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홍대 가다-65화 (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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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어떤 약속인가요?

진 팀장이 다시 고쳐 물었다.

“우선 킬타스하고 킬타스 동료들 먹을 것과 물요. 먹을 것은 생선 종류여야 하고, 물은 깨끗해야 해요. 물론 예쁜 그릇에 담아서 줘야 하고요.”

“이제 알겠어요. 이 소년도 이세계인이로군요. 그리고 이 소년은 고양이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요.”

진 팀장이 이해했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툴. 진 팀장에게 부탁하면 뭐든 들어줄 것이다. 내 말이 맞소?”

“물론이지요. 오툴? 고양이 동료는 몇 마리나 되나요?”

진 팀장이 허리를 숙이고 오툴과 눈을 맞추며 물었다.

“지금 11마리가 함께 있어요. 현장에서 더 모을 수 있으면 모을 거라고 했어요.”

“알았어요. 생선하고 깨끗한 물, 지금 즉시 준비할게요. 그런데….”

진 팀장은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직원들을 세이라 님이 잠재워 버렸으니, 이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제가 갈게요!”

가히가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가히 씨가요?”

“예. 저, 이제 정보부 요원이잖아요? 그렇죠?”

가히는 아주 환한 얼굴로 웃으며 진 팀장에게 말했다. 학철은 이 와중에도 가히의 미모가 참으로 빛나는구나 싶었다.

“요원…은 아니지만….”

“에이, 일하면 직원이고 일 안 하면 남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안 그래요? 팀장님.”

가히는 웃으며 말했다. 학철은 사람들이 흔히 ‘자본주의 미소’라고 부르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진 팀장 입장에서는 손이 아쉬울 때였다. 진 팀장 말에 따르면 원래 있던 직원들은 다 현장에 나가 있고, 그나마 남아 있던 요원들은 세이라가 잠재워 버린 상태였다. 말 그대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수 있으면 빌리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오툴이 데리고 다니는 킬타스가 도와줄 리도 없었다.

“그래요. 그럼 나가서 생선하고 물 사 오세요, 가히 씨.”

“예쁜 그릇도요.”

오툴이 덧붙였다.

“물론 예쁜 그릇도요. 여기 법인카드.”

진 팀장이 가히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이 카드, 정보부에서 쓰는 법인 카드에요. 다시 말해서 내사과가 수시로 내사하는 카드라는 거예요. 개념 없이 이걸로 다른 거 사거나 하진 않겠죠?”

“법인카드 긁는 거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 제가 생선 사 오고 그릇 사 올 시간이 있을까요?”

“킬타스는 약속을 지켜야 움직일 거예요.”

오툴이 말했다.

“잠깐 있어 보세요.”

가히는 재빨리 2층으로 뛰어갔다.

“아니, 맘대로 뒤지면….”

2층으로 올라간 가히는 어디에서 뭘 뒤졌는지 양손에 참치캔과 생수, 그리고 플라스틱 그릇을 가지고 내려왔다.

“예쁜 그릇이라는 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인데. 어때요? 마음에 들까요?”

가히는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오툴에게 물었다.

“이해한다고 하네요. 급하다는 거.”

오툴이 말하자 어디선가 고양이 떼가 나타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다들 놀라는 눈치였지만 가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플라스틱 그릇에 참치캔을 따서 부었고, 다른 그릇에는 물을 담았다.

킬타스를 비롯한 11마리의 고양이가 동시에 식사를 시작했다. 진 팀장은 가히를 보며 감탄하는 눈치였다.

“그런다고 정규직 되는 거 아닐 텐데….”

사장이 작게 중얼거렸다. 학철은 혹시나 가히가 뭐라고 한소리 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가히는 참치캔을 계속 따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사장이 뭐라고 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그럼 이제 준비 다 됐으니까 어디 한 번 싸우러 가 볼까?”

갑옷 위에 가스안전공사 작업복을 입은 쟈론이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칼집은 신문지로 둘둘 말아 위장했다. 어차피 가스안전공사 직원에게 관심을 기울일 사람은 없을 테니 그만하면 충분한 위장이리라 싶었다.

“학철. 위치가 어딘지 알고 있느냐?”

“거긴 너무 유명한 곳이라 모를 수가 없어요.”

리얀의 질문에 학철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게다가 리얀과 함께 하늘을 날아서 홍대 놀이터까지 간다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니 더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

“잠깐만요. 여기까지 날아서 오셨다고 했지요? 그런데 홍대 놀이터는 그렇게 가시면 안 돼요.”

진 팀장이 의견을 제시했다.

“사람들 이목이 신경 쓰이는 것이오?”

“당연하죠. 가스안전공사 직원이 하늘에서 날아와서 떨어지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어서 SNS 올리고 난리 날걸요?”

“그럼 걸어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에이. 설마요.”

진 팀장은 노트북을 꺼내더니 뭔가 조작을 했다. 그러자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비어있던 바닥이 열리며 차가 한 대 올라왔다.

