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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학철은 다급하게 외치며 세이라에게 달려갔다.
“뭐야, 저 새끼?”
“미친놈인가? 아가씨. 저 새끼 알아?”
사내 둘이 학철을 노려보았다.
“세이라. 여기서 뭐 해요. 얼른 와요. 어서!”
리얀이 세이라의 팔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세이라는 리얀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 학철. 왜 방해하는 것이냐?
“아니, 도대체 왜 내 말을 안 들어요? 예? 제가요, 여기서 평생을 살았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리얀 님보다 훨씬 많이 안다고요!”
학철이 항변했다.
“그래? 그렇게 많이 아셔?”
“이봐.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 모양인데, 너 그러다가 다친다.”
사내들은 학철의 말을 어떻게 이해한 건지 갑자기 시비조가 되었다.
“세이라!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아저씨들, 그냥 가세요. 예? 이건 우리 일이에요.”
학철이 말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이 말은 두 사내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사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바뀌었다.
“어라? 어린 새끼가 말하는 싸가지 봐라?”
“아가씨. 잠깐 비켜 봐.”
두 사내가 학철에게 다가섰다. 당장에라도 주먹이 날아들 것만 같았다. 세이라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음 한 동작이면 두 사내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시체가 될 거라는 걸 학철은 알 수 있었다.
“세이라!”
학철은 잽싸게 무릎을 꿇고 세이라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내들도, 세이라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내가 잘못했어! 응? 용서해 줘! 제발 이러지 마! 제발!”
학철은 애원하듯 말했다.
이렇게 행동하는 건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사내들에게도, 리얀에게도 효과는 있었다.
- 세이라. 물러서라.
리얀이 명령했고, 세이라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알았어요. 학철. 일어나세요. 아저씨들. 죄송해요. 그냥 가던 길 가세요.”
“뭐 이런 병신 같은 년이 다 있어?”
“야! 너는 대한민국 사내새끼가 외노자 년한테 이게 뭐하는 거냐? 쪽팔리게.”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학철은 아주 잠깐 이 두 사람을 구하지 말 걸 그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야. 가자.”
“그래. 병신새끼.”
두 사내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어야 했다. 하지만 사내 중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는 학철의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학철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보호마법이 있잖아. 괜찮을 거야.’
퍽!
괜찮지 않았다.
발이 얼굴에 닿는 순간, 학철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별이 튀었고, 뼈가 부서지는 통증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으악! 뼈! 뼈 맞았어!”
학철은 얼굴을 감싸 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코뼈가 부러졌다는 공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학철. 피!”
세이라가 학철이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를 보고 외쳤다. 학철은 팔을 뻗어 다급하게 세이라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안 돼요, 안 돼요! 세이라! 제발!”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아팠지만 학철은 꾹 참았다. 참아야만 했다. 지금 여기서 저 사내들을 죽이면 모든 일이 다 엉망으로 꼬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학철이 받아야 할 100억 원어치 금화도 다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게 될 거였다.
“병신 새끼. 칫.”
세이라는 다행스럽게도 사내 둘이 욕설을 내뱉으며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하아… 하아….”
학철은 입으로 숨을 거칠게 내쉬며 통증이 가라앉길 빌었다. 눈물과 핏물이 뒤엉켜서 코와 입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눈물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저 사람들은 병신 새끼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걸 알까?’
어쩐지 아무 의미도 없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입맛이 썼다.
“그 사람들 목숨이 그렇게 중요했어요?”
세이라가 학철의 상처를 살피며 물었다.
“아뇨. 금화가 중요했어요. 금화 1천 개요.”
학철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학철. 너는 이곳에서 CCTV에 찍히는 것이 나의 계획을 방해할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냐?”
리얀이 물었다.
“계획을 방해할 중요한 요소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한테 잡히면 그냥 끝난다고요. 모든 게. 내 말을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곳의 치안이 좋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 밤에도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권력이 정말로 나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요. 리얀 님. 이 나라에는 경찰이 12만 명 있어요. 12만 명이라고요. 군인은 60만 명이 있어요. 만약에 여기서 사람을 죽이면 12만 경찰과 60만 군대의 적이 되는 거예요.”
