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홍대 가다-16화 (16/100)

- 16 -

학철은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내려온 언덕 위에서 불기둥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잠시동안 이곳이 신촌 주택가인지, 아니면 전쟁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일행은 순식간에 차도에 닿았다.

세이라는 학철을 내려놓았고 리얀도 바로 옆에 멈췄다.

“여기서 멈추면 안 돼요! 일단 이 지역을 빠져나가야 해요!”

학철이 다급하게 리얀에게 소리쳤다.

“학철. 무슨 말이냐?”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일단 빠져나가야 해요! 이곳 현지 사정을 아직 잘 모르시니까 현지인을 몸종으로 고용한 거라고 하셨잖아요? 지금 저는 제 일을 하는 거예요! 당장 여길 떠나야 한다고요!”

학철의 말을 듣자 리얀은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그래. 어디로 가면 좋겠느냐?”

“그건….”

학철은 핸드폰을 꺼낸 뒤, 지도 앱을 켰다.

“일단 큰길 벗어나고, 큰 건물 없는 곳으로… 여기서 길 건너서….”

학철은 길 건너편 멀리 주택가 한복판에 솟아오른 붉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자.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절대로 의심 살 일 없게. 자연스럽게 걸어야 해요. 외국인 둘 하고 함께 걷는 가이드, 그런 느낌으로.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눈에 뜨이면 안 된다는 말은 이해했다.”

“그러니까 날아가면 안 된다고요. 신호를 어겨도 안 되고요.”

“알겠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세 사람은 천천히 길을 건넜다.

“지금부터 절 따라오세요. 너무 두리번거리지 마시고, 행인과 눈 마주치지 마세요.”

학철은 길을 건넌 뒤 손에 든 지도 앱을 따라서 세이라와 리얀을 주택가 골목으로 안내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서 조금 전 학철이 목표로 삼았던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학철은 교회 부근에서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골목이었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 좀 해요. 먼저, 리얀 님! 아니, 왜 사람 말을 안 들어요?”

학철이 항변하듯 물었다. 리얀은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학철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 학철?”

“폭파시키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제가!”

“왜 안 된다는 것이냐?”

리얀이 되물었다.

“저기요, 우리나라는 치안이 아주 좋은 나라라고요! 이렇게 도시 한복판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당연히 경찰이 출동한다고요!”

“경찰이라고 하면… 치안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뜻하는 게 맞는가?”

리얀이 물었다.

“예. 당연하죠!”

“사고가 생기면 치안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출동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리얀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투였다.

“저기요, 리얀 님! 거기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여기 공권력은 엄청나게 강해요! 경찰들이 아까 거길 가면요, 경찰들이 단서를 찾아낼 거라고요! 권총, DNA 뭐 그런 거요!”

“…그래서?”

학철은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게 뭔지 이해시키려면 꽤나 힘이 들겠다 싶었다. 때마침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며 골목길 앞을 지나쳤다. 학철은 리얀 쪽으로 다가간 뒤, 목소리를 낮췄다.

“먼저 말씀드릴게요. 여기서 리얀 님하고 세이라는 둘 다 불법 입국자예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 나와 세이라는 국가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어서 이곳으로 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곳은 그런 사람을 처벌하느냐?”

“물론이죠. 경찰한테 잡혀가요. 그리고 추방당한다고요.”

“학철. 추방시킨다고 하면 어디로 보내요?”

세이라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전혀 진지하게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당연히 본국으로 보내죠.”

대답을 하고 보니 좀 이상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사람도 돌려보낼 수 있을까? 무슨 수로?

“아무튼 경찰과 마주치면 좋지 않다는 너의 의견은 잘 알겠다.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흑마법사를 살해하는 것이다. 애초에 경찰과 같은 공권력과는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연히 경찰하고는 피해 다녀야지 이렇게 대놓고 경찰을 도발하면 어쩌자는 거예요? 예?”

“그래서 이렇게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니냐?”

“음. 다시 말씀드릴게요. 우리 경찰은요, 아까 거기 리얀 님이 날려버린 곳에서 증거를 찾을 거예요. 불타지 않은 권총, 그리고 죽은 사람의 DNA 같은 거요. 아무튼 그곳에서 민간인은 보유할 수 없는 무기가 사용되었고, 살인이 있었다는 걸 밝힐 거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도망을 치지 않았느냐? 그리고 앞으로도 도망칠 것이고.”

“이 나라에는요, CCTV라는 게 있어요.”

