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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간지러워서 오른손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오툴이 손을 풀어주고 자기만 도망쳤다? 지금 한 말, 그런 뜻인가?”
사내가 톱을 흔들면서 물었다. 톱날이 흔들릴 때마다 금속이 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학철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예요, 진짜! 보세요! 저 구멍! 전 못 나간다고요!”
“그래. 넌 못 나가지. 저 작은 구멍으로는 말이다. 그래서 너는 오툴을 풀어준 거야. 널 버려두고 혼자라도 도망치라고 말이지.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오른손만 가지고 어떻게 오툴을 풀어줬느냐 하는 점이야.”
사내는 조금도 학철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학철은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망치려고 시도라도 해볼 걸 그랬다 싶었다.
“난 말이다, 궁금한 건 참지를 못해. 그런 성격이야. 솔직히 말하지. 난 네가 도망치려고 시도했건 안 했건 상관없어. 어차피 네놈한테서 알아낼 건 대충 다 알아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어떻게 오툴을 풀어준 거지?”
아주 차분한 목소리였다. 학철은 오싹했다. 정말로 화가 난 사람이 종종 이렇게 싸늘한 분위기를 풍길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대답 안 하시겠다? 고작 금화 1천 개에 의리를 지키시겠다?”
사내가 성큼 다가오더니 왼손으로 학철의 오른팔을 꽉 쥐었다.
“악!”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악력이었다. 학철은 나름대로 오른팔에 온 힘을 쏟아보았지만 사내에게 붙잡힌 오른팔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오른팔이 금화 1천 개의 가치가 있을까? 잘 생각해봐. 이 오른팔로 평생 뭘 할 수 있을지. 이걸로 밥도 먹을 테고 얼굴도 씻을 테고… 그래. 네가 말한 그대로 코도 긁을 테지.”
사내가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톱을 들어 올렸다.
‘진짜다! 진짜야! 이건 허세가 아니야!’
“으아아악! 진짜예요, 진짜! 고양이! 고양이가 그랬어요!”
학철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라는 걸 스스로 느꼈다. 옛날에 어떤 네티즌이 악플을 단 혐의로 고소당하자 자기 집 고양이가 악플을 달았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크크크… 고양이… 그게 네가 하고 싶은 말, 전부냐?”
톱날이 학철의 팔뚝에 박혔다.
“으아아악!”
학철은 움직일 수도 없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어떻게든, 뭐든 해야만 했다. 이대로 오른팔을 잃을 수는 없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선생님! 제발! 잠깐만요! 잠깐만요!”
학철이 애원했지만 사내의 얼굴에는 작은 변화도 없었다.
똑. 똑. 똑.
학철이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려는데 사내의 뒤편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사내는 뒤를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뭐야? 피바람을 부르는 마녀가?”
“예. 주차장에서 본 차량 두 대가 지금 나타났습니다. CCTV에 잡혔습니다.”
보고를 받은 사내는 톱을 바닥에 던졌다.
챙그렁!
금속음이 울리자 학철은 입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눈썹을 다 적시고 있었다.
“우리 이야기는 잠시 뒤에 이어서 해야겠구나. 이거,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으니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크크크크. 야! 넌 나가서 정찰팀하고 합류해라. 나는 5층 지휘통제실로 간다.”
사내는 이렇게 말하고는 방에서 나가버렸다. 사내에게 보고를 한 자가 뒤따라 나가며 문을 굳게 닫았다.
‘살았다….’
학철은 조금 전 사내에게 붙잡혔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주먹으로 잡았던 자리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사내가 톱을 댔던 자리에, 톱날이 박혔던 피부에 핏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죽어! 죽을 거야!’
학철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재빨리 왼손을 풀었다. 케이블타이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게 끊어졌다. 그리고 다음은 두 발이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 지금 밖에는 기회가 없어!’
학철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오툴이 빠져나간 구멍을 바라보았다. 머리 하나 집어넣기에도 작은 구멍이었다.
“이리로는 진짜 못 나가겠는데….”
학철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
리얀은 세이라와 함께 사장의 승합차를 타고 햇살 용역 부근을 돌고 있었다. 주변을 충분히 관찰하고 있던 리얀은 단검을 이용해 자신의 손바닥에 피를 냈다.
“창문을 열어라, 세이라.”
리얀이 명령했다. 세이라는 창문을 내렸다.
리얀은 자신의 핏방울을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내보냈다. 핏방울은 마치 비눗방울처럼 천천히 떠서 건물 쪽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 천천히 이동하시오, 사장.”
