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홍대 가다-45화 (45/100)

- 45 -

“아무튼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해서 저기 저 외국 분들이랑 만나신 거구나. 그런데요? 어제 저기 있는 외국 분들이 게스트하우스로 찾아왔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가히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뜨며 물었다.

“예, 저, 그러니까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뭐라도 지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평소에는 잘도 돌아가던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다음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런 일이 흔한 게 아니라서요. 그 영혼이 바뀌고, 뭐, 그런 건 아닌 거 같고요, 그러니까, 변장? 분장?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는 편이 더 맞을 거 같은데요.”

학철은 이렇게 말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쓴 것 같다는 말은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변장요? 우리 대표님이 분장하신 거라는 건가요? 그럼 저 외국 분은 분장사? 무슨 가면 같은 거 쓴 건가요? 그, 왜, 미션 임파서블, 그런 영화 나오는 거 같은. 그런 건가요?”

“예, 맞아요. 변장. 분장. 저 외국 분이 그런 거 하시는 분인가 보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가히는 실망한 얼굴이었다. 차라리 마법사라는 이야기를 해 줄 걸 그랬나 싶었을 정도였다.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리얀이 ‘세탁소’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갔다. 일행도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주 잘 알고 있는 승합차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 여기야! 어서 타! 어서!”

사장이었다. 사장은 승합차의 문을 열고는 타라고 손짓을 보냈다. 리얀이 앞장서서 탔고, 그 뒤를 이어서 세이라와 가히, 그리고 우시준 얼굴을 한 사내가 연이어 올랐다. 학철은 마지막으로 탄 뒤에 승합차 문을 닫았다.

“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응? 학철이, 넌 다친 데 없어? 와! 이거 진짜! 내가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네! 홍 대표가 여기 10분만 대기하고 있으라 그랬는데, 딱 10분이었어, 10분! 좀만 더 있었으면 그냥 가려고 했다고!”

사장이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주인장. 진정하고 일단 출발하시오.”

리얀이 침착하게 말했고, 사장은 시동을 걸고는 바로 승합차를 출발시켰다.

“아니,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총질이라니 이게 뭔 일이야? 총 든 놈들이 막 주차된 승합차에다 대고 드드드드득! 테러리스트, 아니면 간첩이겠지? 와! 이게 뭐야, 도대체! 어라? 그런데 이거, 일이 더 복잡해지는 모양이야? 처음 보는 얼굴이 보이네? 저기, 처음 보는 아가씨, 그리고… 우시준? 어? 우시준 맞죠?”

사장은 역시나 들뜬 목소리로 말하다가 이렇게 질문으로 말을 맺었다.

“그러게요. 우시준하고 똑같이 생겼죠? 그쵸?”

가히가 사장의 말을 거들었다.

“아니, 우시준이 여기 무슨 일이야? 가만. 아까 그거, 진짜가 아니라 무슨 영화 촬영하는 거였나? 그런 거였어? 응?”

“나, 우시준 아니오. 그냥 닮았을 뿐이오.”

우시준 닮은 사내가 거친 음성으로 말했다.

“어, 진짜. 목소리가 다르네. 닮은 분인 거 같은데, 이야, 사람이 닮아도 어떻게 이렇게 닮을 수가 있지? 진짜 신기한데.”

“그런 소리 많이 들었…소.”

우시준 닮은 사내가 어색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이야기 좀 해 주심 안 될까요?”

가히가 우시준 닮은 사내와 리얀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아냐, 아냐. 아가씨. 거 우시준이고 나발이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서울 한복판에서 총질을 하는 판국인데… 내가 말이야, 대한민국에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들었지만 건물주 되는 게 조물주 만나기 딱 좋은 일이라는 건 또 몰랐네. 이런 망할….”

사장은 뭐라고 욕설을 덧붙이면 차를 몰았다.

“홍 대표는 어디 있소?”

화제를 바꾸려는 건지 리얀이 사장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지금 홍 대표한테 가는 거요. 양화진 성지공원, 거기서 보자고 하더만. 거기가 사람도 없고….”

“잠깐. 사장. 저 뒤에 있는 검은 색 차, 아는 차가 맞소?”

리얀이 사장의 말을 끊고 말했다. 사장은 고개를 들어 룸미러를 통해 뒤를 확인했다.

“처음 보는 차인데… 야! 우리 미행당하는 거냐?”

사장이 큰 소리로 물었다.

“미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차에 있는 전자 장비가 이 차를 추적하고 있는 건 맞소.”

리얀이 말했다.

“저, 전자 장비? 그게 무슨 소리야?”

사장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차량의 번호판을 인식해서 숫자를 저장한 뒤, 그 번호판을 장착한 차량을 추적하는 장치인 것 같소.”

