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홍대 가다-18화 (18/100)
  • - 18 -

    사장이 도착하기 전, 세이라는 리얀에게 계획에 대해 물었다.

    “군단장님. 그런데 원래 계획은 이동 중에 눈에 뜨이는 흑마법사의 수하들은 모조리 제거하는 거 아니었어요?”

    세이라는 리얀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 자이스 장군이 발견된 이상, 다른 배신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혹은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흑마법사의 부하들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거하고 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유리하다.”

    “잠깐만요. 도대체 언제 그런 계획을 짠 거예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학철이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징표를 통한 대화는 세이라가 우선이고 학철은 나중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작전과 관련된 대화는 군단장님하고 저만 나눴어요.”

    세이라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 말했다.

    “그래요. 그러시겠지요. 자, 그런데요, 만약 길거리에서 사람 막 죽이고 그랬다가는 당장 경찰이 홍대로 쏟아져 나올 거예요. 처음 한두 명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금방 기동타격대 오고, 경찰특공대 오고, 안 되면 수방사에서 부대 파견할 거라고요. 그 사람들, 다 죽일 거예요? 두 사람이?”

    “일단 멈추기로 했으니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학철.”

    리얀은 이렇게 정리했다. 학철도 지금은 이렇게 상황을 지적하는 수준에서 넘어가는 게 맞다고 느꼈다. 아직 리얀은 이 나라 공권력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학철은 문득 자신의 역할을 생각했다. 100억 원이라는 돈, 그리고 조금 전 머리가 터져서 죽어버린 자이스 장군과 그 부하들도 떠올렸다.

    ‘돈이 있어도 그 돈을 써야지, 죽으면 소용없잖아? 경찰에 잡히면… 뺏길 거야. 틀림없이 뺏길 거야.’

    학철은 법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법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장군들을 제거하면 어떻게 경찰이 출동한다는 거예요? 구석에서 몰래, 소리 없이 처치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어요.”

    세이라가 반박했다.

    “그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사람 죽이면 이 나라에서는 바로 잡혀요. 도망쳐도 결국 잡혀요.”

    “씨씨티비 때문이라는 거죠?”

    “예. 꼭 CCTV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요.”

    바로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출동하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죠?”

    세이라가 물었다.

    “말했잖아요. 공권력. 불 끄는 소방관하고 범죄를 담당하는 경찰이 동시에 출동한 거죠.”

    학철은 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도플러 효과를 일으키면서 사라지는 사이렌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학철. 저것이 씨씨티비인가?”

    리얀이 골목 앞에 있는 가로등 옆에 부착된 CCTV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요.”

    “그렇군. 유리로 렌즈를 만들어 빛을 모으고, 그것을 전자기력을 이용해 기록하고 전송하는 장치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 나도 비슷한 것을 고안한 적이 있다. 크게 소용이 없어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리얀이 CCTV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만약 내가 사는 곳에도 내가 담아낸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내가 만든 장치는 영상을 저장할 수는 있지만 공유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너희는 그 작은 기계, 스마트폰을 통해서 모두가 공유를 할 수 있구나.”

    “음. 그렇죠.”

    학철은 잠시 영화와 TV, 그리고 컴퓨터와 모바일로 이어지는 기술의 흐름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건 지루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렇다면 너희 국민들은 교육수준이 대단히 높겠구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모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요. 세계에서 가장 높아요, 우리나라 교육수준.”

    “그렇다면 이 정부는 국민을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들은 알아야 할 것이 정해져 있다. 그 이상을 알면 권력을 넘보기 마련이다.”

    리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말했다. 하지만 학철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음… 우리나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요.”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국가는 종교 국가인 것이냐?”

    “…종교 국가도 권력이 국민에서 나와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그런 경우가 있다. 신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을 믿는 국가의 경우, 모든 인간이 동등하기 때문에 투표를 통해서 대표자를 뽑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물론 그 경우는 인구가 적거나, 혹은 외적의 침입이 없어서 평화롭거나 해야 그렇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그렇지는 않아요. 우린 그냥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고, 그래서 투표로 대표를 뽑아요. 귀족, 왕족, 평민, 그런 거 없어요.”

