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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14화 (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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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내가 순순히 죽어줄 것 같느냐는 둥, 사람 얕잡아 보지 말라는 둥.”

세이라의 목소리에서도 여유가 넘쳤다.

“너, 암살자로구나?”

자이스 장군이 물었다.

“예. 암살자 군단에 있었어요. 제 손에 죽어 나간 흑마법사의 장군 수가 꽤 되지요.”

“그래. 알겠다. 그런데 너, 암살자인데 아직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이런 상황에 처한 게 처음이겠구나. 그렇지? 한 번 생각해 봐라. 내가 여기로 온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느냐?”

“이유가 있기야 하겠지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아는 자이스 장군님은 머리가 좋은 분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전쟁터에서 용맹한 것으로 유명하기는 했지만요.”

“암. 그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기서는 말이다, 머리가 없으면 살 수가 없거든.”

자이스 장군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치면서 말했다.

“달라지긴 하셨네요.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 지금은 완전 살찐 돼지 꼴이 됐으니 말이죠. 아까 뒤따라가면서 봤어요. 걷는 거. 움직이는 거. 몸에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던데요, 자이스 장군님? 이제는 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죠? 뛰면 숨차고.”

“뭐, 그럴지도 모르지. 3년 동안 술 먹고 노는데 열중했으니.”

“그런데 뭘 믿고 나한테 막말을 해요?”

세이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래. 내가 이야기를 해 주지.”

자이스 장군은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이 골목 말이다, 우리가 작년에 샀어. 함정 파려고. 내 얼굴 아는 놈들 유인해서, 여기서 죽이려고. 그리고 말이다, 벌써 몇 명 죽었어. 여기서. 네 동료들.”

자이스 장군이 손뼉을 한 번 크게 쳤다. 그러자 골목 안쪽에서 양복을 차려입은 떡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여섯 명이었다.

“여섯? 고작? 나를 상대로? 이걸 함정이라고 판 건가요?”

세이라는 비웃음을 흘렸다.

“너, 아직 총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구나?”

자이스 장군이 말하자 여섯 명의 사내들이 동시에 권총을 뽑아 들었다. 토카레프 권총이었다.

“권총이 뭔지 잘 알아요. 이미 권총 들고 있던 놈, 몇 놈 상대해 봤어요.”

“그래. 기껏해야 한두 놈 상대해 봤겠지. 하지만 여섯 명이 동시에 총을 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이 작전으로 네 동료들 몇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다. 유명한 기사도, 이름 높은 장군도 여기서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다.”

“여섯 명이 동시에 권총을 쏜다면… 아무래도 쉽지는 않겠지요.”

세이라가 말했다.

‘뭐야? 못 피하는 거였어?’

학철은 세이라의 말을 듣고 이대로 도망쳐야 하나 고민했다.

“그렇겠지. 게다가 열둘이라면 어떻겠나?”

여섯 명의 사내가 양옆 담장 뒤에서 각각 셋씩 더 나왔다. 역시나 토카레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잘 가라. 암살자. 저세상에 네 동료들이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자이스 장군이 말했다.

‘아, 뭐야? 이대로 있으면 세이라가 총 맞아 죽는 꼴을 보게 생겼잖아?’

도망치느냐. 막아보느냐. 학철은 고민했다.

결론은 곧 나왔다.

“잠깐!”

학철은 그대로 골목으로 달려 들어갔다.

‘보호마법이 있잖아. 총알쯤은 막아주겠지.’

학철은 이렇게 생각했다.

“뭐냐, 넌?”

자이스 장군이 물었다.

“난….”

멋지게 등장하기는 했지만 딱히 자신을 밝힐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금 이 분위기에 ‘나는 리얀 군단장의 몸종이다!’ 해 봐야 어울릴 것 같지도 않았다.

“학철. 숨어 있으라니까요?”

세이라가 어이가 없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나선 일인데 세이라의 반응에 학철은 좀 실망했다.

“저기요, 그래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학철은 세이라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저, 보호마법 있잖아요.”

학철의 말에 세이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누구든 상관없다. 보아하니 민간인 같은데 안됐구나. 오늘 민간인은 죽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제 뒤로 숨어요, 세이라.”

학철이 자이스 장군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면서 말했다.

“아니, 저기요, 아저씨. 무슨 전쟁 난 것도 아니고 여자 하나 죽이는데 총질을 해요? 창피하지도 않아요? 예?”