제법 그럴싸하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말이기는 했다.
경찰과 군인의 정원은 12만, 60만이 맞지만 필요한 인원은 언제나 부족했고, 경찰도 군인도 무능하거나 부패한 측면이 있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학철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랬다.
‘그래도 내 말이 100억 원을 받는 데 도움이 되긴 하겠지.’
몸종이라고 부르건, 또 다른 무엇이라고 부르건, 학철은 이곳에서 리얀과 세이라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00억 원을 받기로 한 이상 그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보호마법, 이거 발길질은 못 막는 거였어요?”
학철이 좀 억울하다는 듯 리얀에게 물었다.
“보호마법이 뭔지 이해를 못 한 모양이로구나, 학철.”
리얀은 이렇게 말하더니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학철의 손을 치웠다. 코뼈가 부러져서 휜 형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리얀은 부러진 학철의 코를 꽉 쥐었다.
뿌드득!
“으아아아아악!”
뼈가 맞춰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학철의 비명소리가 신촌 주택가에 울려 퍼졌다.
“조용히 해라.”
리얀은 학철의 코에 자신의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어라?”
학철은 순식간에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이거… 마취 같은 건가요?”
“아니다. 상처를 치유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을 것이고 뼈도 완전히 다 붙었으니 움직이는 데 지장도 없을 것이다.”
학철은 믿기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코를 만져보았다. 평소에 만지던 코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완전히 치유된 것이다.
“아니, 뼈 부러진 걸 이렇게 간단하게 치료하는 마법사님인데, 보호마법은 왜 이래요?”
“보호마법이라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 병사들에게 걸어주는 마법이다. 너희 군대도 그런 것이 있지 않느냐?”
“…없는데요?”
대한민국 군대에 마법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나.
“잘 생각해 보거라. 작전에 나서기 전, 종교의 사제나 승려들이 병사들에게 보호마법을 걸어주는 건 흔한 일이다.”
“…군종장교?”
“그래. 그런 것 말이다.”
“그럼 이 보호마법으로는 총알, 못 막아요?”
“병사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학철은 그제야 리얀이 건 보호마법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기도’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어? 그러면….”
학철은 조금 전 자이스 장군과 세이라가 맞섰을 때 용감하게 나섰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세이라가 고마워하기는커녕 계속해서 한숨만 쉬었던 일도 떠올랐다.
“이게 뭐야아아아아아!”
학철의 비명소리에 이어서 이제는 학철의 절규가 신촌의 밤하늘을 떠돌았다.
“자, 진정해요. 이제 다시 출발하죠, 학철.”
“아뇨.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학철은 지도 앱을 확인한 뒤 선언했다.
“그러면? 여기서 야영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신촌 주택가 한복판에서요? 그럴 수는 없죠. 하지만 걸어서 가진 않을 거예요. 가다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학철은 스마트폰을 열고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 왔는지 부재중 통화가 10통이 넘었다.
“차 타고 갈 거예요.”
게스트하우스까지는 불과 버스 두 정거장 거리였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면 정체불명의 사내들과 마주치는 일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야! 학철아!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데 전화를 안 받냐?”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사장이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나름대로 바빴어요. 피도 봤고요.”
학철이 힘 빠진 소리로 대꾸했다.
“여기 지금 홍 대표 도착했어. 그런데 홍 대표, 리얀 님한테 물어볼 게 아주 많은 모양이야. 사실 나도 확인해야 할 게 좀 있고.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나가버리면 어쩌라고….”
“아무튼 사장님. 여기 신촌이에요. 여기로 좀 와 주세요.”
“무슨 소리야?”
“길 가다가 자꾸 사고가 생긴다고요. 일단 트러블 나는 건 좀 피해야겠어요. 승합차 타고 여기로 와 주세요.”
“…그래. 알았다. 좌표 찍어라.”
학철은 지도 앱에서 받은 정확한 주소를 사장에게 전송했다.
“이제 가만히 서서 사장님 오시는 거 기다려요. 사고 치지 말고.”
학철이 말했다.
하지만 세이라는 학철의 말을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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