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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24화 (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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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나는 건 벌거벗고 사람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학철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을 하려고 했다.

“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학철은 자신의 목소리가 어색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구나, 학철. 그렇다면 내가 그 일본 여성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볼까? D드라이브, 학술자료, 새폴더, 직박구리….”

“그, 그만!”

학철은 고문을 당하는 첩보원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정보를 실토하는 심정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리얀은 평온한 얼굴로 학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하군. 그게 그렇게 부끄럽나? 실제 여자를 만나지 못해서 자신이 가진 컴퓨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는 게 부끄러운 것인가?”

학철은 수치심 때문에 도망쳐버리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만요. 그런데 거기 앉아서 제 컴퓨터 내용을 어떻게 알아요?”

“학철.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알고 있느냐?”

“예. 봤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성난 바다와 같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제아무리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 해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움직이는 바다 깊은 곳, 움직이지 않는 마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 같은 기본 지식을 읽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게 정신감응 마법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렇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사람의 마음을 모방하였으나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얼어붙은 호수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옳을 것 같구나.”

“그래서 제 컴퓨터 내용을 읽은 거라는 건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컴퓨터의 마음은 겉으로 보기에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저 없다와 있다, 둘로 구분된 긴 흐름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그것을 사람의 마음을 해독하는 것처럼 해독했을 뿐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리얀은 컴퓨터 밖에서 컴퓨터를 읽을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학철은 혹시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렇다면 리얀 님. 지금 보안 프로그램 오류가 났거든요? 이거 해결해 주실 수 있어요?”

학철은 자신의 은밀한 하드디스크 이야기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야 간단하지. 이렇게 흐름을 읽기만 하면….”

리얀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눈을 감고 집중을 했다. 학철은 숨을 죽이고 리얀이 다음 행동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흐음….”

리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혼자서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뭔가 중얼거리더니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가만있자. 이건….”

꽤 시간이 지났다. 학철은 하품을 했다. 언제부터인지 리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쩐지 리얀을 괴롭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저, 리얀 님….”

“잠깐, 잠깐만 있어라.”

리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학철은 처음 보는 리얀의 당황하는 얼굴이 신기했다.

‘이 무서워 보이는 마법사도 이럴 때가 있네?’

학철은 어쩐지 아는 누나한테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철. 내가 좀 많이 피곤하구나. 아무래도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세이라! 여기 어깨를 좀 주무르거라!”

세이라는 군소리 없이 명령을 수행했다. 역시나. 마법사에게도 공인인증서와 보안프로그램 오류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모양이었다.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으시네요?”

“크흠!”

리얀은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렸다. 학철은 키득거렸다. 어쩐지 지금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차피 이런 건 그 홍 대표님 전문분야잖아요. 우리가 해 봐야 한계가 있죠. 일단 전화로 홍 대표한테 우리가 알아낸 사실을 알려줄게요.”

학철은 합리적으로 판단한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리얀은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언급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야.’

학철은 이렇게 생각하며 홍 대표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어차피 지금은 경찰서에 있을 테니 나중에 볼 것을 감안해서 편지처럼 길게 메시지를 썼다.

내용은 리얀이 살던 세계의 공주가 이곳에 와 있는 것 같다는 것과 그 공주가 속해있는 소속사가 햇살 용역과 관계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답문이 곧 왔다.

- 현재 경찰서에서 대기 중. 햇살 용역과 햇살 엔터 관련 내용은 확인하겠음.

간결한 답변이었다. 내일 중에는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았다.

“홍 대표가 알아보겠다고 하네요.”

학철이 말했다.

“나도 봤다.”

리얀은 여전히 등을 돌린 상태로 말하고 있었다. 세이라는 묵묵히 리얀의 어깨를 주물렀다.

“제 핸드폰도 봤어요?”

“그 안에도 사진을 가지고 있구나.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나 본데, 일본 여성도 그렇고,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냐?”

리얀이 물었다. 일본 여행 사진을 본 모양이었다.

“일본 여행, 많이들 가요. 옆 나라니까요.”

“일본도 이곳만큼이나 부유한 곳인 것 같구나.”

“아마 여기보다 더 부유할걸요.”

학철은 일본의 최저 시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1만 원 수준이라는 걸 생각하면서 말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최저 시급 1만 원을 주장하면 좌파용공세력 소리를 듣는데.’

“그렇다면 학철. 너는 이곳보다 일본이 더 부유하기 때문에 일본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냐?”

“…그건 아닌데요. 대안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야동을 제작하는 건 불법이라고요.”

“야동?”

리얀은 이렇게 물으며 누워있던 자세를 바꿔서 매트리스에 앉았다.

“아, 저, 그게….”

“알겠다. 무슨 말인지. 이곳에서 불법이기 때문에 인종적으로 비슷한 일본 여성이 등장하는 야동을 본다는 것이로구나. 이해한다. 내가 있던 곳에도 그런 게 있었다. 물론 이곳처럼 영상이나 사진은 아니고, 공연예술의 형태로 존재한다.”

공연예술이라고 하니 어떤 형태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내가 살던 곳에서 야동를 금지하는 국가는 대체적으로 종교원리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곳이었다. 이곳도 그런가?”

리얀이 물었다.

“글쎄요. 유교원리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건 아닌데… 비슷하기는 할 거에요.”

뭔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친구들과 ‘우리나라는 왜 포르노를 금지하는가?’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하면 농담으로 ‘유교 탈레반 때문이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이 종교 국가도 아니고, 유교의 경전이 성경이나 코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건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저도 우리나라 문화를 잘 이해 못 하겠어요.”

학철이 리얀의 말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런 깊이 있는 이해를 말하는 건은 아니다, 학철. 그저 그 세계에서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이곳에 온 지 하루도 안 지났잖아요, 리얀 님.”

“나는 원정을 다니며 전투를 치렀던 군인이다. 다른 지역의 문화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신만만한 투였다. 이런 자신만만함이 있기 때문에 조금 전 공인인증서와 보안프로그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리라.

“학철. 아까 본 일리스 공주의 춤과 노래를 볼 수 있겠느냐?”

리얀이 물었다. 학철은 군말 없이 마셰라의 지방 행사 직캠을 찾아 플레이했다.

“사진도 대단한 기술이지만 이 동영상은 더욱 신기한 기술이다.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구나.”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마셰라를 뚫어지게 보면서 리얀이 말했다.

“그러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너무 불편하시겠어요.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으니까요.”

이 말이 끝나자 리얀은 집중해서 보고 있던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학철을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핫!”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당들이 웃는 소리였다.

“불편하다고? 학철. 만약 핸드폰이 없어진다면 불편할 것 같으냐?”

“저요? 예, 물론이죠. 전화도 못 하고, 검색도 못 하고, 사진도 못 찍고, 지도도 못 찾고….”

“마법사에게 에테르가 없는 환경이라는 건 양팔을 쓰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학철. 네가 말하는 전화나 검색을 수행하는 장비는 마법사에게는 전혀 필요 없다. 이동수단? 나는 조금 전에 본 것처럼 활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 수도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셨어요?”

“물론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 마법사만 홀로 떨어져서 이동하는 일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으니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학철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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