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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5화 (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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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거대한 체구에 턱수염을 기르고, 긴 머리는 묶어서 등까지 온다.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패션 안경을 꼈다.

“내가 오늘 좀 늦겠다고 했는데, 그 잠깐 사이에 아주 개판을 쳤네? 이 냄새, 뭐야? 응?”

사장은 으르렁거리는 짐승처럼 학철을 노려봤다.

“잠깐만요, 사장님. 뭔가 하시기 전에,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너, 이야기 잘해야 할 거다. 내일 뉴스에서 네 사망기사 보지 않으려면.”

홍대 게스트하우스 사이에서는 사장을 두고 조폭 출신이라는 소문이 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사장은 조폭처럼 생기긴 했지만 사실은 그저 싸움 좀 하는 아저씨일 뿐이다.

“새로운 손님이 왔어요. 저기 서 계신 분요. 이름은 리얀이라고 해요.”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저 손님하고 지금 이 냄새가 어떻게 연결되지?”

사장은 화를 꾹 참으며 물었다.

“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학철은 말문이 막혔다.

“뭐해! 빨리 말 안 해!”

사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학철의 입이 자동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에, 또, 그러니까요, 여기 리얀 님은 흑마법사를 찾아서 다른 차원에서 온 마법사인데요, 리얀 님을 노리는 흑마법사의 부하가 여기서 권총으로 총질을 했어요. 그런데 리얀 님이 마법으로 그 흑마법사 부하를 죽였는데요, 지금 냄새는 그 죽은 흑마법사 부하 시체 냄새에요.”

학철은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대답했다.

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리 와. 정신 차리게 일단 몇 대 맞고 시작하자.”

‘으악! 살해당한다!’

학철은 사장의 성난 얼굴을 보고 식겁했다.

“저기요, 사장님. 좀 흥분하신 것 같은데요, 일단 새로 온 손님한테 직접 이야기 들어보시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아니, 내 말 안 들려? 일단 좀 맞자니까?”

사장은 학철 쪽으로 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학철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다리가 엉켜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주인장. 학철의 말이 옳소. 매질을 하기 전에 내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낫지 않겠소?”

학철은 머리 위에서 들리는 리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리얀은 서서 볼 때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였다.

“이야기. 이야기라. 좋지. 그럽시다.”

리얀은 학철을 걸어서 지나친 다음 사장 앞에 섰다. 학철은 사장과 리얀의 대화에 집중했다.

“주인장. 당신이 학철을 고용한 고용주 맞소?”

“내가 학철이 고용주이긴 한데…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 학철이가 사고 치는데 도움을 좀 주신 거 같네. 그런데 한국말 잘하시는데, 어떻게, 교포신가?”

사장은 존대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기묘한 말투를 썼다.

“믿기 어렵겠지만 주인장, 나는 이곳과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오.”

“믿기 어렵네.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 한국말이 너무 유창해. 이곳에서 몇십 년을 살아도 발음이 그 정도로 좋기는 어려운데 말이야.”

“마법이오.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정신을 감응하는 정신감응 마법이라고 할 수 있소. 나는 마법사라오. 마법사는 상대가 어느 나라 말을 사용하건, 상대의 정신과 감응하기만 하면 그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오.”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리얀이 말했다. 사장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마법으로 외국어를 할 수 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소.”

“오브라이언!”

리얀이 답하자마자 사장은 큰 소리로 오브라이언을 불렀다.

“사장님?”

오브라이언이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씻고 있었는지 목에는 수건을 두른 상태였다.

“너, 여기 손님하고 이야기 좀 해 봐라.”

“내 마법을 검증하고 싶은 것이오?”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고. 오브라이언! 이리 와!”

오브라이언은 쭈뼛거리며 리얀 쪽으로 걸어왔다.

“Спомняте ли си вашия дом?”

리얀이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로 오브라이언에게 말을 걸었다. 오브라이언의 눈이 커졌다.

“да, да. Ами ти?”

“да, винаги. винаги помни.”

오브라리언이 뭐라고 묻자, 리얀이 무심하게 답했다.

“무슨 말 한 거야, 오브라이언?”

“고향 이야기… 했어요.”

“오브라이언. 너는 마케도니아 사람이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은 불가리아로구나. 그래서 불가리아 어를 모국어로 하는구나.”