가스안전공사 마크가 크게 그려진 승합차였다.

“여기, 정보부 마포지구 지휘본부에요. 이 정도는 늘 구비되어 있다고요.”

“와! 이거 진짜 같은데?”

사장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진짜 맞아요. 대한민국 공사에서 사용하는 관용차는 무조건 정보부에 똑같은 차를 제공하게 되어 있어요. 이 차, 일련번호도 있고 등록증도 있는 진짜라고요.”

“정보에 공을 많이 들이는 국가인 것 같소.”

리얀이 말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가 치안이 좋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경찰하고도 협조를 해야 할 때는 협조를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경찰도 속여야 해요. 흑마법사가 정보를 어느 선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요.”

“잠깐. 그 말은 지금 홍대 놀이터에 나가 있는 경찰들은 우리가 정보부에서 파견한 직원들이라는 걸 모른단 거잖아? 내 말 맞아요?”

쟈론이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예. 맞아요. 그리고 그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상식 아닌가요?”

“그야 때와 상황에 따라서….”

“작전에 대한 토론은 다음에 하지. 쟈론. 지금은 그냥 가야 할 때다.”

“그래. 싸움이 더 급하긴 하지.”

“학철.”

리얀은 손가락으로 가스안전공사 승합차의 운전석을 가리키며 학철을 불렀다. 학철은 알아서 운전석에 오른 뒤 안전띠를 맸다.

“홍대 놀이터로 가죠.”

학철이 말하자 리얀과 쟈론, 그리고 세이라가 승합차에 올랐다.

“킬타스?”

리얀이 오툴을 보며 킬타스를 불렀다. 킬타스는 힐끔 리얀을 한 번 보더니 참치를 계속 먹었다. 오툴이 승합차 쪽으로 오더니 승합차 문을 열고 리얀을 바라보았다.

“킬타스는 먹을 거 다 먹고 갈 거예요.”

“어휴! 제가 얼른 냉장고에서 참치캔 찾아서 다행이네요! 생선 사러 밖에 나갔으면 적어도 30분은 걸렸을 텐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가히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어필했다. 학철은 사장을 힐끔 바라보았다. 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저런다고 정규직 되는 거 아닌데….’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가히는 이번에도 사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리얀이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오툴에게 물었다.

“곧. 그보다, 인장요.”

오툴이 대답했다. 리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가락 끝을 단검으로 따더니 오툴의 뒷목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킬타스는?”

쟈론이 리얀에게 물었다.

“오툴과 킬타스는 정신감응 마법으로 묶여있다. 나와 인장으로 정신을 공유하면 킬타스와도 공유할 수 있다.”

“오호. 고양이하고 정신감응하기 싫은 건 아니고?”

“효율을 중시하는 것뿐이다.”

“그러시겠지.”

어쩐지 서로 견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대화였지만 학철은 그냥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운전뿐이고.

그러는 사이 11마리의 고양이는 식사를 다 마치고 일렬로 승합차를 향해서 가더니 차례로 뒷좌석에 올라탔다. 갈색 고양이, 검은 고양이, 얼룩무늬 고양이… 각양각색의 고양이가 줄지어 승합차에 오르는 광경은 정말 신기했다.

“진짜 태연한 척하려고 했는데, 이건 정말…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진 팀장도 감탄한 눈치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오툴을 통해 연락하겠소.”

승합차 문을 닫기 전, 리얀이 진 팀장에게 말했다.

“가서 일단 정찰부터 해 주세요. 정찰을 마치고 나서 다음 행동을 생각해 보죠. 괜찮죠?”

“알겠소. 학철. 출발한다.”

“옙!”

학철은 큰소리로 출발을 알렸다. 어쩐지 이번 운전이 100억 원을 보장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툴. 킬타스와 네 시선을 닫아 두어라. 학철이 운전을 해야 한다.”

출발 직전 리얀이 정신감응 마법을 통해 오툴에게 말했다.

- 알았어요.

오툴의 어린아이 목소리가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간질이는 느낌이 들어서 학철은 소름이 돋았다.

“오툴. 정보부 특수부대 요원들이 흑마법사의 지하 요새에서 실종되었다고 하는데,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짐작 가는 바가 있는가?”

리얀이 ‘지하요새’라고 표현하니까 학철은 좀 긴장이 되었다.

-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해요. 리얀 님은요?

“나도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어쩐지 불길한 기운을 풍겼다.

“저기요, 무슨 이야긴지 저도 좀 들으면 안 될까요?”

차를 몰면서 학철이 리얀에게 물었다.

“흑마법사는 동물을 부리는 부대를 운영했었다. 그중에 지하에서 살면서 침입자들을 잡아먹으며 사는 동물이 있다.”

- 저도 같은 생각 했어요, 리얀 님.

“잠깐! 지금, 설마, 거미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오툴이 말하는 순간 쟈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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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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