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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라이언.”
학철이 키 큰 백인에게 말했다.
오브라이언은 게스트하우스 장기투숙객이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사우스 다코다 출신이라고 했다. 가끔씩 뭔가 수상한 물건을 들고 들어오기도 하고, 또 팔기도 했는데, 사장은 놔두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투숙객이었다.
“학철, 왜 나와 있어?”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조금 전까지 유창한 한국말을 듣다가 흔히 듣는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 묻어있는 한국어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사정이 있어. 잠깐 여기 있어. 지금 들어가야 해?”
“사정?”
오브라이언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안에 무슨 일 있다고.”
“What? 사정, 그러니까 안에서 지금 누가 Ejaculation? Huh?”
오브라이언이 물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한 거 같지만 학철은 하나도 재미없었다.
“혹시 Bedbug(빈대)? 그건 아니지?”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오브라이언은 특히 벼룩이나 진드기 같은 벌레에 민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오브라이언.”
“그럼 뭐야, 학철?”
‘다른 세계에서 차원이동문을 통과해서 온 마법사가 마법으로 주위를 정찰하고 있으니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면 오브라이언은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진실을 말해 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아, 맞다. 오브라이언. 혹시 물건 사고 팔지 않아?”
학철은 차라리 말을 돌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이렇게 물었다.
“응. 물건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해.”
“혹시 금은 취급해?”
“금? Gold?”
금이라는 말에 오브라이언이 반응을 보였다. 학철은 조금 전 리얀에게서 받은 금화를 오브라이언에게 보여주었다.
“어, 이거 금이네.”
오브라이언의 표정이 밝아졌다. 진짜 금이 아니라면 오브라이언이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응. 그거, 얼마나 받을 수 있을 거 같아?”
학철은 조금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물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 된다면 기분 째질 것 같았다.
“이거 도금 아니야. 진짜 금. 그런데 가격은 정확하게 순도하고 무게를 재 봐야 알아. 내가 내일 알아봐 줄게. 그런데 이거, 어디서 났어?”
“누가 줬어.”
“누가?”
오브라이언은 금화의 출처에 아주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새로 온 손님이 줬어.”
“아, 현금 잃어버린 여행자! 맞지? 학철?”
오브라이언은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맞아.”
학철은 굳이 오브라이언의 말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실제로 현금 잃어버린 여행자나, 다른 세계에서 차원이동문을 타고 온 마법사나 그게 그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학철. 이거, 사장님한테 말했어?”
“아니. 아직. 사장님 오늘 늦게 온다고 했어.”
“그래? 그럼 사장님하고도 이야기해 봐야겠다. 학철. 내가 해 줄게. 내가 도와줄게.”
오브라이언이 지나치게 달라붙었다. 아무래도 요즘 장사가 잘 안 되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사장님 오면 뭐라고 해야 할까? 금화 보여주면서 말 돌린다고 될 사람이 아닌데….’
학철은 사장이 무서웠다. 요즘 같은 시기에 페이 따박따박 칼같이 시간 지켜서 주는 좋은 사장이기는 했지만 인상도 험악하고 입도 험하다.
“알았어. 사장님한테 말할게. 금화 돈으로 바꾸는 건 오브라이언한테 맡기자고.”
“아냐, 나한테 좋은 생각 있어. 이백. 이백 어때?”
“이백?”
학철은 오브라이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돈 이백. 이 금화, 내가 이백 줄게.”
오브라이언이 이백이라고 말했으니 그보다는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학철. 이거 돈으로 바꾸려면, 순도 측정해야 하고, 무게 측정해야 하고, 수수료 내야 하고, 어휴! 복잡해! 힘들어! 내가 해 줄게. 내가 다 해주고, 이백만 원 줄 게. OK?”
거기다가 이렇게 주절주절 설명까지 덧붙이는 걸 보니 분명히 금화의 가치는 생각보다 클 것 같았다.
“알았어. 사장님한테 말해볼게.”
학철은 이렇게 말하면서 오브라이언에게 금화를 받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오브라이언은 아쉬운지 주머니로 들어가는 금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학철. 안 들어가고 뭐해?”
오브라이언이 물었다. 다시 원점이다.
“사정이 있다니까?”
“무슨 사정?”