리얀이 부탁했다. 사장은 비상등을 켜고는 천천히 건물 앞을 지나기 시작했다.
차창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간 리얀의 핏방울은 건물 앞에서 엷게 퍼졌다. 처음에는 마치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했지만 피의 양이 적어서 붉은 기운은 이내 곧 사라졌다.
이제 리얀의 핏속에 녹아 있던 에테르 입자는 고르게 퍼져 건물 내부로 흩어졌다. 리얀은 집중해서 에테르의 감각을 그대로 전달받았다.
‘이 정도 농도의 에테르가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리얀은 눈을 감고 온 신경을 떠도는 에테르에 집중했다.
옥상에 도달한 에테르는 바로 흩어져 버렸다. 예상대로였다. 바람 때문에 건물 외부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리얀이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건물 지하 2층에서 4층까지 이동하는 승강기였다. 리얀은 승강기를 본 적도 있고 사용해 본 적도 있었다. 비록 전자기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으로 움직이는 것이긴 했지만.
그리고 지하 1층에서 5층까지 운행하는 승강기도 하나 있었다. 한두 사람이 간신히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지하 1층과 5층에만 멈추는 승강기였다.
“5층은 가정집이오. 소파, 화려한 욕조, 넓은 침실이 있소. 그리고 5층으로 통하는 출입구는 오직 지하 1층에서 타는 승강기 하나뿐이오.”
리얀은 이렇게 설명을 했다.
“그렇다면 5층에 건물주가 살겠군.”
사장이 말했다.
다음으로 리얀은 4층과 3층에 퍼져있는 에테르에 집중했다.
4층과 3층에는 사무실이 네 개씩 있었다. 널찍한 사무실이었지만 사람은 4층에 한 명이 있을 뿐, 3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리얀은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4층에 있는 한 명은 무시한 뒤 2층으로 신경을 옮겼다.
2층에는 넓은 사무실이 두 개가 있었다. 한쪽은 완전히 텅 빈 공간이었는데, 물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씻는 공간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는 방이었다. 리얀은 군대 내무반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스물두 명의 사람들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다들 권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2층은 1층 로비를 내려다보게 설계되어 있었다. 리얀은 11명씩 나눠서 대열을 갖춘 이자들이 동시에 1층 로비를 향해 사격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놈들은 2층에 모여 있소. 지금 현재 인원은… 스물두 명이오.”
리얀은 이렇게 정보를 전달한 뒤, 1층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에테르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여러 구조물뿐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침입한다면 방어태세로 전환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이다. 구조물들은 손쉽게 장애물로 변환할 수 있다.’
에테르의 기운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리얀은 재빨리 지하 1층을 살펴보았다. 지하 1층은 주차장이었다. 자동차 네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리얀은 더 볼 게 없다고 생각하고 지하 2층으로 신경을 옮겼다.
지하 2층에도 주차장이 있었는데, 주차된 차는 없었다. 그리고 주차장 구석에 용도를 알 수는 없지만 뭔가 기능하는 것이라는 건 알 수 있는 설비가 가득 찬 방이 하나 있었다. 리얀은 그곳이 보일러실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건물 전체의 온도를 조작하는 곳이라고 추측했다. 설비가 있는 방에서 열기가 시작되어 건물 전체로 흐르는 것이 에테르의 흐름을 통해서 느껴졌다.
리얀은 에테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지하 1층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좀 전에 너무 빨리 지나친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지하 2층의 구석 공간이 1층에도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지하 2층 보일러실이 있는 곳과 같은 위치에 작은 창고가 하나 있었다.
창고에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빈 의자였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묶여 있었다.
“학철을 찾았소. 지하 1층에 있소.”
리얀이 말했다.
“학철이? 리얀 님. 거, 학철이, 무사해요? 지금 뭐 하고 있어?”
사장이 물었다.
“음. 설명하기가….”
에테르의 농도는 이제 거의 희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학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학철은 지금 창문에 머리를 끼우고 있소.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크기인데, 아주 필사적으로 머리를 끼우고는…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소.”
리얀은 마지막 남은 에테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이렇게 공유했다.
“나름대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학철, 생각보다 제대로인데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럴 때 다 포기하기 마련이잖아요?”
세이라가 말했다.
“하지만 학철은 군사 경험도 있는 인재다.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리얀은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혹시 그저 작은 구멍에 낀 머리를 빼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요? 여기까지 온 건 순전히 리얀 님 믿고 온 건데.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소?”
사장이 물었다.
“정면으로 돌파할 것이오.”
리얀이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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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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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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