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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54화 (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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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인사하지, 쟈론. 나는 일각수 종족의 전투 대장 카와타. 언젠가 한 번은 전장에서 마주치고 싶었어, 쟈론.”

카와타는 이렇게 말하면서 등 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양손에 하나씩 쥐고 휘두르는 쌍칼이었다.

“코, 코뿔소….”

학철은 카와타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누가 봐도 코뿔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코뿔소의 단단한 가죽도 그대로였다. 다만 두 발로 서 있다는 점이 진짜 코뿔소와 다를 뿐이었다. 리키 곽도 단단해 보이는 체구이긴 했지만 코뿔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짙은 회색의 두꺼워 보이는 가죽을 보면서 학철은 과연 쟈론의 칼날이 제대로 박히기나 할 것인지, 상처를 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카와타?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수인족 녀석이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그래?”

쟈론은 혀를 끌끌 찼다.

“내 이름을 못 들어봤다고? 카와타. 일각수 종족의 전투 대장. 3년 전 대평원 전투에서 너희 부대 우익을 완전히 박살 냈던 부대의 부대장이야.”

카와타는 조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우익? 오른쪽 부대? 거기 지휘관 로일리아는 미끼였어. 대회전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 우익을 내주고 병력을 모은 다음, 여기 리얀의 마법으로 날려버리는 작전이었잖아. 그래서 너희는 단번에 괴멸당했고. 기억 안 나?”

쟈론은 칼을 내리고는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카와타의 한쪽 눈이 심하게 씰룩거렸다.

“…리얀. 그래, 피바람을 부르는 마녀. 같이 왔군. 혼자서는 상대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가? 쟈론.”

“헛소리하지 마. 네 부하들, 나 혼자서 다 베었어. 리얀은 조금 전에 도착했고.”

“그래. 네가 싸우는 모습은 잘 봤다, 쟈론. 꽤나 빠르고 정교한 칼솜씨였어. 하지만 내 힘을 당해낼 수 있을까? 내가 양손으로 휘두르는 이 쌍칼은 네 장검으로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느리지가 않아.”

“빠를지 느릴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부하가 다 죽을 때까지 숨어있었던 거로 봐서는 그렇게 빠를 것 같지가 않네. 이름 모를 수인족.”

쟈론은 여전히 칼을 내린 상태로 이렇게 말했다. 학철은 쟈론이 상대를 일부러 자극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해서 상대의 흥분을 유도한 다음,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현대의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종종 그렇게 하지.’

학철은 유명한 선수들이 마이크어필을 하는 광경을 연상했다.

“숨어 있었다니? 나는 네 기량을 확인한 거야. 네 움직임, 네 버릇, 네 약점, 모두 간파했어. 이제 싸움이 시작되면 네 놈은 바로 죽은 목숨이야.”

카와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쟈론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거렸다.

“헛소리하네. 세상에 자기 부하 다 죽을 때까지 숨어있었던 놈이 하는 말치고 제대로 된 말을 못 봤다. 내 기량을 확인해? 처음 한 놈 죽을 때 바로 알았을 텐데. 넌 그냥 겁쟁이야. 그리고 이제 곧 죽을 겁쟁이지.”

“쟈론. 이런 대화를 길게 끌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리얀이 쟈론에게 물었다.

“리얀. 그대의 마법 한 방이면 이름도 못 들어본 저깟 수인족이야 바로 끝장낼 수 있겠지만, 이놈은 안 되겠어. 내가 직접 혼을 내줘야지. 리얀. 이 승부에 절대 끼어들지 마. 알겠어?”

쟈론은 이렇게 말하더니 칼을 들어 카와타를 향해 겨누었다.

“내 약점을 파악했다고 하니까 얼른 공격해 봐. 내가 선제공격은 양보해 줄게.”

쟈론의 말에 리얀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돌진으로 유명한 일각수 종족인 나에게 선수를 양보하겠다고? 으하하하핫! 너, 정말 바보로구나! 좋아. 그럼 잘 가라! 저세상으로!”

카와타가 쟈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얼굴에 솟아있는 카와타의 뿔이 매섭게 쟈론을 향해서 돌진해 들어왔다.

“에효.”

쟈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카와타 쪽으로 성큼 다가가 칼을 휘둘렀다.

챙!

칼날과 칼날이 충돌하며 금속음이 울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카와타가 휘두르는 두 개의 칼은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정교하게 회전하며 쟈론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학철의 눈으로는 움직임을 따라가기조차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반면 쟈론이 휘두르는 칼의 움직임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초능력이다! 아니, 마법인가?’