“…그래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오브라이언이 답했다. 사장은 그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내가 말야, 오브라이언이 자기가 미국 사람이라고 거짓말하는 거는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오브라이언을 불러 본 거야. 이 손님이 영어로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거 참. 이거, 신기하긴 하네.”

“내가 사는 곳에서는 그리 신기하지 않은 능력이오.”

“그럼 마법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거요?”

“그렇소. 하지만 이곳은 마법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은 대신 전자기력을 사용하는 문명이 발전한 것 같소.”

리얀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장에는 형광등이 달려 있었다.

“그럼 손님이 오신 곳에서는 밤에 마법으로 불을 켜시나?”

“운송, 통신, 다 마법으로 하오. 그래서 마법사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소.”

리얀이 꽤 진지하게 설명했지만 사장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렇군. 그렇다고 합시다. 암튼 그래도 돈은 있겠지? 화폐, 돈 말이야. 물물교환 같은 거, 여기서는 안 통하는데.”

사장은 손가락으로 지폐를 세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사는 세계는 8개의 대양이 있고, 12개의 대륙이 있소. 화폐가 모두 달라 다른 대륙으로 갈 때는 반드시 챙기는 물건이 있소. 그것은 바로 금이오.”

“금. 그렇군. 그럼 여기 있는 동안은 금으로 비용 지급하시려나?”

“그렇게 하려고 하오.”

리얀은 학철에게 눈짓을 보냈다. 학철은 주머니에서 조금 전 리얀에게서 받은 금화를 꺼내 사장에게 보여주었다.

“한 50돈 되겠네. 그럼 한 800? 900되려나?”

사장은 손바닥 위에 금화를 올려놓고 무게를 가늠했다.

“좀 전에 오브라이언은 200그램, 그러니까 한 60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학철이 얼른 보충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그렇다면 이 금화, 순도만 좋으면 천만 원까지도 가겠네. 리얀 님. 그럼 이걸로 우리 게스트하우스 방세 내실 건가요?”

사장이 물었다.

“그건 내가 학철에게 지급한 계약금이오, 주인장.”

“학철이? 학철이가 뭘 한다고?”

학철은 이번에도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했지만 표가 나게 굴지는 않았다.

“나는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 사정에 어둡소. 고로 이곳 사정을 잘 알면서 날 도와줄 몸종이 필요한 형편이오.”

“모, 몸종?”

사장은 잠깐 생각하다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학철 입장에서는 아주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그래, 학철아. 너 리얀 님, 저 손님 몸종 해라, 몸종.”

“내 말이 우습소?”

리얀이 사장에게 물었다.

“아냐, 아냐.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래요. 거, 손님 오신 곳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여기는 몸종 같은 거 없어요. 경호원이나 용역을 고용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문화적 차이라는 말에 리얀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다른 세계에서 여기로 오신 이유가 뭐라고 하셨지? 리얀 님?”

사장은 리얀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흑마법사라는 존재가 있소. 내가 온 곳에서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라오. 무려 17년을 이어간 전쟁이었소. 그런데 흑마법사가 여기로 도망쳤고, 나는 그 흑마법사를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오.”

조금 전 학철이 거칠게 요약했던 말이었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여기 왔더니 그 흑마법사 부하가 있었고, 그 부하랑 싸웠다는, 뭐 그런 거 아니오? 그리고 이 고약한 냄새가 바로 그 흑마법사 부하의 시체 냄새라는 거잖아. 맞아요?”

사장은 묘하게 시비조 비슷하게 들리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소.”

“그럼 시체는? 어디 파묻으셨나?”

사장은 빈정거렸다.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서 매장하지는 못했소. 이곳은 축제인지 몰라도 나는 전쟁 중이니 제대로 된 예우를 갖추지 못한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소.”

“아니, 내 말은 종교나 의식이나 뭐 그딴 거 묻는 게 아니라, 시체 어쨌냐고. 도대체 어떻게 처리를 해서 냄새가 이렇게 나는 거냐고, 응? 내 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학철은 사장이 슬슬 본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리얀은 대답 대신 바닥에 얼룩이 남아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시체는 여기에 있소.”

리얀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묻었다고?”

“아니. 여기에 마법으로 부피를 줄여서 붙여 놓았소.”

“마법으로 붙여 놓았다….”

사장은 재미있다는 듯 히죽거리며 중얼거렸다.

“다만 부피를 줄였다 뿐, 그 무게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냄새가 이렇게 나는 것이오.”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란 거요?”

사장이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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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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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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