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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55화 (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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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라. 학철이 좋아한 가수다. 언제나 화면으로만 보던 우상, 즉 아이돌이다. 그리고 지금 그 마셰라가 학철의 눈앞에 있다.

보통 화면으로만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보면 화면보다 훨씬 더 예쁘고 잘생겼다고들 한다. 학철도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 말은 진짜였다. 마셰라는 정말로 후광이 비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예뻤다.

게다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마셰라의 다리는 공연 직캠으로 보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굳이 스타킹으로 감싸지 않아도 빈틈없이 매끈한 마셰라의 다리를 보면서 학철은 시선을 마셰라의 얼굴 쪽으로만 돌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어떻게 게임을 중단시키지?’

리얀이 일리스 공주의 행동을 중단시키라고 말했기 때문에 마셰라에게 다가가기는 했지만 차마 방해를 할 수는 없었다.

먼저 마셰라의 몸에 손을 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화면으로만 보던 마셰라의 몸 부근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절대로 그 장벽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소리를 낸다고 해도 지금 보고 있는 핸드폰을 치울 것 같지는 않았다. 총성이 울리고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는데도 가만히 게임을 하고 있었을 텐데 옆에서 무슨 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어폰을 벗을 것 같진 않았다.

‘어쩐다….’

책상을 두드려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셰라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서 학철을 바라보았다.

“헉!”

학철은 마셰라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이 멎는 것 같아서 이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뭐야?”

마셰라는 눈꼬리를 치켜뜨면서 이어폰을 벗었다. 학철은 마셰라의 매서운 눈빛에 놀라서 오줌을 지릴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아주 그냥 내 말은 죽어도 안 들어요. 너, 자꾸 까불면 곽 대표 부른다?”

마셰라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일리스 공주.”

학철이 뭐라고 해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리얀이 등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 이거 진짜 뭐야… 리얀이잖아? 그리고 그 옆에는… 쟈론? 칫.”

마셰라, 일리스 공주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리를 내렸다.

“결국 오긴 왔네. 몇 년 걸린 거지? 이런 날 올 줄 알았어. 내가 편하게 있도록 내버려 둘 사람들이 아니지. 가만있자. 여기까지 왔으면….”

일리스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얀과 쟈론의 뒤편을 살펴보았다.

“다 죽였네? 하여간 두 사람 다 무식한 건 알아줘야 해. 한쪽은 썰어버리고, 한쪽은 태워버리고. 칫.”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공주.”

“곽 대표는? 곽 대표도 죽였어?”

“카와타라면 여기 쟈론이 대결에서 이겼고, 제가 죽였습니다.”

리얀이 말했다.

“카와타, 그 코뿔소 말고. 곽 대표 말이야. 리키 곽.”

일리스 공주가 말하자 학철은 자이스 장군을 떠올렸다. 대머리 자이스 장군도 두 사람이었다. 아마 이곳의 대표인 리키 곽도 두 명인 모양이었다.

“곽 대표…리키 곽은 제가 잘 모르겠는….”

“그 사람은 여기 있습니다.”

리얀이 쟈론의 말허리를 자르면서 문 옆에 있는 벽면을 손가락 끝으로 두드렸다.

“나와라. 에테르로 이미 다 정찰했다. 숨어있어 봐야 소용없다.”

“곽 대표, 거기 숨었어? 부하들 다 죽어나가는데? 칫.”

일리스 공주는 코웃음을 쳤다.

“나오라고 했다. 나오지 않겠다면 불태워 버리는 방법도 있다.”

“나와, 곽 대표. 이 사람들, 말 통하는 사람 아니야. 거기 벽까지 다 썰어버릴 사람들이야. 아니면 불태워 버리거나. 암튼 얼른 나오라고.”

일리스 공주가 말하자 벽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드러난 공간에는 조금 전 보았던 리키 곽이 숨어 있었다.

‘가만있자. 도마뱀에 코뿔소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코끼리쯤 나오려나? 아님 돼지?’

리키 곽을 보면서 학철은 이런 생각을 했다.

“잠깐만요. 그런데 이 방에 공주 혼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리얀 님?”

학철이 리얀에게 물었다.

“아니.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 방에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공주 혼자 앉아 있다고 했을 뿐이다. 숨어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면 있다고 답했을 것이다.”

‘하여간. 말이 안 통한다니까.’

학철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알았다는 신호로 고개만 두어 번 끄덕거렸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런데 이 리키 곽은 뭐예요? 이제 피 뿌리면 사자로 변신하나요? 아님 독수리?”

“이 자는 너와 같은 이곳 인간이다, 학철.”

리얀이 말했다.

“잠깐, 잠깐! 나 죽일라고 그러지? 응? 당신들, ‘이세계인’이잖아. 나도 어느 정도는 알아, 안다고. 죽이지 마, 죽이지 말라고! 나, 당신들한테 중요한 정보를 줄 수 있어!”

