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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철은 오툴의 정체를 진 팀장이 아는 것이 좋을지, 모르는 것이 좋을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진 팀장이 오툴 정체를 알거나 말거나 오툴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 않나?’
학철은 굳이 숨길 이유가 있나 싶었다.
“리얀 님? 혹시 오툴이라는 게… 여기 이 고양이인가요?”
진 팀장이 리얀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소.”
역시나 애매한 대답이었다. 아마도 리얀은 진 팀장이 오툴의 정체를 몰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진 팀장도 더는 묻지 않았다.
“여기 이 작업복 입고, 안전모 쓰시고, 보안경 착용하시고, 마스크 쓰세요. 그러면 누가 봐도 가스공사 직원으로 볼 거예요.”
“학철. 너도 장비 챙겨라.”
리얀이 학철을 보며 말했다.
“저기요, 리얀 님? 제가 거길 가 봐야… 도움이 될까요?”
학철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오툴을 생각하면서 리얀에게 이렇게 물었다.
“흑마법사의 함정이라면 짐작이 가는 바가 있다. 나름대로 대처법도 알고 있다. 하지만 홍대 놀이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현지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에는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항. 학철 씨 역할이 그런 거군요. 우리 정보부에서도 외국에서 임무 수행할 때는 현지인을 I.O로 고용해요. 학철 씨,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계시네요?”
진 팀장이 학철에게 말했다. 하지만 학철은 그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맞나?’
“중요한 역할이지. 암. 금화 1,000개짜리 역할이지. 안 그래?”
학철이 의심에 빠져드는 것을 막은 것은 사장이었다.
“아, 그렇지. 금화 1천 개를 보수로 받기로 했다면서요? 홍 대표가 샘플 가지고 온 거 봤어요. 그 금화 1천 개를 현금으로 바꾸면 100억 원 넘겠더라고요.”
진 팀장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타인의 입, 특히나 국가정보부 직원의 입으로 들으니 100억 원이라는 존재가 환상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학철 씨는 이번 일 끝나면 부자가 될 거에요. 금화 현금화하는 일은 우리 정보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울게요.”
“그럼 거, 양도소득세니 뭐 그런 것도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금화 이야기가 나오자 사장이 어렵게 존대를 하면서 진 팀장에게 물었다.
“대한민국에는 법과 원칙이라는 게 있잖아요? 상식선을 벗어나는 일은 도와드릴 수 없어요.”
“그런가?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국적도 아닌 마법사를 임무에 쓰는 게 법과 원칙을 따르는 거 같진 않은데?”
사장은 바로 진 팀장의 말을 비꼬았다.
“임무의 대상이 대한민국 국적도 아닌 마법사를 제거하는 일이라 그래요.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 보안서약서에 서명을 해서 특별히 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진 팀장도 지지 않고 사장의 말을 비꼬았다.
“…진짜 조… 에이. 관두자.”
사장이 투덜거렸다.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사장님도 금화 1천 개 받기로 하지 않았어요? 그거, 세금을 좀 합법적으로 절세할 수 있는 방법 있을 거예요. 우리 정보부에서 요원들 임금 지급할 때 쓰는 회사가 있어요. 그 회사 법인 통하면 가능할 거예요.”
그러자 진 팀장은 그래도 사장을 좀 위로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효과는 즉시 발휘되었다.
“어, 엇? 진짜? 홍 대표? 홍 대표가 그런 일 하는 거 맞지? 홍 대표, 진짜야?”
“예.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해 본 적 있습니다. 그 회사 법인 통하면 아마 2~30%는 절세할 수 있을 겁니다.”
“수수료는 홍 대표가 알아서 챙겨요.”
“햇살 용역 건물 명의 이전 건도 수수료는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물론이지요, 홍 대표님.”
이렇듯 보수에 관한 훈훈한 대화가 오가는 사이, 이제 현장으로 출동해야 할 네 명은 위장을 마쳤다.
가스안전공사 직원 복장이었다.
안전모를 쓰고, 보안경을 끼고,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손에는 경광봉을 들고, 무전기까지 들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마포 일대에 가스 사고가 너무 많이 나는 거 아닌가요?”
경광봉을 흔들면서 학철이 진 팀장에게 물었다. 햇살 용역 직원들을 리얀이 살해한 것도, 거리에서 일어난 총격전도, 모두 가스 폭발로 위장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저도 무리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국가 안보와 관계된 일이에요. 정보를 통제해야죠.”
“언론이야 정보부에서 어떻게 힘을 쓴다고 해도 거기 있던 사람들,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SNS 올린 사람들은요?”