“그러니까….”
학철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학철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이었다.
누군가 몸에 불이 붙은 상태로 홍대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와! 불! 불이야, 학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을 오브라이언은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학철은 조금 전 리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에테르를 이용해 적을 불태워 버리는 마법이 특기다.’
불붙은 사람이 쓰러졌다. 그러자 누군가 외투를 벗어 불붙은 사람의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영업점에서 물을 가지고 와서 불을 끄기도 했다.
“리얀!”
학철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리얀! 지금 밖에! 도대체 뭘 한 거예요?”
학철은 다급하게 물었다.
리얀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안 그래도 이제 그만 들어오라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알아서 들어오는구나. 역시 군사 경험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지금 밖에 사람 몸에 불붙는 거 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제대로 된 정찰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권총을 가진 놈을 겨우 하나 찾아서 불태워 버린 것이다. 에테르의 농도가 약해서 폭파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놈들에게 충분히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
리얀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어휴! 냄새! 학철! 누가 오바이트 했어? 냄새 지독해! 사장님 오면 큰일이야, 학철!”
뒤따라 들어온 오브라이언이 코를 감싸 쥐고 말했다.
오브라이언의 행동은 지나친 게 아니었다. 좀 전까지는 안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나갔다 들어오니까 정말로 냄새가 고약했다.
“아, 진짜….”
사장은 다른 건 몰라도 청결만큼은 아주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학철은 투덜거리며 대걸레를 들고 와서 조금 전 시체가 사라진 자리를 닦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새로 온 투숙객?”
오브라이언이 리얀에게 물었다.
“그렇다.”
리얀은 오브라이언을 쏘아보며 말했다. 학철은 그러거나 말거나 투덜거리면서 계속해서 바닥을 닦았다.
“난 오브라이언. 여기 오래 있었어. 미국 중서부에 있는 사우스 다코다 출신. 러시모어 산 알아? 거기 출신이야.”
오브라이언이 말하자 리얀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브라이언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오브라이언은 움찔했다.
‘알지. 저 눈빛. 움찔할 수밖에 없다니까?’
학철은 피식했다.
“오브라이언. 너는 거짓말을 하는구나.”
리얀이 말했다. 오브라이언은 리얀의 말에 뭐라고 말을 하려고 웅얼거렸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다.
“너는 미국 출신이 아니야. 마케도니아. 그게 네 고향이구나. 왜지?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나라 출신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강대국 출신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런 건가?”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학철은 대걸레질을 하면서 쫑알거렸다.
“그, 아냐. 아냐.”
오브라이언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금화. 너는 내가 학철에게 준 금화를 노리는구나. 200? 학철. 이곳 금 시세는 어떻게 되느냐?”
리얀이 오브라이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금 시세요?”
“그래. 알지 못하느냐?”
리얀이 말하자 학철은 대걸레를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금 시세를 검색했다.
‘진작 이렇게 했으면 됐을 걸 그랬네.’
학철은 포탈사이트에 ‘금 시세’라고 입력하는 방법을 통해서 간단하게 금 시세를 알 수 있었다.
“오브라이언. 너는 이 금화의 무게를 200그램 정도 된다고 생각했구나. 학철. 200 그램이면 얼마 정도나 되느냐?”
“200 그램이면요….”
학철은 깜짝 놀랐다.
“처, 천만 원?”
생각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었다.
“천만원 짜리 금화를 200만 원에 사려고 했구나, 오브라이언. 너 같은 놈들은 내가 아주 잘 안다. 어디에나 있지. 사기 치는 장사꾼.”
리얀의 말에 오브라이언은 고개를 떨구고 뭐라 뭐라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온 곳에서는 너 같은 놈들을 따로 다루는 법률이 있고, 특히나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여행자들을 속이는 녀석들은 특별히 혼을 내 주기도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일이 바쁘니 이 정도로 해 두겠다. 앞으로 조심하거라.”
리얀은 이렇게 말하고 오브라이언에게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오브라이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요, 저기, 리얀 님. 좀 전에 제가 몸에 불이 붙은 사람을 봤는데요….”
학철이 말하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학철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씨발! 냄새! 야! 학철아! 이거 뭐야!”
귀청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사, 사장님….”
학철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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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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