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홍대 가다-23화 (2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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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스 공주요?”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는 리얀에게 학철이 물었다.

“이 그림, 일리스 공주의 이 모습은 어디서 난 것이냐? 어디서 구했느냐는 말이다!”

리얀이 학철을 무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어, 어, 이거 마셰라 공식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건데요….”

학철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사살 이 스크린세이버는 공식 굿즈를 사면 USB에 넣어 주는 것이지만 학철은 그냥 불법 다운로드했다.

“네가 일리스 공주의 그림을 어떻게 가지고 있느냔 말이다!”

리얀이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저, 이 사람, 일리스 공주 아닌데요? 마셰라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가수에요, 가수. 리얀 님이 온 곳에도 가수는 있지 않았어요?”

불법 다운로드를 추궁하는 게 아니란 걸 안 학철은 조금 안심해서 이렇게 마셰라를 설명했다.

“가수…?”

학철의 설명에 리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제가 세계지도도 찾을 수 있는데 마셰라 이미지를 못 찾겠어요?”

학철은 이렇게 말하곤 재빨리 마셰라를 검색했다.

마셰라 (가수)

신체 : 169cm, 50kg

소속사 : 햇살 엔터테인먼트

사이트 : 공식 사이트

달랑 네 줄이 전부였다. 생년월일, 출신, 학력 같은 개인정보는 없었다.

“학철. 네 키가 얼마나 되느냐?”

리얀이 뜬금없이 키를 물었다.

“예? 저요? 저 182, 아니 183 정도요.”

“일어서 봐라.”

리얀이 지시했다. 학철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리얀도 매트리스에서 일어서서 학철 앞에 섰다. 리얀은 학철보다 조금 작은 키였다.

“내 키는 이곳 단위로 172, 아니면 173 정도 되겠구나. 맞느냐?”

“예, 그렇습니다.”

가깝게 서서 그런지 위압감이 들어서 학철은 자기도 모르게 군대식으로 대답을 했다.

“이상하구나. 일리스 공주는 나보다 조금 더 큰 키인데. 169라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여자 가수는요, 170이 넘을 경우에 일반적으로 169라고 해요.”

학철이 설명했다. 마셰라의 키가 175 정도 될 거라는 건 팬들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이야기였다. 따라서 체중이 50이라고 기재된 것도 많이 줄인 걸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왜 그러지? 키 큰 여성 가수는 인기가 없느냐?”

리얀이 물었다.

“그렇게 물어보시니까… 왜 그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래요. 남자 연예인은 170 좀 넘으면 다 180이라고 올리고, 여자 연예인은 내리고.”

“이상한 기준이로구나.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인들은 원래 그런 고충이 있기 마련이지. 대중은 어리석고, 그 어리석음은 매일 변하니까. 키, 라는 요소도 그런 요소 중 하나일 테지.”

사실 남자 연예인에게 키 작다고 놀리거나 악플을 다는 일은 흔하다. 키가 큰 여성 연예인에게 키 크다고 놀리거나 악플 다는 일도 흔하다.

“일리스 공주….”

학철은 모니터에 비치고 있는 마셰라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국적인 외모를 보면 분명 혼혈이거나 외국인일 테지만 소속사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신비주의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세계에서 온 공주라고 한다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일리스 공주는 춤과 노래를 사랑했다. 그 때문에 국왕 폐하와 종종 견해 차이를 보이기도 했지만. 국가 행사에서 일리스 공주가 무대 위에 올라 춤을 춘 적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느냐?”

“아뇨. 저는 리얀 님이 살던 곳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요.”

만약 리얀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준다고 해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흑마법사의 정신지배는 분명 하루 이상 갈 수 없지만, 본인이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 욕망을 증폭 시켜 지배 기간을 계속 늘릴 수도 있다. 어떤 마법사가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노인을 한 달 정도 음악 감상만 하도록 지배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이론적이지만, 흑마법사의 천재적인 마법 능력이라면 공주를 몇 년씩 계속 지배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공주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말이다.”

리얀은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마셰라. 제가 팬이거든요. 어쩐지 소속사에서 아무 정보도 제공하지 않더라니. 그 세계에서 온 공주라고 하니까 정말 그렇게 보이네요.”

학철 또한 한동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셰라는 데뷔한 지 좀 됐지만 연차에 비해서 그닥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은 아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띄워도 띄워도 뜨지 않는다는 의미로 마셰라를 두고 ‘잠수함’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철. 여기에 적혀 있는 소속사라는 말은 가수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라는 뜻인가?”

