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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철은 정신감응 마법을 통해 세이라와 리얀의 시선을 공유한 적이 있었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체험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건 같은 인간의 감각이었다. 그러나 고양이의 감각은 완전히 달랐다.
일단 보이는 시선이 사람보다 낮았다. 그리고 주변 사물에 대한 감각이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온몸에 솟아 있는 털 한 올 한 올에서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방의 지형지물은 물론이고 아주 작은 개미의 움직임까지 느낄 수 있었다.
킬타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화장실 벽면에 설치된 환풍구가 보였다. 킬타스는 벽을 한 번 짚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으악! 지, 지금 느꼈어요?”
“느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 놀라지 마라, 학철.”
“고양이는 허리가 유연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충격을 다 흡수할 수 있거든. 그 감각 잘못 익혔다가 나중에 뛰어내리고 그러지 마. 그러다가 죽거나 다리 부러지는 사람 꽤 봤어.”
쟈론이 농담조로 학철을 놀렸다. 학철은 쟈론의 말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킬타스의 시선에 집중했다.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 고양이의 시선은 마치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영상처럼 보였다. 학철은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고양이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봤던 것을 떠올렸다.
‘어두운 곳에서 고양이는 이렇게 보는구나.’
킬타스는 환풍구를 기어들어 가, 길고 좁은 통로를 지나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갈림길이 나왔을 때가 되어서야 멈춰 섰다.
이제 10마리의 고양이 차례였다. 10마리의 고양이가 미로처럼 얽혀 있는 복잡한 통로를 나누어 뛰기 시작했다. 냐옹거리는 소리를 내어 서로에게 위치를 알리면서 통로의 위치를 킬타스에게 전달했다.
킬타스는 소리를 하나하나 분리해서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종합해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지도와도 같은 영상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사람이 듣기에는 그저 소음에 불과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킬타스를 통하자 마치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는 지도처럼 변환이 되었다.
‘이게 고양이의 능력인 걸까, 아니면 킬타스 만의 능력인 걸까?’
“이거 도대체 얼마나 땅을 판 거야? 흑마법사 이 자식, 두더지라도 데리고 간 거야?”
학철이 어느 쪽일까 고민하는 사이, 쟈론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말 그랬다. 킬타스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는 지도는 그냥 지하 굴 수준이 아니라 지하에 세운 거대한 요새처럼 보였다. 그것도 미로로 보호받는 요새.
“땅을 이 정도 팠다면 거의 산 하나 새로 쌓을 수 있을 만큼 흙이 나왔을 거예요. 오툴. 진 팀장에게 한 번 물어봐 줄래요?”
세이라가 정신감응 마법을 통해 오툴에게 물었다.
학철은 예전에 어떤 보수단체에서 북한이 청와대 지하까지 땅굴을 팠다고 주장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 보수단체는 심지어 지하에 탱크까지 들어와 있다고 주장했다. 본인들은 사실이라고 믿고 있을지 모르지만 진짜로 땅을 그렇게 팠다면 백두산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그렇게 많이 땅을 파지는 않았다고, 자기도 이상하다고 하네요.
오툴이 진 팀장의 말을 전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흑마법사가 마법을 이용해 파낸 흙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지하 동굴이거나.”
리얀이 말했다.
“어느 쪽이건 진짜 더럽게 깊고 더럽게 복잡한 곳인 것만은 확실하네. 제발 거미만 안 나오면 좋겠지만….”
쟈론이 리얀의 말에 덧붙였다.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킬타스는 그 소리를 이용해 계속해서 지도를 만들어갔다.
지도가 거의 완성될 즈음, 마침내 한 마리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을 찾았다고 알려왔다.
킬타스는 그 방의 위치를 파악한 뒤, 길고도 큰 울음소리를 내었다. 모두 돌아와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라는 신호였다. 킬타스의 울음소리를 들은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킬타스는 나오는 고양이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덕분에 킬타스의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는 더욱 명확해졌다.
다른 고양이들이 모두 돌아간 후, 킬타스는 조금 전 울음소리로 알게 된 방을 향해 홀로 천천히 움직였다. 깊고, 길고, 복잡한 길이었지만 킬타스는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우아하면서도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학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환풍구 통로뿐이었다. 하지만 킬타스는 길을 완전히 온몸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학철에게도 킬타스의 감각이 그대로 전해졌다.
타타탕!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총성이 울렸다. 자동소총 사격 음이었다. 곧이어 수류탄 폭발음도 들렸다. 얼마나 깊은 곳인지 밖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수류탄이 폭발했을 때의 미세한 진동은 느낄 수 있었다. 총성과 폭발음이 들리자 킬타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학철이 말했다.