학철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맞아요. 결국에는 정보가 새겠지요. 그럴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이제 우리 정보부 I.O로 일하실 거니까 알려드릴게요.”
진 팀장은 아주 자상한 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하나는 정보를 통제하는 방법이에요. 근처에서 촬영한 사람들 하나하나 찾아가서 보안서약서 받고, 침묵을 강요하는 거죠. 생각보다 효과적이에요. 취업에 불이익이 갈 거라거나, 가족들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거라거나 하는 식으로 겁주면 되거든요.”
“그런 일 있을 때마다 진짜로 정보부 요원들이 찾아가서 협박할 줄은 몰랐어요.”
학철은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그런 일에 동원될까, 협박당한 국민은 또 얼마나 많을까…
“여기에 우리 직원이 적었던 이유도 다 현장 나가서 뒷수습하느라 그런 거죠. 덕분에 저기 세이라 님한테 이곳 보안 수준이 형편없다고 비웃음을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현장이 가장 중요하지요.”
진 팀장이 말하자 세이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정보를 뿌리는 거예요.”
“정보를 뿌린다고요?”
“예. 다른 정보들을 뿌려서 진짜 정보가 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거죠. 옛날에는 주로 연예인 스캔들 같은 걸 뿌려서 혼란을 줬지만 그건 옛날 방식이에요. 그보다는 훨씬 효율적으로 대처해야죠. 이를테면 어제 가스 폭발 관련해서 살인사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증거를 대라고 몰아붙이고, 사진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현장에서 마네킹 놓고 찍은 사진을 올리고는 음모론자로 몰고 가는 식이죠. 이런 일, 전문으로 하는 요원들 있어요.”
학철은 뉴스에 한창 나왔던 ‘댓글 부대’라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재판 중인 민감한 사안이라 정보부 직원인 진 팀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의 요지는, 비록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우리 정보부는 효과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학철 씨.”
진 팀장이 싱긋 웃었다. 학철은 그 웃음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말았다.
“대충 위장은 끝난 거 같네요. 무전기 챙기세요.”
진 팀장이 무전기를 들면서 말했다. 테이블 위에 같은 무전기가 네 대 놓여있었다.
“이 무전기는 가스안전공사 용품이 아니라 우리 회사 장비예요. 채널 2번에 맞춰져 있는데, 그거 그대로 쓰시면 돼요. 이 무전기는 저하고, 현장 나가실 네 분이 동시에 사용하실 수 있어요.”
“진 팀장. 이 물건은 무용지물일 것이오.”
리얀이 무전기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이미 진입한 팀과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하지 않았소? 이걸 사용할 수 있도록 내버려 뒀을 흑마법사가 아니오. 따라서 이건 들고 가지 않겠소.”
“하지만 우리하고 연락을 해야 하는데요. 리얀 님이 지원을 부르려고 해도 통신을 해야 하고요.”
“연락은… 오툴이 맡을 것이오.”
마침내 결심이 섰다는 듯, 리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고양이가요?”
“오툴!”
리얀이 큰 소리로 오툴을 불렀다. 오툴은 조금 쭈뼛거리면서 주차장 입구를 기웃거리더니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어서 들어와. 이제는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오툴.”
리얀이 재촉하자 오툴은 주눅이 든 얼굴을 하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이 소년이… 오툴?”
진 팀장이 오툴과 테이블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번갈아 보며 리얀을 향해 물었다.
“그렇소. 우리와 이곳의 통신을 책임질 것이오.”
“이 고양이를 전서구처럼 쓴다거나… 뭐 그런 건가요?”
진 팀장은 어떻게든 리얀을 적극적으로 이해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고양이는 우리와 함께 갈 것이오.”
“킬타스.”
잠자코 있던 오툴이 입을 열었다.
“킬타…스?”
“킬타스. 이 고양이 이름.”
진 팀장의 말에 오툴이 대답했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는가?”
리얀이 오툴에게 물었다. 오툴은 고개를 한 번 끄덕했다.
“오툴은 킬타스를 이용해서 홍대 놀이터 지하 탐색을 돕는다. 그와 동시에 이곳에 있는 진 팀장과 홍대 놀이터에 있을 우리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내 말,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하는가?”
“응. 알아들었어요. 그런데 킬타스가 약속을 바란다고 하네요.”
오툴이 테이블 위의 고양이, 킬타스를 보며 말했다.
“약속? 약속이라고요?”
“고양이 친구들이 우리 부탁을 들어주니까, 우리도 고양이 친구들 부탁을 들어줘야죠. 당연하지 않나요?”
오툴이 진 팀장의 말에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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