    “어휴, 그러면 어떻게 해요? 못 배우고 교양 없는 사람들이 막 권력 잡아서 누리려고 들 텐데요. 그렇게 하면 사기꾼들이 정치를 하게 되지 않아요? 말만 번드르르하고 얼굴만 훤칠하게 생긴 사람들요.”

    “그건….”

    학철은 실제로 그런 국회의원들 얼굴이 떠올라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그래요. 그래도 우리가 뽑은 사기꾼들이죠. 국민 손으로 뽑은 사기꾼이 태어날 때 귀족으로 태어난 사기꾼보다 낫지 않겠어요?”

    “재미있는 생각이로구나. 그런 식으로 모두가 책임을 나눈다면 결국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이 맞느냐?”

    “사기꾼한테 당하는 거로 책임은 충분히 지는 것 같은데요.”

    “그래. 알겠다. 너희의 정치 제도를 굳이 탓하고 싶지는 않다.”

    리얀은 마치 열등한 제도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태도로 말했다. 학철은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저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았다.

    ‘어차피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이니까.’

    학철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골목 저편에서 헤드라이트가 번쩍였다. 사장이 모는 승합차였다.

    학철은 손을 흔들었다.

    학철을 확인한 사장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승합차를 몰아 골목으로 들어섰다. 홍대에서 운전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다운 골목길 운전기술이었다.

    “학철아. 얼른 타라.”

    승합차 문이 열렸고 학철은 리얀과 세이라에게 먼저 타도록 배려한 뒤 마지막으로 승합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차 안에는 덩치가 거대한 백발의 백인이 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홍 대표입니다. 이쪽이 리얀 님, 그리고 이쪽이 세이라 님이시지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철 씨. 반갑습니다.”

    거의 리얀과 세이라 수준으로 유창한 한국어였다. 홍 대표는 세 사람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자리는 금방 정리되었다. 홍 대표가 조수석을 등지고 앉고, 맞은편 좌석에 세이라, 리얀, 학철 순으로 앉았다. 물론 학철이 가장 문에서 가까운 쪽이었다.

    “그런데 오브라이언은요?”

    학철이 사장에게 물었다.

    “야, 게스트하우스 비잖아. 오브라이언한테 맡겼다. 전에도 본 적 있으니까 이번에도 잘 보겠지. 아무튼 오브라이언이 여기 홍 대표님한테 연락했어. 엄청 바쁜 분인데 어렵게 시간을 내주셨다. 리얀 님, 세이라 님. 대충 상황을 홍 대표한테 말하긴 했어요.”

    사장이 차를 몰면서 말했다.

    “먼저 한 가지 확인을 좀 해 보겠습니다. 리얀 님. 리얀 님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고향을 맞추고, 또 그 고향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나는 고향을 맞출 수 없소.”

    리얀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럼….”

    “나는 정신감응 마법을 통해 상대방의 언어체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을 뿐이오. 그리고 그 언어체계는 모국어, 즉 가장 처음 배운 언어가 되오.”

    “알겠습니다. 그럼 제 모국어를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쾌하지 않소. 알겠소.”

    리얀은 이렇게 말하고는 홍 대표 쪽으로 몸을 기울인 다음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홍 대표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리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Also, woher kommst du?”

    리얀이 말했다. 학철은 이 말이 독일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독일… 입니다.”

    홍 대표는 놀란 기색을 감추려고 애를 썼지만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뭐라고 한 거예요?”

    학철이 물었다.

    “고향을 물었다.”

    리얀이 짧게 대답했다.

    “리얀 님. 놀랍군요. 제 고향을 물으면 대부분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미국에서 자라기도 했으니 미국이 맞기도 하지요. 그런데 제 모국을 맞추시고, 또 그 언어를 사용하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저기요, 홍 대표님. 저는 홍 대표님이 한국말 유창하게 하시는 게 더 놀라워요. 홍대에서 게스트하우스 일 꽤 했지만 홍 대표님처럼 한국말 잘하는 백인은 처음 봐요.”

    “학철 씨. 이래 봬도 저는 성인이 된 이후에 마포에서 죽 살았습니다. 귀화도 했고요. 자랑은 아닙니다만 제가 마포 홍씨의 시조입니다. 방송인이자 국제변호사인 로버트 할리 씨도 귀화하면서 이름을 하일, 이라고 개명하면서 영도 하 씨의 시조가 되었지요.”

    홍 대표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시조 문제는 다들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일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홍 대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