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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승합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치고 나가자 가히가 비명을 질렀다.
“알아서 꽉 잡아!”
사장은 이렇게 고함을 치더니 급작스럽게 좌회전을 했다.
끼이익!
타이어 파열음이 울렸고, 사방에서 경적이 들려왔다. 학철은 앞으로 쓰러지려는 가히의 어깨를 붙잡으면서도 자신은 좌석을 손으로 꼭 잡아 바닥에 쓰러지지 않는 묘기를 선보였다. 안타깝게도 다음 순간 사장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돌았기 때문에 그 자세가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와! 저놈들 진짜 질기네!”
사장은 이렇게 외치고는 뭐라고 욕설을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저쪽 승합차의 성능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급회전을 두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오는 승합차는 조금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가 더 빨라져서 학철 일행이 타고 있는 승합차 옆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자동소총!’
학철은 인터넷에서 본 5.56mm 탄 위력 시범을 떠올렸다. 자동차 문짝을 떼어서 표적으로 놓고 자동소총으로 사격을 하는 시범이었다. 영상에서 발사된 총탄은 마치 콜라 캔을 못으로 뚫는 것처럼 쉽게 차 문을 관통했다. 차 문 뒤편에 놓아두었던 마네킹 몸통에는 시커먼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때 본 광경이 떠오르자 학철은 공포심 때문에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내가 나설 차례 같군.”
룩칼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학철은 간밤에 보았던 자이스 얼굴의 사내가 행동했던 광경이 떠올랐다. 인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도약력, 그리고 차를 맨손으로 뜯어내는 힘. 학철은 우시준 얼굴을 하고 있는 룩칼이 이 상황을 구원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다, 룩칼. 지금은 아니다. 학철! 창문을 열어라! 당장!”
하지만 리얀이 룩칼을 막아섰다. 그리고 학철에게 창문을 열라는 새로운 주문을 했다.
“차, 창문요?”
“당장 열어!”
사장은 핸들을 좌로 틀었다가 우로 틀었다가 하면서 따라오는 승합차를 떨쳐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덕분에 요동을 치는 차 안에서 학철이 차창 문을 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철은 거의 두 바퀴를 구른 뒤에야 간신히 창문을 열 수 있었다.
“열었어요!”
학철이 고함을 쳤다.
“다들 꽉 잡으시오!”
리얀은 이렇게 말하며 열린 창 쪽으로 접근했다.
“뭐가 됐든 빨리 좀! 저놈들 거의 다 왔어!”
사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학철은 사장의 어깨너머로 달리고 있는 차량을 승합차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는 광경을 보았다.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정면충돌로 모두 다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제발 어떻게 좀 해 봐요!”
비명을 지르던 가히가 이렇게 외쳤을 때, 리얀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피가 담긴 생수병이었다.
“저, 저기!”
학철은 뒤따라오는 승합차를 가리키며 외쳤다. 열린 창문으로 시커먼 승합차의 측면이 보였다. 곧이어 승합차의 문이 열렸고, 시커먼 전투복 차림의 사내가 자동소총을 들고 조준을 하는 것이 보였다.
“어, 엎드려!”
학철은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치면서 자리에 앉아 있던 가히를 끌어당겨 강제로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시커먼 전투복 차림의 사내는 검은 색 복면을 하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보지 못한, 영화 13일의 금요일에 등장하는 살인마를 떠오르게 하는 시커먼 방탄 마스크였다. 학철은 이제 곧 사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 순간 리얀은 뚜껑을 열고 창밖으로 피를 흘려보냈다.
“사장! 차를 세우시오!”
리얀이 소리쳤고, 사장은 급정거를 했다.
끼이익!
브레이크 파열음과 함께 순식간에 총을 든 사내가 앞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학철은 엎드려 있는 가히 위로 한 바퀴를 굴렀다.
곧이어 거대한 폭음이 전방에서 울렸다.
콰콰쾅!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키며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타고 있던 승합차가 폭발했다. 학철은 쓰러져 있는 상태로 앞 유리창을 통해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대지가 울린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적절할 것이다. 폭발의 충격은 아스팔트를 타고 그대로 승합차에 전해졌다. 파편이 날아와 차의 앞 유리창을 두드렸다.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런지 금이 가기는 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어….”
사장은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는 마치 신음 같은 기괴한 소리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가히와 학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리얀과 세이라, 그리고 룩칼은 제정신으로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장! 정신 차리시오!”
리얀이 소리쳤다. 그러자 사장은 정신이 들었는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쳤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지….”
사장은 이렇게 혼잣말을 읊조리며 차를 몰기 시작했다.