학철의 눈에는 잔상만이 간신히 보일 정도의 빠르기였다. 그리고 그조차도 아주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쟈론의 표정에 지루함이 떠오를 정도였다.

퍽!

이제 더 놀기가 귀찮다는 듯, 쟈론이 가볍게 카와타의 가슴을 발로 찼다. 카와타는 힘없이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야! 너!”

카와타가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카와타의 입에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 전에 카와타의 뿔이 마치 고목이 쓰러지는 것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어….”

다음은 귀였다. 카와타의 오른쪽 귀도 바닥에 떨어졌다. 좀 전에 칼을 놀리면서 귀와 뿔을 동시에 벤 모양이었다.

“이것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쟈론이 칼을 들고 천천히 카와타 쪽으로 다가갔다. 카와타는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호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다! 쟈론!”

카와타가 소리쳤다. 학철은 그 소리가 겁에 질려서 내지르는 비명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끝났어. 너 정도 수준의 검사가 나하고 몇 합을 붙었는데 아직도 실력 차이를 몰라?”

쟈론은 여유 있게 칼을 한 바퀴 돌린 뒤, 카와타의 얼굴을 향해 칼날을 내밀었다.

“안 끝났어. 내가 포기해야 끝나는 거야. 나, 아직 포기 안 했어.”

“에효. 여기, 흑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건물 중 하나 아니야? 그런데 고작 이런 녀석한테….”

쾅!

쟈론이 말을 하고 있는데 거대한 폭음과 함께 카와타의 머리통이 폭발했다. 폭발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으악!”

학철은 예상 밖의 폭발에 깜짝 놀라서 제자리에서 껑충 뛰어올랐다.

“아이, 깜짝이야! 리얀! 내가 이 승부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승부가 났다고 말한 건 그대다, 쟈론. 그리고 쓸데없는 대화 나누는 거,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하고 칼을 겨룬 상대야. 적어도 마지막은 제대로 된 일격으로 보내주는 게 예의라고!”

“예의 못 지키게 해서 미안하지만 그보다 지금 우리한테는 훨씬 중요한 게 있을 텐데?”

리얀이 말하자 쟈론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말고 칼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래. 그렇지.”

“학철. 저 방이다.”

리얀이 머리통이 날아간 카와타의 시체 너머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 방, 뭐요?”

학철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 잊었느냐? 공주, 일리스 공주.”

공주의 이름을 말하자 쟈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공주가 저 방에 있다. 네가 열어라, 학철. 나와 쟈론이 뒤에 서 있겠다.”

학철은 리얀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얀이 가리킨 방으로 걸어갔다. 머리가 없는 카와타의 시신을 지날 때 조금 긴장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용감한 걸음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나한테 문을 열라고 시킨 거지?’

학철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뭔가가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저기요, 그런데 왜 굳이… 아니, 그게 아니라, 저, 방 안에 일리스 공주님 혼자 있는 거 맞지요?”

학철이 리얀에게 물었다.

“안에 함정 따위가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학철. 공주 혼자 앉아 있다. 겁내지 말고 문 열어라.”

리얀이 담담한 투로 말했다.

‘뭘까? 조금 전에 들으니까 공주가 납치되는 걸 막지 못했던 두 사람인데, 그 두 사람이 직접 공주를 되찾았으니 좋은 일일 텐데? 그런데 둘 다 왜 이러는 거지?’

학철은 리얀과 쟈론의 눈치를 살폈다. 둘 다 심각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서 학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두려운 거겠지. 경호에 실패했었으니까, 실패한 바로 그 대상이니까. 겁이 나는 걸 거야.’

학철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문고리를 잡았다.

문고리가 차가웠다. 절로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학철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을 열었다.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문 안의 공간은 작은 사무실이었다. 그리고 사무실 책상 앞 커다란 안락의자에 일리스 공주, 마셰라가 앉아 있었다.

일리스 공주는 핫팬츠 차림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아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조금 전 에테르를 이용해서 내부를 정찰했을 때, 일리스 공주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학철. 지금 공주의 상태는 어떠한가?”

리얀이 학철에게 물었다.

“음… 건강하신 것 같은데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중단시키면 위험한 상태인 것인가?”

어느새 학철의 바로 어깨 뒤로 다가온 리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얀의 옆에 서 있는 쟈론의 표정도 매우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건 아닐걸요?”

“그럼 중단시켜라, 학철.”

리얀이 말했다.

“제, 제가요?”

“어이, 친구. 나하고 리얀은 공주를 지키기로 맹세를 했어.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지키고 싶어서 그런 거야.”

쟈론은 친근하게 학철을 ‘친구’라고 부르며 부탁을 했다.

학철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일리스 공주에게 다가갔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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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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