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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홍 대표 이야기 말이야, 우리가 이 나라 정부, 국가정보부를 상대해야 한다, 이 말 아냐?”
사장은 격앙된 어조로 홍 대표와 리얀을 향해서 물었다.
“그렇소.”
“이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잖아! 흑마법사만 죽이면 되는 일이라고 했잖아! 불법 이민자나 다를 바 없는 신원도 불확실한, 그런 놈 하나 없애면 되는 일이라고 했잖아! 어쩐지 경찰 놈들도 제대로 조사하는 게 아니다 싶었어… 그런데 정부? 공인인증서? 거기다가 국가정보부?”
차분하게 답한 리얀과는 달리 사장은 흥분하고 있었다.
“난 여기까지야. 난 못 해. 아니, 내가 무슨 반국가단체 구성원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랑 맞서 싸우게 생겼는데 뭐 좋은 일 났다고. 응?”
“지금 나와의 약속을 파기하겠다는 것이오, 사장?”
흥분한 사장에게 리얀이 물었다. 차분하다기보다는 싸늘한 음성이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나,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오. 그러니까, 내가 약속을 깨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사장도 말을 하면서 천천히 흥분이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그런데요, 리얀 님. 내 이야기를 잘 들어봐요. 우리 약속은 흑마법사만 죽이면 되는 일이라는 거였잖아? 응? 그런데 거기에는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은 없었다고.”
“애초에 우리의 약속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소, 사장. 그런데 이 치안이 좋은 나라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정부가 잘한다고 응원하지는 않을 것 아니오? 안 그렇소?”
리얀의 말에 사장은 뭐라고 답을 하려다가 멈췄다. 제대로 답변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사장은 할 말을 찾아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 까딱하다가는 잘해야 밀항선 타고 중국 가서 목숨만 부지하고 살게 생겼는데… 리얀 님. 나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이에요, 장사. 건물 임대해서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흑마법사인지 뭔지 죽이고 나면 여기를 떠나야 할 판인데….”
“제가 잠깐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불쑥 홍 대표가 끼어들었다. 리얀은 홍 대표에게 눈빛을 보냈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것이다.
“저는 외국인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명성도 얻었습니다. 사장님. 그래서 절 찾으신 거지요?”
“응. 그건 그렇지, 홍 대표.”
홍 대표는 핸드폰을 사장 쪽으로 내밀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지도가 떠 있었다. 지도의 중심부에는 마포구 대흥동 부근의 주택가가 보였다.
“학철이를 납치한 놈들이 햇살 용역 소속이라면, 이곳에 있는 햇살 용역 건물로 학철이를 데리고 갔을 겁니다.”
“햇살 용역 사무실?”
“아뇨. 햇살 용역 소유 건물입니다. 대지 150평에 7층짜리 건물이지요. 햇살 용역은 이 건물을 통째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니, 용역 회사가 무슨 건물을 통째로….”
“저는 이곳의 소유주가 흑마법사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자신의 수하들을 모아두었을 겁니다. 저는 학철이를 구하기 위해서, 또 흑마법사를 죽이기 위해서, 우리가 이곳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완전 주택가인데, 여기로 쳐들어가겠다고?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고작 우리 넷이서?”
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이렇게 묻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에게는 리얀 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리얀 님의 능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몇 명이 이 건물에 있건, 그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지요, 리얀 님?”
“물론이오, 홍 대표.”
리얀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투였다.
“군단장님께서는 전장에서 흑마법사의 군단 하나를 통째로 태워버리신 적도 있어요.”
세이라가 리얀의 대답에 근거를 더했다.
“좋아. 그렇게 해서 흑마법사를 죽인다고 칩시다. 그럼 경찰은 어떻게 할 건데? 응? 그리고 정보부는?”
“제가 하는 일,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홍 대표가 말했다.
“아니, 홍 대표가….”
“사장님. 이 건물은 틀림없이 흑마법사가 차명으로 세탁해서 가지고 있을 겁니다. 건물을 털어보면 등기서류와 입출금내역이 나올 테고요.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흑마법사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이 건물은 우리가 가질 수 있습니다.”
홍 대표의 말에 사장은 잠깐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이거, 건물을? 대지 150평에 7층짜리 건물을?”
사장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이 일이 제대로 흘러간다면, 햇살 엔터테인먼트도 우리가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모두가 흑마법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맞고, 건물에서 관련 서류들을 찾는다는 전제가 있긴 합니다만,, 리얀 님. 전리품은 우리가 갖는 것이 맞지요?”