학철은 뒤를 돌아보았다. 폭발한 승합차의 잔해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주변 길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늘 뉴스에 나오겠는데….’
하지만 지금 당장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가히였다.
“가히 씨. 괜찮으세요?”
학철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가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뭐였어요? 지금 그거?”
가히는 하얗게 질린 표정을 하고서 학철에게 물었다. 학철은 리얀을 힐끔 보았다. 리얀은 냉정한 얼굴로 전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음… 마술사가 부리는 마법 같은 거였어요.”
학철이 가히에게 대답했다. 가히는 겁에 질린 얼굴로 리얀을 보고 있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겁을 먹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학철은 겁이 난다기보다는 리얀에 대한 존경심이 더 크게 들었다. 소총의 총구를 보는 순간 느꼈던 공포는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사장.”
리얀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았어, 알았어. 정신 차렸다고. 제대로 목적지까지 잘 갈 테니 걱정 마쇼.”
사장이 투덜거리는 투로 말했다.
“홍 대표와 만나기로 한 장소가 양화진 성지공원, 맞소?”
“맞지.”
사장이 대답하자 리얀은 차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비게이션이 저절로 작동해서 양화진 성지공원까지의 최단 거리를 계산한 다음, 새로운 경로를 제시했다.
“이쪽 길로 가는 편이 나을 것이오.”
“아니, 왜….”
“내 말을 따르시오. 미행을 피하기 위한 경로로 다시 잡은 것이오.”
사장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을 따라 방향을 잡았다. 학철은 지금 내비게이션을 조작한 것이 리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굳이 가히에게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겁에 질린 가히를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학철 씨. 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어요?”
가히는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학철은 대답 대신 차 뒤편에 있던 담요 한 장을 집어 가히의 무릎 위에 올려 주었다. 가히는 고맙다고 작게 말한 뒤 자신의 다리를 담요와 함께 끌어안았다.
목적지인 양화진 성지공원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학철은 리얀 말고 룩칼과 세이라를 주목했다. 룩칼이 분노를 삭이는 모습이었다면 세이라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태평하게 창밖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어쩐지 지금 모여 있는 사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균열을 상징하는 것만 같아서 마냥 즐겁게 볼 수는 없었다.
차는 양화진 성지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한산했다. 그래서 홍 대표의 차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홍 대표가 차 옆에 서 있어서 더욱 찾기가 쉽기도 했다. 키가 큰 외국인은 아무래도 눈에 잘 뜨인다. 홍 대표는 그 자리에 서서 학철 일행이 타고 있는 승합차가 다가오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사장은 차를 세운 뒤 가장 먼저 내렸다.
“사장님. 무사하셨군요. 천만다행입니다.”
홍 대표가 말했다. 그러자 학철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이 강력한 주먹을 홍 대표의 얼굴로 날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홍 대표가 제자리에 서서 허리 움직임만으로 사장의 주먹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홍 대표, 복싱했구나!’
하지만 놀라고만 있을 일은 아니었다. 다음 순간 사장은 중심을 잃고 잠깐 휘청였다가 이내 곧 다시 중심을 잡고 다시 한번 홍 대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홍 대표는 이번에는 허리를 숙여서 사장의 주먹을 피한 뒤, 사장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장님!”
학철은 싸움을 말리기 위해 소리치며 달려갔다. 하지만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홍 대표에게 허리를 잡힌 사장이 괜찮다고 말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혔기 때문이었다.
“홍 대표. 내가 흥분한 거, 그거 미안하게 됐수다. 도무지 참을 수가 있어야지….”
“제가 알려드린 덕분에 무사하신 거 아닙니까? 저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만.”
홍 대표는 아주 차분한 음성으로 사장에게 말했다. 그 사이 차에서 내린 인원들이 사장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모였다.
“아니, 그 총질 하던 놈들, 뭐 하는 놈이야? 홍 대표! 홍 대표는 알지? 그러니까 우리한테 알려준 거 아냐? 응?”
사장은 이렇게 물어보면서 다시 화가 치미는지 말끝이 살짝 높아졌다.
“저도 모릅니다.”
홍 대표가 딱 잘라 말했다.
“몰라? 모르는 데 그놈들 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응?”
홍 대표는 대답 대신 자신의 차 문을 열고는 내부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홍 대표의 손이 향하는 곳을 주목했다.
“하지만 추리는 해 볼 수 있지요. 이것은 라디오 수신 장비입니다. 경찰 무선을 도청할 수 있지요.”
홍 대표는 이렇게 말하고는 라디오 수신 장비의 작동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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