리얀은 몸을 돌려 뒤편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학철도 뒤를 바라보았다. 검정 승합차가 뒤에서 주행을 하고 있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 차에 무슨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지, 정말로 미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 알겠어, 알겠어, 리얀. 그럼 뒤에 따라오는 차, 지금 뭐 하고 있어?”

사장이 리얀에게 물었다.

“잠시 시간을 주시오.”

리얀이 말했다.

“저기요, 학철 씨. 저 외국 분, 뭐 하시는 분이라고 했죠?”

학철의 옆에 앉아 있던 가히가 귓속말로 물었다. 학철은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즐거운 경험을 하면서도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 마법사 같은 분이세요.”

“마술사요?”

“아니, 그러니까… 아주 신기한 기술을 가진 분이라는 뜻이에요.”

“아… 그럼 기술자? 과학자? 그런 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학철은 가히에게 이것보다 더 이상 자세하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 사이 리얀은 눈을 감고 뭔가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뒤에 따라오고 있는 차량을 마법으로 정찰하고 있는 것이리라.

“저 차에 타고 있는 자들은 조금 전 공격했던 자들과 같은 무리가 틀림없소. 같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소. HK433. 이 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이국의 무기라 들었소. 학철, 내 말이 맞는가?”

“예?”

리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학철은 당황했다.

“뭘 그리 놀라느냐? 학철, 너는 군대 복무 경험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학철은 행정병이었다고 다시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기대에 찬 눈으로 보고 있는 가히의 눈빛에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아, 예, 예. 맞아요. 대한민국 육군은 K

-1, 아니면 K-2 소총을 쓰죠.”

그러고 보니 차에 타고 있는 사람 중에서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친 건 학철 혼자였다. 사장은 건강 문제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들었다.

“리얀. 저자들이 내 부하들을 살해한, 바로 그자들이라는 거지, 지금?”

우시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가 리얀에게 물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노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겁이 날 정도였다.

“그렇다, 룩칼.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알고 있어, 리얀.”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분명한 음성이었다.

“학철 씨. 룩칼이 누구예요?”

이번에도 가히가 귓속말로 학철에게 물었다. 학철은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리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기요, 룩칼이 누구예요?”

학철이 묻자 리얀은 아, 하는 짧은소리를 냈다.

“잠깐. 다들 이 사람은 처음 볼 테니 내가 소개하겠소. 여기 이 사내는 룩칼이라고 하오. 나와는 동향이오.”

짧은 소개였다.

“동향? 저기요, 그럼 사장님, 외국인이셨어요?”

가히가 우시준 얼굴을 하고 있는 룩칼에게 물었다.

“외국인이지. 외국에서 왔으니까.”

“어느 나라요?”

“먼 나라야. 가히 씨는 말해줘도 몰라.”

“아, 거 아가씨!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아저씨! 아까부터 자꾸 아가씨, 아가씨 하지 마세요! 제 이름, 한가히고요, 요즘에 아가씨 소리 잘못하면 큰일 나는 거 모르세요?”

가히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사장은 잠깐 움찔하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 리얀은 뒤쪽을 응시하면서 따라오고 있는 차에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리얀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학철. 놈들은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자동소총의 총탄이 이 차를 뚫을 수 있는가?”

리얀이 학철에게 물었다.

‘도대체 내가 언제부터 군사 전문가가 된 거지?’

학철은 이런 의문이 일었지만 기대로 가득 찬 가히의 눈빛을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볍게 뚫려요.”

학철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물론 군대에서 습득한 지식은 아니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총기 위력 테스트 영상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자동소총의 총탄은 승합차 문짝쯤은 우습게 관통한다.

“사장. 놈들이 우리 차에 공격을 가할 수도 있소.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오.”

“공격? 총 쏜다고? 우리 차에? 총을 쏠 수도 있단 말이야?”

사장이 흥분된 어조로 빠르게 말을 뱉었다.

“학철 씨. 저분, 원래 저렇게 말이 빨라요?”

이번에도 가히가 귓속말로 물었다. 학철은 뭔가 그럴싸한 말로 대답을 생각해 내려고 했다. 만약 리얀이 소리를 치지만 않았다면 정말 근사한 대꾸를 했을지도 모른다.

“사장! 놈들이 속도를 내고 있소! 우리 옆으로 올 생각이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승합차가 옆으로 온다면? 학철은 영화에서 본 자동차 총격전을 떠올렸다. 그러자 주먹으로 쳐도 구겨지는 승합차 차체가 5.56mm 총탄으로 벌집이 되는 광경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사장은 기어를 바꾼 뒤 속도를 냈다. 차는 강렬한 엔진음과 함께 덜컹거리며 앞으로 급가속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