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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학철이 세이라에게 물었다.
“거미줄은 먹잇감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학철.”
숙련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뜻이겠지만 세이라는 굳이 ‘먹잇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학철은 특수부대원의 멍한 눈동자를 보면서 자신도 거미 앞에서는 그저 먹잇감에 불과할 것이라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사이, 쟈론은 바닥을 보면서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마치 야수처럼 형형한 빛을 발했다. 학철은 전장을 수없이 거쳐 온 남자의 강함이라는 게 저런 거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리얀! 세이라!”
쟈론이 뒤를 돌아보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학철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움찔했다.
“미안. 건드렸어. 너무 촘촘하네? 하하하.”
쟈론은 이렇게 말하곤 뒷머리를 긁적였다.
‘전장을 수없이 지나온 거친 남자는 실수를 해도 저렇게 해맑게 웃는 거냐?’
“전투준비! 세이라! 왼쪽으로! 쟈론은 정면! 그리고 학철은 여기서 문을 지켜라!”
학철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웃음을 짓는데 리얀이 명령을 내렸다. 세이라는 단검을 거꾸로 쥐고 방의 왼쪽으로 나아갔고, 학철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문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지키라는 거지?’
학철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세 사람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잠깐! 리얀! 리얀은 빠져있어!”
쟈론이 허둥거리며 리얀을 향해 소리쳤다. 리얀은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맞아요! 뒤로 물러서세요!”
세이라도 얼른 쟈론과 함께 보조를 맞춰 소리쳤다.
‘뭐지?’
학철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녀석, 기름거미야.”
“저도 확인했어요. 그냥 거미도 아니고 기름거미에요. 이거, 아주 희귀한 거로 알고 있는데 애써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 보면 의도적인 거 같아요.”
“흑마법사….”
쟈론의 말에 리얀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볼이 씰룩거리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기름거미?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있나….”
학철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 기름거미는 기름이 있어서 기름거미에요.
“으악!”
한동안 말이 없던 오툴이 갑자기 말을 하는 바람에 학철은 놀라서 소리를 쳤다.
“학철! 허둥거리지 마라! 문을 지켜! 전투에 방해되는 행동 하지 말고!”
리얀이 학철을 향해서 따끔하게 지적을 했다. 학철은 어쩐지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저기, 오툴. 기름거미가 기름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학철이 아주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며 오툴에게 물었다.
- 기름거미는 엄청나게 기름져요. 몸 안에 기름이 가득하거든요. 그래서 거미줄에 기름이 가득하고, 필요할 때는 기름만 뿜어서 적을 제압해요.
“그렇다면….”
- 리얀 님의 특기인 에테르 폭파는 쓸 수 없다는 이야기죠.
오툴이 말했다.
“여기 거미줄에 불이 붙으면 방 안이 순식간에 불타오를 거야! 그렇게 되면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공기가 다 사라진다고! 여긴 지하잖아!”
쟈론이 큰소리로 외쳤다.
사실 학철은 나름대로 자기 몫을 하기 위해 준비해 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금 전 햇살 엔터테인먼트에서 주운 토카레프 권총이었다. 학철은 권총을 허리춤에 꽂은 다음 가스안전공사 작업복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쏘면, 총구에서 불꽃이 일 텐데, 그거 때문에 불이 붙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학철은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잠깐만요! 그럼 여기로 오고 있는 지원부대도 총 못 쓰는 거 아닌가요?”
학철이 물었다. 이 질문은 현재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는 리얀을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오툴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 맞아요. 지금 진 팀장님한테 말했어요.
오툴이 대답했다.
“그럼 지원부대는 총이 없다는 건데….”
총 없는 특수부대라니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맨몸으로 이곳에 들어온 특수부대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도 궁금했다.
학철이 생각하는 사이, 환풍구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쟈론과 세이라, 그리고 리얀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 냐아아아…
킬타스였다. 킬타스는 정신감응 마법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역시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이미지와 감정들이었지만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난 이제 할 만큼 했어. 괴물하고 싸우는 건 너희들이 해. 난 간다.’
학철은 킬타스의 뜻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킬타스는 자기 몫을 했다. 감사한다.”
리얀이 말하자 킬타스는 알아들었다는 듯 리얀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잽싸게 학철의 옆을 지나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정신감응 마법을 통해 킬타스가 다시 한번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 그리고 지금 괴물이 내가 나온 환풍구를 통해서 오고 있어. 한 마리가 아니니까 조심해.’