리얀이 물었다. 학철은 다시 소속사 이름을 살펴보았다.

소속사 : 햇살 엔터테인먼트

“그렇죠. 가수가 속해 있는 회사가 소속사죠. 그런데 햇살 엔터테인먼트… 이름이 햇살이네요?”

“그렇다. 햇살 용역. 놈들 회사 이름도 햇살이었다. 뭔가 관계가 있는 게 아니겠느냐?”

“그럴지도 모르죠. 한 번 찾아볼까요?”

“그렇게 하거라.”

학철은 일단 햇살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로 가 보았다.

햇살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는 모두 영어로 되어 있었다. 꽤 화려한 디자인에, 뭔가 내용이 있을 것만 같았지만 알맹이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홈페이지였다.

“정보가 없네요. 보통 연예 기획사 홈페이지에는 소속 연예인 정보라도 있기 마련인데 그것도 없어요.”

“정보가 없다는 것은 결국 뭔가 감추려는 게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그런 걸 수도 있죠. 흐음. 한 번 등기 검색해 볼까요?”

학철이 물었다. 어쩐지 조금 더 조사해 보면 뭔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뭔가 나오게 된다면, 어쩌면, 정말 운이 좋다면, 마셰라를 직접 만날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등기 검색?”

“예. 그러니까 햇살 엔터테인먼트하고 햇살 인력하고 만약 같은 법인이 만든 거라면…. 그 법인이 흑마법사하고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안 그래요?”

“해 보거라.”

리얀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어떤 것도 되묻지 않았다.

‘등기나 법인 같은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를 텐데. 자존심 때문에 그러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네가 흑마법사를 추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거면 된다. 나한테는 결과만 알려 주거라.”

‘헉! 내 생각을 읽나?’

“정신감응 마법을 쓰면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너는 얼굴에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구나.”

리얀은 이렇게 말하더니 다시 매트리스에 편하게 앉았다.

‘그래서 생각을 읽었다는 건지, 아니란 건지.’

학철은 이런 생각을 하며 먼저 햇살 엔터테인먼트의 등기를 검색하는 방법을 찾았다. 방법을 찾는 방법은 공개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포털사이트에 ‘등기 검색 방법’이라고 입력하는 것이다.

입력 결과, 대법원 홈페이지에 등기를 검색하는 인터넷 등기소가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 등기소에서는 부동산 등기, 법인 등기 등을 검색할 수 있다.

‘생각보다 쉬운데?’

물론 쉽지 않았다.

인터넷 등기소에 들어가자 보안 모듈을 깔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보안 모듈을 깔자 브라우저를 종료했다가 다시 실행시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다음은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통합 보안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학철은 리얀을 흘낏 살펴보았다. 정좌를 하고 앉은 리얀은 눈을 감고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통합프로그램을 깔고 햇살 엔터테인먼트를 검색했다.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내용을 읽으려면 700원, 출력하려면 1,000원을 수수료로 지급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돈을 내야 한다면… 결제!’

학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한민국에서 돈을 지급해야 하는 사이트를 이용한다는 것은 복잡한 미로에 발을 딛는 것과 다름없다. 인터넷 결제 사이트의 결제 프로토콜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보안 프로그램을 깔고, 또 깔아야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단계가 다가오자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였다.

“으아!”

학철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학철. 세상에는 네 가지 힘이 있다. 알고 있느냐?”

“몰라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보안프로그램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학철은 의자를 매트리스 쪽으로 돌렸다.

“강력, 약력, 전자기력, 만유인력. 너희도 우주에 관해서 공부할 테니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아, 예. 알아요.”

물리 시간에 배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온 리얀이 설명을 하니 신기한 느낌이었다.

“강력과 약력은 작은 세계의 이야기이니 넘어가자. 에테르를 이용한 마법은 궁극적으로 만유인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감응 마법은 전자기력을 이용하는 것이고. 따지고 보면 인간의 마음은 전자기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아, 그렇군요.”

도대체 무슨 의도로 하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학철은 그냥 맞장구를 쳤다. 지금 당장은 보안프로그램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컴퓨터 역시 전자기력으로 이루어져 있더구나. 다시 말해서 컴퓨터는 인간의 마음을 모방한, 전자기력의 집합체라는 말이다.”

학철은 이 말을 듣고서야 리얀이 무슨 의도로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철. 너는 일본 여성을 좋아하는구나. 컴퓨터에 일본 여성이 가득 차 있다.”

리얀이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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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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