

중대장이 말하자 옆에 있던 하사관 하나가 중대장에게 눈치를 줬다.

“아, 그렇지. 물론 다른 특수부대에서 쇠뇌를 잘 안 쓴다고 해서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냐. 여기 있는 친구들, 다들 해병대, 특전사, UDT 출신들이거든.”

“경찰특공대 출신도 있습니다!”

쇠뇌로 무장한 부대원 하나가 외쳤다. 그러자 부대원들은 대단한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낄낄거렸다.

“전투의 긴장을 농담으로 녹이고, 지휘관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으로 보이오. 좋은 부대원들이오, 소령.”

“칭찬으로 듣지. 막내야. 준비됐냐?”

중대장이 말했다.

“예! 준비됐습니다!”

막내 부대원이 의식을 잃은 부대원을 둘러메고 대답했다.

“우리 병원으로 후송 보내. 별다른 지시 없으면 확인한 뒤에 여기로 복귀하고.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좋아.”

막내 부대원은 거수경례를 붙인 다음 뛰어서 방을 나섰다.

“막내 돌아오기 전에 다 마무리되면 좋겠는데….”

중대장이 뛰어가는 막내 부대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럼 정비 다 됐으니 이제 거미 사냥을 가 보실까?”

중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면서 봤겠지만 이곳 복도는 매우 길고 복잡하오. 조금 전에 본 그 거미는 아마 복도 중간쯤에서 우리를 습격할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오.”

리얀이 충고했다.

“그래 봐야 짐승이지. 쿠크리 나이프로 다리 잘라내고, 몸통에 화살 계속 박아 넣다 보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어. 안 그래?”

중대장이 부대원 하나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오. 거미의 발톱은 칼로 베어내기 어렵소. 몸통은 부드럽기 때문에 칼이나 화살이 박히기야 하지만 치명상을 입히긴 어렵소. 게다가 상처 입은 야수를 추적하는 일은 늘 신중해야 하오, 소령.”

“물론이지.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잖아. 안 그래?”

“소령. 거미의 공격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오. 저 방패로 공격을 막는 건 힘들 수도 있소.”

“화살 박히는 거 못 봤어? 그리고 우리 애들 저걸로 진압훈련 토 나올 때까지 받은 애들이야. 문제없어.”

중대장과 리얀의 대화는 어쩐지 묘하게 어긋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이어지기는 했다. 학철은 그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대장님? 리얀 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지금 상대하는 적이 이곳 군대가 상대해온 적과는 많이 다르다는 거예요. 당연히 조심하고 주의하셔야죠. 그렇지 않나요?”

세이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중대장은 세이라의 의견에는 별로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걱정되시면 뒤로 빠지시고. 우리가 해결할 테니까. 자, 2중대 앞으로! 3중대 사격 준비해서 뒤따르고!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

부대원들이 일제히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는 다음 방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중대장도 함께 뛰기 시작했다.

“함정에 빠지기 딱 좋은 지휘관이로군.”

쟈론은 남의 일을 구경하는 것처럼 빈정거렸다. 조금 전까지 거미와 사투를 벌였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우리도 간다.”

리얀이 말했다.

“그래요. 자신만만하던데, 실력이나 한번 보죠.”

세이라도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리얀과 쟈론, 세이라와 학철은 천천히 복도를 따라 걸었다. 출발하자마자 리얀이 혹시 후방으로부터 거미가 급습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투는 전방에서 벌어졌다.

“2중대 방어태세! 3중대! 1열 집중 사격! 2열 사격 대기!”

앞쪽에서 중대장 장철중 소령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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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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