학철은 건들거리면서 말했다. 이것은 계산된 행동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다 보면 투숙객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때가 종종 있다. 학철은 그럴 때 싸움을 말려본 경험이 있었다.

‘감정을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돌려야 한다. 그래야 싸우던 사람들이 이성을 찾는다.’

학철은 경험을 통해서 배운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너… 뭐냐?”

자이스 장군은 ‘이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학철을 유심히 살폈다.

“휴학생요. 게스트하우스 알바하고요.”

학철은 이렇게 말하면서 불량하게 보이기 위해서 침을 바닥에 뱉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봤는데요, 아저씨. 남자가 싸울 일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다이다이를 떠야지, 이게 뭐예요? 권총으로 다구빨 세우는 것도 모자라서 다구리를 놔요? 여자 하나 상대로? 안 쪽팔려요?”

이 말은 학철이 고등학교 때 들은 적이 있는 말이었다.

새로 온 전학생이 한 말이었다. 전학생을 집단구타하기 위해 일진들이 전학생을 방과 후 소각장으로 불렀다. 전학생은 일진들 앞에서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일 대 일로 붙어! 남자 새끼가 다구리를 놓냐? 안 쪽팔리냐?’

비록 그 전학생은 그날 일진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 뒤로도 학교를 다니는 데 당당할 수 있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일진 무리에 합류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상황과는 좀 다른 점이 있긴 하지만 학철은 적어도 그때 들었던 말을 써먹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너, 그냥 알바 아니지?”

자이스 장군은 학철의 말에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냥 알바 맞는데요?”

“아냐. 너, 분명히 뭐가 있어. 난 알 수가 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

자이스 장군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학철 쪽으로 다가왔다.

“사람 보는 눈요?”

“그래. 사람 보는 눈. 너, 아주 용감하구나. 야! 너, 내 밑에서 한 번 일 해 볼 생각 있어?”

자이스 장군이 이렇게 말했을 때 세이라가 학철을 밀고 앞으로 나섰다.

“자이스 장군님! 그럼 저하고 일 대 일로 해 볼 생각 있어요?”

세이라가 불쑥 물었다. 그러자 자이스 장군은 다가오다가 그 자리에 멈췄다.

“왜요? 자신 없어요? 하긴. 그 몸으로는 그냥 숨 쉬고 걸어 다니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나하고 대결을 펼친다니. 그런 걸 기대하기는 무리겠네요.”

세이라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저기요, 세이라. 제 뒤에 있으라니까요?”

“학철. 숨어 있으라고 했잖아요.”

“거, 두 사람 말 많네.”

학철과 세이라가 옥신각신하자 자이스 장군은 갑자기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좀 더 들어주고는 싶은데,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아. 몇 놈이나 여기로 왔는지도 아직 모르고, 또 ‘피바람을 부르는 마녀’가 이 근처에 왔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말이야.”

“내 뒤로 숨어요! 어서!”

학철은 자이스 장군이 사격 명령을 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세이라에게 말했다.

“에효. 참.”

세이라는 탄식하는 것처럼 내뱉었다.

콰콰쾅!

다음 순간 거대한 폭음이 정면에서 들려왔다. 학철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보호마법이 있으니까.’

학철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손으로 짚어 보았다. 역시나 상처는 없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자이스 장군은 놀라고 있었다.

“놀랄 거 없어요. 제가 말이죠, 보호마법을 둘렀거든요.”

학철은 이렇게 뽐내듯이 말하고는 자이스 장군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자이스 장군이 놀란 것은 학철과 세이라가 상처하나 입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자이스 장군 뒤에 있던 여섯 명의 머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여섯 명은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다가 주저앉듯이 쓰러졌다. 담벼락 뒤에 있던 여섯도 마찬가지로 목 없는 시체가 되어서 쓰러졌다.

“놀랐어요?”

세이라가 늘 그랬듯 생기발랄하게 웃으면서 자이스 장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학철은 멍하니 서 있었다. 폭음과 함께 자이스 장군의 부하들의 머리가 모조리 날아가 버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놀라다니, 너무나도 안타깝소, 자이스 장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자이스 장군의 등 뒤쪽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리얀이었다.

“피, 피바람을 부르는 마녀!”

자이스 장군은 리얀을 보고는 너무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나는 마법사 군단을 이끄는 군단장 리얀이오, 자이스 장군. 내 앞에서 나를 피바람을 부르는 마녀라고 부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텐데.”

리얀이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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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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