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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용역 - 주임 김만철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만. 햇살용역이면 보안업체잖아?”
사장은 햇살용역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주인장. 그 말은 이 자가 돈으로 고용해서 사용하는 몸종이라는 뜻이오?”
리얀이 물었다. 조금 전에 몸종 이야기를 하면서 나누었던 대화에서 유추한 내용일 거였다.
“뭐, 비슷하긴 하지. 흑마법사라고 했지? 그 사람도 손님처럼 이곳 언어, 사용할 수 있소?”
사장이 물었다.
“물론이오. 사실 그자가 나보다 정신감응 마법은 한 수 위이긴 하오.”
“그렇다면 그 흑마법사, 이곳에 온 지 꽤 됐나 보네? 여기 업체를 고용해서 권총으로 무장까지 시키고, 사람 써서 돌리고 있잖아. 이건 뭐 하루 이틀 가지고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닌데?”
“…그렇소. 내가 놈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소.”
리얀은 분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흑마법사가 다급하게 이곳으로 도망쳤다고 판단했소. 하지만 지금 정황을 보면 놈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을 오가며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고 보아야 할 것 같소.”
“그래, 내가 이번 일, 간단하지 않을 줄 알았어.”
사장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어째 덩어리가 좀 지나치게 크다 싶었지. 금화 백 개? 백억? 그걸 혼자 먹을 생각을 했으니… 됐다. 이번 일, 혼자 먹을 생각을 했던 게 실수야, 실수. 거, 손님. 댁이 죽이려고 하는 흑마법사라는 놈, 아무래도 간단하게 죽어줄 것 같진 않네.”
사장의 말에 리얀은 깊게 고개를 끄덕했다.
“오브라이언!”
사장이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러자 멍하니 서 있기만 하던 오브라이언이 화들짝 놀랐다.
“너희 홍 대표 불러라.”
“예?”
오브라이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굴었다.
“아, 진짜. 같은 말 반복해서 하게 하네. 너희 홍 대표 부르라고! 내가 홍대 바닥에서 몇 년인데 딱 보면 모를까. 오브라이언, 너 장사하는 거 혼자 하는 게 아닌 거 다 알아! 뒤 봐주는 사람 있잖아! 너희 홍 대표! 내가 모를까 봐! 당장 전화해! 이리 오라고!”
사장은 꼭 한 대 칠 기세로 소리를 쳤고, 오브라이언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홍 대표.
학철도 몇 번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홍대에서 외국인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어김없이 홍 대표가 나서서 중재한다고들 한다. 듣기로 밀입국이나 가짜 여권, 심지어 마약 매매에도 관련된 사람이라고도 한다.
“손님. 이제 시체 치웁시다.”
리얀은 단검을 꺼내 자신의 손바닥을 다시 베려고 했다. 하지만 사장은 손으로 그것을 제지했다.
“잠깐. 아까 그랬잖아. 나, 여기 얼룩 남겨두는 거, 마음에 걸린다고.”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주인장?”
“물론 말끔하게 치워야지. 그게 내가 원하는 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오.”
“여기 로비 바닥에 얼룩 남기는 거, 나 그게 맘에 걸려. 그러지 말고 깔끔하게, 밖으로 치웁시다.”
사장은 아이디어를 냈다. 쓰레받기나 양동이에 시체를 줄여서 담은 다음, 그것을 밖으로 내놓으면 될 것 아니냐는 거였다.
“주인장. 물체는 크기를 줄인다고 해도 그 무게가 사라지지 않소. 지금 말한 물건이 성인 남성 두 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소?”
“감당할 수 있는 물건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여기 이 화분 어때?”
“농담하지 마시오. 당장 깨질 것이오.”
꽤 두꺼운 화분이었지만 성인 남자 둘이 올라선다면 당연히 깨질 것이다.
사장은 그 뒤로 삽, 벽돌, 쟁반을 제시했지만 리얀은 모두 거절했다.
“부드러운 게 강한 걸 이긴다고 하잖아요.”
사장과 리얀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학철이 끼어들었다.
“뭔 개소리야?”
“무거워서 깨진다면서요. 그럼 안 깨지는 거로 하면 되잖아요.”
학철은 방석을 가리켰다.
“그래! 방석으로 하면 되겠다!”
물론 되지 않았다. 무조건 된다고 주장하는 사장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서 리얀은 직접 시범까지 보였다.
방석은 깨지지 않았다. 다만 얼룩이 진 부분이 푹 꺼질 뿐이었다. 그 상태로 방석을 옮기려고 하자 당연히 방석은 찢어졌다.
“좋아, 좋아. 그럼 여기 카운터 뒤쪽, 여기에 두는 거로 합시다. 거 참. 바닥재를 어디서 들고 오면 딱 좋겠구만… 야! 오브라이언 뭐 해!”
사장과 학철, 그리고 오브라이언은 시체를 옮기는 일을 했다.