“씨씨티비? 우리나라엔 없는 물건인가 본데요? 뭔지 모르겠어요.”

세이라가 학철의 발음을 따라했다. 놀리는 게 분명했다.

학철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리얀과 세이라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포탈사이트에 들어가서 제일 위에 있는 사건 뉴스 동영상을 클릭했다.

- 오늘 경산의 아파트 단지에서 불이 나 긴박한 인명 구조 작업이 벌어지는 등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14층에서 시작된 불이 꼭대기 층까지 번졌지만 소방당국의 빠른 대응으로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조상철 기자입니다.

앵커의 멘트가 끝나자 화면은 곧 불타는 아파트로 바뀌었다.

“보이시죠? 오늘 지방에서 난 화재에요. 불났다고요.”

리얀과 세이라는 가만히 화면 안을 지켜보았다.

“그럼 이 기계를 이용해서 전국의 모든 사람이 지금 저곳에서 불이 난 것을 보게 된다는 말이냐?”

“예. 영상이 기계를 통해서 전송된다는 건 이해하셨지요?”

“그렇다.”

“그런데요, 이 나라 정부는요, 이런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장비를 도시 전역에 설치했어요. 주요 기관, 건물 주변에는 다 있다고 보면 돼요. 여기는 오면서 보니까 CCTV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아. 씨씨티비라는 게, 이런 영상을 담을 수 있는 장비라는 거군요?”

세이라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자, 그럼 설명할게요. 만약에요, 아까 리얀이 폭파시킨 집 근처에 CCTV가 있었다고 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리얀이 그곳에 있는 영상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공권력이 내 얼굴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차이는 클 것이다. 그걸 염려해서 눈에 뜨이지 않게 조심해서 이동하자고 한 것이구나. 네 말을 이제 이해하겠다.”

“그런데 아까 그 대머리 자이스 장군, 그 사람 말을 들으니 이미 오래전에 그곳 집을 여섯 채 샀다고 했잖아요. 거기에 함정을 팔 생각이었으니 근처에 CCTV는 없었을 거예요. 없는 곳으로 골랐거나, 아니면 CCTV가 있더라도 고장을 냈거나, 뭐 그랬겠죠.”

학철은 나름대로 추리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만약 CCTV가 있었다면? 리얀이 경찰의 추적을 당하게 되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학철도 안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걱정해 봐야 소용없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학철은 이렇게 생각한 뒤, 다음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 거예요. CCTV에 찍혀도 아무 문제 없을 행동만 하면서, 안전하게, 천천히. 아시겠지요?”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세 사람은 골목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오래된 주택가였다. 골목이 미로처럼 복잡했다. 하지만 학철에게는 지도 앱이 있었고, 지도 앱은 게스트하우스까지의 최단거리를 알려주었다.

학철은 앱에 표시된 경로를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누가 본다고 해도 그저 길을 가는 관광객으로 보일 것이라 믿으면서.

맞은편에서 덩치 큰 사내 둘이 걸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불량해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세이라. 잠시 시간을 끌어라.”

리얀이 말했다.

“지금 뭐 하시려는 거예요?”

“흑마법사의 부하인지 확인하려는 것뿐이다.”

“…부하라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리얀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단검을 이용해 손에서 피를 냈다. 학철은 아무리 마법사라지만 저렇게 자주 손바닥을 베면 무슨 부작용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저, 아저씨. 제가 길을 잃어서 그런데요.”

세이라가 사내들에게 말을 걸었다. 사내들은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세이라의 말을 들었다.

“어이구, 베트남 아가씨인가봐? 한국말 잘하는 거 보니까 이주 노동자인가?”

“아냐. 인도야. 아니면 인도네시아. 맞죠?”

“둘 다 아닌데요. 한 번 맞춰보실래요?”

대화가 오가는 사이, 리얀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핏방울이 엷은 붉은색 안개가 되어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 세이라. 놈들에게 권총은 없다. 하지만 둘 다 다리에 칼을 숨기고 있다.

리얀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입 밖으로 낸 소리는 아니었다. 학철이 징표를 이용해 리얀과 대화할 때는 입으로 발음을 해야 했지만, 리얀은 생각만으로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세이라는 사내들과의 대화 도중에 태연하게 리얀의 말에 답했다.

“어떻게 하긴, 우리가 길 안내해 줄게.”

사내들은 세이라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잘도 응대했다.

- 둘 다 죽여라.

리얀이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