“아직까지 싸우고 있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부대원들이 거미줄에 걸려서 죽은 건 아닌 모양이네. 다행이다.”
쟈론은 안도했다.
곧 총성이 멎었고, 킬타스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길고 복잡한 미로를 지나 결국 특수부대원들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제가 지금 보고 있는 거, 다들 보고 있나요?”
학철이 모두에게 물었다.
“보고 있다.”
“물론이지.”
“보고 있어요.”
리얀과 쟈론, 세이라가 동시에 답했다.
길고 좁은 복도 끝에 등장한 넓은 방이었다. 바닥에는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 팔과 다리가 뒹굴고 있었고, 바닥에는 여기저기 피가 고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방은 아마도 식당인 모양이었다. 테이블이 줄을 맞춰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전투의 결과로 테이블 몇 개가 부서져 있었고, 몇 개는 엄폐물로 쓰기 위해 쓰러져 총알구멍이 잔뜩 생긴 모양이 되어 있었다.
특수부대원은 모두 아홉 명이었다. 아홉 명은 나름대로 엄폐물을 찾아서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거, 도대체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부대원 하나가 대장으로 보이는 대원에게 물었다. 그 부대원은 전투의 피로 때문인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곧 지원 올 거다. 통신은 여전히 안 되나?”
“무전기, 핸드폰, 인터넷, 다 안 터집니다.”
다른 부대원이 대답했다.
“명훈아. 우리가 방, 몇 개나 지났지?”
부대장이 옆에 있던 대원에게 물었다.
“이게 네 번째 방입니다.”
“철진이, 석구, 그리고 이 방에서는 태원이가 죽었습니다. 저하고 몇몇은 총에 맞긴 했는데 모두 다 당장은 버틸 수 있습니다.”
다른 부대원이 덧붙였다.
킬타스는 방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은 어제오늘 계속해서 본 토카레프 권총으로 무장한 조직폭력배들이었다. 마치 단체로 맞춰 입은 것 같은 검은 양복 덕분에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치열한 교전이었는지 검은 양복들은 단 하나도 살아있지 않았다. 수류탄 폭발 때문인지 바닥에 인체의 잔해가 흩어져 있기도 했다.
“잔탄 확인해라. 실탄 아껴 써. 지원이 곧 올 거다.”
부대장은 확신에 찬 투로 말했다.
“거미는 아니야. 확실히 아니야.”
쟈론이 말했다.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쾌활한 소리였다.
“오툴. 진 팀장에게 지금 부대원들이 지하에서 교전 중이라고 알려라. 전사자도 있고, 부상자도 있어서 지금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도 하고.”
- 장철중 소령이 지휘하는 두 개 부대가 햇살 엔터테인먼트에서 아까 출발했다고 하네요.
리얀이 상황을 전하자 오툴이 바로 대답했다.
“그런데 리얀. 우리가 빨리 들어가서 저 친구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쟈론은 몸이 근질거리는지 어깨를 풀면서 물었다.
“이건 저들의 임무다. 굳이 도울 이유도 없고, 도울 필요도 없다.”
리얀이 냉정하게 말했다.
- 저기요, 리얀 님. 여기, 진 팀장님이 제발 도와달라고 하시는데요?
오툴이 조심스럽게 진 팀장의 말을 전했다.
“어떻게 해? 들어가? 말아?”
쟈론이 리얀에게 물었다. 리얀도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학철에게는 따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잠깐만요! 좀 전에 저기 특수부대 대장이 지원 곧 올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학철이 큰 소리로 리얀에게 물었다.
“그랬다.”
“그런데 저 안에서 통신이 안 되는데 지원이 곧 올 거란 걸 어떻게 알죠?”
“그냥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한 소리 아냐?”
쟈론이 자기 의견을 말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에요. 저기가 지하라서 통신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라면 전령을 보냈을 거예요.”
“그래. 전령을 보냈겠네. 그런데… 진 팀장이 전령을 받았다는 말, 누구 들어본 적 있어?
학철의 말에 쟈론이 질문을 던졌다.
“연락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전령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전령은 어떻게 된 거죠? 왜 못 나오고 있는 걸까요?”
학철이 합리적인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뜻밖에도 킬타스였다.
- 냐아옹…
평소에 들었다면 고양이 울음소리에 불과했겠지만 킬타스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 그 울음소리는 하나의 정보로 변환되었다. 그것은 10마리의 고양이 중 한 마리가 본 특수부대원에 대한 정보였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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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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