다시 크게 만든 시체는 거의 무슨 마인크래프트나 레고블록으로 만든 사람처럼 보였다. 더러운 냄새와 피가 아니었다면 진짜 무슨 장난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세 남자는 카운터 뒤로 시체를 옮겼고, 리얀은 마법으로 시체를 축소시킨 다음, 냄새가 나지 않도록 세균의 활동을 억제하는 마법을 덧씌웠다.
시체를 로비에서 카운터 뒤편으로 옮기는 건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생각보다는 힘이 많이 들었다. 작업이 끝나자 세 사람은 로비 소파에 각자 퍼질러 앉았다.
“돈 벌기 힘든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거 진짜 빡세네. 그런데… 잠깐만.”
사장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한쪽 눈썹을 높게 치켜올렸다.
“거, 손님. 마법사 양반. 마법으로 크기를 바꾼다고 해도 무게는 그대로라고 하지 않았소?”
“그렇소. 이미 체험하지 않았소?”
“아니, 그냥 이상해서 그래요. 금화 하나가 200g이니까 금화 1,000개면 200kg이잖아. 금화 2,000개면 400kg이고. 그럼 도대체 어떻게 400kg을 가지고 다니는 거요?”
학철도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비록 리얀이 보통 사람보다 체구가 건장한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400kg을 항상 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금은 변하지 않소, 주인장. 그리고 마법을 통해서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금속이기도 하오.”
리얀이 말했다.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금속?”
“그렇소. 기억해보시오. 12대륙 8대양을 다니는 마법사들은 늘 금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소. 사용하는 화폐가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이지. 하필 금으로 가지고 다니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오.”
“거 참. 마법의 세계는 신기하기도 하구먼. 그런데 그거, 거짓말 아니지?”
사장이 몸을 일으켜 세운 다음, 리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주인장.”
리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답했다. 사장은 뭐라고 더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야! 학철아!”
대산 사장은 학철을 큰 소리로 불렀다.
“예, 사장님.”
“나가서 먹을 것 좀 사와라. 배고파서 숨지시겠다.”
사장은 조금 전 죽은 사람 지갑에서 뽑아낸 현금 8만 원을 학철에게 주었다. 죽은 사람 돈을 받는다는 게 찜찜했다.
“어차피 이 돈 주인은 이 돈 못 쓰잖아. 지갑 안에서 썩는 것보다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해 쓰는 편이 이 돈을 위해서도, 돈 주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야.”
“사장님. 그냥 배달시키는 건 어때요?”
학철이 물었다. 지금 밖에는 리얀, 혹은 망토 두른 여자를 찾는 건달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굳이 나가서 움직이다가 그들과 마주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가서 음식을 사 오는 것, 좋은 생각이오, 주인장.”
리얀은 이렇게 말하고는 학철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학철은 리얀 앞에 섰다.
“가만히 있어라.”
리얀이 손바닥에서 피를 내어 학철의 목 뒤에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으악! 뭐 하시는 거예요?”
학철은 머리에 구멍이 뚫린 사내가 생각나서 화들짝 놀랐다.
“놀라지 마라. 이건 내 눈이다.”
“눈이라고요?”
“네가 어디로 가는지, 뭘 하는지, 나는 이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라는 것이다. 학철. 너는 군사 경험이 있으니 알 것이다.”
“정찰 임무! 그래! 먹을 거 사러 가면서 정찰도 하고! 아주 일석이조네. 잔소리 그만하고 다녀와!”
사장은 당장에라도 학철의 엉덩이를 걷어찰 기세로 외쳤다. 학철은 그 위협이 무서워서라도 게스트하우스를 나서야 했다.
밖은 여전히 축제였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을 하고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금 전 누군가 이 근처에서 불에 타 뛰어다녔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두 사람이나 마법으로 두개골에 구멍이 뚫려서 죽었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다.
학철은 뭘 사올까 하다가 근처에 있는 큰 햄버거 체인점으로 향했다.
‘외국인에게는 역시나 빅맥이나 와퍼지.’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메뉴니까 당연히 리얀에게도 통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결국 학철은 세트메뉴 5개를 샀다. 사람은 4명이지만 여유 있게 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면서 학철은 혹시나 건달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다. 덩치 큰 사람이나 인상 험악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았다.
- 왼쪽 골목을 보아라, 학철.
“으엑!”
갑자기 목 뒤에서 리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학철은 깜짝 놀라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뭐, 뭐에요, 이거….”
- 내 눈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눈을 달아두었는데 목소리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느냐?
학철은 얼른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서 통화하는 척을 했다.
“저기요, 여기서는 보통 눈이라고 하면 눈을 말해요. 말하는 건 입! 듣는 건 귀!”
학철은 켜지도 않은 스마트폰에다가 대고 말했다.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왼쪽 골목을 보아라.
학철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고는 리얀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대화가 통할 상대도 아니었다.
리얀이 말한 왼쪽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 안쪽으로 들어가라. 그래. 그쪽.
학철은 리얀의 지시를 따랐다.
골목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다가와 학철의 스마트폰을 순식간에 채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학철의 명치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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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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