이번에도 학철은 킬타스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복잡한 환풍구 통로도 거미들을 위한 것이었군.”
쟈론이 킬타스가 뛰어내린 환풍구 쪽으로 칼끝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한번 싸우겠어요.”
세이라가 말했다.
다음 순간, 거미가 환풍구를 통해서 튀어나왔다.
학철은 거미를 보지 못했다. 거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글자 그대로 튀어나와서는 천장을 타고 올라갔다.
“한 마리가 아니에요!”
세이라는 이렇게 외치며 천장 쪽으로 도약해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번에도 거미가 환풍구에서 튀어나와 이번에는 쟈론 쪽으로 총알처럼 달려들었다. 돌진으로 유명한 일각수 종족이라고 말했던 카와타의 돌진이 느리다고 느껴질 정도의 속도였다.
정면과 위에서의 협공이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쟈론과 세이라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퍽! 퍼퍽!
학철은 뭔가가 번쩍번쩍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쟈론을 향해 돌진했던 거미는 세로로 쪼개져서 두 토막이 되었다. 그리고 천장에 붙었던 거미는 공중에서 몸속에 들어있던 것을 쏟아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세이라가 단검으로 몸통을 길게 베어낸 모양이었다.
학철은 반쪽이 된 거미의 크기를 살펴보았다. 거의 중형견 정도의 크기였다. 어쩐지 환풍구가 크더라 싶었다. 색깔은 탁한 회색이었고, 온몸에 시커먼 털이 돋아 있었다. 보기만 했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악몽에서나 만날 법한 거미였다.
“새끼들이다.”
반 토막이 난 거미를 내려다보며 리얀이 말했다.
‘새끼가 이렇다면 성체는 도대체 얼마나 끔찍할까?’
학철은 죽어서 체액을 흘리고 있는 거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세이라! 까딱했으면 기름 뒤집어쓸 뻔했잖아!”
쟈론은 바닥에 쏟아진 시커먼 거미 내장을 밟지 않으려고 발을 조심스럽게 놀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빠르네요.”
세이라가 말했다. 세이라의 얼굴에는 시커먼 거미의 체액이 먹물을 흩뿌린 것처럼 붙어 있었다.
“리얀. 놈들이 다음에 어느 쪽으로 올지 미리 알 수 있겠어?”
쟈론이 칼에 묻은 시커먼 거미의 체액을 닦아내며 물었다.
“물론이다.”
리얀이 생수병에 담아둔 피를 이용해 정찰을 시작하면서 말했다. 피가 붉은 안개가 되어 방 안에 설치된 환풍구를 향해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이거, 아무래도 에테르를 낭비하게 하려는 수작들 같은데.”
쟈론이 칼을 털어내면서 말했다.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온다! 다들 피해!”
쟈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얀이 외쳤다.
‘그런데 싸울 준비 하라는 게 아니라 피하라고?’
학철은 리얀이 공격하라고 말하지 않고 피하라고 말한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 벌어진 일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환풍구에서 시커먼 거미의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천장에서도 쏟아져 내렸다. 쟈론과 세이라는 그 체액을 피하기 위해서 재빨리 몸을 놀려야만 했다.
“뭐, 뭐야?”
쟈론이 당황하며 리얀에게 물었다.
“환풍구 입구에 에테르를 이용해서 에테르의 칼날을 세웠다. 좀 전에 본 거미들의 속도로 보아 에테르의 칼날이라면 놈들을 쪼갤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리얀은 환풍구 입구에 두 개씩 에테르의 칼날을 세운 것 같았다. 거미들은 모두 세로로 세 토막이 나 있었다.
“역시 리얀이야! 방법을 찾을 줄 알았어!”
쟈론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놈들은 지능이 있다. 다른 수를 찾을 것이다.”
“게다가 여긴 놈들이 미리 준비해 둔 함정이기도 하고요.”
세이라가 리얀의 말에 덧붙였다.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거야?”
쟈론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성체 거미는 보통 한 번에 100개 정도의 새끼를 거느린다. 그리고 그 새끼들이 서로 싸우고 잡아먹어서 살아남아 성체가 되는 것은 두세 마리에 불과하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놈들은 비정상적으로 그 숫자가 많은 거 아닌가요?”
세이라가 리얀에게 물었다.
“긴장해라. 놈들이 뭔가 준비하고 있다.”
리얀은 세이라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쟈론과 세이라는 다시 한번 벽면과 천장에 설치된 환풍구를 향해서 신경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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