리키 곽이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도 줄 수 있는가?”

“물론… 좆까, 씨발.”

리키 곽은 욕설을 하더니 놀란 얼굴이 되어 자신의 입을 스스로 틀어막았다.

“아냐, 이건, 본심이 아니야!”

“크핫핫핫! 내가 본 침묵의 서약 마법에 걸린 사람 중에서 제일 애처로운걸?”

쟈론이 이마에 손을 짚고 웃었다.

“애처롭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날 원망하지 마라.”

리얀은 냉정하게 말하곤 단검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리키 곽도 죽이게? 죽여서 뭐 어떻게 하려고? 응?”

리얀이 핏방울을 리키 곽의 이마에 묻히는 동안 일리스 공주가 리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긴요. 여기서 나가야지요, 공주.”

“나간다고? 날 데리고? 칫. 하여간 다들 지 맘대로야, 거기서나, 여기서나.”

“투정 부리지 마세요, 공주. 우리, 차원이동문을 통해서 왔다고요, 여기까지. 이제는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요.”

쟈론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일리스 공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 하는 탄성을 냈다.

“뭔 소리야? 나 안 가. 안 갈 거라고.”

“안 돌아가시면요? 여기서 계속 감금당해 계시려고요?”

“감금이라뇨! 저, 절대로 공주님을 감금하지 않았어요! 아, 진짜, 제가… 좆까 씨발. 헉!”

리키 곽이 대화에 끼어보려다가 다시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학철은 심각한 분위기였지만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쟈론! 리얀! 내 말, 똑바로 잘 들어!”

공주가 리얀과 쟈론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서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일리스 공주에게 쏠렸다.

“난 감금당하지 않았고, 여기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쟈론, 리얀! 절대로 리키 곽, 우리 곽 대표 죽이지 마! 아니, 털끝 하나 다치지 마! 우리 곽 대표, 나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지 알아?”

“공주. 지금 공주는 흑마법사의 정신지배마법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고 계시지 못합니다. 저희가….”

“리얀! 내 말 끊지 말고 닥쳐! 나는 어디까지나 내 자의로 여기 왔다고! 그리고 만약 우리 곽 대표가 없었으면 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곽 대표가 흑마법사 만나서 나하고 계약도 해 주고, 흑마법사가 이곳 사람들 만날 수 있게 다리도 놔 주고 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냥 죽었을 거라고!”

공주의 말에 리얀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쟈론도 마찬가지였다.

“흑마법사가 한 행동을 말씀하다니… 공주… 침묵의 서약을… 깬 건가요? 자신의 힘으로?”

쟈론이 물었다. 그러자 공주는 조금 전 냈던 소리보다 훨씬 던 큰 소리로 ‘허!’하는 탄성을 냈다.

“내가 침묵의 서약을 왜 해? 말했잖아! 나는 자의로 여기 왔다고!”

일리스 공주가 말할 때 다들 입을 다물고 조용히 했다. 덕분에 공주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리얀. 쟈론. 당신들, 날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아냐! 그런 거 아니야. 당신들이 무능해서 흑마법사가 날 납치했다거나 그런 거 아니라고! 내가 내 발로 흑마법사 따라서 여기로 온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 곽 대표도 여기 놔두고! 그냥 가라고! 가!”

일리스 공주는 거의 뭔가를 토해내는 것처럼 절규했다. 학철은 그 기세에 눌려서 차마 마셰라, 일리스 공주를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공주. 저와 쟈론의 임무는….”

리얀이 말하고 있는데 공주가 그대로 등을 돌려 책상 쪽으로 돌아갔다.

“저와 쟈론의 임무는 공주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공주. 공주는 결코 흑마법사와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포기하고 저희와 함께….”

일리스 공주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 순간 리얀의 말이 뚝 끊어졌다.

공주가 꺼낸 것은 38구경 리볼버 권총이었다.

“이거, 여기 경찰서에서 훔친 거야. 내가 부탁했거든. 하나 구해달라고. 이거 잃어버린 경찰관은 징계 먹고 좌천당했지. 그런데 이 총으로 죽는 사람 나오면 아마 좌천이 문제가 아니라 구속되겠지? 그치? 크.”

일리스 공주는 이렇게 말하곤 권총의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댔다.

“자. 두 사람. 잘 들어. 선택의 여지를 줄게. 내가 여기서 죽는 걸 보거나, 아니면 그냥 돌아가거나.”

리얀과 쟈론은 숨을 죽이고 공주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었다.

“만약에 여기서 내가 죽으면 날 지키겠다는 맹세는 깨지는 거지? 그렇지?”

일리스 공주가 물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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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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