“그렇소, 홍 대표. 전리품은 모두 그대와 학철의 것이오. 혹시 발견하게 되는 현금이나 보물도, 모두 그대들의 것이오.”
리얀이 홍 대표의 말을 확인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장은 두통이 나는지 눈을 감고는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리얀은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홍 대표. 하나 물어봅시다. 이 건물, 세탁해서 가지게 되면, 누구 명의로 할 거요?”
“사장님 명의로 할 겁니다. 그게 제일 괜찮습니다. 학철 씨는 지분을 나눠 줄 겁니다. 만약 흑마법사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 늘어난다면 지분도 늘어나겠지요.”
“홍 대표는?”
“처음부터 제가 받기로 약속한 것은 수수료입니다. 저는 최종 가치를 평가해서 거기에 15%만 가져갑니다. 제 수수료는 건물 담보로 해서 대출로 해결하시면 될 것이고, 물론 제가 그 대출 과정까지 책임집니다.”
사장은 리얀을 바라보았다. 리얀은 자신을 보는 사장의 눈동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굳이 정신감응 마법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탐욕으로 흔들리는 사람의 눈이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 했던가?”
사장이 말했다.
“했소.”
“그럼 지켜야지, 약속.”
사장은 리얀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얀은 그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어휴, 목이 다 타네.”
사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몸을 움직여 조수석 글러브박스에서 생수병을 꺼낸 뒤,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건 무엇이오?”
리얀이 물을 마시고 있는 사장에게 물었다.
“이거? 생수. 물이잖아요. 왜? 좀 드릴까?”
사장은 팔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아니. 물을 담고 있는 병을 말하는 것이오.”
사장은 대답 대신 리얀에게 생수병은 건넸다.
리얀은 생수병을 받아들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질감의 병이었다.
“유리가 아니로군. 부드럽고, 탄력도 있고.”
“플라스틱 처음 보나 보네. 그거, 유리 아니야. 안 깨지지.”
사장이 설명을 해 주었다.
생수병에는 드라마 ‘허깨비’ 주연으로 유명해진 배우 우시준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런 그림을 홍보모델이라고 했지. 유명인이라고 했고. 유명인답게 역시나 잘 생겼군.’
리얀은 생수병 뚜껑을 열고 물을 마셨다. 미지근한 물이었지만 깨끗한 물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햇살 용역 건물 소유주하고 햇살 엔터 소유주가 같다는 거, 그거, 확인한 거야? 홍 대표?”
사장이 홍 대표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추측한 것이지요. 하지만 햇살 용역을 뒤져보면 반드시 관련 자료가 나올 겁니다.”
“그래… 만약 아니라고 해도 햇살 용역 건물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거, 맞지?”
“맞습니다.”
“이거, 생각도 못 했어. 난 말야, 내 팔자에 건물주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거든. 거, 리얀 님. 그런데 그 흑마법사라는 놈,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이오?”
사장이 리얀에게 물었다.
“흑마법사….”
리얀은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불과 하루 전이었다. 마지막까지 몰린 흑마법사는 마침내 12대륙 8대양에서 모인 용사의 군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흑마법사는 도망치고 말았다. 바로 이곳으로.
“흑마법사요? 제가 알아요. 키 엄청 크고요, 엄청 말랐어요. 금발을 길렀는데 등까지 오고요, 얼굴은 엄청 희어요. 팔다리 엄청 길고요.”
세이라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 리얀 대신 설명했다.
“엄청이라는 말, 엄청 많이도 하네.”
사장은 세이라를 향해서 놀리듯 말했다. 하지만 정작 세이라는 놀리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알겠소. 홍 대표. 사장. 우리는 이곳으로 가야 하오.”
리얀이 홍 대표의 핸드폰에 떠 있는 지도의 중심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야지요.”
“암. 그래야지. 금화 1천 개에 마포구에 있는 건물주! 이번 일만 제대로 끝나면 내 팔자 완전히 바뀐다!”
사장은 큰 소리로 말하고는 껄껄대며 웃었다.
리얀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7층 건물이라고 하셨소?”
“사진 보여드리겠습니다.”
홍 대표가 로드맵에 뜬 건물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리얀은 건물을 살펴보았다.
“7층이라고 했는데, 5층 건물이지 않소?”
“2층은 지하입니다.”
리얀은 땅으로 2층이 더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생각을 했다.
“알겠소. 이 건물은… 출입구가 좁고, 각 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도 제한적이로군.”
리얀은 입구를 지키는 자들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계단을 지키는 병력도 상상해 보았다. 이곳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명의 병력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곳을 우리만으로 점령하는 건 불가능하오.”
리얀이 말했다. 리얀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나머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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